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공부하고 싶은데 제대로 배울 수 없었던 엘리가 서러운 마음을 아녜시에게 쏟아내고 말았네요. 당시엔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런 시대에 수학과 교수까지 된 아녜시는 어떤 업적을 남겼던 걸까요?
네덜란드 수학자 디르크 스트라위크는 1969년 간한 ‘수학의 원전’에서 아녜시를 ‘히파티아 이래로 가장 뛰어난 여성 수학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녜시가 남긴 학술자료는 많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35살의 젊은 나이에 학계를 떠나 평생 봉사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남아있는 자료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이탈리아 청년을 위한 미적분학’이라는 책입니다.
‘이탈리아 청년을 위한 미적분학’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던 미적분학을 처음으로 통합한 입문서로, 미적분학뿐만 아니라 대수학, 기하학도 다루고 있습니다. 1권에서는 주로 대수학 기본개념을, 2권에서는 미적분학을 설명합니다. ‘아녜시의 마녀’로 유명한 곡선은 1권 381쪽에 실려 있습니다.
최초의 미적분학 입문서
아녜시가 살았던 시대는 아직 미적분학이 생겨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수학계가 뉴턴파와 라이프니츠파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학파에 따라 용어는 물론 표기방식도 달랐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었죠. 아녜시는 흩어져있는 수학 이론을 모아 이탈리아어로 정리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출판된 수학책은 대부분 라틴어로 쓰여 있었고 어려운 수학이론을 쉽게 설명한 입문서도 없었으므로 ‘이탈리아 청년을 위한 미적분학’은 분명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됐을 겁니다.
책이 나오자 프랑스 아카데미 소속 장 메랑, 알렉시 콜레로, 장 달랑베르는 “미적분학을 이루는 거의 모든 발견을 담고 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흩어져있는 현대 수학을 같은 형태로 압축하는 데 대단한 기술과 총명함이 필요했을 것이다. 책 곳곳에서 빼어난 질서와 정확성을 볼 수 있다”, “가장 완성도가 높고 잘 만든 문헌”이라고 프랑스 아카데미에 보고했습니다.
이 책으로 이름을 알린 아녜시는 이탈리아 볼로냐대학교 교수로 임명받았고, 실제로 45년간 교수 명단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다만 볼로냐대에서 초청했을 때 아녜시는 이미 봉사활동을 하며 살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학생을 가르친 적은 없습니다.
2018년에 보는 마리아 아녜시
그때보다 수학이 많이 발전한 지금은 책을 둘러싼 다양한 평가가 있습니다. ‘해석 기하학의 역사’를 쓴 칼 보이어는 아녜시의 책에 대해 “새로운 내용이 없고, 몇 가지 실수가 있다”고 평가하며, ‘이탈리아 청년을 위한 미적분학’에 담긴 수학 이론이 독창적이거나 새롭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이탈리아 청년을 위한 미적분학’은 애초에 기존 이론을 정리하고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쓴 책이지 연구서가 아니라며 이 지적에 반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수학자의 작업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통합했고, 책이 나왔을 때 학계에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 걸 보면 결코 수준 낮은 수학서는 아니었을 거라고 말이죠.
우리는 그 시대에 살지 않았으니 아녜시의 책이 어떤 가치가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녜시가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학자가 아니었는데도 ‘이탈리아 청년을 위한 미적분학’을 여러 나라에서 번역한 걸 보면, 미적분을 공부하기에 이만큼 좋은 책이 없었다는 거겠죠? 엘리도 빨리 ‘이탈리아 청년을 위한 미적분학’을 읽고 마음껏 수학을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