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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과 시 상상력으로 만나다!


“시인이 아닌 수학자는 진정한 수학자가 아니다.” 독일의 수학자 카를 바이어슈트라스의 말이다. 바이어슈트라스는 왜 진정한 수학자에게 시인의 자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정확한 논리로 진리를 탐구하는 수학과 간결한 언어로 자연과 세상을 표현하는 시의 조합은 낯설기만 하다. 기자는 최근 수학 동시집을 낸 시인을 만나 수학과 시의 만남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들어봤다.

“수학공식은 추상적인 시”

“어쩌면 수학 공식은 가장 간결하게 쓴 추상적인 시 같아요.” 지난 5월 ‘숫자벌레’라는 수학 동시집을 펴낸 함기석 시인의 말이다. 문학의 여러 장르 중에서도 ‘시’란 분야에 수학이란 주제로 동시를 쓴 시인은 “시를 통해 학생들이 수학을 놀이처럼 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번 시집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수학을 주제로 시를 쓰는 것은 문학에서도 새로운 도전”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대부분 시의 주제가 자연이나 일상 소재이기 때문이다.

사실 함기석 시인은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수학을 좋아해 전공으로 선택했지만 대학 시절 철학, 문학 같은 인문학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시 창작에 빠져들었다. 수학과 시….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고 기자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수학과 시가 겉으로는 많이 달라 보이지만 비슷한 점이 굉장히 많아요. 수학과 시는 모두 창조적인 상상력이 필요한 분야거든요. 접근하는 방법만 조금 다를 뿐이죠.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탐구해 현실에 관여하는 것이 수학이라면 시는 그 반대로 보이는 세계를 탐구해보이지 않는 세계에 관여합니다. 하지만 결국 수학이나 시 모두 자연이나 우주에 숨은 본질을 다룬다는 점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수학에 상상력이 필요한 걸까? 논리적인 사고와 문제 해결능력을 강조하는 수학에 상상력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했다.

“수학의 역사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수학자가 숫자 0이나 허수를 발견했을 때 논리적인 사고로만 가능했을까요? 기존에 없던 것을 발견한 것은 아마도 수학자가 창조적인 상상을 했기 때문일 거예요. 또 수학의 분야 중에 위상수학이란 분야가 있는데, 공간을 추상화한 이 분야에서는 특히 상상력이 필요하죠.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공간을 다뤄야 하니까요.”

함기석 시인은 상상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상상력을 키우는 훈련은 어렸을 때부터 하는 것이 좋은데, 문학의 장르 중에서도 시는 적절한 매체가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누구나 수학시를 즐기면서 상상력을 키워보라는 말도 전했다. 전혀 다른 분야처럼 느껴진 수학과 시,상상의 날개를 펼쳐 두 배의 기쁨을 누려보자.

‘숫자벌레’에서 저자가 직접 뽑은 시

함기석 시인의 동시집 ‘숫자벌레’에는 총 39편의 작품이 있다. 기자는 여러 편의 작품 중에서 수학동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4편의 시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다. 시인은 작품과 함께 작품에 대한 자신의 의도를 전해주었다. 저자가 들려주는 수학시에 쫑긋 귀를 기울여보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사슴의 뿔이 멈추지 않고 계속 자란다면
복어의 배가 터지지 않고 계속 부푼다면
고래의 분수가 하늘로 끝없이 올라간다면
아빠의 콧수염이 끝없이 계속 자란다면
네 엄지발가락이 끝없이 계속 커진다면

작품설명 | 정말로 복어의 배가 터지지 않고 계속 부푼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마음대로 상상해 보세요. 끝없이 계속되는 것을 수학에서는 무한이라고 합니다. 무한에 대한 상상, 지금까지 없었던 것에 대한 상상에서 창조는 시작됩니다. 이 시는 수학에서도 가장 필요한 것이 상상력임을 알려줍니다.

참새 합창단

학교 가는 골목 위에 전깃줄 다섯
오선지다
참새들이 음표처럼 앉아

짹짹 호호호
짹짹 하하하
기분 좋은 노래를 불러 준다

작품설명 | 골목 위의 전깃줄을 오선지, 참새들을 음표로 표현한 재밌는 시입니다. 2분 음표, 4분 음표, 8분 음표, 16분 음표 등 음표에는 수학의 배수와 분수 개념이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수학이 없으면 음악은 불가능하다 말할 정도로 음악에서 수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큽니다.

시를 사랑한 수학자, 해밀턴

1805년에 태어난 아일랜드의 수학자 윌리엄 해밀턴은 수학의 한 분야인 대수학에서 새로운 수체계인 사원수를 발견한 업적을 남겼다. 또 그의 이름을 딴 해밀턴 경로는 그래프에서 모든 꼭짓점을 단 한 번만 지나는 경로를 의미하는데, 이는 네트워크나 통신 발달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해밀턴은 이 같은 업적을 남길 만큼 당대 최고의 수학자였지만 소년 시절에는 시인을 꿈꾼 시인 지망생이었다. 당시 유명한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와도 자주 편지를 주고받았다. 워즈워스는 시적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해밀턴을 칭찬했지만 뛰어난 수학적 재능이 묻힐까 염려해 수학의 길을 가도록 조언했다고 한다.

똥 누는 나무

버찌나무가 까만 똥을 눈다
햇빛 먹고 만든
빗물 먹고 만든
똥그란 똥

버찌나무엔 버찌 똥
앵두나무엔 앵두 똥
살구나무엔 살구 똥

까만 똥
빨간 똥
노란 똥
나무들이 눈 똥을
새들이 맛있게 먹는다

작품설명 | 열매를 나무가 누는 똥으로 표현한 참신한 시입니다. 우리의 눈에 익숙한 자연물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쓴 시인데 버찌, 앵두, 살구 같은 둥근 모양의 열매를 통해 ‘구’의 개념을 익힐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먹는 과일에도 수학 개념이 들어 있음을 알려줍니다.

하느님도 수학을 좋아해

눈이 내린다 점 점 점
비가 내린다 선 선 선

눈은 하느님의 점찍기 놀이
비는 하느님의 선긋기 놀이

작품설명 | 눈을 점, 비를 선에 비유한 짧은 시입니다. 수학에서 점은 ‘크기는 없고 위치만 있는 것’, 선은 ‘위치와 길이는 있지만 폭이나 두께는 없는 것’으로 점도 선도 도형입니다.이 시는 눈이나 비 같은 자연현상 속에도 수학 개념이 들어 있음을 알려줍니다. 자연은 자연 자체로 아름다운 수학입니다.

수학동아 최고의 수학시를 뽑아라!

수학동아의 독자 참여코너인 ‘수학동아로 모여봐’에서는 매달 우수한 수학시 3편을 선정해 왔다. 창간호인 2010년 10월호부터 2011년 6월호까지 수학동아에 소개된 63편의 시 중에서 대상작 1편, 최우수작 1편, 우수작 2편을 뽑았다. 심사와 작품평은 모두 함기석 시인이 직접 해주셨다.

집합
김은서(광명 광남중 2년)

구름들이 모여 하늘이란 집합을 이루고
나무들이 모여 숲이란 집합을 이룬다네

물방울이 모여 넓은 바다란 집합을 이루며
푸른 잔디들이 모여 넓디넓은 초원이란
집합을 이루네

이러한 모든 집합들이 모여 우리가 살아가는
전체집합, 세상을 이룬다네

작품평 | 김은서 학생의 ‘집합’은 우리가 사는 세상 전체가 하나의 집합이라는 점을 잘 포착해 시야를 넓게 확장시켰습니다. 비록 시가 설명 위주로 되어 있긴 하지만 나무들이 모여 숲이라는 집합을 이루고 물방울들이 모여 바다라는 집합을 이루고, 그런 각각의 집합들이 조화롭게 모여 세상이라는 전체집합을 이룬다는 생각이 좋습니다. 작은 사물에서 출발해 전체를 품으려는 마음의 넓이, 생각의 깊이를 높게 평가했습니다.

근삿값처럼
성은주(울산여중 3년)

근삿값처럼
친구들과 서로서로
닮으려는 우리

근삿값처럼
부모님의 기준에
맞추려는 우리

꿈도 잃고
개성도 잃고
근삿값처럼만
살아가려는 우리

작품평 | 성은주 학생의 ‘근삿값처럼’은 점점 꿈과 개성을 잃어가는 우리의 교육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장점이 있는 시입니다. 그러나 어떤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비판 자체에 머물고 있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우주는 각의 세계
정다니엘(용인 성지중 1년)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각의 세계

우주의 지구도
지구의 건물도
동물도 식물도
지금 읽고 있는 수학동아도

모두 각을 가지고 있네
각은 수학책에서만 나오는 줄 알았더니
우리 바로 옆에도 있네
각은 우리의 친구

작품평 | 정다니엘 학생의 ‘우주는 각의 세계’는 상상공간이 매우 크고 넓습니다. 우주 안의 모든 것들은 각을 갖고 있다는 표현을 통해 수학이 우리 곁에 있는 친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깊이 있는 주제 설정은 좋았는데, 그것을 전달하는 과정이 너무 설명적이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분수 가족
강윤수(성남 구미초 5년)

머리가 너무 커서 슬픈
가분수, 내 동생

언제나 커 보이는
우리 형, 대분수

딱 알맞은 나는
바로 진분수

작품평 | 강윤수 학생의 ‘분수 가족’은 가분수, 대분수, 진분수 등 분수의 특성을 잘 파악해 가족과 연결시킨 재미있는 시입니다. 발상과 아이디어는 참신했지만 그 발상을 토대로 생각을 더 넓게 확장시키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함기석 시인이 제안하는 수학시 쓰는 방법!

① 대상을 충분히 관찰하기

시는 침묵하는 사물과 대화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 사물이 가지고 있는 상처나 결핍을 나의 상처, 내 몸의 아픔으로 느끼기 시작할 때 시가 됩니다. 따라서 쓰고자 하는 수학 개념이 있다면 먼저 그 수학 개념의 특징, 의미를 충분히 관찰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② 개념을 직접적으로 쓰지 않기

수학 개념을 직접적으로 쓰는 시보다는 모두 읽었을 때 그 개념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시가 좀 더 좋은 시입니다. 예를 들어 만약 ‘타원’이라는 주제로 시를 쓴다면 직접적으로 타원의 개념을 시에 쓰기보다는 달걀을 빗대어 타원을 상상할 수 있도록 쓰는 것이죠. 이렇게 비유할 것을 떠올리다 보면 어려운 수학 개념을 친근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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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7월 수학동아 정보

  • 도움

    함기석 동시집 ‘숫자벌레’ 저자
  • 장경아 기자
  • 진행

    송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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