째깍째깍”. 시간이 흐르는 소리가 좁은 방을 감돌았다. 수학 수수께끼를 좋아하는 사람을 초청한다는 기묘한 초대장을 받은 우리는 지금 낯선 방에 갇혀있다. 들어왔던 문은 도무지 열리지 않고 도움을 요청해도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방을 둘러보니 낌새가 이상한 물건이 몇 가지 눈에 띈다.
“여기 메모가 있어. 이 방 주인이 남긴 것 같아.”
태형이가 책과 노트가 널브러진 책상에서 쪽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런데 눈으로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태형이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쪽지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무리 애써도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풀지 못하면 여기서 나갈 수 없다. 나라는 수학자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겠지. 어차피 나는 문제에 갇혀 죽을 거다. 이 외로움을 제발 누군가 알아주면 좋겠다. 그리고 나와 같은 운명이 영원히 반복됐으면 좋겠다. 누구도 나갈 수 없다.
문제가 풀리기 전까지는….’
“우린 여기 갇힌 거야.”
절망적인 목소리로 태형이가 말했다.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아니야, 문제가 풀리기 전까지 나갈 수 없다는 건 이 방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거야. 좀 더 둘러보자.”
침착하게 말했지만 사실 나도 두려웠다. 처음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계속 라디오에서 흘러나 오던 잡음이 점점 커지는 것만 같았다. 저거라도 멈췄으면 좋겠는데…. 그때 방 귀퉁이에 있는 철제 캐비닛이 눈에 들어왔다. 캐비닛 문엔 세 자리 암호판이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여러 가지 세 자릿수가 쓰여 있었다.
“이 중 비밀번호가 있지 않을까? 캐비닛 속에 탈출 열쇠가 있을 수도 있어.”
“하지만 어떤 수가 비밀번호인지 어떻게 알아. 기회는 한 번뿐이라고 쓰여 있잖아. 아무 수나 넣었다가 큰일나면 어떡해.”
맞는 말이었다. 무작정 시험해보기엔 위험이 컸다. 좀 더 단서를 찾으려 캐비닛을 자세히 살폈다. 그런데 암호판 밑에 작은 글씨 같은 것이 보였다.
“이것 봐! 뭔가 있어.”
“무슨 글씨를 뒤집어서 쓴 것 같아. 거울을 놨다고 생각하고 읽어보면…. 카탈랑…딕…슨인가?”
치지직! 태형이가 ‘카탈랑-딕슨’이라고 읽자 라디오의 잡음이 사라지고 또렷한 소리가 나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1+2+3=6처럼 자신을 제외한 약수의 합이 자기가 되는 수를 ‘완전수’라고 하죠? 그럼 완전수가 아닌 수로 자신을 제외한 약수의 합을 구하는 연산을 반복하면 어떻게 될까요? 카탈랑-딕슨 추측에 따르면, 이 결과는 반드시 셋 중 하나입니다! 소수로 끝나거나, 친화수★로 순환되거나, 완전수로 반복된다는 거예요. 정말 그럴까요? 저도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아는 건 있어요. 이 방에서 나갈 수 있는 제한시간은 1시간이란 거죠. 1시간 안에 문제를 모두 풀지 못하면 절대 나갈 수 없답니다. 그럼 시계, 스타~트!”
친화수★
220과 284처럼 자신을 제외한 약수를 더하면 서로가 되는 두 수의 쌍.
소리가 멎자 멈춰있던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종이와 연필을 가져와 캐비닛에 적힌 수들을 받아적었다.
“그러니까 이 수들로 자신을 제외한 약수를 더 해보면 되는 건가?”
“일단은 해보자. 특별한 수가 나올지도 몰라.” (*여러분도 해보세요!)
우리는 캐비닛에 적힌 모든 수를 계산했다. 시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모두 세 가지 종류에 포함됐다. 그런데 딱 한 개만 계산이 끝나지 않았다. 이것만 계산하다가 1시간이 지나버릴까 봐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때 연필을 내려놓으며 태형이가 외쳤다.
“잠깐! 여기 글씨가 거꾸로 적혀있는 건 반례를 찾으라는 뜻 아닐까?”
“그럴지도 몰라. 그렇다면 암호는 이것밖에 없어!”
암호판을 276에 맞추자 안에서 달칵 소리가 났다. 문이 저절로 열렸다. 캐비닛 안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긴 구리선과 이상한 문자열 카드가 있었다.
“라마렐스이나크푸토.”
캐비닛에서 나온 문자열을 소리 내 읽어봤다.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태형이도 구리선을 살펴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특별한 점은 없어 보여. 평범한 구리선이야. 이걸로 어쩌란 거지.”
언제 쓰일지 모르니 일단 챙겨두고 방을 더 뒤져보기로 했다. 아까부터 빈 화면만 비추고 있는 영사기로 다가갔다. 이런저런 버튼을 눌러봤지만 역시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남은 시간은 이제 30분이었다.
“그냥 지직거리던 라디오도 메시지를 담고 있었잖아. 이것도 재생하는 방법이 있을 거야.”
“맞아. 재생법을 어떻게 찾느냐가 문젠데…. 어라? 이 버튼, 그 문자열 카드랑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어?”
문자열 카드를 들어 영사기 조작 버튼과 비교해 보니 9칸 배열의 색깔이 정확히 일치했다. 문자 암호만 풀면 재생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엔 답이 몇 자리인지 모르니 일일이 눌러보는 건 불가능했다. 경우의 수가 무한했다.
그런데 어쩐지 문자열 카드 위에 쓰여있는 196을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들었다. ‘내가 이걸 어디에서 봤더라….’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었다.
“아!”
얼른 책상으로 달려가 노트와 책더미를 뒤졌다. 그리고 ‘수학자의 노트’라 쓰인 공책을 찾아냈다. 군데군데 찢어진 노트엔 휘갈겨 쓴 필기가 가득했다. 노트 밖으로 삐져나온 포스트잇에 196이라는 수가 쓰여 있었다. 아까 쪽지를 발견했을 때 언뜻 본 기억이 났다.
“여기 뭔가 있을 거야!”
서둘러 ‘196’이란 표시가 붙은 페이지를 펼쳤다. “라이크렐이 답이야! 라, 이, 크, 렐 순으로 버튼을 눌러 보자.”
1-5-7-3 순서대로 버튼을 누르자 영사기에 걸린 필름이 차르륵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칭수★
순서대로 읽은 수와 거꾸로 읽은 수가 일치하는 수
‘67년 제1차 유대-로마 전쟁이 일어났을 때였습니다. 유대인 사령관이었던 요세푸스는 전투에 밀려 로마군에게 포위되었습니다. 동굴에 숨어있던 41명의 병사들은 로마군에게 죽임을 당하느니 스스로 자결하자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냥 죽기는 어려우니 둥글게 모여 서서 서로 죽일 수 있는 알고리듬을 짰죠. 첫 번째 사람을 기준으로 세 번째 사람을 죽이고 두 명 건너 다시 세 번째 사람을 죽이는 걸 아무도 남지 않을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죽기 싫었던 요세푸스는 몇 번째에 서면 마지막까지 남을 수 있는지 재빨리 계산해서 그자리에 섰습니다. 자, 그렇다면 문제입니다. 요세푸스는 몇 번째 자리에 섰을까요? 살 수 있는 자리를 골라 보세요. 틀리면 바로 칼이 날아들지 모르니 주의하세요!’
탈출구를 향한 마지막 관문
“벽에 걸린 저 그림에 대한 설명이야.”
“응. 저기서 번호를 고르면 되는 것 같아.”
이제 남은 시간이 정말 얼마 없었다. 종이를 펼쳐 그림을 베껴 그리고 하나씩 지워나가기로 했다. (*여러분도 풀어 보세요!)
병사가 1000명쯤 되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죽은 병사의 자리에 ×를 치며 문제를 풀자 딱 두 자리가 남았다. 우리는 각각 한 자리씩 선택했다. 그리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동시에 번호를 눌렀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살았습니다~.”
폭죽 소리와 함께 영사기가 꺼졌다. 그림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비밀공간이 드러났다. 커다란 액자 뒤엔 탈출구라 쓰인 철문이 있었다.
“진짜 출구야!”
벅찬 마음에 당장 손잡이를 돌렸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철문 위에는 수가 쓰인 나사가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그리고 문 주위로 전선이 잔뜩 연결돼 있었다.
“이 암호만 풀면 나갈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이게 무슨 문제지? 이 수가 뭘 뜻하는지 모르면 문제를 풀 수 없어.”
“여기 힌트가 있어.”
힌트를 요리조리 뜯어보던 우리는 동시에 외쳤다.
“수학자 노트!”
라이크렐 수를 찾았을 때 ‘콜라츠’라고 쓰인 포스트잇이 붙어있던 기억이 났다. 수학자 노트를 펼치자 콜라츠 추측에 대한 수학자의 필기가 나왔다.
“네모 칸 두 개를 연결하면 될 것 같아. 13에서 1이 되도록 콜라츠 추측 알고리듬을 따라가는 거지.”
“뭘로 연결해?”
“거기 답이 있잖아, 네 주머니에!”
아까 캐비닛에서 찾은 구리선이었다. 전기로 움직이는 문이라면 전선을 잘 연결하면 작동할 거다. 하지만 만약 잘못해서 감전된다면…. 1분 남짓 남은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13에 먼저 구리선을 감았다. 심호흡을 하며 차례차례 계산을 따라 구리선을 연결했다.
13×3+1=40, 40÷2=20, 20÷2=10, 10÷2=5, 5×3+16, 16÷2=8, 8÷2=4, 4÷2=2, 2÷2=1
“쿠구구구구구구….”
마지막 1에 구리선을 감자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우리는 문 손잡이를 잡았다.
“하나, 둘, 셋!”
손잡이를 돌리니 13과 1에 불이 켜지며 철문이 스스로 열리기 시작했다. 어둡기만 했던 방에 서서히 빛이 들어왔다. 저택 안에선 고작 1시간 지났을 뿐인데 밖은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우린 마지막으로 수학자의 방을 돌아보았다.
창문 높이의 문에서 뛰어내려 계속 달렸다. 등 뒤로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자욱한 안개 사이로 저택이 희미해졌다. 아마 수학자 저택은 안개 속에서 또 다음 손님이 오길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