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같은 축덕이야 TV로 봐도 경기가 재밌지만, 축알못에게는 빨리 채널을 돌리고 싶은 지루한 시간일 겁니다. 그런데 평소 축구가 싫다고 말하는 사람도 경기장에 가면 재밌답니다. 그건 축구장을 지을 때 수학을 이용해서가 아닐까요?
한 번이라도 축구장에 가서 축구 경기를 본적이 있나요? 카메라를 통해 보는 경기와 실제 경기장
에서 보는 경기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걸 모두 공감하실 겁니다. 무엇이 차이를 만드는 걸까요?
가장 큰 차이는 뭐니 뭐니 해도 응원입니다. 몇 만명의 관중이 하나 돼 응원하는 열기 속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같이 흥분하며, 축구의 매력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렇기에 경기장의 최대 수용 인원은 그 팀의 인기의 척도이자 그 자체로 경기장의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세계 최고의 축구클럽 중 하나인 FC 바르셀로나는 명성에 걸맞게 유럽 최대 규모의 홈구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캄 노우는 9만 9354명이 함께 경기를 보며 울고 웃을 수 있는 경기장이지요. 유럽축구연맹(UEFA)이 서서 경기를 관람하는 입석을 제한하기 전까진 무려 12만 명이 동시에 축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FC 바르셀로나와 유벤투스 FC의 1985/86 시즌 유러피언 컵(챔피언스리그 전신) 8강 경기는 12만 명이 함께 즐겼답니다.
경기장에도 등급이 있다
관람 좌석만 많으면 좋은 경기장일까요?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수용 인원이 많다는 건 그만큼 규모가 크다는 뜻입니다. 축구장을 운영하는 데는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경기장을 찾는 팬이 많은 인기 팀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축구팀을 운영하는 비용의 상당 부분이 경기장 관리에 들어갑니다.
현재 아스날 FC의 아르센 벵거 감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는데요, 벵거 감독의 좋은 평가 중 하나는 아스날 FC가 새로운 경기장을 짓는 동안에도 상위권을 유지했다는 겁니다. 경기장을 새로 지으면 당연히 비용이 발생하겠죠. 워낙 막대한 금액이 들다 보니 선수를 영입하는 데 돈을 쓰기가 어렵습니다. 잘하는 선수를 다른 팀에 비싸게 팔기도 하지요. 그러다보니 팀의 순위가 곤두박질치는 일이 빈번합니다. 결국 큰 규모의 경기장을 갖는 건 모든 축구 구단의 목표이자 이루기 쉽지 않은 난관입니다.
하지만 규모가 전부는 아닙니다. 한국에서 흔히 종합운동장으로 불리는 다목적 경기장은 상대적으로 더 크고 관중석이 많지만, 축구를 보기엔 축구 전용구장보다 훨씬 불편합니다. 축구 전용구장에 비해 관중석에서 그라운드가 너무 멀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기장은 규모는 더 클지 몰라도 더 좋은 ‘축구장’ 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애매하지요.
유럽축구연맹은 유럽에 있는 축구장의 등급을 카테고리1부터 카테고리4까지 나눠 구분하고 있습니다. 가장 높은 등급인 카테고리4에 해당하는 경기장만이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 플레이 1오프 이상의 경기를 치를 수 있습니다. 의외로 카테고리4에 속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수용 인원은 8000명밖에 되지 않는데요, 관객의 편의와 경기의 원활한 진행, 방송 중계까지 고려해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경기장 안 카메라의 성능과 방송 중계진 지정석 수 같은 세세한 내용까지 평가 기준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6만 석 이하의 경기장에서 치러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경기장 등급뿐만 아니라 유럽축구연맹의 엄격한 심사 또한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승전을 치른 경기장은 그것만으로 세계 최고라는 것을 인증하게 되지요.
경기장 안전, 수학 손에 달렸다!
적게는 몇천 명, 많게는 몇만 명이 열광의 도가니 속에서 경기를 보는 곳인 만큼 축구장은 튼튼수학동아하게 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혹여나 관중의 무게와 움직임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경우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참사가 일어날 테니까요. 하지만 막대한 건축 비용을 고려하면 한정된 공간에 최대한 많은 관중을 수용하고 싶은 욕심도 있겠죠.
특히 네모난 그라운드를 타원 모양의 관중석으로 둘러싸려면 관중석을 좁고 가파르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안 그러면 뒤쪽에 앉은 관중이 경기장에서 너무 멀어질 테니까요. 그렇다고 무턱대고 가파르게 만들면 사고가 나겠죠?
안전하면서도 최대한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경기장을 만들기 위해 ‘수학적 최적화’ 기법이 쓰이고 있습니다. 한정된 자원으로 조건을 만족하는 최적의 값을 찾아내는 겁니다. 예를 들어 9만 명을 수용하는 경기장 안에 화장실을 만들려고 합니다. 몇 개를 어디에 만들어야 불편하지 않을까요?
비용을 최소화하고 싶다면 어디에 설치해야 관중의 이동 경로가 짧아지고, 화장실 안에 변기 수가 몇 개여야 화장실의 혼잡도를 줄일 수 있는지 계산해야 합니다. 이 모든 계산이 수학적 최적화랍니다. 따라서 건설사는 경기장의 경사와 시야, 음향 효과, 관중의 이동 경로, 비상시 대피 방법 등 수많은 요소를 고려해 가진 비용으로 최적의 효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건축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이 한정된 시간이나 자원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만큼 사회 곳곳에서 수학적 최적화가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축구장에 가서 경기를 볼 기회가 생긴다면 관중석의 경사도는 얼마인지, 좌석을 더 늘릴 방법은 없는지, 시야를 가리는 좌석은 없는지 따져보세요. 경기만큼이나 재밌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