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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푸는 역문제

수학계의 프로파일러



24년 전, 한 농촌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은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자그마한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마지막 소원은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범인을 잡는 것이다. 안타까운 사연에 장기미제전담팀의 사무실은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잡기 위해 고민으로 가득 차있다. 하지만 단서가 너무 부족하다. 그때 누군가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프로파일러! 프로파일러는 일반 수사 기법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사건에
투입돼 범인의 정체를 밝히는 경찰이다. 이들은 현장에서 찾은 직접적인 단서 외의 다른 정보를
이용해 범인의 특징을 알아맞힌다. 예를 들어, 범인이 흔적을 남기지 않은 사건에서는 범인의 용의주도한 성격을 추정할 수 있다. 프로파일러는 수학의 역문제와 같은 개념을 이용해 범인을 알아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도대체 역문제가 뭐길래 이렇게 자신만만한 걸까?


박쥐는 어떻게 반사된 초음파를 듣고 주위 상황을 알 수 있을까? 두 블랙홀이 충돌하면서 나오는 중력파로 어떻게 블랙홀의 특성을 알아낼까? 이런 문제가 ‘역문제’에 속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풀어본 문제는 대부분 방정식을 풀어 해를 구하는 ‘정문제’다. 역문제는 제한된 정보만 가지고 원하는 정보를 얻어내는 수학 기법으로, 해와 관련된 정보를 가지고 거꾸로 방정식의 계수를 구한다. 이 때문에 ‘역’문제라는 이름이 붙었다.

ax+b=y(a와 b는 상수, x와 y는 변수)라는 식이 있다고 하자. 보통 우리는 계수 a와 b를 아는 상황에서 x에 어떤 값을 넣었을 때, y가 무슨 값이 나오는지 알아내는 문제를 푼다. 역문제는 반대다. y에 대한 제한된 정보만으로 계수 a, b를 구해야 한다. 여기서 계수 a, b를 박쥐 주변의 상황이나 블랙홀의 특성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즉 알고자 하는 정보다. 예를 들어, x와 y가 각각 3과 7이라고 하자.
 

여기에서 b가 원하는 정보라면, a라는 정보를 알아야 이 문제를 풀 수 있다. 하지만 보통 역문제는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 이보다 더 적은 정보를 가지고 원하는 정보를 얻어내야 하는 것이 역문제다.

그래서 역문제는 풀기가 굉장히 까다롭다. 그 해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판단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20세기에 수학이 놀랍도록 발전하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기법들이 만들어졌다. 컴퓨터의 성능도 획기적으로 좋아져 복잡하거나 계산의 양이 매우 많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측정 장치의 발달로 다양한 응용문제가 역문제 형태로 나타나면서, 역문제는 수학의 중요한 한 분야로 자리 잡았다.




자연은 이미 역문제를 알고 있다?!
 

 
신기하게도 동물은 예전부터 역문제를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전기물고기’를 들 수 있다. 전기물고기는 보통 진흙 속에 산다. 이 때문에 앞이 잘 안 보일 수밖에 없고, 필요가 없어진 눈은 퇴화했다. 대신에 미세한 전류를 이용해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낸다. 전류를 흘린 뒤 되돌아 온 정보로 먹이를 찾는 것이다.

전기물고기는 주위에 어떤 물체가 있으면 전류를 흘렸을 때 돌아오는 정보가 왜곡된다는 원리를 이용한다. 게다가 전기물고기는 이 정보를 통해 먹을 수 있는 먹이인지 아닌지도 알 수 있다. 직접 보지 않고도 다른 정보를 활용해 원하는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다. 즉 전기물고기는 자연스럽게 역문제를 풀고 있다.

전기물고기 외에 역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동물에는 박쥐가 있다. 박쥐는 초음파를 활용해 주변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낸다. 덕분에 동굴 속에서도 부딪치지 않고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다.



프로파일러가 말한 역문제는 이미 우리 주변에서도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과연 어디에 역문제가 숨어있는지 하나씩 찾아보자.

역문제는 원하는 정보를 직접 알아내기 어려울 때 많이 쓰인다. 내 몸속 장기에 이상이 있는지 알고 싶다고 해보자. 그러려면 칼로 피부를 자르고 직접 확인해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런데 이것은 몸에 상처를 내야 하는 ‘파괴적’인 방식이다. 만약 피부를 절개하지 않고 ‘비파괴적’으로 우리 몸 안의 상태를 알 수 있다면 어떨까? 그 해답은 역문제에 있다.


 





프로파일러는 굉장히 사소한 단서에서 범인의 정체를 밝히는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 마찬가지로 역문제도 제한된 정보 안에서 원하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 이 때문에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만큼 활용 가능성이 커 많은 수학자와 과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얼굴색 보면 다 알아!


심장 박동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몸에 센서를 부착해야 한다. 그런데 센서를 붙이지 않고도 얼굴 피부색만으로 심장 박동을 측정할 수 있다. 이것은 심장이 뛸 때 얼굴색이 미세하게 바뀌기 때문에 가능하다. 얼굴색 변화는 굉장히 미세하기 때문에 촬영한 얼굴 피부색의 영상 신호를 증폭해야 한다. 그러면 얼굴색이 변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이를 통해 심장이 1분에 몇 번 뛰는지, 얼마나 규칙적인지 측정할 수 있다. 이것은 원격 의료 분야뿐만 아니라 범죄 수사 분야에도 응용할 수 있다. 의심은 가지만 증거가 없는 용의자가 있다고 하자.  이 기술을 활용하면, 센서를 붙일 필요 없이 용의자를 심문하는 영상만으로 심장 박동을 측정해 거짓말 탐지에 활용할 수 있다.

감성인식을 연구하는 이의철 상명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는 “역문제는 측정 가능한 데이터로 현상을 규명하는 것인데, 현재 측정 센서의 기술이 크게 발전하고 있다”며, “측정 센서 기술과 측정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이터 가공, 기계 학습 등이 함께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역문제를 이용한 기술 발전의 전망은 밝다”고 말했다. 이에 덧붙여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사람의 상태나 감정을 추론하는 역문제 해결 방법이 특히 더 많이 발전할 것”이라며, 몸에 착용하고 다니는 웨어러블 기기와 연결될 수 있는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역문제를 풀어 우주를 보다
 

 
지난 2월 인류는 아인슈타인이 100년 전에 예측한 중력파★를 관측했다. 중력파를 분석하는 문제도 역문제다. 중력파를 분석해 그것을 발생시킨 천체가 무엇인지 거꾸로 알아내는 것이다. 만약 초기 우주가 탄생할 때 발생했던 중력파를 검출할 수 있다면, 이를 분석해 초기 우주 탄생의 비밀을 알아낼 수도 있다.

중력파는 오른쪽 그래프처럼 ‘파형’으로 관측된다. 시간에 따라 시공간이 흔들리는 모양을 관측한 것이다. 이 파형에는 다양한 요소가 섞여있다. 이번 중력파 검출에서 얻은 의미 있는 요소는 15개로 블랙홀의 질량, 지구에서 블랙홀까지의 거리, 블랙홀이 어떻게 기울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하학적인 특성 등이다. 이것들로 이번에 발견된 블랙홀 쌍성의 성질을 파악하는 것이다.

한국 중력파연구협력단 단장인 이형목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앞으로 중력파 관측을 통해 블랙홀이나 중성자별 같은 천체들의 관측치가 많이 모일 것”이라며, “이런 관측치로부터 역문제를 풀어 더 의미 있고 신뢰할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중력파 천문학의 미래를 전망했다.

역문제라는 용어는 많이 생소하지만, 누구나 한번쯤 프로파일러나 형사처럼 거꾸로 추리해 나가며 문제를 해결해본 경험이 있다. 그것이 바로 역문제의 철학이다.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역문제를 해결하며 열리게 될 미래가 궁금하다.

[중력파★중력파는 질량을 가진 물체가 가속운동하면, 물체 주위로 퍼져나가는 시공간의 잔물결이다.
공간이 늘었다 줄었다, 시간이 느려졌다 빨라졌다를 반복하며 퍼져나가는 것이다.]
 




참고 논문 : 이의철의 ,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의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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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수학동아 정보

  • 김경환 기자
  • 도움

    임미경 KAIST 수리과학과 교수
  • 도움

    강현배 인하대 수학과 교수
  • 도움

    이의철 상명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 도움

    이형목 한국 중력파 연구협력단 단장
  • 일러스트

    김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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