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김병수 노원과학영재교육원장이 직접 수업을 하는 수학사사반에 조심스레 침입한 건 3월 10일. 입교식을 한 뒤 겨우 두 번째 수업이 열린 날이었다. 수학사사반은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수학심화반에서 1년간 배운 뒤 진급하거나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새로 뽑혀 15명 내외로 이뤄져 있다.
학생들은 학기 초의 서먹한 기운을 이겨내고 끼리끼리 모여앉아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칠판에 카드를 활용하는 수학 문제의 흔적이 있는 걸 보니, 카드 문제를 푸는 모양이었다. 모둠을 돌아가며 살피던 김 원장이 이윤석 군(중계중학교 2학년)에게 나와서 아이디어를 소개해보라고 했다. 이 군은 “아직 완전히 푼 건 아닌데…”라고 말하며 수줍게 일어났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이 군은 정오각형을 칠판에 그리면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카드 문제가 아니라 도형 문제를 푸는 중이었던 건가. 나중에 물어보니 김 원장은 “문제를 여러 개 주고 맘에 드는 걸 풀어보라고 한다”며, “조합론을 좋아하는 학생은 조합론 문제를, 도형을 좋아하는 학생은 도형 문제를 푸는 것”이라고 말했다.
잡지에 내 이름을 실어라!
이날 김 원장이 학생들에게 나눠준 문제는 미국수학회가 발행하는 잡지에 실렸던 것들이다. 카드 문제는 규칙성을 찾는 게, 도형 문제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오각형의 성질을 이용하는 게 관건이었다. 혼자서 풀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문제이기에, 학생들은 좋아하는 문제를 골라 끼리끼리 토론하며 풀어낸다. 지금까지 푼 내용을 다른 친구들에게 소개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문제의 답이 무엇인지는 출제자만 알 뿐,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았다. 김 원장과 학생은 물론이고 문제를 실은 미국수학회도 아직 모를 것이다. 아이들이 힘을 모아 문제를 풀어나가면 김 원장은 풀이 과정에 오류가 없는지 살핀다. 지난 해에는 이런 방법으로 발견한 풀이 8개를 김 원장이 직접 영어로 번역해 미국수학회에 보냈다. 그중 하나는 미국수학회도 풀이가 맞다고 판단해 학생의 이름을 잡지에 실었고, 나머지는 아직 심사 중이다.
물리와 화학을 가르치는 수업도 있다. 모든 과목이 심화반과 사사반을 운영하는데, 1학년은 심화반에 들어가고 2학년은 사사반에 들어가 1년 동안 열리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학기 중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4시간씩 수업을 하며, 여름에는 평일 내내 수업이 열리는 집중교육 기간이 있다. 모든 수업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진이 직접 가르친다.
➊채현도 군, 윤건군, 김민재 군이 물리심화반에서 빛의 원리를 이용해 교통카드의 두께를 측정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➋2017년 7월과 8월에 열린 여름특별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이 퍼즐 게임을 즐기고 있다.
➌2017년 8월, 학생들은 서울시립과학관을 방문해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마을 교육의 목표는 사회 기여
원장은 학생들이 과학과 수학에 재능을 보인다고 해서 그 과목만 알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학과 물리, 화학반 학생들은 100시간쯤 되는 수업 시간 중 30시간 정도는 다른 분야를 배운다. 코딩은 물론이고 역사와 철학, 미술 수업도 있다. 김 원장은 “마을 사람의 지원으로 영재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어른이 된 뒤 사회에 보답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역사와 철학, 미술을 가르치데만 그치지 않고 수학이나 과학과 융합하는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볼 계획도 있다. 김 원장은 기자에게 “사실 수학동아를 2년째 정기구독 중이다”라고 귀띔했다. 수학동아에 등장하는 융합 소재가 교육프로그램으로 응용하기에 좋다는 것이다. 동네부터 잡지까지, 가까운 곳에서 교육의 소재를 찾는 노원과학영재교육원은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