의류학자는 섬유 과학, 패션 마케팅 등 옷에 관한 모든 분야를 연구하는데, 최근 한 의류학자가 수학 모형을 이용하면 기후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해 겨울철 의류 판매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의류학자는 왜 기후 연구를 하게 됐을까요?
부산대학교 기후과학연구소엔 대학과 대학원 모두 의류학과를 졸업한 의류학자 오정미 교수가 있어요. 이곳에서 오 교수는 기후변화와 패션의 관계를 연구하지요.
대학 시절 오 교수는 멋지게 디자인한 옷을 어떻게 하면 더 잘 팔지 연구하고 싶어서 의류학과 세부 전공 중 ‘상품학’에 관심을 가졌다고 해요. 상품학에서는 매출 목표를 설정하고 상품을 만들 때 쓰이는 직접 비용과 운송, 관리 등에 드는 간접 비용을 계산해 상품의 가격을 책정하는 방법을 배워요. 오 교수는 대학원 시절 이러한 데이터를 잘 활용하기 위해 ‘통계’를 공부했고, 기상 정보와 의류 판매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연구하고 싶었다고 해요.
“저는 에너지 낭비와 환경 오염을 줄이는 ‘지속 가능한 패션’에 관심이 많아요. 기업이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맞는 의류를 출시할 때 적정 시기를 놓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옷의 가격을 내려서 팔아야 하고 소비자들은 싸기 때문에 불필요한 옷을 살 거예요. 필요 없는 옷을 만드는 과정, 쉽게 사고 버려진 옷을 폐기하는 과정에서 많은 온실가스와 오·폐수가 나오지요. 기상 정보를 이용해서 적정량을 생산하고 소비하면 환경 오염을 줄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동안 기상 정보와 연계해 소비자의 의류 수요 변동성을 알아보는 연구는 많이 없었어요. 예측을 위해서는 적어도 6개월 이상의 장기 기상 예보가 필요한데 과거의 기상 모형으로는 이 정보를 얻기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는 비교적 정확한 장기 예측이 가능해지고, 기후변화로 의류 산업에서 경험적으로 쌓은 정보가 잘 맞지 않기 시작하면서 기상 정보에 관심이 늘어났어요.
의류 매출, 날씨에 달려있다!
의류 회사들은 계절 옷을 출시하기 전 기상 정보를 토대로 수요를 예측하고 생산량을 조절합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날씨 예측이 더욱 힘들어졌어요. 한 예로 2017년 겨울, 강추위로 큰 인기를 끌었던 롱패딩이 2018년 겨울에는 기상 예보와 달리 온화한 날씨가 지속되면서 매출이 저조했어요. 현대백화점에선 9~12월 아웃도어 브랜드의 패딩 매출 가운데 롱패딩 비중이 2017년 81.1%에서 2018년 58.1%로 떨어졌지요. 에잇세컨즈, 빈폴 등이 속한 삼성물산 관계자는 “급변하는 날씨 때문에 최근에는 최소량만 먼저 생산한 뒤 겨울이 다가올 때 판매 추이에 맞춰 추가로 더 생산하는 식의 빠른 대응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어요.
LF는 민간 기상분석기업인 ‘케이웨더’로부터 분기별로 ‘6개월 장기 기상 전망’과 ‘과거 기상자료’ 등 기상 정보를 받아 제품 기획, 개발, 출시, 마케팅 등 다방면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LF 브랜드 닥스에서 2022년 FW 상품으로 기획한 간절기 비바람과 한기를 막아주는 퀼팅 아우터인 ‘하이랜더’ 컬렉션은 추위가 예년보다 일찍 찾아올 수 있다는 기상 정보에 따라 9월에 출시했어요. 정확한 예측 덕분에 출시한 지 1달여 만에 전년 동기간 대비 퀼팅 아우터 판매 매출이 100% 증가했답니다.
겨울 외투 출시 시기, 체감온도가 중요하다!
오 교수 연구팀은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에 구분이 있는 미국 뉴욕의 2008년부터 2019년까지 11년간의 ‘구글 트렌드’와 기상 정보를 활용해 다양한 기상 요인 중 어떤 요인이 겨울 외투 수요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지 분석한 결과를 2022년 7월 발표했어요. 구글 트렌드는 구글 포털사이트에서 해당 키워드의 검색 빈도수를 나타내요. 겨울 외투의 검색 빈도수가 많다면 자연스레 수요가 많다고 판단할 수 있지요. 의류 회사에서는 대체로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의류학자들이 수요를 예측할 때 구글 트렌드를 주로 사용해요.
연구팀은 최고기온, 평균기온, 최저기온, 강수량, 강설량, 풍속, 체감온도 이렇게 7개의 기상 요인 데이터를 사용했어요. 이때 체감온도는 미국 국립기상청에서 쓰는 계산식을 통해 도출했습니다.
분석 결과 체감온도가 겨울 외투 수요에 가장 연관이 깊었어요. 특히 체감온도가 떨어진 다음 날에 수요가 증가한다는 것을 발견했지요. 또 겨울 외투 수요는 가장 추운 1월이 아닌 11월, 10월, 12월 순으로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초겨울에 외투 소비량이 많음을 의미해요. 체감온도도 초겨울인 10월과 11월의 수요와 관계가 깊었지요. 전날 체감온도가 1℃ 떨어지면 11월에는 2.16씩, 10월에는 0.9씩 수요가 증가했어요. 연구팀은 이 연구를 기반으로 겨울철 의류의 출시 시기를 정해 매출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어요.
하지만 오 교수는 의류 회사의 실제 판매 자료를 넣어 분석하지 못한 것이 연구의 한계라고 말했어요. 의류 회사에서도 암암리에 기상 정보를 이용해 판매 전략을 세우고 있지만 기업 비밀이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고 있지요.
오 교수는 “기업의 겨울 외투 판매 데이터가 있으면 모형을 검증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가능하다면 기업 정보를 이용해 연구를 꼭 진행하고 싶다”고 말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