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매스미디어] 스튜디오 지브리 대박람회

미야자키 하야오는 소문난 ‘성덕(성공한 덕후)’입니다. 어릴 적부터 하늘을 나는 것을 동경해 자신의 영화에 비행체를 잔뜩 그려넣었죠. 심지어 실제보다 크게 그리기까지 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건 크게 그리는 사람이거든요. 미야자키의 비행체를 실물로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네요!

 

100년쯤 전에는 항공기가 아주 위험한 물건이었습니다. 나무로 만들어 부서지기 쉬웠고, 엔진도 자주 고장이 났죠. 그래도 필사적으로 날아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있었습니다. 1914년, 처음으로 엔진이 4개 달린 비행기를 만든 이고리 시코르스키는 하늘에서 엔진이 고장 나면 조정석에서 일어나 거센 바람에 맞서서 엔진을 손보며 비행을 할 정도였죠.

 

우리에게 ‘이웃집 토토로’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만든 감독으로 친숙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처럼 기어코 하늘을 날고야 마는 사람을 동경했습니다. 항공기 부품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며 직접 항공기를 몰았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미야자키는 자신의 작품 철학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메카닉물★은, 주인공이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거대한 기계를 타고 적과 싸워 이기는 내용이다. 나는 이런 작품은 싫다.  어떤 로봇이라도 좋은데, 주인공이 힘들여 만들고 고장 나면  직접 수리해 움직이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메카닉물이라고 생각한다.”

 

- ‘월간 에혼 별책 애니메이션’ 스바루쇼보 1979년 3월호

 

 

메카닉물★ 로봇이 등장하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

 

‘마녀 배달부 키키’의 한 장면입니다. 인력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날고 싶은 소년 톰보는 비행선에 매달린 채 공중에 뜨는 사고를 당합니다.

 

자기만의 기계를 만들고 고치는 영웅에 매료됐기 때문인지 미야자키의 영화에 나오는 비행체는 매우 정교합니다. ‘붉은 돼지’와 ‘바람이 분다’, ‘마녀배달부 키키’에는 실제로 존재했던 비행체가 나오지요. 상상의 비행체라도 전문가의 검토를 받아 그리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날 수 있습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스튜디오 지브리 대박람회’의 ‘하늘을 나는 기계들’은 미야자키가 상상한 비행체를 입체조형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번 박람회는 1985년 설립된 지브리가 30주년을 맞아 일본에서 연 전시를 우리나라에서 다시 연 겁니다. 홍보와 제작을 담당한 스즈키 토시오가 영화를 어떻게 홍보했는지를 지하 1층에서, 미야자키의 비행체를 지상 1층에서 보여주죠. 기자도 비행체를 보러 다녀왔습니다.

 

박람회에 전시된 입체조형물 중 하나인 ‘타이거모스호’입니다.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해적이 타는 비행선이죠!

 

이 거대한 비행체는 헬리콥터와 비슷한 원리로 하늘을 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헬리콥터는 회전 날개를 빠르게 돌려 공기를 아래로 밀고, 이에 대응하는 힘을 받아 하늘로 뜹니다.

 

라퓨타로 가는 비행체들

 

대나무와 천으로 뒤덮였고 언뜻 보면 배처럼 생긴 비행체가 공중에서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반복합니다. 대나무로 만든 회전 날개 수십 개가 빙빙 돌고, 바닥의 긴 나무 막대는 바람 위에서 노를 젓듯 앞뒤로 움직입니다. ‘하늘을 나는 기계들’에서 가장 큰 비행체의 모습입니다.

 

커다란 비행체 주변에는 대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모양의 비행체가 더 있습니다. 모두 미야자키가 1986년에 만들었고 우리나라에선 2004년에 개봉한 ‘천공의 성 라퓨타’의 오프닝에 잠깐 등장하는 것들입니다. 이 영화는 하늘에 떠 있는 전설 속의 보물섬인 라퓨타를 찾아가는 내용이에요.

 

오프닝엔 미야자키가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술의 발달로 인간이 바람을 이용해 하늘을 날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이 땅을 떠나 천공에서 살려 하자, 천공의 인간에게 재앙이 내려졌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땅으로 돌아가야 했죠. 오프닝에 등장하는 수많은 비행체는 과거에 천공으로 가려던 인간이 잔뜩 만들어낸 것으로 보입니다.

 

전시장의 다른 방에는 천공의 성 라퓨타에 등장하는 해적 ‘도라 일당’의 타이거모스호도 있습니다. 도라 일당은 라퓨타의 보물을 훔치는 데 혈안이 돼 있지만 주인공 소녀와 소년이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는 귀여운 해적이에요.

 

타이거모스호는 제펠린 비행선에서 모티프를 따왔습니다. 비행선은 비행기나 헬리콥터와 달리 공기의 밀도 차이에 의해 뜨는 비행체를 말합니다. 물에 돌과 튜브를 넣으면 돌은 가라앉고 튜비행체들브는 뜨죠. 밀도가 큰 돌을 지구가 더 세게 잡아당기기 때문입니다. 대기보다 가벼운 헬륨으로 채운 풍선이 떠오르는 것도 원리가 같습니다.

 

위험해서 매혹적인 해적선


대표적인 비행선인 제펠린 비행선은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기체인 수소를 담고 하늘을 날았습니다. ‘제펠린’이라는 이름은 비행선을 처음 만든 그라프 제펠린의 이름에서 왔지요. 제펠린 백작이 만든 비행선은 20세기 초반에 큰 인기를 끌었어요. 그중 140m 길이의 슈바벤호는 시간당 70km로 달렸는데, 표는 매우 비쌌지만 유람 비행을 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죠.

 

 

그러나 제펠린 비행선에는 큰 단점이 있습니다. 수소는 근처에 불이 있으면 산소와 결합해 폭발합니다. 불이 나면 엄청난 사고가 날 수 있지요. 그래서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타이거모스호는 적의 비행체가 나타나면 도망가기 바쁩니다.

 

실제로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1937년, 비행선 힌덴부르크호의 수소 가스가 폭발해 승객 36명이 사망한 겁니다. 이후로 수소는 비행선에서 사용할 수 없게 됐습니다. 요즘에는 수소 대신 안전한 헬륨 가스를 채운 비행선을 광고나 이벤트 용도로 사용하고 있죠. 미야자키의 또 다른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강풍으로 뒤집힌 비행선도 헬륨을 사용해 큰 사고로 번지지 않았답니다.

 

 

물에서 뜨고 내리는 비행기에는 수상기와 비행정이 있습니다. 수상기는 이 사진처럼 아래에 달린 플로트로 물에 뜨는 반면, 포르코가 타는 비행정은 플로트 없이 동체의 부력으로 물에 뜹니다.

 

비행의 발전에는 전쟁이 있다

 

전시장에는 항공기의 역사와 원리를 설명하는 만화도 있습니다. 내용이 쉽지는 않아서 시간을 갖고 찬찬히 봐야 할 거예요. 만화는 항공기와 전쟁이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지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때 폭탄을 싣고 적의 함대에 충돌해 자살 공격을 했던 일본 특수부대 가미카제의 전투기를 소개합니다. “다시는 만들어져선 안 될 비행기”라는 설명과 함께요.

 

미야자키는 항공기가 전쟁에 도움이 됐다는 점을 잊지 않습니다. 자신을 표현한 영화라고 알려진 ‘붉은 돼지’도 그렇죠. 주인공 포르코는 잘 나가는 이탈리아 공군이었으나 전쟁에서 친구를 잃은 뒤 군대에서 나와 돼지로 변한 인물입니다. 자신을 쫓는 공군에게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로 남겠다”고 말하며 도망 다니죠.

 

파시스트★ 1921년에 만들어진 이탈리아의 국가주의·전체주의적인 정치 단체다. 파시스트를 주도했던 베니토 무솔리니는 1925년 독재 정권 수립을 선언하고 독일의 히틀러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뛰어난 비행기 조종사인 포르코가 끔찍이 사랑하는 비행기는 날개가 2개 달린 빨간 비행정입니다. 비행정은 물에서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말해요. 영화의 배경인 20세기 초반에는 활주로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바다만 있으면 어디서든 뜨고 내릴 수 있는 비행정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비행정을 날리는 ‘베르누이 방정식’


비행정은 활주로를 달리는 비행기와 뜨고 내리는 장소가 다를 뿐 나는 원리는 같습니다. 이들이 개발된 건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다니엘 베르누이 덕분입니다. 베르누이는 공기의 움직임을 설명하
는 ‘베르누이 방정식’을 만들었습니다. 공기 입자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주변 물체에 충돌합니다. 이때 입자가 가하는 힘을 그 힘을 받는 물체의 면적으로 나눈 값을 ‘압력’이라 합니다.

 

비행기에도 공기가 압력을 가합니다. 위쪽으로 가하는 압력이 아래쪽으로 가하는 압력과 중력의 합보다 크면 비행기는 하늘로 떠오릅니다. 베르누이는 공기의 속도가 빨라지면 압력이 줄어든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비행기의 아래쪽 공기보다 위쪽 공기가 충분히 빠르게 움직인다면, 즉 위쪽 바람이 빨리 분다면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거죠.

 

그래서 대부분의 비행기는 위 그림처럼 날개를 만듭니다. 이런 날개가 달린 비행기가 물이나 활주로에서 속도를 내면 위아래에 바람이 생깁니다. 위쪽 공기는 아래쪽보다 더 많은 거리를 가야 하므로 날개 위의 바람이 더 빠릅니다. 이 때문에 위쪽으로 힘이 생기고, 이를 ‘양력’이라고 하죠.

 

 

이처럼 양력으로 뜨는 비행기와 부력으로 뜨는 비행선을 경쟁적으로 개발하던 시대가 20세기 초반입니다. 그중에서도 전쟁 때가 가장 활발했죠. 공중에서 폭탄을 떨어뜨리고 전투기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여러 국가가 경쟁에 나섰거든요. 유명한 라이트 형제도 비행기를 군대에 팔았고, 미야자키의 아버지도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전투기 개발에 참여했습니다.

 

비행을 좋아하면서도 전쟁을 싫어했던 미야자키는 ‘붉은 돼지’와 ‘바람이 분다’에서 비행을 꿈꾸면서도 그것이 인류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갈등하는 인물을 다룹니다. 이를 가만히 보면 인공지능을 둘러싼 논쟁이 겹치기도 합니다. 누군가 열정을 다해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동안, 그것이 전쟁 무기로 쓰일 것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죠. 미야자키의 영화는 길게는 30년도 넘은 작품이지만, 이런 점에서 지금도 의미가 있습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8년 02호 수학동아 정보

  • 다솔 기자(dasol@donga.com)
  • 도움

    박재경(루덴스씨앤에이 이사), 김은정(루덴스씨앤에이 팀장)
  • 참고자료

    가와카미 노부오의 ‘콘텐츠의 비밀: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배운 것들’, 스튜디오 지브리의 ‘스튜디오 지브리 대박람회’, 미야자키 하야오의 ‘출발점 1979~1996’과 ‘반환점 1997~2008’, 박영기의 ‘과학으로 만드는 비행기’

🎓️ 진로 추천

  • 항공·우주공학
  • 문화콘텐츠학
  • 역사·고고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