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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배우면 어디에 써요?” 수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하는 질문 1순위. 그러나 이 질문에 시원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난 달 이 질문에 속 시원한 답을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수학으로 기업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사례를 발표하는 <;대한민국 산업수학 주간>;이 21일부터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다.
“많은 학생들이 이 자리에 와서 기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 수포자가 많습니다. 학생들이 수학을 싫어하는 이유는 수학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문제만 많이 반복해서 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수학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게 되고, 이 일을 계기로 수학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되길 바랍니다.”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의 환영사로 수학 대중강연이 시작됐다.
“데이터 모양을 분석해 산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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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강연자는 구나 칼슨 아야스디 대표다. 아야스디의 빅데이터 분석은 고도의 수학 지식을 산업 현장에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칼슨 대표가 처음부터 사업가였던 것은 아니다. 본래 미국 스탠퍼드대 수학과 교수로 위상수학을 연구하는 순수 수학자였다. 위상수학은 도형이나 공간의 불변성(변하지 않는 성질)을 연구하는 분야다.
“수학자로 연구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오랫동안 생각해 왔어요. 그러다가 생각한 것이 바로 데이터였어요. 미 연방부에서 1000만 달러(약 114억 원)를 지원받아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고, 2008년 아야스디를 창업했어요.”
칼슨 대표가 창시한 ‘위상적 데이터 분석’의 핵심은 데이터의 ‘모양’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데이터를 대부분 수로 보고 분석했다면, 위상적 데이터 분석에서는 데이터를 점과 선으로 이뤄진 네트워크 형태로 보고 모양을 분석한다. 일반적인 데이터 분석보다 얼마나 더 효과적일까?
“기존의 데이터 분석은 보통 대수학을 사용합니다. 이런 방법으로는 데이터의 복잡성을 분석하기 어려워요. 데이터가 복잡할수록 원 모양, Y 모양 등 다양한 모양으로 나오기 때문이에요. 일반적인 데이터 분석이 기업 채용과정에서 서류심사를 하는 것이라면, 위상적 데이터 분석은 면접까지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실제로 아야스디에서는 금융, 의료,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데이터를 분석해 의미 있는 결과를 이끌어 내고 있다. 예를 들어 한 대형 제약사가 개발한 신약이 미국 식품의약국의 허가 과정에서 탈락한 원인을 알지 못했는데, 분석을 통해 해당 병을 앓는 전체 환자가 아닌 일부 환자에게만 효능이 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신용카드 사용 패턴을 분석해 사용자가 사기 목적으로 썼는지 아닌지도 구별해냈다. 칼슨 대표는 “순수수학이 산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이라며, “앞으로 복잡한 세상의 문제를 수학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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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의 생생한 눈, 수학자 덕분
“아바타, 아이언맨, 겨울왕국의 공통점이 뭘까요?”
강명주 서울대 수학과 교수의 가벼운 질문으로 두 번째 강연이 시작했다.
“첫 번째 공통점은 인기 있는 영화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모두 수학이 쓰인 영화라는 거예요. 영상을 함께 볼까요?”
강 교수가 영화 <;아이언맨3>;에서 건물이 무너지고, 물이 넘치는 역동적인 장면을 보여주었다.
“수학이 보이나요? 숫자나 공식이 하나도 안 보이는데 수학은 어디 있을까요? 방금 본 화면에는 미분, 적분, 행렬이 다 들어 있어요. 영상 속에 보이는 아이언맨의 집은 그래프로 만든 것이고, 진짜 같은 파편과 물결 파도도 모두 수학식이에요. 실제처럼 보이는 그래픽 기술은 수학으로 이뤄져 있어요.”
뒤이어 영화 <;겨울왕국>;에서 눈이 떨어져 부서지는 장면이 나왔다. 겨울왕국의 생생한 눈도 모두 수학으로 계산한 결과다. 수학식에서 ‘변수’를 바꾸면 눈이 벽에서 떨어져 부서지기도 하고, 벽에 붙으면서 떨어지게도 만들 수 있다. 조셉 테란 UCLA 수학과 교수는 섬세한 눈의 움직임을 수학으로 풀어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영화 슈렉, 스타워즈,터미네이터 제작에 참여한 론 패디큐 스탠포드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는 수학자지만 두 번이나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강 교수는 “생동감 넘치는 영화 제작에 수학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재밌는 영화를 즐기듯이 수학도 즐기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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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수학자 3명의 ‘앗! 여기에도 수학이?’
수학자라고 하면 왠지 깐깐하고, 딱딱하고, 괴짜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당당히 깨겠다는 듯 세 번째 강연에서는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의 훈남 3인방 이승재, 임동규, 이석형 연구원이 등장했다. 3명의 연구원은 ‘앗! 여기에도 수학이?’란 제목으로 생활 속 다양한 분야에서 수학이 어떻게 쓰이는지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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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강연에 참여한 사람들은 수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을까? 박종원 인천 인제고 1학년 학생은 “교통체증 문제를 수학으로 해결한다는 것과 영화 제작에 수학자가 참여한다는 것이 신선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장윤선 구리 교문중 교사는 “학생들에게 수학의 유용성을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려웠는데, 이번 강연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수학은 유용성에서만큼은 다른 학문에 비해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행사는 ‘수학을 배워 어디에 쓸까?’라는 질문을 ‘수학이 쓰이지 않는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으로 바뀌게 했다. 앞으로 교과서 밖으로 나온 수학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지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