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과 기하학, 알고 보니 죽마고우?
논리적인 학문인 수학은 예술 분야인 패션 디자인과 크게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 사이입니다.
김혜경 동덕여자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교수는 “패션 디자인에서 기하학은 기본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옷을 만들려면 사람의 몸을 잘 이해해야 하는데, 몸은 기하학의 기본 도형으로 나눠서 묘사할 수 있습니다. 팔과 목, 다리는 원기둥으로, 관절은 구로, 코는 삼각뿔이라고 생각하는 식이지요. 이를 기본으로 옷을 디자인하는 겁니다.
김 교수는 “기하학은 창의적인 디자인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이며 일본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의 ‘바오바오백’을 소개했습니다. 바오바오백은 삼각형을 모아 디자인한 가방입니다. 생긴 모습부터 기하학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요?
단지 겉모습만 특이한 건 아닙니다. 평범한 가방모양을 벗어나, 다양하게 변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잡이를 잡고 다닐 수도 있고, 반으로 접어 작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또, 색다른 모양으로 접어 독특한 느낌을 줄 수도 있습니다. 삼각형이라는 기본 도형을 이용해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림을 입는 방법은?
도화지 위에 그린 그림을 보고 입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당연히 없을 겁니다. 하지만 입체파 대표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현실이다’라는 말처럼 그림도 입을 수 있습니다.
이진영 동서울대학교 패션디자인과 겸임교수와 김 교수는 프랑스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이라는 이론을 바탕으로 그림을 옷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3월에 발간된 한국패션디자인학회지 2018년 1호에 발표했습니다.
이 교수는 “시뮬라시옹★은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하학적 공간으로 해석해 나타낼 수 있다는 이론”이라며, “여기서 패션 디자인도 기하학적 공간으로 해석해 나타낼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얻어 2차원 그림을 3차원 옷으로 만드는 방법을 고안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교수는 시뮬라시옹에서 나타나는 기하학적 공간을 몇 가지 특징으로 분류해, 각 특징을 작품에 적용했습니다. 아래는 그중 하나인 ‘뫼비우스의 순환’을 응용한 작품입니다.
시뮬라시옹★
시뮬라시옹은 현실을 따라한 거짓 현실이 진짜 현실을 대체해 또 다른 공간과 경험이 생긴다는 이론이다.
낭비 없는 파츠파츠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버리게 되는 천이 있습니다. 옷의 원료가 되는 천인 원단이 보통 15% 이상 남아서 버리게 됩니다. 천을 적절하게 잘 나누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 의류 브랜드 ‘파츠파츠’의 대표 임선옥 디자이너는 2011년에 이른바 ‘제로 웨이스트’, 낭비없는 패션 디자인 파츠파츠를 선보였습니다. 기본 단위인 ‘파츠’를 잘 설계해 낭비되는 원단을 없앤 것입니다.
파츠파츠에서 옷을 만드는 아이디어는 레고와 비슷합니다. 몇 가지 모양의 레고로 큰 성이나 비행기를 조립하는 것처럼, 옷도 기본 단위를 만든 뒤 조합해 다양하게 디자인하는 겁니다. 평면도형인 정사각형 6개와 정삼각형 8개를 조합해 입체도형인 육팔면체를 만드는 것처럼, 평면도형인 기본 단위를 조합해 입체도형인 옷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파츠파츠쉽습니다. 사각형 원단을 하나도 낭비하지 않고 옷을 만들 기본 단위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계산과 기하학적 아이디어가 필요합니다.
파츠파츠의 옷은 아주 다양하게 변신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A~F라는 6가지 기본 단위로 옷을 만든다고 합시다. 이때 F를 다른 기본 단위로 바꾸면 새로운 옷이 나옵니다. 각 기본 단위의 색을 다르게 조합해도 또 다른 옷이 나옵니다. 아주 많은 경우의 수가 있겠죠?
파츠파츠는 네오프렌이라는 단 한 가지 소재만으로 옷을 만듭니다. 네오프렌은 잠수복에 쓰이는 원단입니다. 봉제를 하지 않고 각 재료를 접착해 옷을 만들기 때문에, 접착이 잘 되는 원단인 네오프렌을 의류에 적합하도록 새롭게 개발해 쓰고 있습니다. 4계절 모두 입을 수 있도록 두께를 달리해 수학동아옷을 만듭니다.
임 대표는 “낭비가 없고, 지속 가능한 패션 디자인을 하기 위한 방법을 꾸준히 연구해 체계적으로 정립할 계획”이라며, “수학자나 과학자와 협업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덧붙여 “수학을 공부해서 생기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하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것으로 세계 유일의 수학패션지 GEOMETRY 1호를 끝내려고 합니다. 바오바오백부터 그림을 입는 패션, 원단의 낭비를 없앤 패션까지 살펴봤는데 기하학과 패션이 어우러지는 모습이 참 신기하지 않았나요? 2호가 벌써부터 기대될 겁니다. 자, 그럼 2호에 담을 소재를 찾으러 저는 이만 취재를 하러 떠나야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만나요~. 언제 다시 만날지는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