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에 모두 몇 명이나 모였을까? 지난달 내내 국민의 관심사였던 문제다. 경찰이 발표한 수가 있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철성 경찰청장이 항변했다.
“일부러 줄이는 게 아니고 과학적으로 추산하고 있다.”
과학적이라는 데도 왜 못 믿는 걸까. 그 이유는 경찰이 활용하는 페르미 추정의 용도에 있다.
세계 최초의 핵반응로를 만든 ‘핵시대의 설계자’ 엔리코 페르미는 괴짜 물리학자였다. 수업 시간에 “시카고에 피아노 조율사는 몇 명일까?”하고 묻는가 하면 더러운 창문을 보고 유리에 쌓이는 먼지의 최대 두께는 얼마일지 궁금해 했다. 병원에 누워서는 링거액이 떨어지는 간격으로 유속을 계산했다. 모두 ‘페르미 문제’라고도 불리는 페르미 추정의 사례다.
페르미는 이런 문제를 정확하게 풀지 않았다. 물리학자가 조율사 수를 정확히 알아서 어디다 써먹겠는가. 그런 일에 시간을 많이 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페르미는 합리적으로 대충 풀었다.
먼저 문제를 수식으로 만든다. 각 항에 들어갈 수는 10을 n번 곱한 값인 10n으로 근사해 나타냈다. 이런 방식으로 페르미는 피아노 조율사 수를 추정했다.

페르미 추정은 과학적이다. 합리적인 계산 과정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원병묵 성균관대학교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과정이 과학적이면 과학이다”라고 말했다. 정확도는 다른 문제다. 페르미 추정의 오차는 작지 않은 편이다. 품질 낮은 현미경과 같다.
따라서 페르미 추정은 결괏값이 정확할 필요가 없을 때 사용해야 한다. 특히 빠른 계산이 필요할 때 유용하다. 정확한 수치가 중요한 영역에서는 느리더라도 정확도를 높일 다른 방법을 활용하는 게 좋다.





물리학자 페르미가 합리적으로 어림잡아 계산하는 걸 좋아한 이유가 있다. 자릿수 정도만 알아도 비교적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물리 현상이 많기 때문이다. 고체와 액체 사이의 물질을 연구하는 원병묵 교수는 “물리학에서 페르미 추정은 흔하게 쓰인다”고 말했다.
원 교수는 자신이 페르미 추정을 활용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레이놀즈 수를 들었다. 레이놀즈 수는 흐르는 물질(유체)이 이동하던 방향으로 계속 가려는 힘(관성)과 유체의 점성에 의한 힘 사이의 비율이다. 만약 유체가 단면이 원형인 파이프 안에서 흐르고 있다면 레이놀즈 수는 다음과 같다.

유체의 성질을 예측하기 위해 레이놀즈 수의 값을 정확히 알 필요는 없다. 1보다 큰지 작은지만 알면 충분하다. 그래서 물리학자는 레이놀즈 수를 구할 때 유체의 속도와 점성 등을 근삿값으로 계산한다. 만약 유체의 속도가 0.2345m/s라면 0.2 혹은 0.1로 자릿수만 유의해 계산하는 식이다. 그러면 빠르고 쉬우면서도 유체의 성질을 충분히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르미 추정과 같은 질 낮은 현미경은 그에 맞는 상황에서만 써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과학의 외피를 쓴 거짓말이 된다. 모두가 피노키오에게 속기 전에 나부터 합리적 의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