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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김민형 옥스퍼드대 교수의 수학산책 세계수(?)학자대회를 꿈꾸다

수학 산책


 
이번 달 8월 13일부터 21일까지 서울에서 세계수학자대회가 열린다. 대회를 앞두고 수학자들의 소셜 네트워크, 그리고 네트워크의 사회적 시공간 속에서의 위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공저거리 계산기


미국수학회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 ‘매스사이넷(Math-SciNet)’에는 일종의 수학계 사회학 정도를 잴 수 있는 도구가 있다. 그것은 ‘공저거리 계산기’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검색엔진이다. 공저거리란 무엇일까? 이 개념은 예로 설명하는 것이 쉽다.

학자 두 명이 논문이나 책을 함께 쓴(공저) 일이 있으면 두 사람 사이의 공저거리는 1이다. 가령 고등과학원의 김정한 교수는 국제수학연맹의 전 회장인 라스로 로바시 교수와 14년 전에 논문을 같이 썼기 때문에 김정한과 로바시 사이의 공저거리는 1이다. 김 교수는 수학연맹의 현직 회장인 잉그리드 도브시와는 공저자가 아니지만, 두 사람 다 미시간대 제프리 라가리아스와 공저한 적이 있다. 따라서 김정한과 도브시 사이의 공저거리는 2이다.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일반인 사이의 ‘친분거리’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까 친구와의 거리는 1, 친구의 친구와의 거리는 2, 이런 방법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 사이의 친분거리 측정은 어려울 것이다. 친구의 개념 자체가 조금 모호하고, 누가 누구의 친구인지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학자 사이의 공저거리 계산이 가능한 것은 미국수학회에서 출판하는 ‘수학 평론’이라는 저널 때문이다. 이 간행물은 1940년에 창간된 이후에 전세계에서 나오는 모든 수학 논문과 저서를 시기에 맞게 간략하게나마 한 번씩 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매스사이넷을 이용해서 검색할 수 있다. 가령 앤드루 와일스를 검색하면 와일스 교수가 쓴 논문의 목록이 먼저 나온다. 그런 다음 논문 하나의 제목을 선택하면, 그 논문의 내용과 때로는 중요성에 대한 몇 문단의 설명도 나온다. 이런 종류의 수학논문 데이터베이스가 갖추어졌기 때문에 공저거리 측정도 비교적 쉽다. 이 도구를 이용하면 어느 수학자라도 자기가 속한 학문적 네트워크의 구조를 알아보는 것이 가능하다.

좁은 세상

계산기로 실험해 보면 대부분 수학자들의 공저거리 값이 상당히 작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연구 분야가 상당히 다양한데도 그렇다. 실제로 올해 서울에서 열리는 2014 세계수학자대회의 한국인 연사들의 분야를 조사해 보면, 강석진-대수학, 김병한-논리학, 황준묵-복소기하학, 김범식-대수기하학, 이기암-해석학, 하승열-수리물리학으로 그 종류가 다양하다. 이 사람들 사이의 공저거리를 조사해 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강석진 - 김범식 3, 강석진 - 김병한 5, 강석진 - 황준묵 4, 강석진 - 이기암 4, 강석진 - 하승열 5
김병한 - 김범식 5, 김병한 - 황준묵 4, 김병한 - 이기암 6, 김병한 - 하승열 6, 김범식 - 황준묵 2
김범식 - 이기암 5, 김범식 - 하승열 4, 황준묵 - 이기암 4, 황준묵 - 하승열 5, 이기암 - 하승열 3


평균 공저거리를 계산해 보면 약 4.33이다. 그리고 김범식-황준묵, 혹은 하승열-이기암처럼 그나마 분야가 비슷한 사람들 사이의 공저거리 값이 더 작다. 그렇지만 논리학과 해석학은 서로 상당히 다른 분야인데도 김병한-이기암 공저거리는 6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 연사들 중에 수론을 하는 사람은 없지만, 이 연사들과 수론의 대가인 앤드루 와일스 사이의 거리도 검색해 보았다.

와일스 - 강석진 4, 와일스 - 김병한 5, 와일스 - 황준묵 4, 와일스 - 김범식 3, 와일스 - 이기암 4, 와일스 - 하승열 4

역시 분야가 꽤 다른데도 와일스와의 평균 공저거리는 약 4이다. 더군다나 지리적으로도 먼 와일스와의 공저거리가 대체로 작다. 왜일까? 이것이 바로 네트워크 이론에 나타나는 ‘허브’ 현상이다. 명성이 높은 사람들은 쉽게 여러 사람과 연결되는 허브를 이뤄, 서로 멀리 있더라도 허브를 통해서 연결된다. 한 예로 와일스 교수와 이기암 교수 사이를 연결하는 ‘공저 경로’를 조사해 보았다. 와일스는 지도교수인 캠브리지대의 존 코츠와 공저를 했고(1), 코츠는 하버드대의 기하학자 싱퉁 야우(1982년 필즈상 수상자)와 공저를 했다(2). 그리고 야우는 푸앙카레 추측 해결에 기여한 리차드 해밀턴과 공저를 했고(3), 해밀턴은 이기암 교수와 공저(4)를 했다.

이런 허브들의 역할 때문에 실제 세상에 나타나는 많은 네트워크 안에서의 각종 거리가 의외로 작아서 ‘좁은 세상’을 이룬다는 이론이 복잡계 과학에서 주장되기도 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두 명 사이의 친분거리가 6 남짓이라는 추측도 있다.

예를 들자면 나는 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장인 박형주 교수와 오바마 대통령 사이의 친분거리가 4 이하라고 비교적 자신 있게 추측한다. ‘친구’라는 개념이 객관적으로 정의되어 있는 페이스북 네트워크의 경우에는 전세계 회원의 평균 친분거리가 4.74라고 2011년에 페이스북 데이터팀이 발표하기도 했다.

페이스북 친구를 맺는 것에 비해 논문을 같이 쓰는 일은 상당히 어려울 것 같은데도,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다양한 분야의 여러 수학자가 쉽게 연결된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세계 수학계의 통일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타 학문에 비해서 수학자들은 국경을 초월한 의사소통을 쉽게 즐기고, 수학의 중심지에서는 세계 어디로부터든지 뛰어난 수학자를 끌어모으는 일이 흔하다. 이런 취지에서 세계수학자대회는 1897년부터 계속되어 왔고, 특히 젊은 수학자에게는 수학계 전체의 동향을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겨진다.

세계 학문네트워크와 수학자대회

수학자가 아닌 사람들과 수학자 사이도 공저거리로 측정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의외로 많은 학자들이 수리과학과 관련된 논문을 공저해서 수학논문 데이터베이스에 이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임의로 검색해 본 결과 아인슈타인, 파인만, 맥스웰 등의 물리학자가 나왔고, 이것은 비교적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생물학자 존 할대인, 경제학자 아마타야 센, 철학자 넬슨 굿만,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 심리학자 장 피아제도 수학논문 데이터베이스에 들어 있다는 사실에는 수학자들도 조금 놀랄 것이다. 이 유명인사 들로부터 박형주 교수까지 공저거리를 조사해 본 결과는 오른쪽 표와 같다.

박형주 - 아인슈타인 4, 박형주 - 맥스웰 6, 박형주 - 파인만 7, 박형주 - 할데인 7
박형주 - 센 6, 박형주 - 굿만 7, 박형주 - 촘스키 5, 박형주 - 피아제 6


보다시피 모두 얼마 되지 않는 거리다. 이런 연결성을 설명할 만한 예로 촘스키로부터 박형주 교수까지의 경로를 구체적으로 조사해 보았다. 촘스키는 20세기 후반에 언어학을 과학으로 만드는 중대한 작업의 중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철학, 컴퓨터 공학, 인지과학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현대 학계의 거물이다.

그는 언어라는 것 자체를 몇 종류의 대수적 체계로 모델링을 한 후에, 언어의 사용을 컴퓨터의 계산 과정과 비슷하게 분석했다. 그 관점에서 나온 주요 논문 중에 하나가 마셀 쉿젠버거와 함께 1963년에 쓴 ‘문맥 자유언어의 대수학’이다. 그 논문을 들여다보면 전반적으로 추상 대수학 논문과 별 차이가 없음을 곧 발견할 수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쉿젠버거가 일생을 파리에서 수학을 가르친 수학자로, 대수학에도 업적이 많기 때문이다. 그 결과 촘스키의 이론에 핵심적인 기여를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수학자인 쉿젠버거로부터 계산 대수를 전공한 박 교수로의 연결은 비교적 쉽다.

순수수학의 축제로 시작했던 세계수학자대회도 지난 몇백 년 동안 시야를 점점 넓혀왔다. 강연분야 중에 수리물리와 통계학은 당연히 포함돼 있고, 컴퓨터과학과 수치해석, 제어이론, 최적화이론 등 전통적인 수학의 경계를 뚫고 나가는 주제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순수수학의 업적을 인정하는 필즈상뿐 아니라 컴퓨터공학의 정보과학상인 네반린나상, 그리고 뛰어난 응용수학 업적을 기리는 가우스상 수여도 대회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가우스상은 두 번 수여됐다. 첫 번째는 기요시 이토로, 금융수학의 창시자로 여겨진다. 두 번째인 이브 마이어는 신호처리의 핵심 도구인 ‘잔물결 기저이론’을 만든 사람이다. 그뿐인가. 1990년에는 이론 물리학자인 에드워드 위튼이 필즈상 수상자에 포함됐다. 이렇듯이 세계 수학계는 학문과 과학 기술의 조류를 계속 반영하면서 진화해왔다. 정량적이고 구조적인 세계관이 문화 속에 정착되면서 언젠가는 ‘세계수학자대회’가 ‘세계학자대회’와 구별되지 않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상상해 보기도 한다.

 

2014년 08월 수학동아 정보

  • 김민형 교수
  • 진행

    장경아 기자
  • 정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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