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시대에 활동하던 피타고라스 학파는 숫자 1, 2, 3, 4의 합인 ‘10’을 성스럽고 완전한 수로 여겼다. 이 신비로운 ‘10(텐)’과 밀접하게 맞닿은 마블의 새 히어로 ‘샹치’와 새로운 무기 ‘텐 링즈’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속엔 대체 어떤 수학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텐 링즈’는 말 그대로 ‘열 개의 반지’라는 뜻인데, ‘만다린’이라는 인물이 이 반지를 차지하면서 그가 이끄는 조직을 ‘텐 링즈’라고 부르게 됐다. 만다린은 신비로운 텐 링즈(여기서는 무기)를 이용해 1000살 넘게 지하 세계의 최강자로 군림해왔다.
열 개의 힘, 단 하나의 운명
악당 만다린은 아이언맨의 오랜 숙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영화 ‘아이언맨 1(2008)’에서는 세계적 무기 회사를 이끌던 토니 스타크를 납치해 무기를 제작하라고 협박했고, ‘아이언맨 2(2010)’에서는 아이언맨이 보유한 능력과 유사한 기술을 개발해 아이언맨을 공격하는 악당의 배후에 섰다. 만다린은 대규모 테러로 전 세계를 공포에 빠트리며 ‘아이언맨 3(2013)’에서 특정 인물로 등장했다. 하지만 이 인물은 영화 끝에서 가짜 만다린이었음이 밝혀졌다. 그 뒤로 관객들은 실제 만다린과 텐 링즈의 정체에 대해 궁금증이 쌓여만 갔는데, 드디어 이번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 진짜 만다린의 정체가 밝혀진다.
그의 주 무기인 텐 링즈부터 알아보자. 마블 코믹스 원작 속에서 텐 링즈는 열 개의 반지로 각각 제로, 더 라이어, 라이트닝, 인캔데센스, 다이모닉, 나이트브링거, 스펙트럴, 스핀, 인플루엔스, 리메이커라는 이름을 지녔다.
이들은 각각의 기능이 있는데, ① 차가운 냉기를 발사해 적을 얼리거나 얼음벽을 만들어 가두는 능력(제로), ② 타인의 정신을 조종하는 능력(더 라이어), ③ 전기를 발사하는 능력(라이트닝), ④ 강력한 불꽃을 발사하는 능력(인캔데센스), ⑤ 중력을 조절하거나 강력 레이저를 발사하는 능력(다이모닉), ⑥ 절대 암흑 속에 적을 가두는 능력(나이트 브링거), ⑦ 물체를 분자 단위로 쪼갤 수 있는 능력(스펙트럴), ⑧ 바람으로 회오리를 만들 수 있는 능력(스핀), ⑨ 중력파를 비롯해 다양한 파동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인플루엔스), ⑩ 산소를 독가스로 바꾸거나 평범한 산을 거대한 골렘으로 변화시키는, 분자의 구성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능력(리메이커)이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선 반지가 나오지 않는다.
텐 링즈는 이번 영화에서 반지 대신 ‘팔찌’에 가까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텐 링즈의 능력치는 그 어떤 히어로 무기와 비교해도 막강하다. 층층이 쌓여 계단 역할을 해 밟고 오르도록 돕거나, 총알처럼 발사돼 상대를 단숨에 제압한다. 또 철퇴나 쇠사슬로 변신하기도 한다. 심지어 무한대(∞) 모양을 그리면 반구 모양의 방어막이 완성된다. 모든 물리법칙을 거스르는 텐 링즈의 위력을 영화에서 확인해보자.
용의 피부엔 ‘피보나치 수열’이 숨어있어!
영화에서는 샹치(시무 리우)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엄마와 함께 색종이로 ‘용’을 접어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이번 영화에서 ‘용’은 샹치와 흩어져 살고 있던 가족들을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그들을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을 한다. 영화 속에서 종이로 접은 용을 만나니, 재미있는 수학 연구가 떠올라 소개한다.
종이접기로부터 출발한 오리가미 기술은 칼이나 풀 없이 종이 한 장으로 작품을 만드는 활동을 말한다. 그런데 어린 샹치 손에 들려있던 ‘용’도 종이 한 장으로 접는 게 가능할까? 물론이다. 오늘날의 오리가미 기술은 달랑 종이 한 장으로 자르거나 붙이는 활동 없이 다리 6개 달린 곤충은 물론이고, 몸통 비늘이 100개 넘는 물고기를 재현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용의 모습도 꽤 높은 수준의 오리가미 결과물로 보인다. 이처럼 오리가미는 2차원 재료인 종이를 접어 3차원 결과물을 만드는, 과학자와 수학자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연구 분야로 통한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 샹치와 아버지 웬우(양조위)의 대결 장면에 주목하자. 이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중요한 장면에서도 수학이 보인다! 샹치 뒷 배경(오른쪽 하단 그림)으로 보이는 울긋불긋한 존재는 얼핏 솔방울을 닮았다. 여기서 피보나치 수열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수열은 자연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피보나치 수란 1, 1, 로 시작하며 바로 앞의 두 수를 더한 값이 그다음 수가 되는 수를 말한다. 이런 수를 나열한 것을 피보나치 수열이라고 부르며, 1부터 차례로 쓰면 1, 1, 2, 3, 5, 8, 13, 21, 34, 와 같다.
자연에서 관찰되는 피보나치 수열의 예로는 솔방울, 해바라기 꽃이 있다. 아래 그림에서 표시한 나선(노란색)을 기준으로, 솔방울의 포(苞)가 나선을 그리며 자리를 잡아 솔방울을 채운다. 포는 잎들이 좁은 공간 안에 압축되면서 그 모양이 변형된 부분을 말한다. 그림이나 사진에서 볼 수 있듯 포가 나선 형태로 채워지는데 이 나선의 수에서 피보나치 수를 찾을 수 있다.
솔방울의 중심을 시작으로 뻗어가는 나선의 수를 세어 보면, 시계방향으로 8개, 시계반대방향으로 13개다. 이는 시계반대방향 나선(13개)은 성장속도가 빠르고 시계방향의 나선(8개)은 성장속도가 느려 두 방향의 나선을 그리며 배열되기 때문이다.
피보나치 수열은 좁은 공간에 되도록 많은 잎(솔방울은 포)이나 씨앗, 비늘 조각 등을 빈틈없이 배치할 수 있는 구조에서 주로 관찰된다. 샹치 뒤에 보이는 붉은빛 도는 무늬는 용의 비늘(혹은 뱀의 비늘)을 닮은, 고대 도시 탈로에 살던 무시무시한 생명체이기도 하다.
새로운 소재의 등장, 용의 비늘
영화 ‘블랙 팬서(2018)’의 와칸다에 비브라늄(마블 시리즈에 등장하는 가상의 금속)이 있다면, ‘샹치’에는 용의 비늘이 있다. 영화에서 와칸다산 비브라늄은 충격이나 진동을 받으면 분자들이 더욱 단단하게 결합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상대방이 공격하면 그 충격을 흡수해 강도가 더욱 상승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도 비브라늄을 합금해 만들고, 와칸다에서는 갑옷이나 의료 용품의 소재, 철도를 만드는데 비브라늄을 사용한다. 비브라늄이 현실에서 철광석이나 다이아몬드처럼 강도가 높은 소재였다면, 용의 비늘은 현실에서 뱀이나 악어 같은 파충류의 비늘을 모방한 단단한 갑옷 소재다.
실제로 이번 영화에서는 용의 비늘로 만든 갑옷이 등장한다. 샹치의 슈트는 용의 아랫배 비늘로 만들어졌다는 설정이 나온다. 이는 용이 벗은 허물은 아주 귀하고 탄력이 강해 마을 사람들이 가져가 보호한다는 아이디어에서 착안했다. 단단한 내구성을 자랑하는 용의 비늘로 된 갑옷을 입고, 용의 등에 올라타서 활약하는 샹치의 화려한 액션 씬을 주목해 보자.
이번 영화에서만큼은 씬스틸러로 활약한 용과 용의 비늘! 제작팀이 컴퓨터 그래픽으로 용 비늘의 질감까지 상세하게 표현한 덕분에 용의 피부를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과연 영화 속 용의 비늘은 진짜 피보나치 수열을 따랐을까? 텐 링즈의 주인이 바뀌는 과정은 순탄했을까? 용의 비늘과 함께 나타난 새 히어로가 새 무기로 무장하고 앞으로 새로운 작품에서 다른 히어로와 마주할 그 날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