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멀리 멀리 떨어진 어느 정다면체 행성에 매일 열심히 훈련하는 마라토너가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마라토너는 부끄럼이 많아 동네 사람들을 마주치는 걸 싫어한답니다. 직선으로만 달리는 마라토너가 다른 사람을 마주치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경로를 찾을 수 있을까요?
안녕! 나는 장차 우주 최고의 마라토너가 되기 위해 매일 매일 열심히 달리기 연습을 하는 이봉수라고 해. 난 우주의 여러 정다면체 행성을 옮겨 다니 면서 살고 있는데, 오랫동안 고민이 있었어.
실은 내가 수줍음이 좀 많아. 훈련할 때는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은데 정다면체 행성 사람들은 너무 사교성이 좋아서 마주치면 꼭 말을 거는 거야. 무례하게 행동하면 안 되니까 결국 나도 대화하게 되고 그러면 훈련 효율도 떨어지지 않겠니? 이 상태로는 우주 최고의 마라토너가 될 수 없을 거야! 그래서 마음 놓고 달릴 수 있는 경로를 찾아 달라고 오래전부터 지구 수학자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지. 그런데 얼마 전에 드디어 답이 도착했 어. 100여 년 만에 말이지!
정다면체 경로 찾기, ‘사교성 없는 조거’ 문제
“정다면체 행성의 모든 꼭짓점에 집이 있다. 어떤 점에서 출발한 조거(조깅하는 사람)가 다른 집을 하나도 거치지 않고 자기 집까지 직선으로 달릴수 있는 경로가 있는지 구하라.”
이 문제는 지구에서 ‘사교성 없는 조거’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오랫동안 수학자를 괴롭혀 왔어.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정다면체의 어느 한 꼭짓점에서 출발해 다른 어떤 꼭짓점도 지나지 않고 처음 출발한 꼭짓점으로 돌아오는 직선 경로가 있냐는 질문이야. 이런 문제 유형의 역사는 최소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1906년 독일 수학자 파울 슈테켈의 논문에 표면 위의 두 점 사이의 최단 경로를 어떻게 찾을지에 대한 내용이 등장해. 슈테켈은 입체도형 표면에서의 ‘직선’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고민했어. 평면에 서의 직선은 생각하기 쉬운데, 굽어 있는 면을 지날 때의 직선, 즉 측지선은 상상하기 쉽지 않았지.
슈테켈이 생각한 방법은 입체도형을 전개도로 펼치는 거였어. 펼친 평면에서 직선을 그리고 다시 접으면 경계를 지나도 기울기가 변하지 않는 직선이 되거든.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남아있었어. 하나의 전개도에 여러 종류의 직선을 그리다 보면 모서리 바깥으로 나가 방향을 바꿔 그려야 하는 경우가 생겼어. 사면체는 그나마 쉽지만 도형이 복잡해질수록 바깥으로 나간 선이 어디로 연결될지 상상하기 어려웠어! 아래 그림을 보면서 확인해봐.
전개도를 무한히 이어붙인다
한 개의 전개도만으로 다면체에서의 직선(측지선)을 구하기 쉽지 않다는 걸 안 수학자들은 또 다른 방법을 생각했어. 전개도들을 이어붙이는 거야. 이어지는 면을 연결해 붙인 평면에서는 전개도에서 방향을 바꿔서 그려야 했던 측지선을 꺾지 않고 그대로 그릴 수 있거든.
먼저 정사면체로 생각해보자. 정사면체 전개도를 180° 돌려서 같은 면끼리 붙이면 마름모 모양의 ‘타일’이 생겨. 이 타일은 똑같은 것을 무한히 이어붙여 ‘정사면체 전개도 평면’을 만들 수 있는 최소 단위야. 전개도만 있을 때는 뒤집지 않으면 무한히 이어붙일 수가 없지만 타일은 같은 모양을 계속 연결할 수 있어.
다른 도형도 마찬가지야. 정육면체는 4개, 정팔면체는 3개, 정십이면체는 10개, 정이십면체는 6개의 전개도를 조합하면 무한히 연결할 수 있는 최소 타일이 생겨. 타일을 이어붙인 평면을 만들었다면 이제 방향을 바꾸지 않고 한 번에 측지선을 그릴 수 있지.
먼저 아래의 정사면체 평면에서 나를 위한 달리기 경로를 찾아줄래? 같은 색깔 점끼리 연결하되 다른 색깔 점을 지나지 않는 측지선을 그리면 돼.
봉수야, 정십이면체에서 달려!
정사면체 평면을 계속 이어붙이면서 열심히 그려본 너라면 대충 눈치챘을 거야. 정사면체에는 그런 경로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야. 같은 색꼭짓점으로 가려면 반드시 다른 점을 지날 수밖에 없어. 다른 정다면체도 마찬가지야.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이십면체에는 사교성 없는 조거를 위한 달리기 경로가 없다는 게 이미 예전에 밝혀졌지. 문제는 정십이면체였어. 정십이면체에 관한 답은 오래도록 찾지 못했었거든.
그러다 2019년 12월, 논문 게재 사이트인 ‘아카이브’에 정십이면체에서의 사교성 없는 조거를 위한 경로를 이론적으로 설명한 논문이 올라왔어. 자야데브 아트레야 미국 워싱턴대학교 수학과 교수와 데이비드 올리치노 미국 브루클린칼리지 수학과 교수는 정다면체의 격자 표면에 관한 연구를 통해 정십이면체에 사교성 없는 조거를 위한 경로가 존재 한다는 걸 밝혔어. 그뿐만 아니라 알고리듬으로 경로가 정확히 31종류 있다는 것까지 계산해냈지! 31가지 중에 가장 간단한 답이 위쪽 그림이야.
아트레야 교수는 정십이면체에서만 사교성 없는 조거를 위한 경로가 있는 이유가 정십이면체가 다른 정다면체와 구별되는 기하학적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어. 나머지 4개 정다면체는 삼각형, 사각형으로 이뤄져 평면을 빈틈없이 채울 수 있는데 정십이면체는 오각형으로 이뤄져 평면을 빈틈없이 채울 수 없거든. 이 점이 다른 결과를 만든 거지.
답만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이걸 엄밀히 밝히는건 결코 쉽지 않은 증명 과정이 필요했어. 하지만 그 덕에 나는 마음 놓고 행성을 달릴 수 있게 됐지! 너희도 나머지 30가지 경로가 궁금하다면 아래의 행성을 확인해봐. 그럼 난 이만 달리러 갈게, 안녕~!
※ 참고자료
Jayadev S. Athereya and David Aulicino ‘A Trajectory from a Vertex to Itself on the Dodecahedron’, Jayadev S. Athereya and David Aulicino ‘Vertex-to-self Trajectories on the Platonic Solids’, Jayadev S. Athereya 외 2명 ‘Platonic Solids and high genus covers of lattice surfa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