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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소설 I 멋진 신세계] 무중력 소풍

제6화

하림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학교 안에서는 화학선생님이 하림을 주시하고 있었다. 인희도 있었다. 그 둘 말고도 감시자가 더 있을지도 몰랐다.

학교 밖으로 나가면 마고가 따라붙을 것이다. 하림은 멀쩡한 정신으로 마고를 바라볼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마고가 너희 아빠를 죽인 거야.’

사실일까? 만약 그렇다면 아빠의 원수와 지금까지 그렇게 가깝게 지냈다는 말이 된다.


하림이 단말기를 켜자 마고의 메시지가 수북이 쌓여 있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있었다. 하림은 잠시 고민하다가 적당한 거짓말을 지어 냈다.

“그날 선생님과 마주쳤을 때 갑자기 기운이 빠지더니 기절했어. 너무 피곤하고 긴장했었나봐. 선생님이 내 방으로 데려다 줘서 지금까지 죽은 듯이 잤어. 이제는 괜찮아. 아, 그리고 엄마가 보낸 메시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일단 학교가 가장 안전하니까 당분간 밖으로 안 나가려고.”

정말로 하림은 며칠 동안 학교와 기숙사만 오가며 지냈다. 머릿속으로는 엄마가 수수께끼를 통해 알려준 메시지만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답은 이미 알아낸 뒤였다.

이제 남은 과제는 어떻게 기차역에 가느냐였다!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기차역이라면 중앙역이었다. 가능한 빨리 가서 33과 0124가 무엇을 말하는지 찾아봐야 했다.

그런데 수도 없이 땡땡이를 쳐 본 경험에서 하림은 마고를 떼어놓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 100미터도 떨어지기 전에 마고는 어디선가 나타났다. 여태까지는 별 생각 없이 지냈는데, 비밀결사대의 말을 듣고 보니 곳곳에 있는 CCTV를 모두 감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학교 안에는 CCTV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하림은 마고가 던지는 질문을 적당히 받아넘기면서 몰래 기차역에 갈 방법을 궁리했다.

기회는 곧 찾아왔다.

“자, 올해 소풍 날짜가 정해졌다. 이번 주 금요일이야. 장소와 준비물은 각자 단말기로 보냈으니 참고하도록.”

수업이 다 끝난 뒤 담임선생님이 공지하자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하림도 황급히 단말기를 꺼내 공지사항을 찾아 터치했다.

그 순간 교실 여기저기서 삐리릭~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단말기 화면에는 공지 내용이 아니라 문제 하나가 떠올랐다.
“도대체 한 번이라도 그냥 알려주는 법이 없어!”

하림은 화가 나서 외쳤다. 주위를 둘러보자 아이들은 어렵지 않게 답을 입력하고 있었다.

“아! 여기로 가는구나! 재미있겠는데?”

“여기 가보고 싶었는데!”

답답한 하림은 전처럼 또 고율이를 붙잡고 물었다.

“이거 답이 뭐냐?”

“나 참, 넌 맨날 답만 물어보냐? 이거 흔한 ‘단어 사다리’ 문제잖아. 한 번에 알파벳 하나씩만 바꾸면서 단어를 만들어 가는 거. 그냥 보면 답 나오는구만.”


고율이는 그렇게 말하고 휙 사라져 버렸다.

‘한 번에 알파벳 하나씩만 바꾸면서 단어를 만들어 가는 거?’

하림은 다시 문제를 들여다보았다. CAT에서 알파벳 하나만 바꿔서 다른 단어를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 단어에서 알파벳 하나만 바꿔서 BAG를 만들어야 했다.

‘흠, 이건 좀 해볼만 한 것 같은데….’

하림은 잠시 고민하다가 무릎을 탁 치며 정답을 입력했다.
 
소풍은 학교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학교 행사기 때문에 마고가 따라다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안 따라오지는 않겠지만, 정신 없는 틈을 타 빠져나가기가 훨씬 수월할 것 같았다.

하림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소풍 날은 금세 다가왔다. 하림은 새벽 같이 일어나 부지런하게 가방을 싸고, 세워 둔 계획을 점검했다. 소풍 장소로 가는 내내 하림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마고가 있는지 찾았다. 예상대로 먼 발치에서 날아오고 있는 마고의 모습이 슬쩍슬쩍 보였다. 그래도 예상대로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하림은 가능한 평소처럼 행동했다.

오전에는 무중력 연구단지 견학 일정이 있었다. 신세계 호는 도너츠 모양의 거주 지역이 가운데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구조였다. 따라서 거주 지역에는 원심력이 생겨 중력 역할을 했지만, 중심축은 중력이 거의 없었다. 중심축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움직이자 점점 몸무게가 가벼워지더니 마침내 몸이 허공에 둥둥 떠올랐다.

“자, 벽에 난 손잡이를 붙잡고 따라오도록. 너희들은 무중력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자석부츠를 신을 거야 .”

담임선생님을 따라 연구단지 입구에서 줄을 서서 들어가면서 돌아보니 마고가 따라 들어오지 않고 뒤에 머무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에서는 무중력 공간에서만 할 수 있는 과학 연구가 이뤄지고 있었다. 중력이 없는 곳에서만 만들 수 있는 물질을 생산하기도 하고, 무중력 상태가 사람과 동식물에 끼치는 영향도 조사했다. 각 연구실에서 과학자가 나와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해 주었지만 하림의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하림의 신경은 오후에 갈 스페이스파크에 쏠려 있었다. 일반 이용객과 복잡하게 뒤섞이는 그곳에서 기회를 찾아야 했다.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은 뒤, 마침내 스페이스파크에 갈 수 있었다. 마고는 이번에도 멀찍이서 따라오다가 스페이스파크 입구에서 멈췄다. 아이들은 지루한 견학이 끝나고 놀이공원에 도착하자 흥분하기 시작했다.


무중력 활공은 신세계 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였다. 날개가 달린 옷을 입고 두 팔로 펄럭이면 새처럼 허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었다. 처음에는 어지럽고 마음대로 날 수도 없지만, 익숙해지기만 하면 이보다 더 짜릿한 게 없었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날개옷을 입고 하늘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던 하림도 일단은 모든 걸 잊고 신나게 놀았다. 조금 익숙해지자 날개를 움직여서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한쪽 편 저 멀리 거주 공간이 보였다. 커다란 건물도 인공호수도 모두 조그만 모형 같았다. 물 위에 배를 띄워 놓고 노는 사람들도 보였다.

‘나도 저렇게 우리 가족과 함께 즐겁게 지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자 엄마 생각이 나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림이 공중에서 엉거주춤하자 다른 아이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부딪쳤다.

“야! 뭐하는 거야? 큰일날 뻔 했잖아!”

하림은 얼른 미안하다고 한 뒤 날개옷을 벗으러 돌아갔다.

우울한 기분으로 다른 아이들이 다 놀고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마냥 우울해 할 수만은 없었다.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했다.

스페이스파크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하림은 슬쩍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뒤에 대변기가 있는 칸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가방 안에는 학교 연극부실에서 몰래 가져온 변장 도구가 있었다. 하림은 가능한 어색하지 않으면서 달라 보이도록 눈썹을 그리고 얼굴빛을 바꾸고 안경을 썼다. 옷도 미리 준비해 온 다른 색 옷으로 갈아입은 뒤 화장실을 나섰다.

아무도 하림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림은 얼른 사람들 속으로 끼어들었다.

밖으로 나가려면 넓은 대기실에서 기다렸다가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다. 하림은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고를 볼 수 있었다. 다행히 마고는 하림을 알아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이따금 불쏙 솟아올라서 한 바퀴 빙글 돌아보는 모습이 계속해서 하림을 찾아 헤매는 것 같았다.

“휴. 다행이다.”

하림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아이들과 일반 손님들이 줄지어 탔다. 마고는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들어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엘리베이터는 몇 대 더 있었다. 하림은 마고가 없는 쪽의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었다. 마고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속도가 빨라졌다. 하림은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수를 헤아려 보았다. 학교 친구들은 거의 다 내려간 뒤였다. 다음 번에는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재빨리 기차역으로 달려가 엄마의 메시지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마고에게는 ‘아니, 어쩌다 나를 못 봤냐’고 능청을 떨면 그만이었다.

그때였다.

위잉~ 위잉~

갑자기 시끄러운 경보 소리가 울려 퍼지며 빨간색 등이 점멸했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 웅성대자 곧바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수상한 자가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안전을 위해 개개인의 신분을 확인하고자 하오니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늦게 내려가게 된 사람들이 투덜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신세계 호에서는 언제나 안전이 우선이었다.

어디선가 보안요원 몇 명이 튀어나오더니 엘리베이터 앞에 자리를 잡고 신분증을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마고는 이제 높은 곳에 자리잡은 채 가만히 떠 있었다.

하림은 마고의 눈길을 피해 슬그머니 다시 화장실로 돌아갔다. 서둘러 화장을 지우고 안경과 모자를 벗었다. 눈에 띄지 않게 다시 섞이려면 아직 사람들이 많을 때 나가야 했다.

세면대에 서서 거울을 보며 얼굴을 확인하던 하림은 마고의 행동을 생각하자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경보를 내리고 신분증 검사를 시킨 건 분명히 마고였다. 하림은 신고 따위는 없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순전히 하림을 찾기 위해서 한 행동이었다.

‘나를 놓칠까 봐 경보까지 내리다니. 이건 보호하는 수준이 아니야. 마고는 분명 날 의심하고 있어.’

화장실을 나간 하림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사람들 사이에 섞였다. 곧 마고가 하림을 보았다. 얼마 뒤 경보가 풀렸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며 보안요원이 철수했다.

하림은 엘리베이터로 향하며 생각했다.

‘역시 나 때문이었어. 도대체 어떡해야 마고를 떼어 놓을 수 있지?’
 
-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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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6호 수학동아 정보

  • 고호관 기자
  • 일러스트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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