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4일 저녁 7시 17분경,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의 한 야산에서 불이 났다.
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속초까지 순식간에 번졌다. 밤 11시 46분에는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 야산에서도 불이 발생했다. 앞서 낮 2시 45분에는 강원도 인제군 남면 남전리 약수터에서도 불이 났다. 매년 봄에는 산불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산림청은 2월 1일부터 5월 15일까지를 산불 조심기간으로 설정하고 주의를 당부한다. 그럼에도 막지 못한 산불, 막을 방법이 정말 없는 걸까?
4월 4일 강원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났지만, 그중에서도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한 피해가 가장 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산불의 원인에 대한 감정 결과 고압 전선이 당시 고성 지역에 불던 강한 바람에 떨어져 나가며 생긴 불티가 마른 낙엽과 풀에 붙어 산불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봄철마다 부는 양간지풍이 불을 일으키고, 순식간에 번지게 만들며 수많은 이재민과 재산피해를 낳은 거대 산불을 야기한 것이다. 수많은 환경적인 요인에서 정말 바람이 산불 확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걸까?
▲산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주거지와 시내까지 순식간에 번졌다. 거리에 있던 시민들이 연기와 불을 피해 차량 뒤에서 대피하고 있다.
불 붙은 나무 맞히는 확률 모형
실제로 산불의 규모를 결정하는 데는 ‘얼마나 빠르게’ 산불이 번지느냐가 중요하다. 이에 산불로 인한 피해를 줄일 방안으로 해외에서는 산불 확산과 관련된 수학 모형을 만들어 연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희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연구팀이 산불 확산 패턴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산불 확산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숲의 밀도, 바람의 세기, 나무의 종류, 그리고 산의 경사도를 꼽았다. 그리고 어떤 요소가 산불을 빠르게 번지게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셀룰라오토마타’ 방법을 이용해 시뮬레이션했다.
셀룰라오토마타 방법은 격자를 기반으로 만든 확률 모형이다. 연구팀은 부산 기장군에 있는 산을 데이터로 시뮬레이션했다. 먼저 실제 산을 간격이 일정한 격자로 나누고 각 격자에 나무가 한 그루만 들어가거나 비어있게 만든다. 그리고 각 격자에는 불이 얼마나 잘 옮겨 붙는지 정도를 확률값으로 나타낸다. 한 격자의 상태는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격자의 상태로 정해지는 것이다. 나무의 종류에 따라서도 산불 확산 정도를 알 수 있는데, 예를 들어 한 칸에 있는 나무가 불이 안 붙는 나무라면 확률값이 0, 불이 너무나 쉽게 붙는 나무라면 확률값이 1이 되는 식이다.
이번에 산불이 난 강원도 산간 지역에는 침엽수인 소나무가 많다. 소나무의 송진 가루는 휘발성 물질이고 열량이 높아 불이 쉽게 붙는 가연성 나무이기 때문에 확률값이 1에 가깝다. 비슷한 방법으로 낙엽이 많거나 건조한 지역은 불이 잘 붙으니 높은 확률값을, 습한 지역은 낮은 확률값을 갖는다. 또 지형의 특성을 반영할 경우, 산의 경사나 높낮이에 따라 확률값이 달라진다. 경사가 가파르면 산불이 더 잘 붙고 확산이 빠르다.
강원도 거대 산불을 낸 용의자, ‘양간지풍’
무엇보다 산불을 확산시키는 가장 중요한 환경 요인 중 하나는 바람이다. 연구팀은 산불 확산에 대한 바람의 영향을 측정하기 위해 바람의 세기를 다르게 했을 때 시뮬레이션에 이용된 총 4만 개 나무 중 1만 개가 불에 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측정했다.
그 결과 바람의 세기를 높일수록 나무 1만 개가 연소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요소에 상관없이 바람의 세기가 산불 확산 속도에 크게 영향을 줬다.
실제로 고성 산불은 불과 1시간 만에 5㎞가량 떨어진 곳까지 산불이 번질 정도로 확산 속도가 매우 빨랐다. 이날 기상청에 따르면 강원 산간에서는 순간 초속 26m가 넘는 강풍이 몰아쳤는데, 이것이 산불 확산을 빠르게 만들었다.
또 2016년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바람이 없을 때 산불은 화염이 높지 않고, 분당 약 0.57m의 느린 속도로 이동했다. 그러나 바람이 초당 6m로 불 때는 화염이 높아지고, 분당 최대 15m까지 번지는 것으로 관찰됐다. 이는 바람이 없을 때와 비교해보면 26배 이상 빠른 것이다.
이번 고성·속초 산불을 키운 원인으로 양간지풍을 지목하는 건 이 때문이다. 항간에서는 양간지풍을 불을 몰고 오는 바람이라는 뜻으로 ‘화풍’이라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2000년 4월 고성, 강릉, 동해, 삼척을 덮었던 사상 최악의 산불도 양간지풍이 대재앙의 원인으로 꼽혔었다.
현재 정부와 소방공무원을 비롯해 많은 자원봉사자가 산불로 집을 잃은 이재민을 돕고 있다. 하루빨리 이재민 문제가 해결되고, 아울러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산불 재해를 줄일 방법을 찾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