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영재학교 수학 교사에게 전교에서 수학을 가장 잘하는 학생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올해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에 입학한 어재혁 학생을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영재학교에서도 인정받은 수학 실력자의 공부 비법이 필사와 수다랍니다. 자세한 방법을 지금 공개합니다.
Q. 책상에 A4 용지가 많네요.
수학을 공부할 때 개념이나 풀이를 A4 용지에 빽빽하게 적어요. 어떤 정리나 풀이법이 나오면 전체를 필사하면서 익히는 것이 도움이 되더라고요. 천천히 적으면서 이해하고, 외우는 거죠. 그렇게 필사한 A4 용지가 많아요.
Q. 수학을 왜 좋아하나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어렸을 때부터 수학을 잘했어요. 잘하니까 좋아했어요. 안 풀리는 문제가 생기면 어려워도, 하기 싫어도 정말 열심히 풀었어요. 초1 때도 2, 3일을 고민하고, 선생님께 물어봤을 정도였지요.
Q. 수학을 좋아해서 한국과학영재학교(한과영)에 들어갔나요?
맞아요. 중학교 2학년 8월에 한과영에 관심이 생겨 교육과정을 찾아보니 일반고등학교보다 다양한 수학 분야를 가르쳐주더라고요. 너무 다니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입학시험은 단 한 번뿐인데 준비하지 않으면 후회할 거 같았어요. 당시 다니던 수학 학원 선생님도 어려운 문제를 골똘히 푸는 걸 좋아하는 제게 한과영이 잘 맞을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부모님께 한과영 가고 싶다고 이야기 드렸어요.
Q. 입시 준비는 어떻게 했나요?
혼자서 준비하긴 어려워서 한과영 입시를 도와주는 학원을 직접 찾아봤어요. 친구에게 물어보고, 학원 교육과정도 일일이 알아봤지요. 이후 학원에 다니면서 하루종일 수학 문제를 풀었어요. 기계식 문제 풀이는 좋아하지 않지만, 다른 학생들보다 준비 기간이 짧아 반드시 해야만 했어요.
Q. 하루종일 수학 문제만 풀어서 힘들지 않았나요?
조금 힘들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가 가장 재밌었어요. 영재학교 입시 문제는 학교 시험 문제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사고력을 요구했어요. 예를 들면 ‘어떤 조건에서 작도가 가능할까?’와 같은 문제가 나왔어요. 제가 이런 유형의 문제를 좋아하거든요. 학원에서 문제를 배우면 신나서 친구들과 각자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공유하고, 선생님께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러느라 수업 끝나고 한 시간 뒤에나 나왔지요. 같이 얘기하면서 푸니까 너무 재밌더라고요. 어머니께서는 매일 언제 오냐며 걱정하셨지만요.
Q. 한과영에서 처음 본 수학이 있었다고요?
증명 문제를 처음 접해봤어요. ‘새로운 세계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수업도 새로웠어요. 선생님께서 저희에게 증명해서 설명해보라고 하신 적도 있고요. 교과서 문제를 풀다가 ‘이 조건을 추가해볼까?’, ‘이런 식으로 문제를 바꾸면 더 재밌겠는데?’라면서 문제를 바꾸기도 했어요. 이런 활동이 재밌었어요.
문제는 영어였어요. 교과서가 영어로 쓰여 해석을 못 해서 문제를 잘못 이해할 때가 꽤 있었지요. 특히 수학 용어가 낯설었어요. 예를 들어 ‘geometric series’가 무슨 뜻인지 찾아보니 ‘기하 급수’더라고요. 용어부터 영어로 새롭게 다 공부해야 했어요.
Q. 한과영에서는 수학 시험을 5시간이나 본다고요?
맞아요. 소문제까지 합쳐서 14문제 정도가 나오는데요. ‘서술하라’거나 ‘증명하라’는 문제가 나와서 골똘히 생각하면서 문제를 풀어야 해요. 사고의 과정을 보기 때문에 풀이 하나하나도 신경써야 하고요. 그 과정을 쓰지 않고 답이 나오면 틀린 문제로 간주해요. 그래서 시험 시간을 넉넉하게 주는 거 같아요. 앞서 말씀드렸듯 생각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푸는 수학 문제를 싫어해서 저는 이런 시험 문제가 잘 맞았어요.
시험이 끝난 후에는 친구들과 어떻게 풀었는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래도 풀지 못한 문제가 있으면 선생님께 가서 바로 물어봤어요. 사실상 7시간 동안 수학 시험을 친 거나 다름없었지요.
Q. 서울대 수리과학부에 가고 싶었던 이유가 있나요?
수학이 너무 재밌어서 평생 할 수 있겠다 싶어서요. 전 평소에 주어진 문제만 풀지 않고, 새로운 수학 개념을 찾아가면서 문제를 다양하게 파헤치며 공부해요. 예를 들어 행렬을 공부해서 더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를 접한 경우 행렬의 여러 성질을 공부한 뒤 풀었어요. 물론 공부하면 할수록 수학이 너무 어려웠어요. 하지만 그 순간을 견디면 실력이 늘 수 있으니까 참고 공부했어요.
Q. 수시 면접은 어떻게 준비했나요?
서울대 수시 면접은 45분 동안 문제를 풀고, 15분간 교수님께 풀이를 설명해야 해요. 그래서 모의 면접을 보듯이 준비했어요. 친구들과 모여서 같이 45분 동안 문제 풀고, 15분 동안 어떻게 풀었는지 설명했어요. 23학년도 수시 문제는 이전 해보다 문제 수가 조금 더 많았어요. 매해 다르니 문제 수를 바꿔가면서 준비하면 좋을 거 같아요.
Q. 공부하기 싫을 땐 어떻게 하세요?
쌓인 스트레스를 한번 확 풀고 다시 공부하는 스타일이에요. 밖에 나가서 친구들이랑 놀았어요. 코로나19 전에는 친구들과 농구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어요. 카페에서 수다 떨면서 놀기도 했고요.
Q. 뭐든 함께 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는 경쟁을 싫어해요. ‘다 같이 알면 좋은 거 아닌가?’라고 항상 생각해요. 수학 문제 풀 때 친구들과 ‘이렇게 풀면 좋다’, ‘이렇게 하면 더 빨리 풀 수 있다’라고 이야기를 나누면 그 문제의 풀이법은 거의 잊지 않더라고요. 제가 이런 걸 좋아하다 보니 초중학생 땐 모르는 수학 문제가 있으면 제게 물어보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어머니께서 제가 ‘수학 멘토’로 유명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Q. 앞으로 목표가 있나요?
아직 정확하게 무엇을 하고 싶다고 정해 놓은 건 없어요. 그렇지만 대학원은 해외로 가고 싶어요. 요즘 짬짬이 토플 공부도 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