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수학을 색다르게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수학 활동은 없을까?”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가재울중학교의 2학년 동아리 ‘와이즈 수학탐구반’을 이끄는 황유진 수학 교사가 장기적인 수학 체험 활동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다. 바로 2021년 한 해 동안 학생들이 직접 수학 교양서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와이즈 수학탐구반 학생들이 만드는 수학 교양서 ‘우리가 쓴, 우리의 수학’의 제작 현장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오늘은 이번에 만든 수학 교양서 ‘우리가 쓴, 우리의 수학’의 일부분을 발췌한 가책자가 나와 최종 확인을 할 예정입니다. 학생들이 수개월 동안 공들인 만큼 그 소식을 듣고 매우 들떠 있어요.”
8월 27일 오후 2시, 학생들이 방과후 와이즈 수학탐구반 교실로 들어오기 전에 수업을 준비 중인 황유진 교사가 이같이 말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2학년 15명이 우르르 몰려왔다. 이어 이번 수학 교양서 제작 프로젝트의 진행을 맡은 염지현 강사가 등장했다. 염 강사는 ‘십대를 위한 영화 속 수학 인문학 여행(2020)’의 저자다. 황 교사는 “동아리 수업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초대해 함께 운영할 수 있다”며 “질 높은 수학 글쓰기 활동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 학교 지원을 받아 전문강사를 초빙해 함께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와이즈 수학탐구반은 2013년 ‘와이즈반’이란 이름으로 출발했다. 2019년부터 담당 지도교사를 맡은 황 교사는 “아이들에게 수학동아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리기 위해 동아리 이름에 수학탐구라는 용어를 추가했다”며 “전 학년에 걸쳐 총 50여 명의 학생이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와이즈 수학탐구반은 2학년을 대상으로 정기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1학년과 3학년은 자율동아리 방식으로 특별한 활동이 있을 경우 신청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수학동아’로 수학 글쓰기 눈을 기르다!
염 강사는 지난 3월 와이즈 수학탐구반 2학년을 대상으로 “모두 4편의 수학 관련 글을 쓰게 될 것”이라며 “직접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의 소재를 정하며, 여럿이서 힘을 합쳐 글쓰기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를 떠올린 최민석 군은 “수학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이 와닿지 않아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반면 한준우 군은 “문제로만 접해 온 수학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에 호기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이번 프로젝트도 글의 소재를 찾는 일에서 시작한다. 수업 초기에 염 강사와 학생들은 수학동아와 과학동아 등을 발행하는 동아사이언스의 기사 모음 사이트인 ‘디라이브러리(dl.dongascience.com)’에 접속해 최근에 어떤 수학 콘텐츠가 다뤄졌는지 조사했다. 염 강사는 “디라이브러리는 특정 시기에 인기 있는 소재가 어떻게 다뤄졌는지를 살펴보기에 적합했다”고 말했다.
이를 지켜보던 황 교사는 학생들이 책을 만드는 만큼 실제 인쇄물을 펼쳐보며 만들면 더욱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떠오른 것이 수업 연구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구독했던 ‘수학동아’다. 황 교사는 수학동아팀에게 이번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했고, 곧 3개월 동안 와이즈 수학탐구반에서 활동하는 학생 전원이 수학동아를 받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염 강사는 “수학동아에 실린 글을 바탕으로 다양한 소재를 수학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강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이유근 군은 “이를 통해 ‘우리의 비밀 친구 무한’이란 주제로 첫 번째 글을 썼다”며 “무한급수의 개념을 이용해 우리 주변의 활동을 살펴본 글”이라고 설명했다.
글의 소재와 주제를 정한 학생들은 어떤 내용을 담을지 알기 쉽게 정리하는 기획안을 작성한다. 최종적으로 기획안이 통과되면 세부 자료 조사나 취재 등을 거쳐 글의 초안을 작성한다.
학생들이 공들여 작성한 글이 퇴고를 거쳐 완성되면 그림과 함께 지면에 배치하는 디자인 작업이 진행된다.
김동호 군은 “‘피라미드 높이’를 주제로 글을 쓰면서 내용을 설명할 그림을 넣어야 하는 데, 저작권이 없는 그림을 찾지 못해 결국 직접 그려야 했다”며 “글이든 그림이든 창작물이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돼 저작권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수학 교양서 제작 프로젝트의 진행을 맡은 염지현 강사가 학생들이 쓴 ‘우리가 쓴, 우리의 수학’의 가책자(아래)를 배부하고 교정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수학 글쓰기?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기자가 방문한 날 염 강사는 이번에 만든 ‘우리가 쓴, 우리의 수학’의 일부 내용을 편집해 인쇄한 가책자를 학생들에게 전달했다.
염 강사는 학생들을 향해 “글을 완성하려면 잘못된 띄어쓰기나 존칭형 서술어, 피동형 표현 등을 찾아 없애는 교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말했다. 예를 들어 ‘들어보셨나요?’와 같은 존칭형 서술어를 찾았다면 ‘들어봤나요?’로 수정하고,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처럼 피동형 표현이 있다면 ‘소개하겠습니다’와 같은 사동형 표현으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쓴, 우리의 수학’은 소재 찾기부터 최종 교정까지 약 6개월이 소요됐고, 10월 초 마지막 수업에서 최종 완성본이 학생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이 책은 약 200쪽으로 수와 인물, 기하, 세상 등 네 가지 테마로 구성됐다. 중학교 수학 교과서에서 다루는 개념부터 코로나19처럼 우리의 삶과 밀접한 수학 이야기까지 다양한 소재를 다룬 글이 포함됐다.
로또의 확률 등을 주제로 글을 쓴 김경래 군은 “처음에는 작은 일조차 시간이 오래 걸려 걱정이 컸는데, 친구들과 하나씩 협의하며 작업하다 보니 어느새 책을 완성하게 돼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1학년 때부터 와이즈 수학탐구반에 참여한 조재민 군도 “이번 프로젝트는 친구들과 더 깊이 있게 소통하면서 수학적 생각을 표현하고 나눌 수 있는 특별한 활동이었다”고 덧붙였다.
황 교사는 “이번 프로젝트처럼 활동에 맞는 전문가와 협력해 앞으로도 아이들의 기억에 남을 수학 체험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_ 인터뷰
와이즈 수학탐구반 생생 활동기
이번에 제작한 수학 교양서 ‘우리가 쓴, 우리의 수학’에 ‘지구와 소행성의 끊임없는 확률게임’, ‘종이접기에도 수학이 있다?!’, ‘벌집은 왜 육각형일까?’, ‘예측가능한 코로나(공저 김나은)’ 등의 주제로 글을 작성한 최신비 양에게 체험 활동 과정을 물어봤다.
Q 글을 쓰는 데는 얼마나 걸렸나요?
처음 고른 소재는 유튜브 등을 통해 많이 접한 소행성 충돌이었어요. 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데 하루 정도 걸렸어요. 이 정도면 며칠 안에 4개 글을 모두 쓸 수 있겠다 싶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소재부터 새롭게 찾아야 했던 나머지 3개의 글을 모두 완성하기까지 약 2주가 필요했어요.
Q 글의 소재는 주로 어디서 찾았나요?
평소 즐겨보는 과학과 수학 관련 유튜브에서 소재를 얻었습니다. 제가 국어와 수학을 좋아하는데도 잘 몰랐던 수학 개념을 글로 푸는 일이 쉽지 않았어요. 글에서 각각의 수학 개념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갈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수학동아를 보며 다양한 수학 개념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참고해 글을 작성하려고 노력했어요.
Q 이번 활동으로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예측 가능한 코로나’란 주제의 글은 친구인 김나은 양과 함께 썼어요. 두 명이 하나의 글을 쓰려다 보니 의견을 맞추기 힘들었죠. 온라인 화상회의 등을 통해 서로의 글에 대해 의견을 자주 주고받았어요. 이 과정에서 정확한 내용을 찾아 글에 녹여내려고 애쓰는 나은 양을 통해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제가 알고 있는 수학 내용을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문장을 연결하는 방법 등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