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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무엇이든 붙여 드립니다~!

유레카의 순간


 
진짜 아끼던 컵 손잡이가 깨졌을 때, 지갑이 찢어졌을 때, 우린 모두 ‘이것’을 찾는다. ‘이것’만 있으면 감쪽같이 원래대로 물건의 상태를 돌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플라스틱을 연구하던 화학자로부터 우연히 탄생하게 된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열이나 압력을 주지 않았는데, 웬만한 건 쩍쩍 달라붙는다. 투명 플라스틱을 개발하는 데 있어 모든 것에 달라붙는 이 시아노아크릴레이트는 정말 골칫거리다. 이 물질은 매우 끈적거리는 것은 물론, 물이 아주 조금만 닿아도 금방 굳어버린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간단히 메모를 남겼다.
‘시아노아크릴레이트, 물과 만나면 굳는 성질 있음.’
메모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다음, 언젠간 다시 보겠노라고 다짐했다.


미국의 화학자 해리 쿠버가 처음 투명 플라스틱에 관심을 보인 건 1942년의 일이었다.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이어서 쿠버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전쟁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쿠버는 그중 정밀 사격 조준기에 사용할 선명한 투명 플라스틱을 개발하고 있었다. 이때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해 고른 화합물 중 하나가 바로 시아노아크릴레이트였다. 그런데 시아노아크릴레이트는 유독 여기저기 잘 달라붙어서, 플라스틱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쿠버는 곧바로 이 물질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시아노아크릴레이트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없었다. 논문은커녕 물질의 성질을 정리해 놓은 자료도 없었다. 호기심은 날로 커졌지만, 전쟁이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하던 일을 멈출 순 없었다. 시아노아크릴레이트에 대한 생각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 1951년, 쿠버는 이스트만코닥사에서 투명 플라스틱 개발 책임자로 일하게 됐다. 이번에는 제트 비행기의 투명 덮개로 사용할 플라스틱을 만드는 일이었다. 비행기 부품이므로 열이나 압력에 잘 견디는 물질을 써야 했다. 이미 시중에는 폴리아크릴레이트라는 성분으로 만들어진 덮개가 있었다. 쿠버는 이왕이면 종류가 다른 아크릴레이트 물질로 새로운 덮개를 만들고 싶었다. 본격적으로 새로운 물질을 찾기 시작했다.

우연히 탄생한 강력 접착제

쿠버는 함께 일하던 조수 프레드 조이너에게 몇 가지 후보 물질을 알려 주고, 각 물질을 분석하도록 했다. 꼼꼼한 성격의 조이너는 물질의 모든 특성을 빠짐없이 정리했다.

조이너는 특히 ‘굴절 지수’에 집중했다. 굴절 지수는 투명한 물질을 분석할 때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다. 굴절 지수란 빛이 물질을 얼마나 빨리 통과하느냐를 측정해 나타낸 값이다. 이 지수는 특히 덮개나 창으로 많이 쓰는 투명 플라스틱을 개발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값에 따라 사물을 왜곡하는 정도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유력한 후보로 떠오른 물질은 다름 아닌 시아노아크릴레이트였다. 조이너는 분광기★로 시아노아크릴레이트의 굴절 지수를 측정했다. 두 분광기 사이에 시아노아크릴레이트를 넣고 굴절 지수를 측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아노아크릴레이트의 지나친 붙임성(?)이 다시 문제가 됐다. 시아노아크릴레이트가 유리로 만들어진 두 분광기를 붙여 하나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조이너는 크게 당황했고, 꽤 비싼 기계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됐다. 조이너는 혼날 각오를 하고 연구 책임자인 쿠버에게 자신의 실수를 고백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쿠버는 조이너를 크게 다그치지 않고 돌려보냈다. 그러다 쿠버는 9년 전 책상 위로 던졌던 메모를 생각해 냈고, 시아노아크릴레이트를 처음 알게 됐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분광기 두 개를 하나로 만들어 버린 시아노아크릴레이트를 작은 용기에 옮겨 담았다. 그리고는 손에 잡히는대로 모든 물질을 붙여 보기 시작했다. 유리, 고무, 금속, 종이, 플라스틱 등 못 붙이는 게 없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분광기★ 물질이 방출하거나 흡수하는 빛을 분석하는 도구다.

범죄 수사, 의학 분야에도 효자 노릇

전쟁이 끝난 지 10년. 쿠버에겐 여유가 있었다. 플라스틱 개발을 뒤로 미루고 사람들에게 접착제를 소개하기로 결심했다.

시아노아크릴레이트는 다른 물질의 전자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특히 물에 들어 있는 전자와 쉽게 만나 딱딱해졌다. 모든 물체의 표면에는 수분층이 있기 때문에 쿠버는 이 물질을 이용하면 서로 다른 두 물체를 쉽게 붙일 수 있다고 확신했다.

1958년 이스트만코닥사는 쿠버의 이 특별한 화합물에 ‘이스트만910’이라는 이름을 붙여 제품으로 출시했다. 사용하는 사람이 1부터 초를 세기 시작해, 10초면 모든 것이 달라붙어서 붙은 이름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떨어진 컵 손잡이도, 밑창이 떨어진 구두도 이 접착제만 있으면 10초 안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탄생한 접착제는 화석을 발견하는 역사의 현장에서 조각난 뼈를 붙이기도 하고, 범죄 현장에서는 지문 감식에도 쓰이기 시작했다.

의학 분야로도 진출했다. 쿠버는 시아노아크릴레이트를 분무기나 스프레이에 넣어 뿌려서 사용할 수 있게 개발했다. 실제로 이것을 베트남 전쟁 중에 미군 부상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했다. 전문 의료진을 만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는 전쟁터에서 찢어진 상처 부위에 뿌려 피를 빨리 멈추게 하는 역할을 했다. 오늘날 시아노아크릴레이트 성분으로 만든 의학용 접착제는 장기나 구조물, 조직을 간단히 붙일 때 사용하고 있다.
 

분자+분자=새로운 분자?!

접착제는 주로 두 물체를 붙이는 데 사용한다. 눈으로 볼 땐 매끄러워 보여도 각 물체의 분자를 살펴보면 대부분 울퉁불퉁하다. 접착제는 표면의 울퉁불퉁한 틈으로 스며들어가 두 물체를 단단히 묶어준다. 점퍼나 바지에 달린 지퍼를 생각하면 쉽다.

시아노아크릴레이트는 상온에서 액체 상태다. 액체인 시아노아크릴레이트가 공기 중에서 수분과 만나면 고체 상태의 폴리시아노아크릴레이트가 된다. 그래서 사용 전에는 접착제가 액체 상태이지만, 사용 후에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으면 공기 중의 수분과 만나 고체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화학의 묘미는 분자나 원자를 붙여 새로운 분자를 만드는 데 있다. 실제로 시아노아크릴레이트에 메틸기(탄소 하나와 수소 세 개로 이뤄진 구조)가 붙으면 메틸시아노아크릴레이트가 된다. 만약 메틸기 자리에 다른 원소로 이뤄진 분자가 붙으면 접착제의 성능이 달라질 수 있다. 결합된 분자에 따라 접착제의 지속 시간이나 강도, 내구성이 달라진다.

화학을 연구하는 수학자들은 분자 구조의 수학적인 성질을 연구한다. 서로 다른 분자가 결합하는 위치에 따라 만들어지는 분자의 경우의 수를 헤아리기도 하고, 구조의 대칭성을 수학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수학자 에바리스트 갈루아가 만든 ‘군’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분자를 분류하는 것도 일반적이다.

강력 접착제는 일상생활에서는 물론, 산업, 공업, 학문을 넘어 범죄 수사와 의료 분야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이런 활약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분자의 무한한 가능성 덕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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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수학동아 정보

  • 염지현 기자
  • 사진

    포토파크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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