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다.” “우리는 결코 뒤돌아가지 않을 것.”
“힘 모아 미래로 보폭 맞춰 전진.”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던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 울려 퍼진 말이다. 가슴 뛰는 역사적인 순간에 서 있는 우리는 통일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수학 교육의 통합은 그 과제 중 하나다.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4월 27일 오전 9시 30분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우리나라의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처음으로 만났다. 두 정상이 통역 없이 대화하는 모습에서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 것을 느끼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날 남북정상회담은 성공적이었다. 문 대통령과 김 국무위원장이 함께 발표한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북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 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해 핵 없는 한반도를 만든다는 공동 목표를 확인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에 설치하고, 남북적십자회담이나 이산가족 상봉 같은 행사도 열기로 했다.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아직 거쳐야 할 관문이 여럿 남아있다. 첫 번째는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북미정상회담이다. 과연 북미정상회담도 남북정상회담처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해 보자.
북한 교과서에서 ‘미제승냥이’ 빠진다
“남과 북의 선생님이 모여 교과서를 집필하는 순간, 그때가 통일입니다.”
2018년 5월 9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에서 ‘평화, 새로운 시작: 교육정책의 역할 모색’이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김연철 통일연구원원장은 교육의 통일을 강조했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통일 세대를 위한 남북 교육 교류를 강화해야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통일연구원과 함께 개최한 토론회다.
여러 발표자가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정보기술 다섯 과목에 대해 북한 교과과정을 분석하고 남북교류협력 방안을 발표했다. 수학 과목은 나귀수 청주교육대학교 수학교육과 교수가 맡았다. 나교수는 “남한의 수학 교육과정을 토대로 수학 과목 통합교육과정을 개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북한의 수학 교육과정은 우리나라와 비교해 양적으로는 많지만, 깊이 있게 다루고 있지는 않다. 남한은 다루는 내용은 적어도, 심층적으로 탐구할 수 있도록 짜여 있다. 북한은 결과를 강조하지만, 남한은 과정을 강조한다는 점도 다르다. 나 교수는 “통일한국의 학생들이 살아갈 미래에는 배운 지식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적용하는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며, “많은 요소를 학습하는 것보다 중요한 내용을 깊이 있게 탐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남한의 교육과정을 기본으로 하되, 북한에서 다루는 내용 중에서 중요한 요소를 추가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과서에서 사라져가는 ‘반미’
북한의 수학 교육이 바뀌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국제 사회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북한은 2013년에 중등학교★ 6년 동안 단계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개정했다. 우리나라 처럼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학 개념을 넓고 깊게 배우는 구조로 개편한 것이다.
중등학교★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함께 이르는 말이다.
교과서도 크게 바뀌었다. 기존 북한 소학교(초등학교) 수학 교과서에는 ‘인민군대아저씨’나 ‘미제승냥이’, ‘탱크’ 같은 전쟁과 관련된 소재로 만든 문제가 많이 실려 있었다. 예를 들어, ‘인민군대 아저씨들이 미제승냥이놈들의 비행기를 8대 떨구었습니다. 또 몇 대 떨구었습니다. 모두 14대 떨구었습니다. 두 번째에 몇 대 떨구었겠습니까?’ 같은 식이다.
그런데 최근 북한 수학 교과서에서는 사과나 달걀, 놀이동산, 버스, 나비, 축구 같은 실생활과 밀접한 소재로 이뤄져 있는 문제를 많이 볼 수 있다.
여전히 ‘미제승냥이’나 ‘인민군 행진’과 같은 소재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북한 수학 교육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온 이정행 미국 나약대학교 수학과 교수는 “북한 수학 교과서에 나온 반미 내용을 어떻게 수정할 것인지가 북한이 현재 떠안은 숙제”라고 말했다.
수학 올림피아드 단일팀 가능할까?
수학은 남과 북이 해방된 이후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교류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주요 연구분야가 서로 다르다. 우리나라는 순수수학에 집중한 반면, 북한은 순수수학 분야는 거의 연구하지 않고 전력, 석탄, 금속, 철도운수 같은 현장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응용수학분야에 집중했다.
교실에서 직면하게 될 문제는 수학 용어다. 우리나라는 일본식 한자와 영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쓰고 있는 것과 달리, 북한은 우리말화 작업에 많은 노력을 쏟았다. 그 결과 일부 러시아식 용어를 제외한 대부분의 수학 용어가 우리말이다. 남북 수학 연구 교류에 힘써온 김도한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명예교수는 “북한은 수학 용어를 만드는 데 상당히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나라에서 쓰는 ‘급수’라는 용어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북한에서는 ‘급수’를 ‘합열’이라고 해 뜻이 쉽게 와 닿는다”고 말했다.
눈에 띄는 북한의 용어 중 하나는 ‘사귐’이다. ‘친구를 사귄다’, ‘이성친구를 사귄다’라고 할 때 주로 쓰이는 단어 ‘사귐’은 두 집합의 공통부분을 말하는 ‘교집합’을 뜻한다. 또한, 용어만 봐서는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벤다이어그램’은 ‘모임그림’으로 나타내는 한편, ‘지수’와 ‘역수’는 각각 ‘어깨수’, ‘거꿀수’처럼 재치 있게 나타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북한의 수학 용어가 모두 좋은것은 아니다. 한자어나 외래어를 너무 억지로 순 우리말로 바꾼 경우도 있다.
북한의 수학 용어가 처음에는 생소하고, 어색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통일한국의 학생이 한 교실에서 수학을 공부하려면, 용어는 반드시 통일해야 한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느껴지더라도 마음을 열고 북한과 남한에서 좋은 수학 용어를 각각 선별하고 수정, 보완해 미래의 수학 수업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단일팀 결성?!
지금과 같은 평화 국면이라면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에도 우리 학생과 북한 학생이 함께 단일팀을 이뤄 참가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북한학생들의 수학 실력이 뒤떨어져 우리나라 선수들
의 발목을 잡지 않을지 걱정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학생의 수학 실력이 부족하다
생각하면 오해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만 20세 미만의 학생들이 참가할 수 있는 국제수학경시대회다. 매년 열리며, 2000년에는 우리나라 대전에서 열렸다.
북한은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2016년에는 6위, 2015년에는 4위, 2013년에는 5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북한에서는 수학에 재능이 있어 보이는 학생을 조기에 발굴해 집중 교육한다. 각 시에서 수학 영재로 선발된 학생들은 따로 모여 특별 교육을 받고, 방학 기간에도 매일 함께 교육을 받는다.
아쉽게도 남북단일팀 구성은 쉽지 않을 것 같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선발되는 인원은 총 6명으로, 단일팀을 구성한다면 우리나라 학생은 3명밖에 출전하지 못하게 돼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올림피아드 역사상 다른 국가가 단일팀을 이뤄 참여한 사례도 아직은 없다. 나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 남북한학생 모두 수학에 흥미를 갖고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며, “수학체험전이나 수학구조물 만들기 대회 같은 행사를 평화의 무대가 된 판문점에서 열어 수학을 남북 학생들이 함께 즐기다 보면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다가올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안을 제시했다.
한반도의 평화는 이제 시작이다. 수학 교류도 이제 시작이다. 남과 북 학생들이 한 교실에 모여 같은 교과서로 수학을 함께 공부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기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해 통일한국에서 유럽으로 남북한 학생들이 함께 수학여행을 가는 날을 손꼽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