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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은 사랑, 혜성을 만들고 죽이다


원래는 태양계 끄트머리에서 유유자적하던 얼음덩이였다. 그게 태양으로 떨어지며 혜성이 된 것은 무거운 천체의 ‘밀당’ 때문이다. 태양계 안에서도 행성들의 “이리와봐” 타령은 계속되어 혜성은 온몸이
찢기기 십상이다. 혜성을 만들고 죽이는 사랑의 경계선을 알아보자.


1500년 만에 돌아오는 혜성이 있다. 지구인들은 신이 나서 잔치를 준비한다. 영화 ‘너의 이름은’ 이야기다. 물론 신라가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인 첨성대를 짓기도 전에 관측된 혜성이 이번 혜성과 같은지 어찌 확신하냐고 따질 수도 있겠지만, 영화적 설정이니 넘어가자.

그림 속 혜성처럼 실제 혜성도 예쁘다. 꼬리는 길 땐 하늘의 절반을 덮고 몸통은 별보다 크다. 어느 날 갑자기 못 보던 것이 반짝이며 꼬리를 달고 하늘에 떠 있다고 생각해보라. 타고 있던 버스에서 내려 “와~”하며 올려다볼 것이다.
사실 이런 외모는 눈속임에 불과하다. 혜성은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메탄 등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까맣고 못생긴 얼음덩어리다. 이 얼음덩이가 뜨거운 태양에 가까이 다가가면 제 몸의 일부를 기체 형태로 내뿜는다. 이때 나오는 기체와 먼지가 태양빛을 반사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다.

혜성이 가까이 오면 못생긴 외모가 탄로날 뿐만 아니라 재앙이 펼쳐질 것이다. 영화에서는 지구에 지나치게 가까이 온 탓에 혜성이 깨져버린다. 잔치를 준비하던 사람들은 졸지에 혜성의 추락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런 일은 태양과 행성이 혜성을 잡아당기는 힘 때문에 생긴다. 이들은 먼 곳의 얼음덩어리를 끌어와 예쁜 혜성으로 탄생시키기도 하지만, 도중에 파괴해 버리기도 한다. 혜성의 탄생과 죽음에 관여하는 이 힘을 ‘조석력’이라 한다.


조석력, 혜성을 소환하다
조석력 개념이 처음 등장한 건 17세기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아이작 뉴턴의 저서 ‘프린키피아’에서다. 이 힘은 바닷물의 밀물과 썰물을 일컫는 조석 현상을 설명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조석력’이라 불렀다. 조석력은 바다만이 아니라 질량이 있는 모든 물체에 작용한다. 조석력이 작으면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지만, 크면 바닷물을 움직이는 건 물론 혜성을 만들거나 쪼개는 역동적인 일을 해낸다.

중력을 처음 발견했던 뉴턴은 조석력도 중력 때문에 생긴다고 말했다. 질량이 있는 모든 물체 사이에는 서로 잡아당기는 중력이 작용한다. 내가 힘껏 뛰어올라도 결국엔 떨어지는 이유는 지구가 당기기 때문이다. 이 힘은 물체 간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크고 멀수록 작다. 그래서 지구가 내 몸을 잡아당기는 힘을 따져보면, 몸의 중심인 배보다 발에서 더 강하다. 발에 작용하는 중력과 배에 작용하는 중력의 차이가 곧 조석력이다. 배와 발의 거리가 너무 작아서 느끼지 못할 뿐이다.


 
은하핵의 중력이 혜성을 만든다
‘너의 이름은’에 나오는 혜성의 고향은 태양계 가장자리의 어둡고 고요한 오르트 구름이다. 얼음덩이가 둥둥 떠다녀 ‘구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태양에서 이곳까지 거리는 지구까지 거리의 5만 배 정도다. 과학자들은 ‘너의 이름은’의 혜성처럼 지구로 돌아오는 시간이 250년 이상인 장주기 혜성은 오르트 구름에서 왔다고 추측한다.

오르트 구름에서 혜성이 탄생하는 이유도 조석력 때문이다. 지구의 바다가 달의 조석력 때문에 출렁이는 것처럼 오르트 구름도 큰 천체의 조석력을 받으면 출렁인다. 오르트 구름을 이루는 얼음덩어리 중 일부는 궤도가 크게 뒤틀리면서 태양계 내부로 날아간다. 안으로 들어온 이상 자신을 가장 세게 잡아당기는 태양을 향해 움직이며 혜성이 된다.

오르트 구름이 조석력을 받는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우리은하가 중심 쪽으로 태양계를 잡아당기며 ‘은하 조력’이라 불리는 조석력을 만든다. 태양에 가까운 행성과 달리 바깥쪽에 있는 오르트 구름은 태양의 힘을 강하게 받지 않기 때문에 은하 조력에 따라 쉽게 요동친다.
둘째, 다른 항성이 태양계 근처를 지날 때 생긴다. 항성은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다. 이들도 중력이 커서 오르트 구름을 뒤틀리게 할 조석력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갈색왜성이 태양계 근처를 지날 때다. 갈색왜성은 목성보다는 무겁지만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천체다. 갈색왜성 정도 크기의
천체도 강한 중력을 가져 오르트 구름을 뒤틀리게 할 수 있다.

△땅보다 바다가 조석력에 큰 영향을 받는 이유는
바다가 쉽게 모양이 변하기 때문이다.
오르트 구름도 태양의 힘을 덜 받기 때문에 쉽게 모양이 변한다.

 
조석력, 혜성을 파괴하다
장주기 혜성을 탄생시킨 조석력은 때때로 혜성을 파괴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1994년 목성에 충돌한 ‘슈메이커-레비 제9혜성’이다. 이 혜성은 목성의 조석력 때문에 21개 조각으로 쪼개져 목성에 떨어졌다. ‘너의 이름은’의 혜성이 쪼개져 지구와 충돌한 것처럼 말이다. 혜성이 온전히 한 몸을 유지하느냐는 두 가지 힘이 결정한다. 하나는 내부 중력을 포함해 혜성이 뭉쳐 있게 하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떨어뜨리려는 주변 천체의 조석력이다. 만약 뭉쳐 있으려는 힘보다 조석력이 세면 혜성은 깨진다.

혜성이 무거운 천체에 가까워질수록 조석력이 커진다. 조석력이 두 천체 사이 거리의 세제곱에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조석력을 계산하려면 영국의 수학자 브룩 테일러가 18세기에 발표한 ‘테일러의 정리’를 사용해 근삿값을 구해야 한다. 테일러의 정리를 이용하면 분모가 서로 다른 분수의 뺄셈을 다항식으로 바꿔 풀 수 있다. 뉴턴의 직접적인 후계자로 미분학★을 연구한 테일러가 뉴턴의 조석 이론에도 도움을 준 셈이다.

미분학★ 함숫값이 변화하는 비율을 바탕으로 함수의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 뉴턴이 자연현상을 분석하면서 사용했다.
 
슈메이커-레비 제9혜성도 목성에 가까워지면서 조석력을 많이 받았다. 반면에 혜성이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려는 힘인 응집력과 내부 중력은 일정하다. 조석력이 커지다 이 힘과 같아질 때 둘 사이의 사이 거리를 ‘로슈 한계’라고 한다. 로슈 한계를 넘어서면 혜성은 파괴된다.

물론 조석력만이 혜성을 파괴하는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뜨거운 태양열에 혜성의 내부 압력이 높아져도 폭발한다. ‘너의 이름은’에서 뉴스진행자는 “혜성이 로슈 한계를 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구의 조석력과 태양열, 내부 압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쪼개졌을 것이다.

우리는 과학시간에 중력이 내 몸의 한 점에 작용하는 것처럼 배운다. 배꼽쯤 되는 위치에 점을 그려넣고 여기에 중력이 한꺼번에 작용한다고 보는 식이다. 우리가 지구에 있을 땐 그 정도 설명으로 충분하지만, 블랙홀처럼 엄청 무거운 천체 근처에 가면 조석력이 매우 커져 내 몸이 산산이 찢길 수도 있다. 현실은 교과서만큼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이 또 드러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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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3호 수학동아 정보

  • 이다솔 기자
  • [참고서적] 앤 드루얀의 ‘혜성’
  • 도움

    최영준
  • 기타

    [참고서적] 칼 세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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