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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스케치북에 집을 그려 보자. 집이라고 하면 아파트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한옥을 그려 넣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한옥은 집보다 전통 문화재에 가깝다. 그런데 최근 한옥이 도시 속 아파트와 다세대주택 틈에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미래에는 고층 한옥이나 한옥 도시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왜 한옥에 주목하게 된 걸까? 수학으로 한옥을 이해하고, ‘미래의 집’이 될 한옥을 그려 본다.

PART 1 도시로 온 한옥

이제는 도심에서도 심심찮게 한옥을 마주친다. 낡은 집이 아닌 멋스러운 집으로 말이다. 통계를 보더라도 북촌 한옥마을을 시작으로 한옥의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한옥이 좋다고 전통한옥을 그대로 가져갈 순 없을 것이다. 수학의 눈으로 한옥만의 특성을 살펴보면서 미래 한옥이 취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진단해 보자.

한옥은 왜 좋을까?


한옥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단순히 우리 것이어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막연하게 자연친화적인 이미지 때문도 아니다. 한옥의 ‘웰빙’과 ‘친환경’에는 수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1 몸에 맞춰 만들었으니까

외국인도 한옥을 처음 접하면 ‘아늑하다’고 한다. 한옥이 인간의 체격을 기준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누마루는 키를 넘지 않는다. 창문의 크기도 내 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기단은 높아야 계단 서너 단이다. 누구나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한옥은 인체에 최적화돼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 준다.

한옥은 직사각형을 이루며 서 있는 4개의 기둥으로 하나의 단위 공간을 만든다. 이를 ‘칸(間)’이라고 하는데, 칸의 크기는 기둥과 기둥 사이의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가로×세로가 8자×8자(약 2.4m×2.4m)인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팔을 벌리거나 올렸을 때 공간의 끝까지 1자 정도가 남는, 인체에 꼭 맞는 크기다. 천장의 높이도 마찬가지다.

현대에는 사람들의 체격이 커진 데다 입식생활로 바뀌어, 8자에서 1자(약 0.3m)가 늘어난 9자(약 2.7m)가 보통이다. 또, 한옥의 개별 공간은 칸과 칸의 조합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아무리 큰 저택이라 해도 휴먼 스케일이 깨지지 않는다.
 

2 뜨거운 햇살도 막아주니까

한옥의 기둥 밖으로 나온 처마는 여름에 햇빛을 막아 준다. 하지만 겨울에는 햇빛을 막지 않아야 한다. 중부지방을 기준으로 하지 때 태양의 입사각은 약 76°고, 동지 때는 약 29°다. 그래서 보통은 기둥 밑에서 처마 끝을 연결하는 연장선을 그었을 때 그 내각이 28~33° 정도가 되도록 처마를 만든다.

햇빛을 막는 대신 한옥은 안마당에 하얀 흙을 깔아 반사된 빛을 집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런 간접 조명은 직접 조명보다 훨씬 눈에 편안하다. 서양 건축에서 간접 조명을 사용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3 바람이 솔솔~ 잘 부니까

한옥에는 마당을 중심으로 사방에 막힘없이 바람이 지나갈 수 있는 ‘바람길’이 있다. 여름철 마당 위에서 열을 받아 뜨거워진 공기가 위로 올라가면, 마당과 주변 사이에는 기압 차가 생긴다. 그러면 공기가 떠난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여러 방향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온다.

한옥의 바람길은 ‘베르누이의 원리’를 따른다. 유체는 좁은 통로를 지날 때는 속도가 빨라지고, 넓은 통로를 지날 때는 속도가 감소한다. 남쪽을 향한 한옥의 뒤편은 바람길이 좁고 탁 트인 마당이 있는 앞쪽은 넓다. 덕분에 겨울의 매서운 북서풍은 좁은 입구를 통과해 넓은 마당으로 나오면서 속도가 줄고 차가운 기운도 약해진다.

반대로 남동풍이 부는 여름에는 넓은 안마당을 통과한 바람이 건물 뒤편의 좁은 통로를 지나면서 속도가 빨라지고 온도도 떨어진다. 바람이 잘 통하면 실내의 공기가 쾌적할 뿐만 아니라, 습도도 알아서 조절된다. 한옥은 스스로 ‘숨쉬는 집’이다.
 

4 빗물도 빠르게 흘려 보내니까

한옥의 꽃은 지붕이란 말이 있다. 한옥의 지붕은 어느 쪽에서 보더라도 곡선미가 느껴진다. 그런데 이 곡선이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다. 한옥의 지붕 곡선은 ‘사이클로이드 곡선’이다.

사이클로이드 곡선은 원의 한 지점에 점을 찍은 뒤 원을 한 바퀴 굴렸을 때, 그 점이 그리는 곡선을 말한다. 이 곡선 위에서 구슬을 굴리면, 직선일 때보다 구슬이 빨리 떨어진다. 그래서 이 곡선을 ‘최단시간강하곡선’이라고도 한다. 한옥의 지붕은 직선 모양의 지붕보다 빗물을 더 빨리 흘려 보내, 목재가 물에 덜 젖게 해 준다.
 

미래 한옥, 고정 관념부터 버리자!

한옥이라고 해서 옛 것만 고집할 순 없는 일! 우리가 전통한옥에 대해 갖고 있는 오해도 있고, 미래의 한옥에는 꼭 필요하지 않은 특징도 있다. 수학으로 다시 태어나는 미래 한옥을 찾아가기에 앞서, 한옥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해소해 보자.

1 한옥은 황금비율로 만들어졌다?

흔히 한옥은 ‘구고현의 정리’를 이용해 지었다고 말한다. 구고현의 정리는 직각삼각형에서 직각을 이루는 두 변 ‘구’와 ‘고’를 각각 제곱해 합한 값이 빗변 ‘현’의 제곱과 같다는 것이다. 동양의 피타고라스 정리로 통한다.

하지만 이는 기술이 부족한 과거에 썼던 제작 원리일 뿐이다. 주로 땅에 수직으로 기둥을 세우거나 모서리의 직각을 맞출 때 썼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옥에서 나타나는 직각삼각형이 일정한 것도 아니다. 구고현의 정리도 황금비율과 관계가 없다.

한옥은 오히려 비례가 없어서 아름다운 건축이다. 부분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옥은 비대칭이다. 비례나 대칭이 중요한 미적 기준이었던 서양에서도 이제는 비례나 대칭을 깬 건축이 인기를 얻는다. 그만큼 현대에는 비례를 넘어서는 상상력과 새로움이 더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다.

2 한옥의 처마허리는 현수선이다?

사람들은 한옥의 처마허리가 ‘현수선’이라 아름답다고 한다. 현수선은 실의 양 끝을 잡고 실을 늘어뜨렸을 때 중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곡선이다.

하지만 실제로 재보면 현수선과는 다를 때가 더 많다. 하나의 방정식으로 표현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집집마다 제각각이다. 이강민 국가한옥센터장은 “현수선보다 더 강렬하게 처마 끝이 올라간 곡선도 있고, 시대와 지역에 따라 직선에 가까운 곡선도 있다”며, “처마허리의 곡선은 유행을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고 말했다.

주로 궁궐 같은 문화재로 한옥을 접한 우리는 곡선이 화려한 ‘팔작지붕’에 익숙하다. 하지만 조선시대 살림집은 대부분 ‘우진각지붕’이었다. 국가한옥센터 한옥기술개발연구단장을 맡고 있는 김왕직 명지대 건축학과 교수는 “지붕에 곡선을 만들려면 처마와 추녀를 길게 빼야 하는데 그러면 쓸 수 있는 내부 공간이 줄어 비효율적”이라며, “처마의 양 끝 부분을 살짝 올리기만 해도 지붕에 경쾌함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3 한옥은 못을 쓰지 않아서 자연친화적이다?

한옥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짜맞춤’이다. 짜맞춤이란 목재에 홈을 파고 목재끼리 서로 끼워 맞춰 고정하는 방법이다. 나무에 못을 박지 않기 때문에 짜맞춤은 우리나라의 자연친화적인 정서가 만들어낸 훌륭한 건축 기술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옥을 지을 때 일부러 못을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못을 쓰지 못했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과거에는 철이 굉장히 비싼 재료였기 때문에 일반 민가에서는 못을 쓸 수가 없었다. 전통한옥이라도 궁궐 같은 고급 한옥에는 구조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 철재를 많이 썼다.

벽체 없이 지붕과 기둥으로 지탱하는 한옥은 지진처럼 좌우로 작용하는 힘에 약하다. 그래서 지붕 위에 흙을 수십 cm씩 깔아 기둥이 흔들리지 않게 눌러 줬다. 수평으로 미는 힘에 버티려면, 접합부가 강해야 한다. 나무의 홈을 복잡하게 파서 짜맞춘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은 튼튼하면서 경제적인 한옥을 만들기 위해 짜맞춤만을 사용하지 않고, 아래 그림처럼 접합부에 철근을 덧대는 기술을 활용한다.

무엇이 한옥일까

한옥의 법률적 정의는 ‘기둥 및 보가 목구조 방식이고 한식 지붕틀로 된 구조로서 한식기와, 볏짚, 목재, 흙 등 자연재료로 마감된 우리나라 전통양식이 반영된 건축물 및 그 부속건축물’이다. 그러나 전통한옥의 모든 요소를 계승할 수는 없다. 한옥을 현대식으로 짓는 ‘신한옥’이 등장하면서 이미 한옥의 재료와 모양이 바뀌고 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한옥으로 봐야 할까?

국가한옥센터에서는 신한옥의 정의를 ‘한국 전통적인 목구조 방식과 외관을 기본으로 하되, 복합적인 구조방식과 혁신적인 시공방식, 성능이 향상된 재료 등으로 지은 건물을 의미하며, 미래 한국의 일상적인 주거문화로서 역사·문화·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주거공간’으로 제안했다. 대표적인 한옥 건축가로 꼽히는 김용미 금성건축 대표는 “사람들은 한옥이 전통한옥의 모습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한옥의 정체성을 잃었다’고 하면서도 기능 면에서는 현대적이기를 바란다”며, “겉모습과 형식보다는 한옥의 공간구성 방식에 담겨 있는 지혜와 품격을 이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PART 2 수학, 한옥에 날개를 달다

앞으로 도시를 수놓을 미래 한옥은 어떤 모습을 하게 될까? 최신 수학으로 다시 태어난 한옥은 과거의 전통한옥과는 다를 것이다. 우리의 생활 패턴에 꼭 맞는 한옥 아파트, 한옥 마천루, 한옥 쇼핑몰 등을 상상해 보자. 이런 꿈을 실현시키는 데는 수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옥을 품은 아파트


요즘 사람들은 도시에서 아파트가 가장 편리하고 효율적인 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옥처럼 우리 생활에 최적화된 집은 없다. 이런 한옥의 특징을 잘 살리면서 아파트처럼 효율적인 집을 만들 수 있을까?

서울대 건축학과의 최재필 교수팀은 그래프이론을 바탕으로 한옥과 아파트의 평면 구조를 비교했다. 먼저 서울의 아파트와 한옥 평면을 각각 200개씩 뽑았다. 그리고 각 평면의 공간 구조를 그래프로 나타냈다. 침실, 화장실, 부엌, 거실 등을 꼭짓점으로 나타내고, 상관관계에 따라 이 사이를 선분으로 연결한 것이다.

이어서 ‘인접행렬’로 그래프를 수치로 만든 뒤 서로 비교했다. 두 장소가 연결돼 있으면 1, 연결돼 있지 않으면 0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때 대각선은 자기 자신과의 연결 관계를 나타낸다. 따라서 1로 나타내며, 중요성이 큰 공간은 가중치를 둬 1보다 큰 수로 나타낸다.
 

한옥은 아파트보다 유연해

비교 결과에 따르면, 한옥은 아파트보다 유연한 공간이다. 한옥은 쓰임새에 맞게 공간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다. 벽이 대부분 창문이나 문으로 돼 있어, 필요하면 서로 연결해 개방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전부 닫아 독립적인 공간으로 쓸 수도 있다. 유리 대신 창호지를 쓰기 때문에 닫기만 하면 밖에서 보이지 않는다. 특히 대청과 방 사이의 ‘분합문’은 닫으면 두 공간을 분리해 주고, 들어 올리면 하나로 만들어 준다.

이렇게 대청과 같은 공간을 ‘전이공간’이라고 한다. 딱딱한 경계를 무너뜨리고 공간과 공간 사이를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는 중간 단계의 공간이다. 마당-기단-툇마루-대청-방이라는 긴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차가운 마당에서 따뜻한 방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주위 환경과 집을 이어 주는 마당도 전이공간이다. 또한, 한옥에서는 동선이 다양하다. 정해진 동선을 따라 이동해야 하는 아파트보다 자유로운 공간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의 아파트 평면은 점차 한옥과 비슷해지는 방향으로 점차 변하고 있다. 서울시 아파트 중 많은 수가 도시형 한옥과 공간구성이 비슷하다. 이강민 국가한옥센터장은 “아파트 평면의 변천사만 보더라도 우리의 생활 방식은 한옥과 잘 맞다”며, “최근 한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우리의 생활 방식을 되찾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말했다.

최적의 공간 배치는 알고리즘으로

점, 선, 면으로 되어 있는 한옥의 공간을 0, 1과 같은 단순한 코드로 바꾸면 알고리즘으로 가장 좋은 공간 배치를 찾을 수 있다. 공간의 수와 넓이, 사람과 물건이 공간 사이를 오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최소가 되도록 공간을 배치하는 것이다.

땅이 넓은 시골에서는 비교적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땅의 경계와 높낮이가 들쑥날쑥해 훨씬 복잡하다. 이런 문제를 간단히 해결해 주는 게 바로 ‘최적공간배치 알고리즘’이다.

여러 종류의 최적공간배치 알고리즘 중 ‘탐색적 방법’은 우선순위에 따라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평가하고 비교해 가장 최적인 답을 찾는다. 여행자가 최단 경로를 구하는 방법과 비슷하다. 한옥은 ‘칸’이라는 단위 공간의 조합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모든 경우의 수를 탐색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여기에 기능, 구조, 아름다움, 경제성 같은 요소를 종합해 평가 값이 최대가 되는 경우를 최적의 공간 배치로 고른다.

수학으로 더 아름다운 곡선

한옥은 아파트와 달리 곡선이 많고 구조가 복잡하다. 지붕만 해도 서까래, 홀처마, 도리뺄목, 내림마루 등 복잡한 구조가 많다. 그래서 기술을 전수 받은 목수나 한옥 전문가만이 한옥을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수학 덕분에 누구나 쉽고 빠르게 한옥을 설계할 수 있게 됐다. 지능형 설계라고도 부르는 ‘파라메트릭 설계’ 덕분이다.
 

비정형의 대가, 파라메트릭 설계

건물을 짓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파라메트릭 설계는 이런 요소를 변수로 만들어 각각 독립적으로 조절하면서 설계하는 방법이다. 직선과 곡선, 휘어진 표면 등을 수학 공식으로 나타낼 수 있어 기괴하게 생긴 건물도 그래픽으로 쉽게 만들 수 있다. 표면이 서로 다른 모양의 3차원 곡면으로 이뤄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도 파라메트릭 설계로 만들었다.

한옥은 건축물을 구성하는 부재를 먼저 만들고, 이를 조립해 짓는 ‘가구식’이다. 부재 하나 하나를 조절해가며 전체 구조를 만든다. 예를 들어, 기둥 높이에 대한 기둥 지름의 비율은 $\frac{1}{12}$ ~ $\frac{1}{10}$가 일반적이다. 처마의 높이가 높을수록 처마를 바깥으로 내미는 길이는 길어진다.

박정대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는 “수직, 수평으로 놓이는 여러 부재를 3차원으로 연결하는 한옥에는 파라메트릭 설계의 기본 원리가 들어 있다”고 말했다.

한옥 설계가 쉬워진다

국가한옥센터 한옥기술개발연구단은 한옥 고유의 원리를 기존의 ‘빌딩정보모델링(BIM)’에 적용했다. BIM은 건물이 설계될 때부터 철거될 때까지의 모든 정보를 통합해 모델링해 주는 소프트웨어다. 그 결과, ‘한옥 BIM 설계지원 시스템’이 탄생했다. 이 프로그램은 파라메트릭 설계를 활용한다. 사용자가 한옥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더라도 한옥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그래서 건축가뿐만 아니라, 학생이나 일반인들까지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 기둥의 거리, 건물의 높이와 너비 등 몇 가지 필수 사항만 입력하면 소프트웨어가 자동으로 한옥의 기본 모양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연구단은 여러 채의 한옥에서 정보를 수집해 부재의 치수와 특성, 부재와 부재 사이의 관계, 구조와 비례, 공간의 연결 관계 같은 여러 가지 변수를 수식으로 나타냈다. 한옥 모양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변수의 범위도 정했다. 예를 들면, 기존 한옥의 처마허리 곡선의 곡률을 측정해 최댓값과 최솟값을 구했다. 사용자가 이 범위 안에서만 모양을 조절하면 자연스러운 한옥의 곡선을 만들 수 있다.

연구를 이끌고 있는 전봉희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진입 장벽이 높아 전통 한옥 스타일로 고정돼 있던 한옥 디자인이 앞으로는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라며, “BIM을 활용해 곡선이 많은 복잡한 한옥의 모양을 손쉽게 대규모 건물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설계, 시공, 관리가 하나로

한옥에 BIM을 적용하면 건축 비용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정확한 계산을 하지 못해 과도하게 두꺼운 기둥을 쓰던 과거와 달리 두께를 최적화해 쓸 수 있다. 또한, 디지털 제작 장비로 정확하게 나무를 깎을 수 있다. 전문 기술이 없어도 쉽게 만들고 조립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유지와 관리에도 유용하다. 한옥은 ‘고쳐 쓰는 집’이라고도 한다. 목재로 만든 한옥을 효율적으로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부재가 얼마나 낡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한 시기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BIM을 활용하면, 부재 하나 하나의 이력을 거꾸로 추적할 수 있어 체계적이고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다.

하늘로 솟는 한옥

한옥도 나지막하고 운치 있는 집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옥을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는 도구가 발달하면서 이제는 다양한 모습의 한옥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최근 개발 중인 은평 한옥마을도 복층 한옥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낮은 한옥만 짓기는 어렵다. 앞으로는 복층을 넘어 고층 한옥도 등장할 것이다.

무게 중심을 낮춰라

고층 한옥을 짓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안정성’이다. 나무토막으로 탑을 쌓아 보면 금세 이유를 알 수 있다. 한 층 한 층 위로 올릴 때마다 휘청거리기 때문이다. 전통한옥을 지탱하는 기본 힘은 나무 기둥과 그 기둥을 꾹 눌러 주는 무거운 지붕에서 나온다. 바람처럼 약한 힘에는 충분히 버텼다. 그러나 기둥이 조금만 한쪽으로 기울면 지붕의 무게 때문에 집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이미 2층 이상의 높은 한옥은 있었다. <;고려사>;를 보면, 고려 시대 개경에는 3, 4층짜리 한옥이 있었다. 조상들이 한옥을 높게 지을 수 있었던 비결은 ‘체감 기법’이었다. 2층 기둥을 1층 기둥보다 약간 안쪽에 세우는 방법이다. 위로 갈수록 조금씩 좁아지기 때문에 무게 중심이 아래로 내려간다. 따라서 튼튼하고 보기에도 안정감이 느껴진다.

확률로 구조를 지켜라

이제는 현대식 공법을 활용해 예전보다 한옥을 더 높게 지을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불안한 것은 사실. 우리가 지은 고층 한옥은 언제까지, 얼마나 튼튼하게 버텨줄까? 설계할 때 계산한 힘과 실제 건물이 받는 힘의 크기는 다르다. 똑같은 나무여도 목재마다 강도나 탄성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이렇게 불확실한 요인을 처음부터 고려하는 것이 바로 ‘한계상태설계’다.

한계상태설계는 시간에 따라 건물이 무너질 확률을 구하고, 이 확률이 일정 기간 동안에는 거의 0이 되도록 설계하는 방법이다. 즉, 목표로 삼은 기간 동안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한계상태설계는 재료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주기도 한다. 각각의 재료가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건물의 구조를 버틸 만큼의 적절한 양을 쓸 수 있다. 목조 건축이 발달한 북미와 유럽에서는 이미 한계상태설계를 활용하고 있다.

한옥을 고층으로 지으려면 비용과 노력이 많이 든다. 고층 한옥의 장점이 그보다 커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높이에 걸맞은 기능과 성능이 뒷받침돼야 한다. 국가한옥센터 한옥기술개발연구단장인 김왕직 명지대 건축학과 교수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2~3층을 넘어선 고층 한옥을 짓는 것은 경제성과 예술성, 문화적 정서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옥의 진화는 현재진행중

요즘에는 누구나 한옥의 정취를 일상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도록 공공건축물을 한옥으로 짓고 있다. 이강민 국가한옥센터장은 “사람들이 ‘한옥답다’고 느끼는 범위가 생각보다 좁고 보수적이다”라며, “한옥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고, 다양한 모습의 한옥을 받아들일 때 우리 도시에 한옥이 스며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처럼 똑같이 생긴 한옥이 전국에 퍼지는 게 아니라 미래 사회의 가치에 맞게 다양한 방법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옥 도시를 꿈꾸다

이제는 다양한 모습의 한옥이 가득 어우러진 도시를 상상해 보자. 공간과 공간이 서로 소통하는 한옥의 특성이 도시 곳곳에서 각박함을 해소하고 건강한 활력을 되찾아 줄 수 있지 않을까.

한옥 도서관
사람의 몸에 적합한 한옥의 공간은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 준다. 차분하게 앉아 책을 읽기도 좋고,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해 공부를 하기에도 좋다. ‘구로 글마루한옥어린이도서관’, ‘종로 도담도담한옥도서관’ 등 우리 주변 곳곳에 한옥 도서관이 하나 둘씩 등장하고 있다.

한옥 아파트
앞으로는 한옥과 아파트의 장점만을 골라 만든 한옥 아파트가 많아질 것이다. 마당을 실내로 끌어들이거나 한옥에서처럼 사랑방을 입구에 두는 등 한옥의 공간 구조를 아파트에 가져오는 것이다. 최근 한국주택공사도 ‘한옥 아파트’를 개발해 발표했다.

한옥 공연장
예부터 우리 민족은 흥이 많은 민족으로 통했다. 우리한테서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단 얘기다. 공연에서는 예술가만큼이나 장소도 중요하다. 국악, 마당놀이, 강강수월래, 탈춤 같은 우리 예술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있는 공간은 한옥이다. 한옥으로 지은 서울 남산국악당은 한국건축문화대상 사회공공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옥 홍보센터
한옥은 한방, 한복, 한식 등 우리 나라의 전통 문화를 알리는 홍보센터에도 제격이다. 대규모 공간이 필요한 공공건축물을 아기자기한 공간의 한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현대 건축의 도움이 필요하다. 실제로 지난 4월에는 전통한옥과 현대 건축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서울 약령시 한방산업진흥센터가 공사에 들어갔다.

스마트그린 한옥 빌딩
스마트그린 빌딩은 주변의 자연 환경을 활용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각종 정보통신 기술로 다양한 기능과 자동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는 자연 환경을 활용하는 한옥과 일맥상통한다. 한옥의 공간 배치를 응용하면 건물 내부에 공기 흐름을 유도해 자연 통풍 효과를 낼 수 있다. 또한, 사물인터넷을 활용해 처마의 각도를 바꾸면서 실내에 들어오는 햇빛을 조절하는 모습도 상상해볼 수 있다.

한옥 호텔
외국인 관광객이 한옥에 머무를 수 있도록 호텔을 한옥으로 지을 수도 있다. ‘부산 코모도 호텔’은 조선시대 왕궁을 그대로 재현한 독특한 외관을 자랑하며, 각 층마다 화려한 단청으로 단장돼 있다. 지난 5월에는 인천 송도에 국내 최대 한옥 호텔인 ‘경원재 앰배서더 인천’이 문을 열기도 했다. 최기영 대목장을 비롯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장인들이 건축에 참여했다.

한옥 관공서
한옥은 아늑하고 편안하다. 동사무소, 우체국, 경찰서 같은 딱딱한 분위기의 관공서를 한옥으로 지으면, 시민들에게 더 친숙한 공간으로 변신할 수 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혜화동 주민센터는 최근 한옥으로 옷을 갈아입어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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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수학동아 정보

  • 송경은(kyungeun@donga.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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