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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소설 I 멋진 신세계] 목표는 마고!

제9화

 

학교를 다닌 이래로 시험을 보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초조해본 적이 없었다. 이번만은 달랐다. 하림은 발표가 나기까지 일주일 동안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발표 예정 시각 10분 전부터 하림은 방 안에서 혼자 게시판을 새로고침하고 있었다.

 

‘입상을 못 했으면 어떡하지? 모든 게 끝장인 건가?’

 

화학선생님은 하림이 입상하지 못했을 때 벌어질 일에 대해 아무 얘기도 해준 게 없었다. 어쩌면 결과와 상관없이 계획이 진행 중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중요한 계획을 이렇게 불확실한 일에 걸었을 리가 없어.’

 

결과는 예고한 시각에서 한치도 어긋나지 않고 올라왔다.

 

‘어디 보자.’

 

3×4 = C
3×5 = F
4×4 = 10
4×7 = 1C
5×6 = ?

 

 

‘이건 또 뭐야? 이 문제를 풀어야 보여준다는 건가? 아, 진짜 또 이러기야?’

 

하림은 짜증을 내며 이를 박박 갈았다. 어차피 안 풀어도 친구에게 가서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쭉 관심 없다는 듯이 행동했으면서, 갑자기 결과를 궁금해 하면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었다.

 

‘에휴.’

 

그냥 푸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하림은 문제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그동안 경시대회를 준비하느라 단련이 됐는지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었다.

 

‘오오, 이제 이런 건 껌이잖아? 후훗, 이제 나도 범생이 되는 건가.’

 

 

잡념에 빠질 여유가 없었다. 하림은 자기 이름이 있는지 서둘러 훑어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하림은 자신의 주제를 알았다. 밑에서부터 명단을 훑고 올라오며 자기 이름이 보이기를 간절히 빌었다.

 

 

장려상 제하림

 

 

“으, 으어! 이, 있다. 있어! 우와아~.”

 

하림은 정신을 잃고 소리치며 방방 뛰었다. 상황도 상황이고 정직하게 본 시험도 아니었지만, 시험 결과를 보고 이렇게 좋아해본 건 처음이었다. 아니, 애초에 시험 결과에 관심을 가져본 것 부터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설명을 본 하림의 마음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수상자 전원은 인공지능센터를 견학할 수 있는 혜택을 받습니다. 일시는….

 

 

인공지능센터. 마고의 본체가 있는 곳이었다.

 

마고에게 문제가 생기면 신세계 호가 위험해졌다. 당연히 아무나 들어가기 어려웠다. 신원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들어가는게 거의 불가능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엄마의 편지를 다시 한번 꺼내보는 하림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빠를 줄은 몰랐다. 서서히 다가오는 태풍인 줄 알았더니 순식간에 생겨나 하늘 위로 날려버리는 회오리바람이었다.

 

바로 다음 날, 당연하다는 듯이 화학선생님이 하림을 호출했다.


“앉아라.”


하림은 쭈뼛거리며 천천히 다가와 의자에 앉았다.


“축하한다. 이런 데서 상 받아보는 건 처음이지? 장려상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본 시험도 아니었는데요, 뭐.”


“그게 중요해? 결과가 좋다면 그걸로 된 거지. 덕분에 우리 모두의 운명이 바뀔 거다.”


“모, 모르겠어요. 좋게 바뀌는 건가요? 누구에게나 좋기만 한 게 있나요?”


화학선생님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했다.


“수업시간엔 잠만 자더니 이럴 때는 용케 말대꾸를 하네. 두고 봐. 너에게도 좋은 일이 될테니.”


하림은 입을 꾹 다물었다. 화학선생님이 하림에게 조그만 유리병을 내밀었다.


“이게 뭐죠?”

 

“좋아지기 위해서는 불쾌함을 겪어야 할 때도 있지. 이 정도 불쾌함은 소소한 거야. 건강에는 아무 영향이 없으니까 염려 마. 내가 신경 써서 만들었거든. 며칠 있으면 수상자로 인공지능센터에 견학을 가지? 그때 그 안에서 이걸 함께 간 친구의 음료수나 음식에 넣어라. 한두 방울 정도면 돼. 그러면 그 아이들은 살짝 불쾌해질 거야. 그중에 싫은 녀석이 있어서 좀 더 불쾌하게 만들고 싶다면 조금 더 넣어도 되지만.”


하림은 떨리는 손으로 유리병을 받아들었다.

 

 

 

 

“그러면 네가 할 일은 다 끝나. 다 좋은 쪽으로 알아서 흘러가게 돼 있지.”


“만약 제가 그렇게 안 하면요?”


화학선생님은 은은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러면 그 나름대로 일이 흘러가겠지. 결국엔 모두 좋아질 거야. 너와 너희 엄마만 빼고.”


손에 쥔 유리병을 말없이 바라보던 하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나갔다.


마고도 가만 있을 리 없었다. 수학경시대회 수상자가 발표되자마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웬일이야? 네가 수학경시대회에서 입상하다니?”


“무슨 일이긴. 내가 그동안 밖에도 안 나가고 공부만 했잖아.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림은 으시대는 척 하며 마음에도 없는 답장을 보냈다. 마고는 축하해 주겠다며 학교 밖으로 나와 만나자고 계속 재촉했다. 마고를 만나는 게 내키지는 않았지만, 만나러 갔다.


학교를 나가는 건 오랜만이었다. 정문을 나가고 채 50미터도 걷지 않아 마고가 불렀다.


“하림아.”


“어, 어, 마고.”


“왜 그렇게 깜짝 놀라는 거야?”


“아, 학교 밖으로 오랜만에 나오다 보니까 그런가 봐….”


“어쨌든 축하해. 이제 얼마 뒤면 내가 있는 곳으로 견학을 오겠네. 정말 잘 됐다. 내 본체에 가까이 올 수 있다니 나도 기뻐.”


마고와 이야기할 때는 항상 이게 문제였다. 아무리 노력해 봐도 마고의 속마음을 짐작할 수 없었다. 컴퓨터니까 감정이야 없다 쳐도 분명히 속마음은 있을 텐데, 그걸 알 수가 없었다. 눈빛, 표정, 몸짓, 목소리, 땀, 미세한 동요…. 사람을 대할 때는 이런 실마리로 뻔한 말 뒤에 숨은 진짜 생각을 추측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하림이 장려상을 받은 걸 알고 친구들이 건넨 말이 그랬다. 그냥 들으면 축하한다는 말이었지만, 하림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거나 뭔가 수작을 부린 게 틀림없을 거라는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저녁은 안 먹었지? 작년에 네 생일에 갔던 레스토랑을 예약해 뒀어. 내 운영 예산으로 지불할 거니까 가격은 걱정하지 말고 먹어.”


“아니야. 생각해 보니까 밥은 기숙사 가서 먹는 게 좋을 것 같아.”


“왜? 내가 축하해 주는 거니까 그렇게 하도록 하자.”


“배도 별로 안 고프고….”


마고는 말없이 하림의 얼굴을 뚫어져라 스캔했다.

 

“체온이 살짝 높고 혈류량이 늘어났어. 심박수도 정상보다 약간 빠르네. 무슨 일이 있는 거지?”

 

“아니라니까!”


하림은 등을 돌려 학교를 향해 달렸다. 마고는 쫓아오지 않았다.


드디어 견학 날이었다. 하림은 혼자서 모이는 장소로 갔다. 모두 20명이 모였는데, 도착하고 보니 꼴찌였다. 먼저 와서 기다리던 아이들이 대놓고 눈총을 주었다. 하림은 전부 무시했다. 사실 눈총을 느낄 만한 정신도 아니었다.

 

인공지능센터로 들어가기 전에는 몸 수색을 받아야 했다. 검색대를 통과하고 가방 안의 내용물을 모두 꺼내 검사했다. 보안요원이 하림의 가방에서 조그만 감기약 병을 꺼내 의심스럽게 보았지만, 하림이 상기된 얼굴로 살짝 기침을 하자 의심을 풀고 도로 가방에 넣었다. 하림은 속으로 안도했다.


“자, 인공지능센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젊은 남자 한 명이 어디선가 나타나더니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말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을 안내할 조우진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모두 여기 처음 와 보죠? 아마 앞으로도 다시 오기 힘들 거예요. 나중에 커서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자랑해도 돼요. 하하.”

 

 

 

웃자고 하는 얘기 같았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남자는 머쓱한 듯 덧붙였다.


“물론 전문가가 되면 이쪽에서 일할 수도 있지요. 여러분 중에는 그럴 학생이 많아 보이네요.


하하.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일행은 조우진을 따라 어디론가 향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경비가 삼엄하다는 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잘 보기 힘든 경비로봇도 구석구석마다 서 있었다. 조우진은 일행을 커다란 유리 앞으로 끌었다.


“저게 바로 마고입니다.”


농구장 5개쯤 되는 커다란 방 안에 캐비닛처럼 생긴 본체가 수도 없이 깔려 있었다. 벽 쪽에는 모니터가 일렬로 놓여 있었고, 그 앞에는 연구원 수십 명이 앉아서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볼 건 없죠? 사실 뭐 그래요. 컴퓨터란 게 겉으로는 딱히 특별할 게 없거든요. 하지만 저 안에서는 지금도 신세계 호가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복잡한 계산이 이뤄지고 있답니다.”


단조로운 풍경이었지만, 아이들은 유리에 얼굴을 갖다붙인 채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여러분, 더 있고 싶은 건 알겠지만 옆 방으로 먼저 이동할게요. 센터장님이 기본적인 설명을 해줄 겁니다. 그리고 식사를 한 뒤에 다시 와서 저 유리 너머로 들어가볼 겁니다.”


안으로 들어가본다는 얘기에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식사는 먹는 둥 마는 둥이었다. 하림은 눈치를 보다가 식판을 들고 옆으로 걸어가는 아이의 다리를 슬쩍 걸었다. 소란이 일자 주변 아이들이 그쪽을 쳐다봤고, 하림은 재빨리 몇 명의 음식 위에 화학선생님이 준 약을 한두 방울씩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얼른 넘어진 아이에게 다가가 사과했다.


“미안해. 내가 못 봤어.”


다행히 별다른 일 없이 넘어갈 수 있었고, 하림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마고의 본체가 있는 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사진을 찍고 난리였다. 하림은 이제부터 뭐가 어떻게 되려는지 긴장이 돼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웃는 얼굴로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던 조우진이 전화를 받았고, 몇 마디도 채 듣기 전에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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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9호 수학동아 정보

  • 고호관 기자 ko@donga.com
  • 일러스트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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