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있으면 생명도 있는 법이죠. 별이 수명을 다하고 폭발하는 초신성의 잔해 속에서 새로운 별이 탄생하고, 어린 별 주위에서 행성이 태어납니다. 이번 호에서는 우주에서 새로운 행성이 만들어지는 영역을 탐험해보겠습니다.
※ 편집자 주
수학동아는 과학동아천문대와 함께 매달 천문학 분야의 시민과학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과학동아천문대에서 진행하는 왜소은하 찾기 프로젝트의 새로운 소식도 전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우주는 인간의 삶을 닮았습니다. 어린아이가 자라 아이를 낳고, 노년이 되어 생을 마감하듯이 어린 별도 행성을 만들고, 수명이 다하면 기력을 잃고 왜소하게 수축합니다. 어떤 경우엔 장렬히 폭발하는 초신성이 되죠. 이때 주위에 방출된 파편은 다시 어린 별을 만드는 재료가 됩니다.
천문학자의 주요 연구 주제 중 하나는 이와 같은 별의 일생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저마다 나이가 다른 별을 연구해 별의 일생에서 일어나는 일을 속속들이 파악하고자 합니다. 행성을 잉태할 수 있는 별을 찾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천문학자는 그 어려운 일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시민천문학자의 도움을 받아서 말이죠.
별을 둘러싼 원반을 찾아라!
천문학자가 행성 탄생 후보지로 꼽는 곳은 어린 별 주위에 때때로 나타나는 원반입니다. 이 원반은 별 주위에 있던 가스와 먼지, 암석 같은 물질이 별의 중력에 의해 별 주위를 돌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물질이 서로 부딪히고, 중력에 의해 주변 물질을 흡수하면서 점차 크기가 커져 초기 단계의 행성을 만든다는 것이 ‘성운 가설’입니다.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 행성들도 이런 과정을 거쳐서 탄생했다고 많은 과학자가 생각하죠. 그래서 별 주위 원반을 ‘원시행성계 원반’이라고도 부릅니다.
흥미롭게도 이런 성운 가설을 가장 처음 주장한 사람 중 한 명이 프랑스 수학자 피에르-시몽 라플라스였습니다. 먼 우주를 관측할 수 있는 좋은 망원경이 없었던 18세기, 라플라스는 논리적인 사고와 수학적인 계산만으로 별과 행성이 탄생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성운 모형’을 제시합니다. 성운 모형이 발전해 성운 가설이 됐습니다. 라플라스의 성운 모형은 다른 사람들이 주장한 것보다 원시행성계 원반과 그안에서 행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원시행성계 원반은 지구상에 있는 가장 성능이 좋은 망원경이나 우주에 있는 망원경으로 촬영해도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힘듭니다. 특히 멀리 있는 은하나 소행성, 은하계 안에 분포하는 성간먼지구름, 강한 에너지를 내뿜는 은하 중심부 같은 천체와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미국항공우주국(NASA) 연구팀은 시민천문학자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최첨단 망원경으로 촬영한 사진 중에서 진짜 원시행성계 원반일 가능성이 커 보이는 천체를 시민천문학자가 추려낸 뒤 천문학자가 다시 확인하는 것이죠. ‘원반 탐정’이라고 부르는 이 시민과학프로젝트는 2014년에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NASA의 시민과학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프로젝트죠.
원반 찾기의 기준은 ‘원’
NASA 연구팀은 원시행성계 원반을 찾기 위해 우주망원경을 이용해 관측할 수 있는 모든 하늘을 촬영하고 있습니다. 원시행성계 원반에서는 빛의 일종인 적외선이 나오기 때문에 그 빛을 포착하는 적외선 카메라를 망원경에 달아 사진을 찍는 것이죠. 하지만 다른 천체에서도 적외선이 나와 다양한 분석을 해야만 비로소 원시행성계 원반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사람이 적외선과 다양한 파장에서 촬영한 천체 사진을 보면서 원시행성계 원반인지 아닌지를 구분합니다. 하지만 사진으로 촬영한 원시행성계 원반 후보가 수십억 개에 달하기 때문에 천문학자는 이 과정을 시민천문학자에게 맡겼습니다.
판단 기준은 ‘원’입니다. 천체를 촬영한 사진에 크기가 다른 두 개의 원을 그려 넣었는데, 사진 속 천체가 둥글고 지름이 작은 원과 큰 원 사이에 있으면 원시행성계 원반일 가능성이 큽니다. 크기가 너무 작거나 크면 원시행성계 원반이 아닌 별이거나 은하를 비롯한 다른 천체일 수 있습니다. 시민천문학자들이 일차적으로 원시행성계 원반 후보 사진을 분류하면 천문학자가 유력한 후보 천체를 좀 더 면밀하게 분석하기 시작합니다. 현재까지 약 1973명이 참여해 1만 7994개의 천체를 분류해왔습니다.
나이 들어도 변하지 않는 ‘피터팬 원반’ 발견
극히 일부의 후보 천체에 대한 분류만 이뤄졌음에도 천문학자는 시민천문학자의 도움으로 놀라운 발견을 했습니다. 바로 ‘피터팬 원반’을 발견한 것이죠. 피터팬 원반은 일반적인 원시행성계 원반보다 훨씬 오래된 원반을 말합니다. 보통 원반이 약 1000만 년 동안 형성되면서 행성을 만든다면 피터팬 원반은 5000만~1억 년 동안 유지되는 독특한 천체입니다. 원시행성계 원반은 어린 별에서만 나타나는 ‘젊음의 상징’인데, 나이가 들어도 어린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점이 마치 동화 속 네버랜드에서 늙지 않고 어린이의 모습을 유지하는 피터팬과 비슷하다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을 붙였습니다.
2016년 시민천문학자의 도움으로 피터팬 원반을 처음 발견한 뒤 천문학자는 피터팬 원반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연구해왔습니다. 그리고 2020년 6월에는 영국 퀸메리대학교 연구팀이 피터팬 원반이 탄생하는 조건을 밝힌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우선 다른 별에서 멀리 떨어진 고립된 환경에서 형성되며, 이때부터 일반적인 원시행성계 원반보다 훨씬 질량이 크다는 겁니다. 앞으로 또 어떤 예상치 못한 원시행성계 원반이 발견될까요? 여러분이 천문학자를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