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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위상수학, 느낌 아니까~

예술가 함준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애니메이션으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함준서라고 합니다. 건국대학교 글로컬 캠퍼스 영상디자인전공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지요.

 

애니메이션으로 예술 작품을 만든다니 생소해요.
애니메이션이라 하면 원피스나 나루토 같은 작품이 먼저 떠오를 수 있어요.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영상을 만드는 방법론이라 할 수 있어요. 애니메이션으로 영화를 만들 수도 있고, 광고를 만들 수도 있고, 예술 작품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지요.

 

함 감독은 2016년에 매년 홍콩에서 열리는 음악 문화 축제 ‘클락켄 플립 페스티벌’ 행사의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했다.

 

 

어떻게 애니메이션으로 예술을 하게 됐나요?
저는 고등학생 때까지 예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생물학을 아주 좋아해서 생물학자를 꿈꿨거든요. 그런데 중학생 때 우연히 TV에서 컴퓨터 그래픽에 대한 특집 프로그램을 봤어요. 무척 흥미롭더군요. 그래서 대학교 전공을 선택할 때 생물학과와 컴퓨터과학과 사이에서 크게 고민했어요. 결국에는 컴퓨터과학과를 가려고 마음을 먹었지요.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어요. 엉뚱하게도 저는 예술학과에 들어갔거든요. 하하. 컴퓨터 그래픽은 시각적이니까 미술대학을 가야겠다고 마지막 순간에 생각을 바꿨던 거예요. 그동안 하던 공부와는 완전히 다른 전공을 선택했더니 많이 헤매고, 방황했어요. 예술의 역사나 미학 같은 수업을 주로 들었지요. 그러다가 ‘네모라미’라는 동아리에 들어갔어요. 여기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접하면서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생겼지요.

 

또, 당시에는 예술 영화나 예술 애니메이션이 매니아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어요. 이때 저도 이런 것들을 접했는데 애니메이션에는 디즈니나 일본 애니메이션만 있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굉장히 신선했고, 재미를 느꼈기 때문에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으로 예술을 하고 있어요.

 

 

2016년에 ‘Topology’라는 개인전에 전시한 작품이 위상수학과 관련이 있나요?
컴퓨터 그래픽 분야에서도 ‘Topology’라는 용어를 써요. 같은 입체적 형태라도, 그것을 이루는 면의 구성을 달리할 때 쓰는 말이에요. 제 작업은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용어지요. 그래서 개인전의 이름으로 정했습니다.

 

접시 네 발(좌)
다리가 시작되는 부분에 접시 모양 구조물을 갖고 있는 생물 형태다.
1m 크기의 반투명 우레탄 조형물로도 만들었다.

숨어가는 네 발(우)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생물의 형태를 표현했다.

 

 

물론 작품에 위상수학도 영향을 끼쳤어요. 직접적으로 작품에 위상수학을 적용한 건 아니지만, 무의식중에 영향을 받았다고나 할까요. 어렸을 때 읽은 ‘재미있는 수학여행’이라는 책에서 ‘토폴로지 행성의 우주인’이라는 재미있는 가정으로 위상수학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이때 본 우주인의 모습이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구멍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분류되는 개념이 참 신기했거든요.

 

어렴풋이 남아있던 토폴로지 행성 우주인의 모습이 새로운 생물의 형태를 디자인할 때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앞으로는 위상수학을 비롯한 수학 원리를 작품에 직접 적용해볼 생각이에요.

 

 

작업할 때 수학을 직접 활용하기도 하나요?
컴퓨터 그래픽과 관련된 알고리즘은 거의 수학을 기반으로 해요. 저는 ‘파티클’과 ‘메타볼’이란 알고리즘을 주로 활용하고 있어요. 파티클은 3차원 공간에 여러 입자를 만들어 조정하는 알고리즘이고, 메타볼은 거리 함수를 이용해 각 입자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을 부드럽게 이어 형태를 만들어 주는 알고리즘이에요. 쉽게 말해 파티클로 입자를 뿌리고, 메타볼로 부드럽게 이어주는 거지요. 그러면 유기체 같은 모양이 돼요. 이런 식으로 작품을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은 수학과 관련이 있나요?
물론입니다. 먼저 캐나다 애니메이션 작가인 노먼 맥라렌이 했던 말을 소개할게요.

 

애니메이션은 움직이는 그림의 예술이 아니라,
그려진 움직임의 예술이다.

 

애니메이션은 움직임에 관한 것이지, 그림에 관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흔히 애니메이션은 예쁘고 귀여운 캐릭터 그림으로 이뤄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 중요한 건 움직임이에요. 즉, 애니메이션은 ‘미술’보다 ‘무용’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쉬워요. 움직임이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쪼개 쓸 것인가의 문제라서 수학적인 사고가 바탕이 돼야 해요. 속도나 가속도, 중력, 마찰, 힘 같은 개념도 모두 수학에서 출발하는 것이지요.

 

이뿐만이 아니에요. 요즘 그래픽 작업은 대부분 컴퓨터로 합니다. 간단하게 오각형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해 봐요. 그러면 오각형이 놓이는 곳은 좌표로 나타내고, 이를 이동하거나 회전하거나, 크기를 바꾸는 일에 모두 수학을 활용하지요. 작가가 쓰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수학이 녹아있는 거예요.

 

요즘에는 프로그램을 쓰기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코딩으로 작업하는 작가들도 있어요. 이렇게 하면 프로그램에 얽매이지 않고 더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지요. 바람을 만들고 싶으면 바람의 함수를 만드는 식이에요. 저도 그렇게 작업하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요즘 고등학교 수학부터 다시 공부하고 있어요. 학생 때는 압박 속에서 공부해 수학이 재미있다고 느꼈던 적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지금은 공부할수록 재미있고 의미 있다고 느껴요. 수학을 시험이나 입시의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수학은 재미로 하는 것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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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호 수학동아 정보

  • 김경환 기자(dalgudot@donga.com)
  • 도움

    함준서(애니메이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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