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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소설 I 멋진 신세계] 밝혀지는 음모

제5화



하림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자신이 알고 있던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이 말을 믿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왜 마고는 아빠가 영웅이라고 한 거죠…?”

“사람들은 영웅 이야기를 좋아해. 게다가 뱃속의 아이까지 있잖아? 눈물 나는 얘기지. 그렇게 영웅 이야기에 빠져 있느라 사람들은 마고의 음모를 눈치 채지 못했지. 마고는 그 사이 해킹 흔적을 모두 지웠고, 모든 자료를 싹 정리했어. 깔끔하게. 우주선의 운항 정보를 보면 우리는 80년 뒤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으로 나와 있어. 하지만 실제로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다른 방향, 즉 별이 없는 공간으로 미세하게 방향을 바꾸고 있지.”

“그 말을 어떻게 믿죠?”

하림이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대장은 잠시 말없이 하림을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휴, 좋아. 날 따라와 봐라.”

대장이 먼저 문을 나섰다. 다른 남자들이 하림에게 손짓하자, 하림도 천천히 걸음을 뗐다. 엄마도 따라 나왔다.

그들은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한참 동안 복도를 걸었다. 하림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남자 한 명이 팔을 붙잡고 있었는데, 미로 같은 복도를 보니 도망치려고 해도 헤매다가 붙잡힐 것 같았다.

“여긴 신세계 호를 만들 때 작업용으로 쓰던 통로와 숙소다. 우주선 곳곳에 이런 곳이 있지. 마고가 가진 정식 설계도에는 나와 있지 않고, 전력이나 통신도 우리가 스스로 구축해서 쓰고있어. 그래서 마고는 우릴 찾을 수 없지.”

마침내 대장이 어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여기서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렴.”

문이 열리자 우주가 보였다. 가만히 보니 문이 있는 곳의 반대쪽 벽이 투명한 유리로 돼 있었다. 그 너머에는 별이 반짝이는 우주가 있었다.

학교에서 단체로 전망대 견학을 가서 본 적이 있던 터라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이런 곳에서 이런 장면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들어가 봐.”

들어가서 방 안을 보니 커다란 망원경과 용도를 알 수 없는 장비가 잔뜩 놓여 있었다.

“네 엄마가 해킹해서 알아낸 정보를 우리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지. 그런데 알다시피 우주선 외부를 관측하는 게 쉽지 않아. 웬만한 관측 장비는 전부 마고에 연결돼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우주선 외벽에 접해 있는 이 방을 개조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어.

여기서 우리는 별의 위치와 스펙트럼, 우주선의 가속도 등을 측정하고 있어. 마고가 워낙 섬세하게 우주선을 조종하고 있어서 이런 장비로 정확히 알기는 어려워. 하지만 10년이 넘게 측정하면서 데이터를 대조해 보니 확신할 수 있게 됐다. 마고는 우리를 엉뚱한 곳으로 데려가려 하고 있어.”

하림은 투명한 유리창에 손을 갖다 댔다. 차가운 기운이 심장까지 뻗어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난 못 믿겠어요. 마고가 어째서 우리를 아무 것도 없는 곳으로 데려간다는 거죠?”

“네 엄마가 알아낸 정보인데도 못 믿겠냐?”

대장이 엄마를 바라보자, 엄마는 힘없이 입을 열었다.

“글쎄다. 오랫동안 작동하다 보니까 오류가 생겼을 수 있겠지. 아니면, 무슨 꿍꿍이가 있거나…. 나도 이유는 모르겠어. 그런데 인정하긴 싫지만 우리가 목적지로 가고 있지 않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야.”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멍하니 서 있던 하림이 마침내 물었다.

“그런데 날 왜 잡아온 거죠? 우리 엄마는 왜 가두고 있어요?”

대장이 씩 웃었다.

“솔직히 말해서 네가 필요한 건 아니야. 네 엄마가 필요하지. 우리가 제안할 게 있으니 자리를 옮겨서 얘기해 보도록 하자.”

대장이 안내한 회의실은 말이 회의실이지 텅 빈 방에 낡은 소파가 몇 개 있는 게 다였다.

“마고의 음모를 파헤쳤다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하고 있겠지? 일단 그건 어려워. 사람들은 우리를 테러리스트로 알고 있어. 우리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을 확률이 높아. 그리고 너는 잘 모르겠지만, 15년 전 사건 이후로 마고가 알게 모르게 사회 통제를 강화했어. 사회를 어지럽힐 수 있는 가짜 정보는 사전에 차단이 돼. 우리 주장 역시 그런 취급을 받게 될 거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모습을 드러내서 마고의 음모를 폭로했다가 실패하는 순간 우리는 일망타진당하겠지. 그러면 앞으로 마고의 음모를 파헤치고 알릴 사람은 아예 사라지게 될 거야.


그게 진짜 무서운 점이다.”

“설마 그렇게 될 리가….”

“당장 너만 해도 못 믿고 있잖아. 마고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굳건해. 우주선이 수백 년 동안 여행하는 동안 사회가 붕괴하지 않도록 인공지능을 신뢰하라고 가르쳐 왔지. 설사 가끔씩 잘못된 판단을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해도 몰래 음모를 꾸밀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아.”

“그러면 아저씨들은 뭘 어쩌려는 거예요? 우리 엄마는 왜 붙잡아 두고 있어요?”

“왜냐하면 너희 엄마가 우리의 요구를….”

그때 엄마가 끼어들었다.

“민수 씨, 제발 우리 애는 내버려 둬. 나만 있으면 되잖아. 내가 협조할 테니까 하림이는 보내 달라고.”

대장의 이름이 민수인 모양이었다. 대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늦었어. 우리 비밀을 알아버렸는데, 그냥 보낼 수 없잖아. 일이 끝날 때까지 여기 머물거나, 아니면….”

“아니면 뭐요?”

하림이 캐묻자 대장은 말없이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어떻게 할 건데요?”

마침내 대장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마고를 해킹할 거야. 마고에 새로운 코드를 삽입해서 인간의 지시를 받게 할 거다. 제멋대로 날뛰지 못하도록. 네 엄마가 그 코드를 만들 수 있지. 그런데 네 엄마가 아주 협조적이지는 않아서 말이야.”

“그래서 나를 가지고 엄마를 협박했군요.”

하림은 이제야 진상을 알 수 있었다. 왜 엄마가 도망치라고 했는지, 왜 자신을 납치했는지….

“그래. 이제는 둘 다 협박할 차례야. 하림이 널 풀어주마. 그 대신 우리 계획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마라. 섣불리 발설하면 네 엄마를 두번 다시 보지 못하게 될 거야. 그리고 다인 씨도 마찬가지야. 빨리 코드를 완성해. 그러지 않으면 아들을 평생 잊고 살아야 해.”

하림과 엄마는 서로 마주보았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엄마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그런데 하림이를 보내기 전에 잠깐 둘이서 얘기할 시간을 줘. 아기 때 이후로 처음 만났잖아.”

“그건 안 돼. 아직은 믿을 수 없다고. 지금 여기서 이야기하도록 해. 우리가 다 들을 수 있게.”

엄마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러더니 곧 하림에게 다가와 두 손을 잡고 하림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눈빛이 심상치 않아서 하림은 순간 바짝 긴장했다.

“너희 아빠가 그런 테러를 계획했던 건 잘못이었을지 몰라. 하지만 결국 너와 너의 자식들이 안전한 우주선 안에서 더 확실한 곳을 찾기 원했던 거야. 아아, 네가 태어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결국 네가 태어나는 것도 볼 수 없었지. 네가 태어나면 들려주겠다며 이야기를 만들던 기억도 나는구나.

‘게으른 개를 뛰어넘은 재빠른 갈색 여우’라는 제목의 동화였어. 어느날 갈색 여우가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기차역에 갈 일이 있었어. 그래서 길을 가는 도중에 게으른 개를 마주친 거야. 급한데 게으른 개가 길을 막고 있으니 여우가 비켜 달라고 했지. 개는 수수께끼를 맞히면 비켜 주겠다고 했어. ‘하나씩만 있으면 26개인데, 욕심쟁이 때문에 늘어났어. 모두 몇 개일까?’ 여우는 급해서 게으른 개를 뛰어넘어 지나갔어. 그러자 개가 뒤에서 외쳤지. ‘기차역에서 찾아봐. 찾으면 가장 욕심쟁이를 품고 있는 숫자를 순서대로….’”

“이봐, 다인 씨.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이제 끝내!”

남자들이 몰려들어 하림과 엄마를 떼어냈다. 하림의 얼굴에 까만 천이 씌워지면서 의식이 가물가물해졌다. 하림은 그러는 동안에도 말을 한 글자 한 글자씩 머릿속에 새겼다.

눈을 떠 보니 학교 앞 공원의 벤치였다. 어둑어둑한 게 저녁 무렵인 듯했다.

하림은 천천히 일어났다. 납치됐다가 엄마를 만나고 충격적인 말을 들은 일이 모두 꿈만 같았다. 그런데 엄마의 마지막 말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아빠가 들려주려고 만들었다는 그 동화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이야기 자체도 이상했고, 하필이면 그런 때에 그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도 이상했다.

‘엄마는 대장 몰래 나한테 뭔가를 전달한 거야!’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급해졌다. 일단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어두워진 뒤라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하림은 평소 땡땡이를 치고 돌아올 때처럼 몰래 기숙사로 들어갔다. 하루 정도 도망쳤다가 돌아온 적은 많으니 문제 될 건 없었다. 다만 마고에게 할 변명은 내일까지 생각해 둬야 했다.

‘게으른 개를 뛰어넘은 재빠른 갈색 여우라…. 이게 무슨 소리일까?’

딱히 생각나는 게 없자 컴퓨터를 켜고 네트워크에 입력해 검색해 보았다. 딱 맞는 검색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몇 페이지 넘기다 보니 ‘게으른’, ‘개’, ‘재빠른’, ‘갈색’, ‘여우’ 같은 단어가 함께 나오는 결과가 몇몇 있었다. 그중 몇 개를 클릭해 보니 ‘팬그램’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팬그램이 뭐지?’

백과사전에서 팬그램을 찾아보자 설명이 나왔다.

알파벳의 모든 글자를 사용해서 만든 문장.

그리고 예로 나온 것이…, ‘The quick brown fox jumps over a lazy dog’이었다.

‘이거다!’

하림은 엄마가 한 말을 다시 떠올렸다.

‘하나씩만 있으면 26개인데, 욕심쟁이 때문에 늘어났어. 모두 몇 개일까?’

‘기차역에서 찾아봐.’

‘찾으면 가장 욕심쟁이를 품고 있는 숫자를 순서대로….’

뭔가 떠오를 것 같았다.

‘알파벳은 총 26개니까 딱 하나씩만 썼다면 저 문장에 들어 있는 알파벳 수는 26이겠지. 그런데 늘어났다라…. 그리고 그걸 기차역에서 찾으라고?’

엄마는 분명히 뭔가 전하려 했다. 그게 무엇일까? 대장의 말이 전부 진실은 아닌 게 틀림없었다.

‘내가 밝혀내고 말겠어.’

하림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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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5호 수학동아 정보

  • 고호관 기자
  • 일러스트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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