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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수학교과서 일차방정식 단원에서는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수학사가 있다. 13종의 수학교과서 중 무려 10종의 교과서에서 소개하고 있는 디오판토스의 묘비다. 이 묘비에는 디오판토스의 일생을 짐작케 하는 수수께끼가 새겨져 있는데, 수수께끼를 방정식으로 풀면 그가 세상을 떠난 나이를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10종 가운데 단 1종, ‘천재교과서’에서 출판한 수학교과서에서는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디오판토스 묘비를 둘러싼 진실은 무엇일까?

만약 디오판토스의 묘비가 지금 사진으로라도 남아 있다면 확인은 간단하다. 하지만 디오판토스 묘비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결국 디오판토스 묘비에 관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 책인 <;그리스 명시선집>;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역사서가 아니라 그리스인들이 지은 시나 수수께끼를 모은 문집이다. 역사서가 아닌 책에 적힌 이야기가 과연 사실일까 싶지만, 디오판토스의 묘비를 보고 감명을 받아 썼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신뢰도를 인정받고 있는 온라인 백과사전인 영어판 위키피디아에는 ‘<;그리스 명시선집>;에 실린 디오판토스에 관한 일화는 사실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그리스 명시선집>;을 영어로 번역한 책을 살펴보니, 그 어디에도 이 이야기가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말이 나와 있지 않다. 단지 수수께끼를 소개하고 그 답안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즉, 현재로서는 디오판토스 묘비에 관한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지난 2월초 김태희 얼굴에 황금비가 숨어 있다는 내용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김태희의 얼굴에 황금비가 들어 있어 예쁘다고 소개한 것이다. 사실 김태희처럼 예쁜 얼굴이나 아름다운 건축물에 황금비가 숨어 있다는 글은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수학교과서에도 파르테논 신전이나 모나리자 얼굴에는 황금비가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 많은 경우가 모두 황금비일까?

최근 인하대 수학교육과 박제남 교수는 파르테논 신전이 황금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는 뭘까?

먼저 정확한 측정값을 가지고 설명한 저서나 논문이 없다는 점이다. 박 교수는 “파르테논 신전의 길이를 직접 측정한 뒤 가로·세로비가 황금비를 따른다고 소개한 저서나 논문은 본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파르테논 신전에 황금비가 새겨져 있다고 소개한 책들을 보면 어떤 책은 아래 기단의 길이를 가로 길이로 하고, 다른 책은 윗쪽 코니스★ 길이를 가로 길이로 한다”며, “일관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코니스★ 건축물 꼭대기에 돌출된 부분.

실제로 수학교과서를 살펴보면, 사진 위에 두 변의 길이 비가 황금비를 이루는 황금사각형을 그려 놓고 황금비를 따른다고 소개한다. 하지만 실제 측정치를 밝히고 있지 않아 실제로 이것이 황금비를 이루는지는 직접 따져 볼 수가 없다.

게다가 파르테논 신전의 측정결과를 이용해 정면과 옆면의 길이 비를 구해 보면 황금비가 나오지 않는다. 실제로 박 교수는 뉴욕대 미술사학과 마빈 트라첸버그 교수와 이자벨라 하이만 교수가 저서 <;건축학>;에서 제시한 파르테논 신전의 측정결과를 이용해 계산해 보았다. 뉴욕대 교수팀이 제시한 신전의 폭은 1215.75인치이고, 높이는 541인치, 옆면의 길이는 2736.125인치였다. 따라서 파르테논 신전 정면의 폭과 높이의 비율은 1215.75÷541≒2.25가 된다. 옆면의 폭과 높이의 비율도 2736.125÷541≒5.06이 나와서 황금비와는 거리가 멀다.



미국 과학자, 황금비의 오해 연구

사실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황금비의 오해’라는 주제로 많은 연구가 진행됐다. 그 중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마리오 리비오는 자신의 저서 <;황금비>;에서 황금비를 나타내는 기호 ‘phi(φ)’ 때문에 파르테논 신전이 황금비를 따른다는 오해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황금비의 정의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있었지만, 유클리드는 이를 ‘극대와 극대가 아닌 비’라고 불렀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신의 비’라고 불렀다. 지금과 같이 황금비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건 1898년부터다. 이 이전에는 황금비를 나타내는 기호도 tau(τ)이었다.

그런데 1900년대 초 미국의 수학자 마크 바가 무슨 연유에서인지 파르테논 신전을 건축할 때 총 감독을 담당했던 ‘페이디아스(phidias)’의 이름 철자를 따서 황금비의 기호를 phi(φ)로 바꾸었다. 마리오 리비오는 이때부터 사람들이 파르테논 신전과 황금비를 관련지어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역작 모나리자에도 황금비가 없다고 꼬집었다. 모나리자 작품 어디에도 황금비를 나타내는 선이 그려져 있지 않고, 모나리자 얼굴의 가로·세로비가 황금비라는 수학적 근거도 없다는 것이다. 더불어 건축물이나 예술작품에 황금비를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로, 그 이전의 작품은 함부로 황금비를 따른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기하학에 좌표를 처음 도입한 사람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르네 데카르트다. 그 덕분에 함수를 손쉽게 그래프로 그릴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그는 어쩌다가 좌표를 떠올리게 됐을까? 그 답은 중학교 1학년 수학교과서 함수와 그래프 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데카르트의 일화는 이렇다. ‘몸이 약했던 데카르트는 침대에 누워 있는 일이 잦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천장에 붙어 있는 파리 한 마리를 보고 파리의 위치를 수학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고민하다가 좌표라는 개념을 생각해 냈다.’

이게 정말 사실일까? 이런 내용은 데카르트가 일기로 남기거나 최측근이 글로 남기지 않고서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남긴 일기책은 없고, 그의 저서 중 <;기하학>;에서 좌표에 대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온 데카르트의 좌표는 우리가 사용하는 XY좌표와는 생김새가 다르다. x축만 있을 뿐 y축이 없다. 그는 x좌표를 먼저 표시한 뒤 기울기를 이용해서 (x, y)를 나타냈다.

그런데 수학교과서에서는 마치 데카르트가 XY좌표를 고안한 것처럼 소개하고 있는 것이 많다.

또한 데카르트의 일화에 대해서도 미국의 수학자 케이스 데블린은 저서 <;수학의 언어>;에서 데카르트의 일화는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밝혔다. 박제남 교수는 “많은 해외서적들은 데카르트의 일화 같이 사실 여부를 확실히 모를 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진실은 모른다고 밝히는데, 우리나라로 번역돼 들어오면서 마치 사실인 것처럼 그 내용이 바뀐 경우가 종종 있다”고 지적했다.
 


자료 조사와 심의 과정에서 오류 잡아야

취재를 하면서 든 가장 큰 의문점은 인터넷 검색만 해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이 교과서에 실린 경위다. 사실 교과서 집필진은 철저한 자료 조사를 통해서 오류가 없는 내용을 교과서에 담아야 한다. 그런데 A 수학교과서의 인용 자료를 보면 33개 중에 단 3개만이 논문이고 나머지는 수학도서나 기사, 인터넷 사이트다. 내용에 관한 출처를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는 자료들을 훨씬 더 많이 참고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교과서는 심의위원회를 거쳐 최종 출판된다. 따라서 집필진이 실수로 오류가 있는 내용을 담았더라도, 심의 과정에서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런데도 이런 논란되는 내용이 각 교과서마다 다르게 실리고 있는 이유는 뭘까?

현재 중고등학교 교과서는 모두 인정 교과서다. 민간출판사가 수학교육과 교수와 수학교사로 구성된 집필진을 꾸려 교과서를 만들면, 수학교과서의 인정 기관인 인천시교육청에서 심의위원회를 꾸려 심의한 뒤 인정하면 된다.

그런데 현재 심의위원회는 교과서에 들어갈 사진과 그림까지 모두 정해진 상태에서 심의를 하고 있어, 이미 들어간 내용을 통으로 바꾸기가 쉽지 않다. 또 심의위원들 모두가 출판사의 교과서를 심의하는 것이 아니라 조를 이뤄 심의하기 때문에, 심의위원 한 사람은 한 종의 교과서만 심의하게 된다.

박제남 교수는 “제가 디오판토스의 묘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그 내용을 수정했더라도 다른 출판사의 교과서를 심의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교과서의 내용을 바꿀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교육청 담당자는 “심의과정에서 문제점이 발견되면 그 내용을 공유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상황을 파악해 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숭실대 수학과 황선욱 교수는 “앵무조개와 같이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황금비의 예는 생명체의 성장패턴을 황금비로 볼 수 있다는 관점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교과서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근거가 부정확한 수학사를 걸러내기 위해 더 확실한 사례를 발굴하는 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4년 03월 수학동아 정보

  • 조가현
  • 도움

    박제남 인하대 수학교육과 교수
  • 사진

    JINI, 위키미디어
  • 일러스트

    소슬랑
  • 기타

    박제남 교수의 <유럽인은 수학문화의 시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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