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만 40세 미만의 젊은 수학자가 받을 수 있는 수학계 최고 영예 ‘필즈상’ 시상식은 7월 5일 핀란드 알토대학교에서 열립니다. 누가 영예의 주인공이 될까요?
최근 필즈상 수상자들의 연구를 보면 자주 눈에 띄는 분야가 있어요. 바로 동역학계! 일반인에게는 낯설지만 2010, 2014, 2018년 3회 연속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한 연구 분야랍니다.
동역학계란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모든 것을 계산하고 설명하는 분야예요. 예를 들어 에어하키 게임에서 동그란 퍽을 세게 친다고 생각해 봐요. 친 직후엔 퍽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있지만, 이후 수없이 벽에 부딪히고 또 부딪히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알기 어렵지요. 동역학계는 이런 예측 불가능한 운동을 다뤄요. 수학자와 이론물리학자가 모두 연구하는 동역학계는 여러 수학 분야를 융합해 연구할 수 있고, 우주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연구로도 이어질 수 있어서 주목받고 있어요.
이렇게 동역학계를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이번에 소개할 버리우 페테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순수수리통계학과 교수의 연구 분야이기 때문이에요. 버리우 교수는 2010년 필즈상 수상자인 엘론 린덴스트라우스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의 강의를 보고 크게 감명을 받은 뒤, 동역학계를 연구하기로 결심했어요. 버리우 교수는 “동역학계에서는 수학의 여러 분야를 결합해 문제를 해결하는 점이 인상 깊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어요.
▲ 2016년 유럽수학회상을 받는 버리우 교수(왼쪽)의 모습이에요.
<;수학동아>; 독자들에게 “수학이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수학을 공부하길 바란다”고 전했어요.
버리우 교수의 가장 유명한 연구는 2015년 수학계 최고 학술지 <;수학연보>;에 발표한 논문이에요. 유클리드 공간에 작용하는 랜덤 행렬(숫자가 무작위로 들어가는 행렬)에 대해 ‘국소극한정리’를 증명했어요. 동전 던지기와 같은 시행을 무수히 많이 반복하면 앞면이 나오는 동전 개수에 대한 확률이 점점 종 모양을 이루는 그래프가 되는데, 그 종 모양의 폭을 구한 거예요. 임선희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교수는 “수십 년 동안 많은 학자가 직관적으로 추측만 했던 것을 엄밀하게 밝혀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어요.
또한 특정한 공간에서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물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데 쓰이는 확률 측도들을 합쳐 만든 새로운 측도인 ‘베르누이 컨볼루션’의 중요한 성질을 밝혀냈어요. 베르누이 컨볼루션은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 물체가 어떤 방향으로 얼마만큼 이동하는지를 알게 해 주는 기준이에요.
버리우 교수에게 훌륭한 연구 결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수학이 좋아서!”라고 명쾌하게 답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여러 수학 경시대회에 나갔는데, 그때마다 어려운 문제에 대해 오래 생각하고 자신만의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 너무 재밌었대요. 앞으로 기존 연구분야가 아닌 수학의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도구를 배워 독창적인 연구를 하고 싶다고 밝혔어요. 필즈상까지 받으면 수학을 향한 사랑이 더 커지지 않을까요?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외향적 성격에, 많은 사람 앞에서 재밌게 강연하는 수학자! 바로 아이반 코윈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교수입니다.
코윈 교수를 학회에서 자주 만난다는 김건우 POSTECH 교수는 “성격이 굉장히 좋고, 호쾌한 사람”이라고 설명했어요. 이지운 KAIST 수리과학과 교수 역시 “처음 만난 자리에서 먼저 인사하고 이름을 물어 오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어요. 이어 “깔끔한 발표 자료와 재치 있는 발표 능력도 코윈 교수의 장점”이라고 덧붙였어요.
코윈 교수는 최근 10년 동안 7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중에는 수학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학술지에 실린 연구도 여럿 있습니다. 수학계의 주목을 받은 첫 연구는 2011년에 발표한 박사 학위 논문입니다. ‘카타르-파리시-장(KPZ) 방정식’의 해가 어떤 값을 가질지 그 확률분포를 정확히 알아낸 연구이지요. 코윈 교수는 KPZ 방정식의 해가 한쪽 꼬리가 길게 늘어진 ‘트레이시-위덤’ 분포를 따른다는 것을 밝혔어요.
KPZ 방정식은 두 물질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면에 무작위로 변화가 가해졌을 때 경계면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예측하는 방정식입니다. 예를 들어 책상 위에 먼지가 무작위로 떨어질 때 책상 위 먼지의 높이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는 것이지요.
2021년에는 입자의 상호 작용을 설명하는 여러 모형에서도 트레이시-위덤 분포를 따른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김 교수는 “최근까지 실험을 통해서는 트레이시-위덤 분포를 따르는 것을 알았지만 왜 그런지 몰랐는데, 코윈 교수가 수학적으로 그 이유를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이 교수는 “우리 생활 속에는 무작위적 요소가 많은데 이는 완벽한 계산이 어려워 확률로 접근한다”며, “특히 KPZ 방정식은 기후변화 예측 등 물리학에서도 많이 쓰이는 실용적인 방정식인데, 코원 교수는 이 분야의 굵직한 연구를 많이 해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필즈상 시상식에서 그의 유쾌한 소감을 들을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필즈상 수상자 중에는 어린 시절부터 수학에 두각을 나타내며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 금메달을 매년 따는 경우가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2006년 수상자 테렌스 타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LA캠퍼스 수학과 교수와 2018년 수상자 페터 숄체 독일 본대학교 수학과 교수가 있습니다.
제이콥 치머만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수학과 교수도 타고난 수학적 재능을 어릴 때부터 발휘했습니다. 3살부터 수학 퍼즐에 관심을 보였고, 2003년과 2004년 두 번 연속 IMO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요. 2012년과 2015년에는 IMO 캐나다 국가대표팀 단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2015년에는 타오 교수와 숄체 교수가 수상했던 ‘사스트라(SASTRA) 라마누잔 상’도 받으며 수학계에 이름을 제대로 알렸습니다. 최근에는 수많은 수학자가 골머리를 앓던 30년 묵은 문제를 해결해 수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2021년 9월 치머만 교수가 7~8년간 여러 수학자와 함께 연구해 오던 ‘앙드레 오르트 추측’을 완전히 해결한 것입니다. 정수론과 대수기하학의 주요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시무라 다양체’를 다른 다양체와 구별하는 방법을 찾아내 문제를 풀었지요.
이정인 고등과학원 수학부 연구원은 “시무라 다양체는 다루기가 까다로워 많은 수학자가 어려워하는 개념이지만, 수학계 거대 프로젝트인 랭글랜즈 프로그램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다양체”라고 말했습니다. 랭글랜즈 프로그램은 정수론과 표현론 등 수학의 여러 분야를 잇는 작업인데, 그 작업에 치머만 교수가 도움을 준 셈이지요.
김완수 KAIST 수리과학과 교수는 “앙드레 오르트 추측은 정수론에서 굉장히 역사가 깊은 문제”라며, “이런 문제를 푼 것도 의미 있지만, 문제를 해결한 방법을 다른 문제에 적용하면 새로운 결과를 낼 수 있다”며 그 점이 더 큰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치머만 교수가 필즈상을 받을 만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 연구원은 “치머만 교수는 확실히 정수론을 이끄는 수학자”라며, “그의 논문을 보면 크게 어려운 이론을 사용하지 않고도 독창적인 방법을 통해 놀라운 결과를 증명해 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어요. 김 교수 역시 “젊은 나이지만 자기 분야의 연구 방향을 이끄는 리더”라고 치머만 교수를 소개했습니다. 과연 정수론의 떠오르는 샛별 치머만 교수가 필즈상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