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보물 I 대자연
삼백 개의 봉우리로 감싼 카오쌈 러이욧 국립공원
“이제 그만 내려가면 안 돼요?”
잠시 쉬는 사이 여기저기서 지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프라야 나콘 동굴로 가는 길, 2019 태국탐사대원들은 본격적인 일정의 첫 시작부터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보트를 타고 비단 같은 바다를 가로지를 때만 해도 콧노래가 나왔는데, 난데없이 극기 훈련을 하게 될 줄이야. 고생 끝에 낙이오길 기대하며 대원들이 오르고 있는 산은 카오쌈 러이욧 국립공원에 있는 크하카르핫트 정자로 향하는 등산로였다.
카오쌈 러이욧 국립공원은 태국어로 300개의 봉우리라는 뜻으로, 1966년에 태국 최초로 해양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여기서 특히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프라야 나콘 동굴과 그곳에 있는 크하카르핫트 정자다. 하늘로 뚫린 수직동굴 가운데 정자가 하나 있는데, 햇빛이 정자에 내리쬐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기 때문이다.
찰나의 웅장한 마법, 프라야 나콘 동굴
땀으로 범벅이 된 이마에 어느 순간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누군가 하늘을 가르키며 외쳤다. “죽음의 다리다!” 좁은 돌계단과 앞사람 운동화만 바라보던 고개를 들었다. 수십미터 상공에 아슬아슬한 바위 다리가 있었다. 드디어 동굴 입구에 도착한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물에 녹아 만들어진 수직동굴과 아직 채 녹지 않은 부분이 남은 천연 다리였다. 모두 힘든 것을 잊고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조금 더 들어가자 동굴 속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눈부신 빛이 보였다.
대원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은 곳에 크하카르핫트 정자가 있었다. 태국인들에게 존경받는 국왕인 라마 5세의 명으로 세운 정자는 크지 않은 규모와 다른 왕실 건축물에 비해 단조로운 장식에도 불구하고 무척 화려하게 보였다. 태양 빛이 닿은 모든 부분이 황금색으로 빛났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태국탐사대가 프라야 나콘 동굴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 30분경, 아직 더 기다려야 했다. 10시 40분이 이날 태양이 가장 정확하게 정자를 비추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프라야 나콘 동굴은 천장에 큰 구멍이 뚫려있다. 태양이 움직일 때마다 빛이 들어오는 양과 방향이 달라지는데, 지구는 자전축이 공전축에 대해 23.5° 기울어져 있어 태양의 남중고도와 낮과 밤의 길이는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태양 빛이 스포트라이트처럼 정확하게 정자를 비추는 시간은 하루 중 몇 분 안 된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감상하려면 방문하려는 날짜의 시간에 따른 태양고도를 알아보고 가야 한다.
10시 40분. 숨을 죽이고 시계를 바라보며 기다리던 대원들은 이날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맞이했다. 이준희 대원은 “백문이불여일견”이라며, “사전 조사할 때 블로그에서 봤는데 실제로 보니까 훨씬 더 멋지다”고 감탄했다.
찰나와 같은 신비로운 몇 분이 지나가고, 대원들은 좀 더 동굴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동굴에는 정자 말고도 동굴 벽에 새겨진 라마 5세의 친필 서명, 이제 막 자라고 있는 석순, 여러 돌탑과 간이 사당 등을 찾을 수 있었다.
프라야 나콘 동굴은 태국 국토의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고 찾아가는 길이 험난해 한국인은 커녕 현지인에게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명소라고 한다. 하지만 대원들에 따르면 ‘힘든 등산의 보상’이 기다리고 있으니 태국에 갈 기회가 있다면 꼭 도전해보자.
드 번째 보물 I 체험
초원, 습지, 강을 누비는 모험 활동
멋진 자연경관과 화려한 유적이 잘 보존된 태국. 그렇다고 태국에 ‘볼거리’만 많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2019 태국탐사대는 여러 ‘즐길거리’를 체험하며 태국의 새로운 면모를 경험했다.
호수를 가르는 수상 레포츠 ‘카이트 케이블’, 강을 따라 사원과 왕궁의 야경을 감상하는 ‘크루즈 투어’, 태국의 전통 생활양식 물물교환의 흔적이 남은 ‘수상시장’, 연꽃, 소금쟁이, 물고기, 소라를 관찰했던 ‘연꽃 습지’ 등, 탐사대원들은 각종 체험 활동을 통해 태국을 신나게 즐겼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진짜 야생을 탐험하는 쿠이 부리 국립공원의 코끼리 사파리였다.
진짜 야생을 만나다, 사파리 투어
1999년에 설립된 쿠이 부리 국립공원은 여러 종의 야생 포유류가 살고 있으며 특히 야생 코끼리를 관찰하기에 태국에서 가장 좋은 장소다. 야생동물을 발견하더라도 100m 이상 반드시 떨어져 있어야 하고 먹이를 주거나 외부 생물을 데려오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돼 있어 생태계가 잘 보존된 곳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과 같이 생물을 가둬둔 시설에서만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다. 최근 이런 시설이 동물에게 각종 병과 우울증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문제가 제기되며 다른 생물과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등장했다.
그런 점에서 태국탐사대의 쿠이 부리 국립공원 사파리 투어는 요즘 가장 뜨거운 생태 이슈를 실제로 체감하고 ‘다른 동물과의 바른 관계 맺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끔 하는 일정이었다.
놀이공원 안에 꾸며진 가짜 사파리가 아닌 진짜 야생에 이른 탐사대원들은 기대감을 안고 투어 트럭에 올랐다. 뻥 뚫린 트럭에 타 숲을 지나며 멀리 있는 야생동물을 관찰했다. 처음에는 트럭에 같이 탄 국립공원 직원분이 찾아줄 때만 알아보던 대원들은 점점 직접 여러 생물을 찾아내게 됐다.
물소나 사슴 같은 커다란 동물 말고도 수풀 속에서 작은 새의 날갯짓 하나를 포착하는 것만으로도 대원들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쿠이 부리 국립공원의 꽃, 코끼리 전망지대에 도착했다. 코끼리 발에 밟히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트럭에서 내린 대원들은 근육이 떨리도록 눈에 힘을 줘야 했다. 코끼리 무리가 아주 멀리 있었기 때문이다. 손톱보다 작은 크기의 코끼리들이 초원에서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다. 한국에서 보는 코끼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쿠이 부리 국립공원에서 만난 코끼리는 사람을 신경 쓰지도 않고 코로 묘기를 부리지도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이동하며 초원에서 어울리고 있었다. 코끼리 전망지대에는 대원들 말고도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이 많았지만 누구 하나 더 가까이 가거나 코끼리의 주의를 끌려고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울타리나 철창 없이도 거리를 지키며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다.
대원들 역시 그 옆에서 한동안 멈춰 코끼리들의 모습을 가만히 관찰했다. 처음에는 “훨씬 가까이 있을 줄 알았는데….”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던 대원도 마지막에 “더 가까이 가면 동물들이 스트레스 받아서 안 좋겠네요!”라고 먼저 말했다. 한국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경험을 통해 ‘올바른 관계 맺기’를 배운 대원들은 웃으며 다시 트럭에 올랐다.
세 번째 보물 I 역사 유적
찬란하고 빼어난 왕궁, 별장, 사원
강력한 왕권이 드러나는 왕족의 유산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이 돌아가며 통치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태국은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입헌군주제를 따르고 있다. 현재 왕족이 거주하고 있는 왕궁을 제외하고도 곳곳에 별장이나 별궁 등 왕족이 쓰던 건축물이 많다. 탐사대는 이 중 가장 최근까지 사용한 방콕의 왕궁과 후아힌의 여름 별궁, 라마 4세가 살았던 카오왕 왕궁 등을 방문했다. 누가 쓰던 곳이느냐에 따라 조금씩 분위기가 달랐다.
라마 6세의 여름 별궁은 정갈하고 차분한 정원에 유럽풍 건물이 주를 이루며 낮고 길게 뻗은 것이 특징이라면 중국에서 입양된 라마 4세가 살던 왕궁은 내부 장식이나 물건에 중국 문화가 많이 드러나며 좁고 뾰족하게 건물을 세운 것이 특징이었다.
특색이 뚜렷하다보니 대원들마다 감상이 갈렸지만, 어느 곳이나 화려하고 거대하다는 공통점이 두드러졌다. 황인선 대원은 왕궁을 둘러본 뒤 “현대 기술이 발전하기 전에 지어진 건물인데도 불구하고 건축 양식부터 내부 구조까지 완성도와 수준이 높아서 대단하다”고 말했다.
다양한 모습의 태국 불상
한국에서는 거의 앉아있는 불상만 볼 수 있는 데 반해, 태국에서는 요일마다 다른 의미를 지닌 8개 형태의 불상이 있다. 수요일은 낮과 밤으로 나뉘어 있어 7개가 아닌 8개다. 그래서 사원의 겉모습뿐 아니라 어떤 불상이 있는지, 무슨 모습을 하고 있는지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다.
대원들이 특히 흥미롭게 본 불상은 왓 카오 따끼안 사원의 입상이었다. 이 사원에는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데 재미있는 방법으로 사리 촬영 금지를 알리고 있다. 사리가 보이는 창문에 인자한 표정의 입상이 두 손을 내밀어 가로막은 것이다. 서 있는 부처는 월요일의 부처로 나쁜 짓을 멈추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인기 만발 불상은 왓포 사원의 와불상이었다. 왓포는 방콕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누워있는 거대한 불상이 유명하다. 거대 불상을 따라 걷다 보면 커다란 발에 이른다. 탐사대원들이 사전 조사 때 궁금해했던 바로 그 발! 발바닥에는 자개로 빼곡히 그림이 그려져 있어 기대보다 더욱 아름다웠다.
미션 달성, 2019 태국탐사대 안녕!
이로써 태국탐사대는 현지인조차 잘 몰랐던 태국의 대자연을 모험하고, 몇 세기에 걸친 태국 왕조의 유산을 조사하고, 다채로운 문화체험 활동을 통해 익숙하게 보고 들었던 태국이 아닌 새로운 태국의 매력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대원들이 입을 모아 남긴 말은 작별인사가 아닌 ‘반드시 또 돌아오겠다’라는 약속이었다. 아직도 미처 찾지 못한 태국의 보물이 많이 남아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게 됐기 때문이다. 태국탐사대의 다음 모험은 얼마나 더 멋질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