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산젊은수학자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교수님은 어떻게 수학자가 되셨나요?
수학동아 독자 여러분, 반가워요! 저는 병역 의무로 모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재미가 없었어요. 자기만족을 조금 더 중요하게 여겨서 전역한 뒤에 수학을 열심히 공부해 보자고 다짐했어요. 수학이 재미있냐고요? 사실 괴로운 날이 대부분인데요. 365일 가운데 5일 정도는 기쁘고, 그 가운데 하루는 아주 기뻐요. 그런데 이것도 아주 성공적인 해랍니다. 불행한 해도 많아요(웃음).
교수님은 어떤 연구를 하시나요?
독자 여러분에게 설명하기가 참 어려운데요, 이렇게 설명을 하곤 해요. 과학에서 현미경이 발명된 덕분에 생명체를 이루는 세포와 그 구조에 대해 알게 됐잖아요? 제가 하는 일도 비슷해요. 수학적인 대상 중에 집합에 해당하는 요소에 관한 연구를 해요. 예전에는 요소 각각이 뭔지 몰랐지만 카테고리화 이론이라는 것을 쓰면 요소를 조금 더 자세히 볼 수 있어요. 순수수학이라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직업이 수학자라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장점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집중해서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오히려 최고의 취미라고 할 수 있어요. 지적 유희를 다루니까요. 취미활동을 하듯이 일을 하는 거예요. 그 취미가 고약해서 그렇지…. 그래서 수학자는 억지로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닌 것 같아요.
단점은 다른 일을 잘 못한다는 거예요. 잘 때도, 아침에 일어나서도, 아이를 돌볼 때도 문제를 고민하지요.
머리를 식히려 할 때는 뭘 하세요?
저는 어떤 운동이든 다 좋아해요. 옛날에는 축구를 열심히 했어요. 경기를 보는 것도 좋아하고요. 문제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풀지 못할 때가 많은데, 문제에서 떨어져 있으려고 운동을 하다가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종종 ‘공부만 해서는 공부를 잘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해요.
만약 수학자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갖는다면 뭘 하시겠어요?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해요. 예전에 잠깐 혼자 산 적이 있었는데 요리가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직업으로는 남들이 하지 않는 특이한 일을 하고 싶어요. 언젠가 기계가 대체할 일 말고요. 저는 경험상 수학을 잘하면 모든 일을 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이 돌아가는 과정을 논리적으로 잘 이해하거든요.
정말인가요?
프로그래밍의 ‘프’도 모르고 프로그래머로 일을 했었는데 금방 배웠고, 또 잘했어요. 디버깅에 시간을 많이 들이는 사람들과 달리, 프로그램을 잘 디자인하는 데 시간의 80%를 쓰고, 나머지는 코딩하고 디버깅하는 데 썼거든요. 깊게 생각하고 그 다음에 일을 하는 게 중요하죠.
우리나라에 구글 같은 회사가 못 나오는 이유도 그런 데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에서는(깊이 생각하기보다는) 응용만 배우기를 권하거든요. 뭔가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서 생뚱맞은 순수수학에 관심을 갖는 일은 하지 않죠. 어쨌든 제 경험상 수학을 잘하면 다른 일을 뭐든지 잘할 수 있어요.
수학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손이 부지런해야 해요. 많이 계산해보고, 많은 예제를 풀어보고, 많이 기록해보고요. 머리가 좋은 사람이 좋은 수학과 학생은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좋은 수학자가 될 것 같지는 않아요. 모든 유명한 수학자는 머리가 좋으면서도 정말 근면 성실해요.
수학을 잘하려면 체력도 중요하다고요?
만약 누가 저한테 ‘외국 학생들이 수학을 왜 잘하는 것 같은지’ 물어보면, 고등학교 때까지 체력을 쌓아놓은 애들이 대학교에서 수학에 재미를 느낀 뒤로 누구보다 열심히 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거예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은 운동량이 적고, 대학교에 가서 수학에 재미를 느끼고 잘하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수학자에 대한 고정관념 중 ‘이것만은 아니다’ 하는게 있다면요?
‘수학만 알 것 같다’는 편견은 잊어주세요! 수학자라고 수학만 파지 않고 두루두루 잘 알아요. 저만해도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요. 문학에 박학다식한 수학자도 계시고요. 한 분야에 꽂히면 열심히 하기 때문에 수학 외에도 잘 아는 분야가 한두 개 씩은 있는 것 같아요.
수상을 축하드려요! 교수님은 어떤 연구를 하세요?
수학동아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모델링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한데 모여서 깜박거리는 반딧불 여러 마리를 생각해 보세요. 반딧불은 처음에는 자기 마음대로 깜박거리다가도 마음에 드는 암컷을 보면 암컷이 깜박거리는 모습을 흉내 내면서 유혹하려고 해요.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반딧불이 모두 똑같이 깜박거려서 주위가 확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하지요. 생물학자 또는 물리학자가 주기적인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모델을 제안하면, 저 같은 수학자는 그 모델의 방정식에 해가 존재하는지 증명해요. 방정식을 만족시키는 해가 없으면 다른 모델을 찾아야 하거든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요?
‘스티븐 스트로가츠’라는 수학자는 이웃과 너무 가까이 있는 개체는 서로 밀어내려고 하고, 너무 멀리 있는 개체는 동떨어지기 싫어서 이웃과 가까워지려고 하며, 그 사이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개체는 이웃과 속도를 맞추고 의견을 나누면서 상호작용하려고 한다는 간단한 이론을 소개했어요. 이 이론을 토대로 하면 새들이 군집을 이뤄 날아가는 현상, 물고기가 떼를 지어 헤엄치는 현상도 설명할 수 있지요. 이렇게 간단한 가정만으로 흥미로운 현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많이 가졌어요.
수학은 무척 어려운데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글쎄요. 제가 수학을 엄청나게 잘했던 건 아니지만 계속 관심이 많았어요. 사실 저는 글을 잘 못쓰거든요. 그런데 수학은 수식으로 논리적으로 결론을 내잖아요? 빈틈없는 논리로 결론을 내리는 면이 마음에 들었어요.
수학자가 되기까지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다면서요?
대학생 때도 저보다 수학을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지금은 칠레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하는 친구도 그중 한 명이었는데요, 제가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그 친구에게 가서 물어보곤 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휴학을 하고 나니까 물어볼 사람이 없지 뭐예요. 그래서 그 뒤로는 문제를 풀 때마다 전보다 깊이있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덕분에 많이 발전하게 됐답니다. 그 친구와는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직업이 수학자라서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요?
일단 단점은 모든 연구자가 그렇겠지만, 쉬기가 어려워요. 문제가 안 풀리면 몸은 쉬고 있어도 머리로는 계속 생각을 하게 되니까요. 장점은 여러 사람들과 일하면서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 영국에서 함께 연구한 동료들의 국적은 폴란드, 체코,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중국이었어요. 노트북과 펜이 있으면 어디서든 연구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아요.
좋은 아이디어는 언제 잘 떠오르나요?
사람들과 같이 이야기할때 좋은 아이디어가 잘 떠올라요. 동료와 커피를 마시면서, 혹은 칠판을 보면서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이야기하면서요. 그러다 생각이 나면 빨리 써야죠. 가장 안좋은 건 잠들기 직전에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러면 잠을 못 자거든요.
가장 닮고 싶은 수학자는 누구인가요?
여러 수학자의 장점을 다 모아서…(웃음). 박사과정 지도교수이신 하승열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교수님과 박사후연구원 당시 멘토였던 호세 카리요 영국 UCL 수학과 교수님을 닮고 싶어요. 특히 하승열 교수님의 열정과 연구를 잘 설명하는 능력, 호세 카리요 교수님의 사교성을요.
어떻게 하면 수학을 잘할 수 있을까요?
수학을 잘한다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문제 하나를 끈기있게 해결해 나가는 사람이 수학을 잘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수학 성적이 낮아서 수학을 잘 못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대신 좀 더 깊게, 오래 생각하면 수학을 잘하게 될 거예요. 저는 1년을 걸려 한 문제를 풀기도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