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다녀온 뒤로 나는 웨어러블 헬스케어 기기를 몸에 지니고 다닌다. 이 기기는 실시간으로 심박수, 혈압, 호흡을 측정할 뿐 아니라 하루 활동량과 식사량, 뇌파도 점검한다. 측정 결과는 주치의 선생님에게 전달된다. 약을 먹어야 할 시간에 약물이 확인되지 않거나 몸에 이상이 생기면 바로 의사 선생님과 연결된다. 원격 진료를 받고 나면 처방 결과는 집에서 가까운 병원이나 약국으로 전달되고, 나는 시기별로 건강관리법을 안내 받는다.
유전자에 새겨진 나의 건강 정보
사람은 각자 고유한 유전자 DNA 염기서열을 갖고 태어난다. 염기서열은 유전자의 성질을 결정짓는 일종의 코드 배열로, 이 배열에 따라 건강에 관련된 신체적 특성이 달라진다. 따라서 유전체 정보를 분석하면 개인별로 걸리기 쉬운 질병을 미리 알 수 있고, 평소에 대비할 수 있다. 어떤 유전자와 어떤 질병이 연관돼 있는지는 실제 환자의 의료 기록과 유전 정보가 담긴 빅데이터에서 얻는다.
30억 개의 DNA 염기로 이뤄져 있는 유전체 염기서열을 정확히 분석하려면 생명정보 분석 소프트웨어(SW)가 필요하다. 유전자 비교·검색에 널리 쓰이는 SW는 ‘BLAST’다. 유전체 분석에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와 하버드대의 ‘GATK’가 대표적이다. 대부분은 ‘파이썬’이나 ‘펄’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로 목적에 맞게끔 SW를 직접 개발해 사용한다.
엄청난 양의 의료 빅데이터 속에서 유용한 정보만을 골라내는 ‘데이터마이닝’ SW도 중요하다. 수천 명의 유전 정보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최소 100만 GB(기가바이트)의 데이터를 동시에 분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SAS의 ‘엔터프라이즈 마이너’, 오픈 소스 기반의 ‘R’을 활용할 수 있다.
SW는 1% 수준의 유전자 돌연변이도 정확하게 찾아낸다. 그래서 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 때문에 발생하는 질병은 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보통 이 대상이 되는 질병은 암이다. 미국의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유방암 고위험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지난해 유방 제거 수술을 받기도 했다. BRCA1/2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경우, 최고 87% 확률로 유방암이 발생한다. 서정선 서울대 의과대학 유전체연구소장은 “질병에 걸린 뒤 드는 치료비보다 질병 예방을 위한 의료비가 더 적다”며, “환자들은 질병 예측으로 건강을 지킬 뿐만 아니라 의료비도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병에 걸린 상태에서도 유전체 정보는 유용하게 쓰인다. 환자 개인의 유전체 정보에 맞춰 부작용이 적은 약물을 처방하고, 효과가 좋은 맞춤형 치료법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진에 따른 의료 사고도 줄일 수 있다. 수술 방법도 환자에 맞게 최적화된다. 의사들은 수술 전에 3D SW로 미리 시뮬레이션해 보기도 하고, 환자의 신체 구조에 딱 맞는 인공뼈를 만들기도 한다.
SW는 미래 의학의 언어
이미 미국 메모리얼 암병원이나 엠디앤더슨 암센터에서는 IBM의 ‘왓슨’이라는 SW를 실제 의료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형 종합 병원을 중심으로 병원과 IT회사가 손을 잡고 차세대 맞춤의학을 위해 관련 SW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박웅양 삼성서울병원 삼성유전체연구소장은 “이제 SW는 의료 분야에서 쓰는 또 하나의 중요한 언어”라며, “이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미래 의료 분야의 리더”라고 말했다. 서정선 교수는 “SW를 다루는 능력보다는 SW를 만드는 알고리즘을 이해할 수 있어야 의료 상황에 맞게 필요한 시스템을 디자인할 수 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 능력”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