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에 역대 최고 학점으로 KAIST 수리과학과를 졸업한 오성진 교수가 올해 31세의 나이로 노벨상 수상자를 107명, 필즈상 수상자를 14명 배출한 세계적인 명문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UC버클리) 수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수학 영재’로서 탄탄대로만 걸었을 것 같은 오 교수가 ‘수학은 타고난 재능보다 오래 붙들고 있어야 잘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
Q 교수 임용을 축하드려요!
UC버클리에서 박사 후 연구원 생활을 했었어요. 연구 환경이 마음에 들었는데 운 좋게 다시 이곳에 왔네요. 요즘 강의 준비를 하랴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랴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도 틈틈이 농구도 하고 산책도 하며 재밌게 지내고 있어요.
Q어떤 연구를 하시나요?
물리를 수학적으로 연구하는 데 관심이 많아요. 수학과 이론 물리는 관련이 매우 깊다고 하잖아요. 일반 상대성 이론을 기술하는 아인슈타인 방정식은 실제로 ‘비선형 쌍곡 편미분방정식’이거든요. 저도 블랙홀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이 방정식으로 설명해 2016년 젊은과학자상을 받았어요. 최근에는 플라스마의 성질을 나타내는 편미분방정식을 연구하는데 빠져있어요.
Q20세에 대학교를 졸업하셨다고요!
중2 때 한국과학영재학교에 합격해 중학교를 조기 졸업했어요. 고등학교도 6개월 먼저 졸업 학점을 채워 남들보다 일찍 KAIST에 입학했어요. 그런데 KAIST에는 고등학교에서 공부한 대학 과목의 학점을 인정해주고, 방학 때 전공과목을 미리 공부해 시험 쳐서 통과하면 학점을 인정해주는 ‘학점인정시험’ 제도가 있어서 2년 만에 졸업할 수 있었어요.
일찍 대학에 입학하면 전공 과목을 일찍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한창 열심히 공부하는 시기에 그 관성이 꺾이지 않게 해줘서 많은 도움이 됐어요. 하지만 동기보다 어리다 보니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단점도 있었어요. 또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천천히 깊게 이해해야 하는 내용을 빠르게 공부하다 보니 무리가 와서 일찍 지치거나 잘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갈 위험도 있죠.
Q어렸을 때는 수학에 흥미가 없으셨다고요?
고2 때 미적분학과 선형대수학을 배우며 수학의 재미를 느꼈어요. 논리적으로 딱 맞아 떨어지는 수학의 엄밀함과 아름다운 구조를 알게 된 거죠. 중학생 때는 학원에서 문제 푸는 요령과 기술만 알려줬기 때문에 수학이 재미없는 학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왜 풀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저보다 문제를 잘 푸는 친구도 많아서 공부하기 싫었죠.
만약 자녀에게 처음으로 수학을 가르친다면 문제의 답을 찾는 것처럼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이해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아직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먼저 그런 일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Q슬럼프는 없으셨나요?
적어도 제게는 수학이 쉬운 과목이 아니라서 공부할 때나 연구할 때나 슬럼프가 올 수밖에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오랫동안 풀지 못한 문제를 풀거나 이해하지 못했던 개념을 이해했을 때 느끼는 기쁨이 슬럼프가 주는 괴로움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수학을 계속 공부하다 보니 어느 순간 진전이 없어도 ‘계속 하다 보면 앞으로 나아가겠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예전만큼 불안하거나 괴롭지 않아요.
Q뛰어난 수학자는 무엇이 다른가요?
좋은 문제를 고르거나 좋은 연구 방향을 정하는 능력을 가진 것 같아요. 재미있는 점은 수학자의 취향에 따라 좋은 문제나 연구 방향이 다르다는 거예요. 굉장히 뛰어난 수학자들도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점이 수학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해요.
수학자에게는 재능과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 중 포기하지 않는 것이 더 뛰어난 자질이라고 생각해요. 재능으로는 대적할 사람이 몇 없는 2016년 필즈상 수상자 테렌스 타오도 재능만 믿고 자신만만하다가 박사 자격 시험에서 거의 떨어질 뻔했고, 이후 열심히 수학에 정진했다는 일화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었죠.
아무리 재능 있는 사람도 평범한 사람이 오랜 시간 붙들고 익힌 것을 노력 없이 금방 얻지 못해요. 수학은 모두에게 쉽지 않은 학문이어서 증가 속도가 점점 커지는 지수함수처럼 결국 오래 붙들고 있는 사람이 더 잘한다고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