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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소설 I 멋진 신세계] 제3화 탈출

하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작은 방 안이었다. 한쪽 벽에 붙어 있는 딱딱한 침상이 가구의 전부였다. 문이 뻥 뚫려 있는 작은 화장실도 있었다. 창문은 없었고, 침대 반대쪽 벽에 출입문이 있었다.

하림은 몸을 일으켰다.

찰랑-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나서 내려보니 발목에 자물쇠 달린 고리가 채워져 있었다. 고리는 사슬로 벽에 고정돼 있었다. 하림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 둔 모양이었다.

“엇! 이거 뭐야? 방에 가둔 것도 모자라서 사슬까지 채웠냐?”

하림은 사슬을 붙잡고 있는 힘껏 당겨 보았다. 있는 힘을 다 해봐도 끊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포기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엄마가 경고했던 게 이건가? 그런데 학교 선생님이 왜…?’

자신이 잡혀온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림은 벽을 세게 두드리며 외쳤다.

“날 왜 잡아온 거야?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소용 없었다. 손만 아팠다.


머리가 좀 맑아지고 나니 배가 고팠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오줌도 마려웠다. 배고픈 건 참을 수 있어도, 오줌 마려운 건 참기 어려웠다. 화장실에 가 보았지만, 쇠사슬이 짧아서 변기 앞까지 갈 수가 없었다.

‘이런 배려 없는 납치범 같으니라고!’

유일하게 가능한 건 변기에서 조금 떨어진 채로 조준을 잘 해서 일을 보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납치범이 감시카메라로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하림은 어디 있을지 모르는 카메라를 향해 팔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야! 이놈들아! 잡아왔으면 용건이라도 말해야 할 거 아냐! 나 깨어났다고! 밥이나….”


그때 덜컹 하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줘야죠…, 배고픈데….”

하림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들어온 사람은 나이가 꽤 젊어 보이는 남자였다. 남자는 아무 말 없이 하림을 노려보더니 들고 있던 식판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일어났군. 생각보다 많이 잤는데? 평소에도 게으른 놈인가 보군. 밥이나 먹고 있어라. 시간 되면 부를 일이 있을 테니.”

남자는 몸을 휙 돌려서 문을 나가려 했다.

“자, 잠깐만요!”

하림이 외쳤다. 남자가 선 채로 고개만 뒤로 돌려 하림을 바라보았다.

“뭐지? 널 잡아온 이유는 나중에 설명해 줄 거야.”

“그, 그게 아니라 화장실에 좀 가야겠는데요.”

“바로 옆에 화장실이 있잖아!”

“이 사슬이 짧아서 안 돼요.”

남자는 짜증 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젠장, 미리 재 보고 채웠어야 했나….”

남자가 하림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사슬을 잠깐 풀어줄 테니 바닥에 엎드려. 딴짓을 하면 안 되니까.”

하림은 시키는 대로 엎드렸다. 남자는 사슬에 달린 자물쇠를 잡고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번호가 뭐라고 했더라…. 아! 피보나치 수라 그랬었지.”

틱, 틱, 틱, 틱…

둘 다 아무 말이 없는 가운데 남자가 자물쇠 번호 돌리는 소리만 들렸다.
“됐어. 얼른 화장실 다녀 와. 행여나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라. 이 자물쇠는 한 번만 틀려도 경보가 울리니까.”

남자는 하림이 볼일을 보는 동안에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하림은 화장실을 나오면 잠시 남자를 공격하고 도망칠까 생각해 봤지만, 곧 포기했다. 남자는 하림보다 열 살은 많아 보였고, 덩치도 컸다. 몸으로는 도저히 적수가 안 될 것 같았다.

정체불명의 납치범이 다시 자물쇠를 채워놓고 나갔다. 소리를 들어보니 문은 잠겨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슬을 채워 놓았으니 어차피 빠져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일단 하림은 밥을 먹었다. 갇힌 상황이었지만, 학교 급식보다 맛있게 먹었다.

허기가 가시자 침착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하림은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찬찬히 궁리했다. 밥을 가져다 준 남자가 나갈 때 보니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벽에 환풍구도 하나 있었는데, 잘하면 덮개를 뜯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창문 같은 건 없었다. 사슬만 풀어낸다면 두 곳 중 하나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밖에 무엇이 있는지는 나가봐야 알 것 같았다.

‘엄마는 대체 무슨 일에 엮여 있는 걸까? 누가 날 납치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혹시 나를 유괴해서 마고를 협박하려는 걸까?’

마고가 하림을 아낀다는 건 신세계 호의 누구나 알았다. 하림을 납치하면 마고에게서 원하는 걸 얻어내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 다음엔? 신세계 호는 컸지만, 그래봤자 우주선이었다. 도망갈 곳이 없었다.

하림은 발목 고리에 걸려 있는 자물쇠를 만지작거렸다. 네 자리 수를 맞히면 풀 수 있는 단순한 자물쇠였다. 물론 아무리 단순해도 경우의 수가 1만 개나 됐다.

‘잠깐! 아까 그 사람이 뭐라고 중얼거렸는데? 맞아. 피보나치 수라고 했지?’

하림은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번호를 맞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조금 전에 남자가 자물쇠를 열 때 번호 돌아가는 소리를 유심히 들었기 때문이다. 틱- 틱- 하며 번호 돌아가는 소리는 분명히 딱 6번 들렸다. 그리고 처음 봤을 때 자물쇠의 번호는 0000이었다. 하림은 자물쇠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첫 번째 힌트는 피보나치. 이 네 자리 수가 피보나치 수 중 하나라는 소리렷다.’

그러나 피보나치 수 중 9999 이하의 수만 찾아도 여러 개였다.

‘두 번째 힌트는 번호 돌아가는 소리! 총 6번 울렸지. 아마도 가능한 적은 횟수로 돌렸을 거야. 3이라면 0부터 시작해서 3번 돌렸을 테고, 8이라면 0부터 거꾸로 해서 2번 돌렸겠지.’

두 가지 조건을 놓고 암호를 맞혀보기로 했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었다.

하림은 물컵에 남은 물을 찍어서 바닥에 피보나치 수열을 썼다. 그리고 조건에 맞는 수를 찾았다.

틱, 틱, 틱, 틱, 틱, 틱, 철컥

자물쇠가 열렸다!

하림은 스스로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지를 뻔했다.

간신히 입을 막은 하림은 쇠사슬을 풀고 일어섰다. 조심스럽게 문으로 걸어가 귀를 대고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확인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살찍 힘을 주어 문을 밀자 부드럽게 열렸다. 하림은 고개를 살짝 내밀어 보았다. 양쪽으로 복도가 있었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하림은 문 밖으로 살며시 발을 내밀었다.

‘잠깐. 뭔가 납치범의 주의를 돌릴 게 필요한데.’

문득 환풍구가 떠올랐다. 하림은 환풍구로 다가가 덮개를 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삐걱거리는 소리만 내던 덮개가 몇 번 더 힘을 주자 뜯어져나왔다. 하림은 환풍구 덮개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았다. 이렇게 꾸며 두면 납치범은 하림이 환풍구 속으로 도망간 줄 알 터였다.

문 밖으로 나와 왼쪽으로 갈지 오른쪽으로 갈지 잠시 고민했다. 이 곳을 전혀 모르는 상태라 순전히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동전이라도 던져야 하나….’

그때였다.

오른쪽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하림은 잽싸게 문을 닫고 왼쪽으로 움직였다. 조금 가자 꺽어지는 곳이 나왔다. 하림은 일단 모퉁이에 몸을 숨겼다. 발걸음 소리가 하림이 갇혀 있던 방의 문 앞에서 멈췄다.

찰칵-

문이 열리는 소리, 그리고 남자가 나지막하게 외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곧 납치범이 뛰어나오더니 되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하림은 그 자리에 서서 곰곰이 생각했다.

‘저쪽에 납치범이 머무는 방이 있나 보군. 은밀히 숨어 있을 테니까 나가는 문은 반대쪽에 있을 확률이 높아. 지금 이 방향으로 가야겠다.’

생각을 정리했을 무렵 다시 후다닥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는 다시 문 앞에서 멈췄다. 다만 이번에는 두 명이었다.

“정말 도망갔잖아? 자물쇠를 어떻게 푼 거야? 제대로 채운 거 맞아?”

“그것도 똑바로 못 했을까봐? 망할 놈이 지 엄마를 닮아서 머리는 좀 있나 보네.”

“하여튼 빨리 찾아야 해. 그 여자 고집을 꺾으려면 아들놈이 있어야 해. 행여라도 도망쳤다는 걸 알게되면 큰일난다고. 저 환풍구 속에서 헤매다가 굶어죽기라도 해봐!”
 
“이럴 시간에 빨리 찾는 게 낫겠다. 내가 이쪽에서 환풍구로 들어갈 테니까 넌 반대쪽 입구로 가서 그쪽부터 찾아봐.”

“빨리 가. 대장한테는 말 안 할 테니까. 혼나기 전에 빨리 찾아내자고.”

두 남자는 각자 부산하게 움직였다. 하림은 조용해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두 남자의 대화를 통해 몇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일단 납치범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대장이라는 사람까지 있는 걸 보면 모종의 단체였다. 화학선생님도 가담하고 있는….

그리고 한 가지 더. 엄마가 이곳에 있었다! 두 남자의 말을 들으니 엄마가 이곳에 함께 갇혀 있는 것 같았다.

하림은 혼자 빠져나가겠다는 생각을 저 멀리 치워 버렸다.

‘지금 여기서 엄마를 만나야겠어!’

 
-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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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3호 수학동아 정보

  • 고호관 기자
  • 일러스트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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