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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요트 과학적 스포츠의 추억

요트는 외국에서나 유명한 스포츠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10월에서 11월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국제요트대회가 여럿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학동아에서 한 번도 다룬 적 없는 스포츠라 냉큼 취재 계획을 세웠다. 그러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고 기자, 인생에 다시없을 취재를 하게 됐다!

바람이 곧 엔진이다

10월 8일부터 5일간 열린 2015 다도해국제요트대회를 취재하러 목포를 찾았다. 그곳에서 목포대 해양시스템공학과 유재훈 교수를 만나 요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기자가 가장 궁금했던 점은 멋대로 부는 바람만을 이용해 원하는 방향으로 요트를 나아가게 하는 원리였다. 바람이 항상 배 뒤에서 불어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경기 중에 모터를 켜는 요트는 실격이라는 조항을 보고 나니 더 궁금했다.

바람과 돛이 만드는 추진력

비밀은 바람과 배의 ‘각도’에 있다. 바람이 불면 돛 주변의 기압이 달라지면서 요트에 여러 가지 힘이 작용한다. 바람이 만드는 여러 힘 속에는 요트를 앞쪽으로 이끄는 힘도 들어 있다. 바람은 요트의 앞쪽에서 불든 뒤쪽에서 불든 요트가 앞으로 움직이는 힘을 준다.


 
바람을 쓸 수 없는 곳, 노고존

요트대회에서 요트는 미리 정해진 경로를 따라 부표를 통과하고 결승선으로 들어와야 한다. 이 경로는 주최 측이 대회 당일의 바람과 조류를 고려해 결정한다. 이번 대회의 인쇼어 경기(육지가 보이는 가까운 바다에서 하는 경기)는 부표 세 개를 띄워 만든 이등변 삼각형 모양의 경로를 세 번 돌아 결승선에 들어오는 방식이다. 요트가 출발해서 결승선에 오기까지 총 이동 거리는 약10km다.

경기가 시작되고 모터를 끈 요트는 돛의 방향을 조절해 바람을 이용한다. 단, 바람과 돛이 이루는 각도가 45°이하인 구역에서는 요트가 앞으로 가기 힘들다. 이런 구역을 ‘노고존(No Go Zone)’이라고 한다. 요트가 바람 부는 쪽에 있는 목표 지점을 향해 나아가려면 노고존을 피해야 한다. 요트가 지그재그로 나아가는 이유도 노고존을 피하기 위해서다.

물속에도 날개가 있다

요트는 방향을 바꾸거나 바람이 많이 불 때 크게 기운다. 돛이 바닷물에 닿을 정도인데, 커다란 요트가 그대로 넘어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용골’이다. 용골은 요트 밑에 연결된 묵직한 납덩어리다. 겉보기와 달리 그 무게가 요트 전체 무게의 반 정도인 용골은 요트의 무게 중심을 아래로 내리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 요트가 많이 기울더라도 뒤집히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용골이 무거울수록 요트가 많이 가라앉고, 물살에 의한 저항이 커진다는 단점이 있다.

용골의 또 다른 주요 기능은 옆쪽 또는 앞쪽에서 부는 바람에도 요트가 옆으로 밀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돕는 것이다. 이 기능은 용골을 수직으로 길쭉하게 만들며 강화됐다. 물속에서 비행기 날개처럼 날씬하고 긴 용골에는 면마다 수압이 서로 달라진다. 이 수압 차이로 용골을 앞으로 미는 힘이 생긴다. 즉, 요트는 바람으로 추진력을 만드는 돛과 물속에서 추진력을 만드는 용골 덕분에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최고의 물길을 계산하는 전술가

경기 첫 날, 경기장 입구는 선수와 대회 관계자로 시끌벅적했다. 계류장에는 시합을 기다리는 요트가 죽 늘어서 있었다. 크기는 여러 가지였는데, 대부분 고개를 하늘로 쳐들어야 마스트 끝을 볼 수 있을 만큼 크고 멋졌다. 이 가운데 1등을 하는 팀은 분명 출발선에서부터 특별한 전략을쓸 것 같았다. 유 교수가 말한 필승 전략은 다음과 같다.

요트 경기의 승패를 가르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팀원의 기량이다. 요트를 타는 선수의 역할은 스키퍼, 전술가, 세일트리머, 견시역 등으로 나눈다. 이들이 각자 역할을 얼마나 민첩하고 정확하게 해내는지가 승패를 결정한다.

가장 빠른 ‘유효 속도’ 내는 길로

요트는 목표 지점을 향해 직진하지 않고 지그재그로 움직인다. 물론 요트가 목적지 쪽을 비껴난 방향으로 얼마나 나아갈지, 다시 몇 도만큼 방향을 바꿀지는 모두 ‘계산된 결과’다.

경기에서는 목표 지점에 가장 빨리 도착해야 한다. 그래서 전술가는 목표 지점 방향으로 움직이는 속도가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한다. 이 속도를 ‘유효 속도’라고 한다. 지그재그인 길은 겉보기와 달리 사실 목표 지점으로 가는 가장 빠른길이다. 요트를 유효 속도가 가장 빠른 길로 정확하게 움직여야 경기에서 이길 수 있다.

바다 위에서 요트의 현재 상황에 맞는 유효 속도를 매번 계산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매 상황에서 요트가 낼 수 있는 유효 속도를 정리한 도표가 도움이 된다. 이 도표는 바다에서 바람과 돛이 이루는 각도를 0°부터 180°까지 10° 단위로, 바람의 세기를 1노트(초속약 0.5m)부터 20노트까지 1노트 단위로 구분했다. 그리고 바다에서 요트가 맞닥 뜨릴 수 있는 360가지 상황에서 요트가 낼 수 있는 유효 속도를 각각 구해 알아보
기 쉽게 연결했다. 전술가는 이 도표를 참고해 어느 길로 나아갈지 판단한다.


 
고 기자, 시합에 출전하다!

경기 시작 3시간 전, 선수들은 장비를 챙기며 출항할 준비를 시작했다. 기자는 주최 측의 배려로 출발선과 결승선에서 경기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신호를 주는 배인 RC선(심판선)에 타서 경기를 볼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모 요트에 탈 선수를 구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경기 규정에 따라 요트에 최소 4명이 타야 하는데, 어느 팀의 선수가 부족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시합에 참가하게 된 기자, 끝까지 취재를 마무리할 수 있을까?

“기자님,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회 본부 위원들이 경기에 참가하게 된 기자에게 한마디씩 던졌다. 참가번호 29번 팀은 스키퍼가 세일트리머 역할을 하고, 전술가가 조종도 하는 식으로 시합을 할 예정이었다. 기자도 29번 요트에 올라탔다. 할 수 있는 건 오직 경기 시작 10분 전부터 남은 시간을 큰 소리로 외치는 일이었다.

밧줄을 당겨 돛을 펴라

요트는 달리기나 자동차 경주처럼 일렬로 기다렸다가 출발하지 않는다. 보통 경기 시작 전부터 모터를 끈 채 바람을 타고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출발선을 지난다.

드디어 RC선에 경기 시작 10분 전을 알리는 깃발이 꽂혔다. 스키퍼는 요트로 돌아야 하는 부표의 위치를 확인했고, 전술가는 바람이 강해질 거라 예측되는 장소로 뱃머리를 돌렸다. 마침내 경주가 시작됐다. 모터를 끈 요트가 얼마나 빠를까 생각했지만 큰 돛이 바람을 받아 부푼 요트는 마치 모터를 켠 것처럼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게다가 기자가 탄 요트는 앞뒤 길이가 약 12m, 높이가 약 19m였다. 그만한 요트를 앞으로 보낼만큼 큰 돛과 돛을 연결한 활대를 움직이는 일은 성인 남자에게도 버거워 보였다. 활대는 아주 빠르게 방향을 바꾸는데, 기자가 앉자마자 활대가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 갑판 위에 서서 경기 중인 요트의 모습을 찍겠다는 꿈은 선실에 난 작은 창밖으로 보이는 요트를 찍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다.

기다려라, 바람이 불 때까지

전술가가 “태킹!”을 외쳤다. 두 세일트리머는 동시에 한쪽 밧줄을 당기고 반대쪽 밧줄을 살살 풀었다. 그러자 돛은 순식간에 반대로 부풀었고 요트는 방향을 바꿨다. 태킹은 바람이 요트의 앞쪽에서 불 때 요트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또는 그 반대로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어느새 반환점이 가까워졌다.

반환점을 향해 갈 때 바람이 요트의 앞에서 불었다면, 반환점을 돈 뒤에는 바람이 요트의 뒤쪽에서 부는 상황이 된다. 좀 더 수월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결승선까지 한 바퀴가 남은 시점에 반환점에서 바람이 사라진 것이다. 우리 요트는 바람이 불 때까지 조금도 나아갈 수 없었다. 진작 반환점을 지나간 팀들이 저 멀리서 돛을 탱탱하게 부풀린 채 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전술가의 예측 능력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기자의 데뷔 경기는 약 한 시간 반 만에 끝이 났다. 바람의 힘, 용골의 묵직함, 바람을 가르는 선수의 전략을 눈으로 보고 느낀 경험이었다. 경험을 토대로 말하건대 요트 설계 부터 경기 전략까지, 요트 경기는 여느 스포츠보다도 과학적인 스포츠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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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수학동아 정보

  • 고은영 기자
  • 도움

    유재훈 목포대 해양시스템공학과 교수
  • 도움

    2015 다도해국제요트대회
  • 도움

    세한대학교 산학협력단
  • 기타

    요트의 과학(미야타 히데아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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