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KAIST에서 그래프이론을 연구하고 있는 최일규입니다. 저는 그래프이론 중에서도 ‘컬러링’에 관심이 있어요. 그래프의 꼭짓점과 변을 규칙에 맞게 분할하는 것이죠.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문제가 4색 정리예요. 서로 연결된 꼭짓점은 같은 색으로 칠하지 않으려면 최소 몇 가지 색이 필요한지 묻는 문제로, 4색이면 어떤 평면그래프도 칠할 수 있다는 것이 1976년에 밝혀졌어요.
이후 수학자는 평면그래프의 모양에 따라 최소 색이 몇 개인지 찾는 연구를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평면그래프에서 사각형과 오각형이 없으면 최소 몇 가지 색으로 칠할 수 있는지 밝히는 거지요.
이런 연구가 어떤 의미가 있냐고요? 예를 들어볼게요. 같이 일하기 싫은 사람이 있어요. 그런 둘이 함께 일을 하지 않도록 조를 짜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싫은 사람과도 일을 하게 될 거예요. 비유하자면 저는 이런 일이 최소로 일어나도록 조를 짜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거지요.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일 수 있는 게 ‘수학’
수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요? 학창시절 저는 ‘틀린’ 사람이었어요. 부모님의 일 때문에 2살도 되기 전에 미국으로 갔다가 10살 때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한국어를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존댓말과 어려운 단어를 제대로 쓰지 못했어요. 또 미국과 한국이 문화가 다른 탓에 어려움을 겪었죠.
질문하라고 해서 손들고 질문하면 질문이 너무 많다고 혼나고, 한글을 특이하게 쓴다고 혼나고, 영어를 교과서에 나온 대로 쓰지 않는다고 혼나고. 학교생활은 혼나는 일의 연속이었어요. 이런 상처가 꾸준히 쌓여서 은연중에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어요. 그 방법이 수학이었죠.
◀ 최일규 박사는 축구광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축구를 즐기는 사람이 없어 원반을 주고받으며 득점하는 얼티밋 프리스비에 빠져들었다. 여전히 축구도 좋아한다.
그때 수학 선생님은 자기가 알려준 대로 문제를 풀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게 싫어서 일부러 다르게 풀었어요. 어차피 시험에서는 답만 맞으면 정답으로 인정하니까 기를쓰고 다른 풀이를 찾았죠. 어쩌면 그래서 수학이 늘었을지도 몰라요.
수학 잘하는 비법은 수많은 실패
수학을 잘하는 방법이요? 어떻게든 혼자 힘으로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실력이 늘어 있을 거예요. 특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죠. 틀렸다고, 풀지 못했다고 포기하는 게 가장 어리석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배우는 수학은 수백 년에 걸쳐 완성됐는데 몇 시간만 공부해서 다 아는 게 이상한 거 아니겠어요?
사실 수학자의 삶은 실패의 연속이에요. 1년에 수학자가 논문을 몇 편이나 쓰겠어요. 많아야 1~2편이거든요. 결국 1년에 한두 번만 성공을 했다는 뜻이에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수학을 잘 할 수 있어요.
또 문제를 맞혔는지 틀렸는지 결과만 따지는데, 사실은 맞은 문제도 왜 맞았는지 아는 게 중요해요. 완벽하게 알아서 푼 문제도 있지만 어떤 경우 감으로 찍어서 맞히기도 하거든요. 개념을 확실히 모르면 같은 유형의 문제라도 틀릴 수가 있기 때문에 개념을 제대로 알고 풀었는지 따져봐야 하지요.
후회하는 일 없도록 하고 싶은 걸 하세요!
수학을 전공한다고 하면 어떤 사람은 제가 천재인 줄 알아요. 그런데 전혀 아니거든요. 남들보다 수학에 관해서 노력을 더 했을 뿐이에요. 모든 걸 잘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한쪽에 투자한 만큼 다른 걸 포기해야 하지요.
제가 고등학생일 때 방학마다 KAIST에서 수학 캠프를 열었어요. 저는 내신 점수가 깎이는 걸 감수하고 그 캠프에 참여했어요. 외국어고등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수학 캠프를 가는 학생도 없었고, 선생님도 추천하지 않았거든요. 보충수업에 빠져야 하니까 오히려 감점을 받았죠. 하지만 이를 감수하고 2년 내내 수학 캠프에 참석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진짜 수학이 뭔지 배웠어요. 교과서에서 배우던 수학 말고 다른 수학이 있더라고요.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마방진을 통해 배운 수학이었어요. 수학 사회에 발을 들였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지요. 수학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주위에 없었는데 거기서 알게 됐고, 그때 사귄 친구와 조교를 대학원과 KAIST에서 다시 만났거든요.
누구나 좋아하는 걸 할까, 부모님이 혹은 사회가 좋아하는 일을 할까 고민할 때가 있을 거예요. 남의 말 듣지 말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조언해 주고 싶어요. 이런 말이 있죠. 공부를 못해서 이상한 전공을 선택했는데 20년 뒤 그 분야가 떠서 취업이 잘 됐다고. 미래는 예측할 수 없어요. 지금 잘 나가는 분야가 나중에도 잘 되리라는 보장은 없어요. 잘 나간다는 이유로 선택하면 시들해졌을 때 어떡해요. 내가 좋아하고 의미 있는 것을 해야 끝까지 열심히 할 수 있어요. 한 번 뿐인 삶, 공부도 취미도 일도 하고 싶은 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