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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계 라이징 스타를 만나다

ICM 특별인터뷰 ➊


 

자신이 아는 수학자를 말해 보라고 하면 보통 가우스나 페르마처럼 만날 수 없는 역사 속 수학자들만 떠오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수학자들이 많이 있다. 필즈상 수상자의 논문에 인용되고, 미국의 유명대학들이 우리나라의 젊은 수학자를 모시기 위해 경쟁을 벌일 정도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에 <수학동아>에서는 한국 수학계를 이끌어 가고 있는 두 명의 젊은 수학자를 만나 봤다.
 


수학 꿈나무에서 수학자로!
신석우 교수

매년 7월이면 한국 수학계에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나가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런데 이런 수학 꿈나무들은 20년 뒤 어떤 모습일까? 1995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만점을 받고 금메달을 따서 화제가 됐던 신석우 교수를 직접 만나 봤다.

“수학 천재요? 전 수학을 좋아할 뿐이에요”


신석우 교수가 한국 수학계의 주목을 받게 된 건 1995년 7월이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여섯 문제를 모두 맞혀 만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기 때문이다. 이후 신 교수에게는 수학 천재라는 호칭이 따라 다녔다.

“수학 천재요? 당치도 않아요. ‘수학 교수는 수학 천재다’라고 하면 천재겠죠. 하지만 아니잖아요? 제가 생각했을 때 천재는 새로운 이론에 대해 빠르게 이해하고 자신의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전 새로운 이론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 몰라요. 그래서 제 주위에 있는 천재를 보면서 몹시 부러워한답니다.

제가 학창시절 공부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중·고등학교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것이 좋은 수학자가 되는 자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중·고등학교 시절에 이어 대학교 때까지 공부를 잘했던 친구가 대학원에 와서 헤매고, 결국 잘 되지 못한 경우를 봤어요. 성공한 수학자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강한 정신력과 일관성이에요. 즉 시험을 못 봤더라도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연구를 꾸준히 하는 사람이죠. 누가 봐도 인정하는 엄청난 천재가 아닌 이상, 성공 여부는 수학을 얼마나 많이 좋아하고 열심히 하느냐에 달린 것 같아요.”

신 교수는 어린 시절 수학적 재능을 인정받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수학경시대회를 준비하면서 현직 수학교사들로부터 고등학교 수학을 배웠다. 한 마디로 한국 수학계가 키운 수학 꿈나무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수학자를 꿈꾸지 않았었다고 한다.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무렵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수학 공부를 평생 직업으로 삼자고 결심했다.

“나보다 수학 잘하는 친구, 경쟁자 아닌 공동연구자예요”

신석우 교수의 연구 분야는 ‘랭글란즈 프로그램’으로, 정수론의 대상과 해석학의 대상에 징검다리를 놓아 대응관계를 연구한다.

“정보에는 항상 비대칭성이 있어요. A와 B 이렇게 두 사람이 모든 분야에 대해서 아는 정도가 같을 순 없거든요. 한 사람은 스포츠에 대해 많이 알고, 다른 한 사람은 패션에 대해 많이 알죠. 정수론과 해석학에서도 그래요. 따라서 둘의 연결 관계를 알고 있다면 한쪽에서 어려워 하는 문제를 다른 쪽에서 쉬운 문제로 바꿔 풀 수도 있죠.

랭글란즈 프로그램은 두 학문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기 때문에 두 분야를 어느 정도 잘 알아야 해요. 그런데 둘 다 잘하긴 매우 어렵잖아요. 그래서 공동연구를 많이 한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힘을 합쳐 함께 연구하죠. 사실 독학을 해서 혼자 연구를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러면 시간이 훨씬 많이 걸려요. 그리고 전문가와 함께 연구하면서 알게 되는 것과 배움의 양이 다르거든요. 수학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공동연구가 훨씬 효과적이에요.”

랭글란즈 프로그램은 지난 2010년 인도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필즈상을 수상한 응오바오쩌우 교수의 연구 분야다. 응오 교수는 랭글란즈 프로그램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정리를 증명해 수상의 기쁨을 누렸는데, 이 논문에는 신 교수의 논문도 인용됐다.

“응오 교수와는 연구 분야가 같기 때문에 가끔 만나서 서로의 아이디어도 공유하고, 사담도 나눠요. 함께 공동연구를 한 적은 아직 없어요. 하지만 앞으로 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응오 교수가 인용한 논문은 제가 대학원을 갓 졸업한 뒤 쓴 것이었는데, 사실 이 논문을 쓰고 난 뒤 슬럼프가 왔어요. 앞으로 이보다 더 좋은 논문을 써야 하는데, 어떤 문제에 골라 풀어야 할지 몰라 방황한 거죠. 하지만 조급해 하지 않고 진득하게 이것저것 공부한 끝에 제게 맞는 문제를 찾을 수 있었죠. 사실 수학자에게 자신이 풀 수 있는 문제를 잘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한 능력이거든요.”

수학 꿈나무에서 이제 수학자로서 활약하고 있는 신 교수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신 교수가 청소년에게 전하는 솔직담백한 이야기

수학 공부 잘하는 방법이 있나요?


수학이 재미있으면 잘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수학 문제를 푸는 게 항상 재미있을 리가 없잖아요. 지루하고 힘들죠.
예를 들어 피아노 연주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 봐요. 이 사람도 피아노를 처음 배울 때는 재미없었을 거예요. 그러다 자신이 원하는 곡을 자유자재로 치게 됐을 때 재미를 느꼈겠죠. 수학도 마찬가지예요. 우선은 재미없어도 열심히 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그러다 어느 경지에 도달해서 어려운 문제도 척척 풀게 되면 재미를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수학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어요. 바로 수학 퍼즐을 푸는 거예요. 다양한 수학 퍼즐을 풀면서 문제를 푸는 즐거움을 느낀 뒤 수학을 공부하면 수학의 재미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앞으로 교수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제가 우리나라와 미국 양쪽에서 수학 공부를 해 보니, 확실히 우리나라에는 협력보다는 제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연구를 하는 거예요. 사실 아주 어릴 때는 저 혼자 아주 훌륭한 업적을 내서 멋지게 발표하는 게 꿈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 영예보다 수학의 발전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다시 말해 공동연구를 통해 성과를 내고, 제 아이디어가 또 다른 수학 연구의 바탕이 됐으면 하는 거죠.

수학자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제가 우리나라와 미국 양쪽에서 수학 공부를 해 보니, 확실히 우리나라에는 협력보다는 경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수학을 좋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결국 내가 다른 친구보다 얼마나 잘하느냐 못하느냐로 평가 받거든요. 저는 이런 풍토에서 조금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어요. 수학자로서의 삶을 살다 보면 나보다 잘하는 친구는 공동 연구의 대상이거든요. 물론 학창시절에는 공동연구라는 것이 불가능하죠.
하지만 그 친구와 함께 공부하며 모르는 것에 대해 물어 볼 수는 있잖아요. 잘하는 친구를 경쟁상대로 여겨서 좌절하거나 기죽지 말고, 나와 협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시인을 꿈꾸던 아이, 수학자가 되다!
허준이 박사

지난 2012년 2월, 세계 수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로 손꼽히는 미국수학회지에 이례적인 논문 한 편이 실렸다. 아직 학위도 받지 않은 박사과정 학생이 단독으로 쓴 논문이 게재된 것이다. 미국수학회지는 베테랑 수학자들도 논문을 발표하기 어려운 학술지다. 그때부터 이 대학원생은 세계 수학계의 주목을 받아 세계 곳곳에서 초청강연을 하게 된다. 마치 신데렐라 같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나라의 수학자 허준이 박사다. 현재 미국 뉴저지 주에 머물고 있는 그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교수들 앞에서 강의하는 대학원생?


<수학동아>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막 미국 뉴저지 주 프린스턴으로 옮겨와 이삿짐을 풀었답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존 폰 노이만 등 위대한 학자들이 연구했던 고등연구소에서 공부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레네요.

어떤 연구를 했길래 세계 곳곳의 수학자들 앞에서 강연을 하게 됐는지 궁금하다고요? 저는 ‘대수다양체’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대수다양체는 다항식이 만들어내는 기하학적인 대상이에요. 예를 들자면, 원은 $x²+y²$=1이라는 다항식이 만들어내는 대수다양체이지요. 저는 대수다양체에 존재하는 ‘특이점’이라는 구조가 전체적인 형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여기서 특이점은 쉽게 말해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을 말해요.

대수다양체를 연구하면서 1970년대에 제기된 뒤 그때까지 풀리지 않았던 ‘로타의 추측’도 증명할 수 있었어요. 로타의 추측이란 미국 수학자 지안-카를로 로타가 제안한 것으로, 모든 그래프의 특성다항식들이 어떤 보편적인 부등식을 만족한다는 내용이에요. 서울대 재학 시절 필즈상 수상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님께 대수다양체와 그 특이점들에 대해서 배웠던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어렴풋이 제가 공부한 분야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그 증명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특히 특이점이 무한히 많을 수 있다는 점이 문제를 어렵게 했지요. 그래서 저는 필즈상 수상자인 미국 수학자 존 밀너가 특이점이 하나일 경우를 자세히 분석하는 데 사용한 방법에서 많은 힌트를 얻었어요. 시를 좋아해서 학창시절에 글을 많이 써 보았던 것도 논문을 쓰는 데 큰 힘이 됐어요.

꿈을 향해, 느려도 황소걸음으로!

저는 다른 수학자들을 만나면 그들이 생각하는 방법을 며칠씩 흉내내며 살아보기도 해요. 이렇게 뛰어난 사람들로부터 배우려고 애쓰는 이유는 제가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 중간 정도의 성적을 받는 학생이었고, 수식과 기호보다는 그림이나 시를 좋아했습니다. 수학경시대회에 출전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긴 했지만 제가 출전했던 적은 없었어요. 오히려 경시대회를 준비하는 학원에 다니려다가 “지금 준비하기에는 늦었다”는 대답을 듣기도 했답니다.

저는 20대 중반이 돼서야 수학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수학자로서는 진로 선택이 늦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시인이 되고 싶어서 학교를 중퇴하고 시 쓰기에 몰두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시 쓰기에 큰 재능이 있는 것 같지 않아서 과학 기자 같은 다른 직업을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결국 마음을 잡고 대학에 입학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수학에 큰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어요. 막연하게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싶다는 갈망을 좇아 물리학과 천문학, 생물학, 철학 등을 공부하면서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했지요. 하지만 이런 분야들을 통해 다양한 수학을 접하게 되면서 수학의 아름다움을 알게 됐어요. 이전까지는 수학이 무엇인가를 논리로 증명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논리는 수학의 한 부분일 뿐이고 그 너머에 거대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면서 수학의 매력에 빠지게 됐답니다.

<수학동아> 독자 여러분도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저처럼 좋아하는 일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 관심이 가는 것을 하면서 얼마 동안만이라도 그것에 푹 빠져서 몰두해 보세요. 그러면 분명히 그 분야의 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런 다양한 경험들이 나중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도움이 된답니다. 글쓰기 연습이 수학 연구에 도움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2014년 08월 수학동아 정보

  • 조가현(gahyun@donga.com) 기자
  • 최영준(jxabbey@donga.com) 기자
  • 사진

    송경은 기자
  • 사진

    허준이 박사
  • 사진

    하버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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