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한 청년이 유산으로 고양이 한 마리를 받았다. 청년은 형편이 어려워서 고양이를 남의 집에 맡기려고 했다. 그러자 고양이가 갑자기 말을 하더니 “장화를 사 주면 주인님을 부자로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청년은 속는 셈 치고 고양이에게 장화를 사줬다. 그러자 고양이가 스스로 장화를 신더니 두 발로 걸어 다녔다.
마을에는 넓은 땅과 성을 가진 영주가 살았는데, 영주의 성에서 일하는 하인들이 특히 이 고양이를 예뻐했다. 가끔은 고양이가 시킨 대로만 말하고 행동하기도 했는데, 영리한 고양이는 이를 이용해 남들이 이 성과 땅의 주인을 청년으로 착각하도록 만들었다. 덕분에 우연히 영주의 성에 들른 국왕도 속아 고양이의 주인인 청년을 영주로 착각했다. 그리고 청년을 자신의 딸과 결혼시키려고 했다.
마침내 고양이는 성의 진짜 주인인 영주를 쥐로 변신시켜 잡아먹을 계획을 세웠다. 영주는 고양이의 계획을 미리 알아채고, 고양이를 방사성 원소가 든 상자에 잡아 가뒀다. 청년은 신분 차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영주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방사성 원소가 붕괴하면, 내 고양이는 죽습니다. 방사성 원소가 붕괴할 확률은 1/2입니다. 한 세계 해석에 따르면 고양이는 1/2의 확률로 죽거나 살 수 있습니다. 어떻게 죽을 확률이 1/2이나 되는 상자에 내 고양이를 넣을 수 있습니까? 너무하는군요!”
그러자 영주가 말했다. “‘많은 세계 해석’에 따르면, 상자를 여는 순간 우주는 두 세계로 갈라진다네. 지금 이 세계에서 상자를 열면 죽은 고양이를 발견하더라도, 다른 세계에서 상자를 열면 방사성 원소는 안정 상태에 있고 고양이도 여전히 살아 있는 거야. 그 세계에 있는 또 다른 자네는 살아있는 고양이와 만날 테니 너무 슬퍼할 것 없어.”
상자를 열기 전까지 청년의 해석과 영주의 해석 중 어느 것이 더 그럴듯한지 알 수 없다. 두 가지 해석이 각각 참일 확률은 같다는 뜻이다. 이때 상자를 열고 죽은 고양이를 보거나 산 고양이를 본다면 영주의 해석이 참일 확률이 전보다 더 높아 진다고 할 수 있을까?
방사성 원소가 붕괴할 확률이 1/2이므로 고양이가 살 확률도 1/2, 죽을 확률도 1/2이지. 이 상황을 슈뢰딩거를 포함한 많은 과학자가 ‘고양이가 살아있는 상태와 죽은 상태가 중첩돼 있다’고 표현했다네. 두 상태가 겹쳐 있다는 뜻이야. 물결이나 소리가 섞여 또 다른 물결이나 화음을 만들고 퍼져나가는 현상도 ‘중첩’이지.
그러나 방사성 원소의 안정과 붕괴의 중첩이나 고양이의 삶과 죽음의 중첩은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실제로 측정하거나 경험할 수는 없어. 물리학 이론과 실제 경험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일을 ‘해석’이라고 해. 내가 지지하는 ‘많은 세계 해석’은 우리가 고양이의 생과 사가 중첩된 상태를 보지 못하는 이유를 알려준다네. 우리가 상자를 여는 순간 한 우주가 두 가지 세계로 갈라지기 때문이야.
한 세계에서 상자를 열면 죽은 고양이를 보지만, 다른 세계에서 상자를 열면 산 고양이를 보게 돼. 고양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수만 가지라도, 상자를 여는 순간 수만 가지 세계가 생기고 그 곳에서 각각의 상황이 하나씩 이뤄지는 거야. 다만 한 세계에 속한 사람은 다른 세계의 사건을 보거나 들을 수 없어.
그렇다면 어떤 일이든 그 일이 일어날 확률은 무조건 100% 아니냐고? 당신 말이 맞네. 그렇지만 많은 세계 해석을 지지하더라도 ‘고양이가 살아있을 확률은 1/2’이라고 말할 수 있지. 세계가 새롭게 갈라져 나올 때 당신도 새롭게 갈라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죽은 고양이가 있는 세계도 있고 산 고양이가 있는 세계도 있지만, 당신이 속한 세계가 어떤 세계 인지는 확률로만 예측할 수 있다네.
마을에는 넓은 땅과 성을 가진 영주가 살았는데, 영주의 성에서 일하는 하인들이 특히 이 고양이를 예뻐했다. 가끔은 고양이가 시킨 대로만 말하고 행동하기도 했는데, 영리한 고양이는 이를 이용해 남들이 이 성과 땅의 주인을 청년으로 착각하도록 만들었다. 덕분에 우연히 영주의 성에 들른 국왕도 속아 고양이의 주인인 청년을 영주로 착각했다. 그리고 청년을 자신의 딸과 결혼시키려고 했다.
마침내 고양이는 성의 진짜 주인인 영주를 쥐로 변신시켜 잡아먹을 계획을 세웠다. 영주는 고양이의 계획을 미리 알아채고, 고양이를 방사성 원소가 든 상자에 잡아 가뒀다. 청년은 신분 차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영주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방사성 원소가 붕괴하면, 내 고양이는 죽습니다. 방사성 원소가 붕괴할 확률은 1/2입니다. 한 세계 해석에 따르면 고양이는 1/2의 확률로 죽거나 살 수 있습니다. 어떻게 죽을 확률이 1/2이나 되는 상자에 내 고양이를 넣을 수 있습니까? 너무하는군요!”
그러자 영주가 말했다. “‘많은 세계 해석’에 따르면, 상자를 여는 순간 우주는 두 세계로 갈라진다네. 지금 이 세계에서 상자를 열면 죽은 고양이를 발견하더라도, 다른 세계에서 상자를 열면 방사성 원소는 안정 상태에 있고 고양이도 여전히 살아 있는 거야. 그 세계에 있는 또 다른 자네는 살아있는 고양이와 만날 테니 너무 슬퍼할 것 없어.”
상자를 열기 전까지 청년의 해석과 영주의 해석 중 어느 것이 더 그럴듯한지 알 수 없다. 두 가지 해석이 각각 참일 확률은 같다는 뜻이다. 이때 상자를 열고 죽은 고양이를 보거나 산 고양이를 본다면 영주의 해석이 참일 확률이 전보다 더 높아 진다고 할 수 있을까?
방사성 원소가 붕괴할 확률이 1/2이므로 고양이가 살 확률도 1/2, 죽을 확률도 1/2이지. 이 상황을 슈뢰딩거를 포함한 많은 과학자가 ‘고양이가 살아있는 상태와 죽은 상태가 중첩돼 있다’고 표현했다네. 두 상태가 겹쳐 있다는 뜻이야. 물결이나 소리가 섞여 또 다른 물결이나 화음을 만들고 퍼져나가는 현상도 ‘중첩’이지.
그러나 방사성 원소의 안정과 붕괴의 중첩이나 고양이의 삶과 죽음의 중첩은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실제로 측정하거나 경험할 수는 없어. 물리학 이론과 실제 경험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일을 ‘해석’이라고 해. 내가 지지하는 ‘많은 세계 해석’은 우리가 고양이의 생과 사가 중첩된 상태를 보지 못하는 이유를 알려준다네. 우리가 상자를 여는 순간 한 우주가 두 가지 세계로 갈라지기 때문이야.
한 세계에서 상자를 열면 죽은 고양이를 보지만, 다른 세계에서 상자를 열면 산 고양이를 보게 돼. 고양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수만 가지라도, 상자를 여는 순간 수만 가지 세계가 생기고 그 곳에서 각각의 상황이 하나씩 이뤄지는 거야. 다만 한 세계에 속한 사람은 다른 세계의 사건을 보거나 들을 수 없어.
그렇다면 어떤 일이든 그 일이 일어날 확률은 무조건 100% 아니냐고? 당신 말이 맞네. 그렇지만 많은 세계 해석을 지지하더라도 ‘고양이가 살아있을 확률은 1/2’이라고 말할 수 있지. 세계가 새롭게 갈라져 나올 때 당신도 새롭게 갈라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죽은 고양이가 있는 세계도 있고 산 고양이가 있는 세계도 있지만, 당신이 속한 세계가 어떤 세계 인지는 확률로만 예측할 수 있다네.
내게 일어날 법한 ‘많은 세계’
미국의 물리학자 휴 에버렛 3세는 많은 세계 해석을 최초로 제안했지. 브라이스 디윗은 에버렛의 해
석을 널리 알렸지만 아무런 의문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어. ‘내가 여러 세계로 분리돼 나가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지. 그러자 에버렛은 “초속 30km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느낌이 드나요?”라고 되물었어. 비록 느끼지 못하더라도 많은 세계 해석이 참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지.
지금까지 많은 세계 해석이 얼마나 괜찮은 이론인지를 이야기했네. 본론으로 돌아가서, 죽은 고양이를 본 상황이 많은 세계 해석을 더 그럴듯하게 만드는지 생각해 보자고. 자, 상자를 열었을 때 우리가 볼 수 있는 고양이의 상태가 1만 가지이고, 우리는 그 중에서 죽은 고양이를 봤다고 가정해 보겠나?
만약 우주에 세계가 하나뿐이라면 1만 번 중 1번만 일어나는 사건이 눈앞에 펼쳐진 거야. 확률은 1만 분의 1로 무척 낮아. 그러나 상자를 여는 순간 1만 가지 세계가 생겨나고, 서로 상태가 다른 1만 가지 고양이가 각각의 세계에 한 마리 씩 있다고 볼 수도 있어. n번째 세계에 있는 우리는 스스로 1만 분의 1의 확률로 죽은 고양이를 본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어떤 상태의 고양이든 1만 가지 세계 어딘가에서 100% 실현돼.
어느 쪽이 더 ‘일어날 법하다’고 생각되나? 가능한 모든 결말이 일어났는데 내가 사는 세계에서는 고양이가 죽었을 뿐이라고 보는 게 더 그럴듯하지 않나? 1만 번 중 9999번은 고양이가 죽지 않고, 딱 한 번만 죽는 희귀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믿는 것보다 말이야.
많은 세계라고요? 천만에요. 이 우주에는 세계가 딱 하나 있을 뿐입니다. 영주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고양이가 산 상태와 죽은 상태가 중첩된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습니다. 저는 많은 세계 해석 대신 우리에게 더 익숙한 ‘한 세계 해석’으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싶습니다. ‘코펜하겐 해석’은 가장 유명한 한 세계 해석입니다. 1920년대에 양자역학의 기틀이 완성될 무렵 코펜하겐에서 활동한 닐스 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같은 물리학자가 활발하게 논의한 해석이라 그렇게 부릅니다.
한 세계 해석은 한 세계 안에서 가능한 여러 가지 사건 가운데 하나가 벌어진다는 가정 아래 현상을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동전 던지기에 관한 확률을 구할 때 동전을 던지면 앞면 또는 뒷면 중 하나가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표적이지요. 경우의 수나 확률을 구할 때 익숙한 사고방식입니다. 그렇지만 많은 세계 해석에서는 상자 안에서 고양이가 죽을 확률도 1이고, 살 확률도 1입니다. 무척 낯설지요?
많은 세계 해석에 따라 새로운 실험 결과를 해석해 보겠습니다. 재료는 주사위입니다. 던지면 10초 뒤에 0부터 999999까지 숫자 가운데 하나가 한 면에 나타나는 전자 주사위를 생각해 봅시다. 주사위 면에 내 생일인 980728이 나올 확률은 100만 분의 1입니다.
많은 세계 해석에 따르면 10초 뒤에 전자 주사위에서 980728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는 ‘나’는 100만 가지 세계에 있는 100만 명의 ‘나’ 가운데 한 명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모두 자신의 생일이 아닌 다른 숫자를 보고 실망할 겁니다.
그런데 이 결과를 익숙한 한 세계 해석으로 풀 수도 있습니다. 단 하나의 세계에서 100만 가지 사건 중 한 가지 사건만 일어나도 여전히 주사위 면에 내 생일인 980728이 나올 확률은 100만 분의 1입니다. ‘나’가 주사위 면에서 내 생일에 해당하는 숫자를 볼 확률도 같습니다. 굳이 새로운 세계를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도 한 세계 해석보다 많은 세계 해석이 더 그럴듯하다고 생각할 까닭이 있을까요?
미국의 물리학자 휴 에버렛 3세는 많은 세계 해석을 최초로 제안했지. 브라이스 디윗은 에버렛의 해
석을 널리 알렸지만 아무런 의문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어. ‘내가 여러 세계로 분리돼 나가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지. 그러자 에버렛은 “초속 30km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느낌이 드나요?”라고 되물었어. 비록 느끼지 못하더라도 많은 세계 해석이 참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지.
지금까지 많은 세계 해석이 얼마나 괜찮은 이론인지를 이야기했네. 본론으로 돌아가서, 죽은 고양이를 본 상황이 많은 세계 해석을 더 그럴듯하게 만드는지 생각해 보자고. 자, 상자를 열었을 때 우리가 볼 수 있는 고양이의 상태가 1만 가지이고, 우리는 그 중에서 죽은 고양이를 봤다고 가정해 보겠나?
만약 우주에 세계가 하나뿐이라면 1만 번 중 1번만 일어나는 사건이 눈앞에 펼쳐진 거야. 확률은 1만 분의 1로 무척 낮아. 그러나 상자를 여는 순간 1만 가지 세계가 생겨나고, 서로 상태가 다른 1만 가지 고양이가 각각의 세계에 한 마리 씩 있다고 볼 수도 있어. n번째 세계에 있는 우리는 스스로 1만 분의 1의 확률로 죽은 고양이를 본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어떤 상태의 고양이든 1만 가지 세계 어딘가에서 100% 실현돼.
어느 쪽이 더 ‘일어날 법하다’고 생각되나? 가능한 모든 결말이 일어났는데 내가 사는 세계에서는 고양이가 죽었을 뿐이라고 보는 게 더 그럴듯하지 않나? 1만 번 중 9999번은 고양이가 죽지 않고, 딱 한 번만 죽는 희귀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믿는 것보다 말이야.
많은 세계라고요? 천만에요. 이 우주에는 세계가 딱 하나 있을 뿐입니다. 영주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고양이가 산 상태와 죽은 상태가 중첩된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습니다. 저는 많은 세계 해석 대신 우리에게 더 익숙한 ‘한 세계 해석’으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싶습니다. ‘코펜하겐 해석’은 가장 유명한 한 세계 해석입니다. 1920년대에 양자역학의 기틀이 완성될 무렵 코펜하겐에서 활동한 닐스 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같은 물리학자가 활발하게 논의한 해석이라 그렇게 부릅니다.
한 세계 해석은 한 세계 안에서 가능한 여러 가지 사건 가운데 하나가 벌어진다는 가정 아래 현상을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동전 던지기에 관한 확률을 구할 때 동전을 던지면 앞면 또는 뒷면 중 하나가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표적이지요. 경우의 수나 확률을 구할 때 익숙한 사고방식입니다. 그렇지만 많은 세계 해석에서는 상자 안에서 고양이가 죽을 확률도 1이고, 살 확률도 1입니다. 무척 낯설지요?
많은 세계 해석에 따라 새로운 실험 결과를 해석해 보겠습니다. 재료는 주사위입니다. 던지면 10초 뒤에 0부터 999999까지 숫자 가운데 하나가 한 면에 나타나는 전자 주사위를 생각해 봅시다. 주사위 면에 내 생일인 980728이 나올 확률은 100만 분의 1입니다.
많은 세계 해석에 따르면 10초 뒤에 전자 주사위에서 980728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는 ‘나’는 100만 가지 세계에 있는 100만 명의 ‘나’ 가운데 한 명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모두 자신의 생일이 아닌 다른 숫자를 보고 실망할 겁니다.
그런데 이 결과를 익숙한 한 세계 해석으로 풀 수도 있습니다. 단 하나의 세계에서 100만 가지 사건 중 한 가지 사건만 일어나도 여전히 주사위 면에 내 생일인 980728이 나올 확률은 100만 분의 1입니다. ‘나’가 주사위 면에서 내 생일에 해당하는 숫자를 볼 확률도 같습니다. 굳이 새로운 세계를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도 한 세계 해석보다 많은 세계 해석이 더 그럴듯하다고 생각할 까닭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