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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장인은 수학천재? 태엽 시계의 반란

 

2017년 11월, 13억 원짜리 손목시계가 세계 유일 시계경연대회인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에서 메커니컬 익셉션 상을 수상했다. 특별한 기술을 갖춘 시계에 주는 상이다. 시계 이름은 ‘셀레스티아 애스트로노미컬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3600(이하 셀레스티아)’. 기다란 이름처럼 기능도 많다. 4.5cm 지름 안에 해와 달과 지구의 위치, 달의 모양, 별자리 같은 천문 정보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이런 추가 기능이 무려 23개인 세계 최고로 복잡한 기계식 손목시계다.

 

스마트워치로 심장 박동까지 알 수 있는 지금 이런 게 뭐가 대단하냐고? 셀레스티아가 주목받은 이유는 건전지 없는 기계식 시계여서다. 태엽으로 수많은 톱니바퀴를 돌려 추가 기능을 구현한다. 전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쿼츠 시계★에 비해 훨씬 어렵다. 셀레스티아는 장인 한 명이 5년 동안 514개 부품으로 단 한 점만 만들었다.

 

쿼츠 시계★
건전지를 넣는 시계로, 전자식 시계라고도 부른다. 쿼츠 시계는 시각을 나타내는 방법에 따라 시침과 분침을 이용하는 아날로그 시계와 액정에 숫자를 표시하는 디지털 시계로 나뉜다.

 

요즘 기계식 시계는 건전지가 없이도 작동하는 기술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생존하고 있다. 1960년대 쿼츠 시계가 널리 퍼진 이후 취한 전략이다. 오차가 적고 튼튼하며 값이 싼 쿼츠 시계에 밀린 기계식 시계는 수학을 이용한 예술성을 택했다.

 

셀레스티아의 균시차 기능이 대표적이다. 해가뜨고 지는 건 지구의 자전 때문인데, 지구는 태양 둘레도 돌고 있다. 따라서 관측자가 볼 때 태양이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인 ‘1태양일’이 지나려면 지구는 공전한 만큼 더 자전해야 한다. 공전 속도가 매일 다르므로 1태양일도 변한다. 우리는 편의를 위해 1태양일을 1년에 걸쳐 평균을 낸 ‘평균 태양시’를 쓴다. 균시차는 실제 태양의 위치로 잰 시각인 ‘진태양시’에서 평균태양시를 뺀 값이다.

 

 

균시차는 타원 방정식과 원 방정식이 들어있는 복잡한 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셀레스티아의 제작자는 3년 동안 23가지 추가 기능을 구현할 수학식을 만들고 톱니바퀴를 설계했다.

 

 

 

 

기계식 시계의 한계는?

밸런스 안의 용수철은 중력을 한쪽으로만 강하게 받으면 주기가 변한다. 이 때문에 하위헌스의 밸런스는 회중시계와 손목시계에서 오차가 크게 발생한다. 중력이 일정하게 작용하는 탁상시계와 달리, 휴대용 시계는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중력의 방향이 제멋대로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한 장치가 시계학자 아브라함 브레게가 1801년 만든 ‘뚜르비옹’이다. ‘회오리 바람’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인 뚜르비옹은 밸런스와 이스케이프 휠에 붙어 1분에 1번 정도 회전하며 한쪽 방향으로만 받던 중력을 골고루 퍼뜨린다. 뚜르비옹이 오차를 완전히 없애주지는 못하지만, 만드는 데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고 생김새가 아름다워 인기 있는 추가 기능이다.

 

 

 

사람이 직접 태엽을 감지 않아도 되는 기계식 손목시계도 있다. 이런 시계에는 위 사진처럼 ‘로터’라 불리는 반달 모양의 금속이 있다. 시계를 차고 움직이면 중력에 따라 로터가 앞뒤로 회전하며 자동으로 태엽을 감는다.

 

이외에도 기계식 시계의 추가 기능은 다양하다. 평년과 윤년, 매달 날짜 수가 바뀌는 달을 자동으로 계산해 날짜를 알려주는 ‘퍼페추얼 캘린더’, 깜깜한 밤에도 시간을 알 수 있도록 특정 시간이 되면 종을 울리는 ‘미닛 리피터’는 뚜르비옹과 함께 3대 추가 기능으로 꼽힌다. 달의 모양을 보여주는 ‘문페이즈’와 시간을 재는 ‘크로노그래프’도 대표적인 추가 기능이다.

 

 

기계식 시계는 계속 발전 중
시계가 복잡해질수록 수학은 필수적이다. 톱니바퀴 대신 벨트가 시계를 돌리는 세계 최초의 벨트 구동 시계인 모나코 V4는 수학과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가이 세몬이 연구와 개발을 총괄했다. 개발팀은 시계의 수학 모형을 최적화하기 위해 수퍼컴퓨터를 써야 했다. 스위스 시계회사 파텍 필립도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교와 협력해 연구소를 운영한다. 2014년, 해당 연구소의 수학자 일란 바르디는 이스케이프 휠이 없는 기계식 진동자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스마트폰이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요즘, 기계식 시계는 어찌 보면 쓸데없지만 놀랍도록 독창적이다. 당장 실용적으로 보이지 않아도 결국에는 쓸모가 많았던 수학처럼 기계식 시계의 미래도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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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호 수학동아 정보

  • 이다솔 기자(dasol@donga.com) 도움 장성원(대한민국 시계수리명장 1호), 조선형(동서울대학교 시계주얼리학과 교수)
  • 참고자료

    정희경의 ‘시계이야기’, Ilan Vardi의 ‘Mathematics, the language of watchma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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