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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특성 살피는 새로운 도구, 위상 수학

컵과 도넛이 있습니다. 누가 봐도 다른 모양이지만 위상 수학의 세계에서는 ‘손잡이가 하나 달린 컵의 표면을 잘 만지면, 구멍이 한 개 있는 도넛과 같다’라며 같은 도형이라 하죠. 이렇듯 물체의 모양을 바꿔도 변하지 않는 기하학적 성질을 연구하는 분야인 위상 수학이 최근 다양한 물질을 관찰하는 도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2016년 10월 노벨 물리학상이 발표된 순간 과학자와 수학자 모두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위상 수학으로 고체 물질의 성질을 밝힌 연구자 세 명 데이비드 사울리스(미국 워싱턴대학교 교수), 덩컨 홀데인(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 마이클 코스털리츠(미국 브라운대학교 교수)가 수상자로 선정됐기 때문입니다. 이후 이 분야는 더 넓어져 고체 물질뿐 아니라 다양한 물질에도 적용돼 연구됐습니다.

 

그리고 약 5년이 지난 올해 8월, 정준우 울산과학기술원(UNIST) 물리학과 교수팀이 영국 더럼대학교, 브리스톨대학교 연구팀과 함께 위상 수학을 이용해 액정의 새로운 성질을 밝혀 국제 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습니다. 이번 결과는 해당 호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표지 논문으로 선정됐습니다.

 

 

위상 수학하면 ‘손잡이가 하나 달린 컵과 도넛은 구멍이 한 개인 위상적으로 같은 도형이다’라는 표현을 떠올릴 수 있는데요, 이처럼 컵과 도넛처럼 도형의 모양을 바꿔도 변하지 않는 성질을 찾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이때 구멍의 개수처럼 변하지 않는 성질을 ‘위상 수’라고 하며, 위상 수는 위상 구조를 나누는 기준으로 사용됩니다.

 

 

액정의 구조를 매듭으로 나타낼 수 있다?

 

정 교수는 위상 수 개념과 위상 수학을 액정을 관찰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액정(liquid crystal)은 액체의 ‘액’과 고체 결정의 ‘정’을 합친 단어로, 말 그대로 액체와 고체의 성질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액정에 전기장을 걸어 주거나 특정 물질을 넣으면 액정을 구성하는 입자의 방향을 조절할 수 있는데, 이 성질을 이용해 휴대전화의 화면, TV 화면 등에 사용하고 있죠. 하지만 여전히 많은 액정 물질의 성질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응용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구팀은 액정의 숨겨진 성질을 밝히기 위해 액정의 한 종류를 골라 실험을 했습니다. 머리카락 정도의 가는 유리관 안에 액정을 넣고 한 방향으로 정렬했더니 마치 나선형 계단처럼 꼬여서 배열되는 특징을 보였죠. 여기서 연구팀은 유리관에서 고르게 나열돼야 할 액정에 규칙을 벗어나는 결함이 생기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결함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나선형의 회전 각도가 90와 270로, 위상적으로 다른 구조의 액정이 만나 ‘위상학적 결함’이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꼬인 각도가 다른 두 구조가 위상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발표됐던 액정의 위상 구조를 나누는 ‘위상 수’는 위상적 결함을 모두 설명하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 교수팀은 액정의 위상 구조를 나눌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인 ‘매듭’을 떠올렸습니다. 액정 물질을 이루는 입자들의 배열을 정해진 규칙에 따라 선으로 이으면 매듭으로 나타낼 수 있는데, 90와 270로 꼬인 두 구조의 매듭의 고리 수는 각각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즉 매듭의 고리 수를 위상 수로 사용하면, 나선의 회전 각도가인 액정의 꼬임 구조가 위상적으로 서로 다른 구조임을 찾은 겁니다.

 

정 교수는 철사를 예로 들면서 “철사를 이루는 물질들이 모두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다면, 강한 힘을 줘도 구부리기 어렵다. 달리 말하면 철사 안에 결함이 있을 때 특정 부분이 약해져 철사를 구부리거나 잘라서 사용할 수 있다”며 “이처럼 액정과 같은 다양한 물질에서 결함의 성질을 이해한다면 물질을 더욱 유용하게 쓰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앞으로 이러한 위상적 결함을 찾고, 그 성질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위상 수학으로 경계의 비밀을 풀다

 

서로 다른 위상 구조를 갖는 액정이 만나듯, 위상 구조 사이의 경계는 규칙을 벗어난 상태에 놓여 있어 ‘결함’이라 불립니다. 일반적으로 결함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한 가지 물질 안에 섞인 이물질이나 흠집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물리학에서는 다르게 봅니다. 지금까지 관찰하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을 발견할 기회이기 때문이죠.

 

특히 위상 수가 다른 두 구조가 만나면, 그 경계에서 각각의 구조에서는 관찰할 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정 교수와 같은 분야에서 연구하는 진호섭 UNIST 물리학과 교수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 물질로 도넛 모양과 구 모양의 물체를 만들고, 두 물체를 붙이면 그 사이에서는 오히려 전기가 통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관찰하기 위해 위상 구조에 따라 물질을 분류하고, 서로 결합시켜 일부러 결함을 만들어 실험하기도 합니다.

 

진 교수는 “물질을 이루는 입자의 형태를 방향과 크기를 나타낸 벡터처럼 화살표로 나타낼 수 있다면, 모두 위상 구조로 정의할 수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위상 수학은 금속, 부도체, 반도체 등 다양한 물질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그는 “계속해서 새로운 물질이 나오고, 이를 관찰해야 하는 물리학 분야에서는 앞으로도 위상 수학을 이용해 재밌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다음에는 어떤 물질에서 위상 수학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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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수학동아 정보

  • 홍아름 기자 기자
  • 도움

    정준우(UNIST 물리학과 교수), 박노정(UNIST 물리학과 교수), 진호섭(UNIST 물리학과 교수)
  • 디자인

    김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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