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다다~단~. 따다다~단!”
후보 1 젬 피너, 수학적 원리로 1000년의 연주를 만들다
존경하는 베토벤이시여, 당신의 천재성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대결만큼은 제가 이길 자신이 있군요. 이번 대결의 주제가 수학을 사랑한 기기묘묘 음악가 아닙니까? 전 1000년 동안 연주되는 긴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바로 수학적 원리를 이용해서 말이에요.
그룹 ‘더 포그스’의 창립 멤버인 젬 피너라고 합니다. 전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1999년 12월 30일 자정부터 2999년 12월 31일까지 연주되는 긴 곡을 썼지요. 제목은 <;롱 플레이어(Long Player)>;예요.
이 곡의 위대함은 1000년 간 멜로디가 한 번도 반복되지 않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새천년이 시작되는 3000년에 비로소 반복해서 두 번째로 연주가 시작되지요.
일단, <;롱 플레이어>;는 다양한 크기의 티벳 명상 주발★과 징 소리로 시작합니다. 티벳 명상 주발이 내는 낭랑하면서도 고운 진동 소리 사이에서 묵직하게 울려 퍼지는 징 소리가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지요.
티벳 명상 주발★ 티벳이나 인도에서 승려들이 명상의 시작과 끝에 사용하는 도구.
사실 이 곡의 원곡은 20분 20초에 불과해요. 하지만 수학적 기술을 활용해 원곡을 1000년의 길이로 확장했어요. 우선 원곡을 6개로 복제한 뒤, 특정한 규칙에 따라 곡에 변주를 만들어냈어요. 그리고는 6개의 음악을 동시에 재생해서 1000년 간 음악이 반복되지 않고 연주되게 만들었지요.
아까 원곡이 20분 20초라고 했죠? 나머지 5개의 음악은 각각 원곡으로부터 한 옥타브 아래, 7개 반음 아래, 5개 반음 아래, 5개 반음 위, 7개 반음 위로 조옮김을 했어요. 그리고 조 옮김을 하면 음악의 속도에 영향을 미치도록 알고리즘을 짰지요. 음이 낮아지면 속도가 느려지고, 반대로 음이 높아지면 속도가 빨라지게 만든 거예요. 그 결과 각 음악들의 시작점이 모두 달라져 모든 음악은 1000년이 지나야 비로소 일치한답니다.
여섯 개의 음악이 어느 지점부터 연주될지 계산하고, 각기 다른 속도로 항상 동시에 재생되도록 만들기 위해서 컴퓨터 알고리즘을 사용했어요. 하지만 이걸 가능하게 한 건 초기에 제가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계산한 덕분이라니까요? 수학적 아이디어로 1000년의 연주곡을 작곡한 제가 이번 열전에 가장 어울리는 후보 아니겠어요?
후보 2 올리비에 메시앙, 소수로 시간의 종말을 표현하다
봉주르~! 프랑스의 현대 음악가, 올리비에 메시앙이라고 합니다. 문화 예술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라면 저를 기억해 두세요. 현대 음악에 큰 영향을 끼친, 20세기의 중요한 작곡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 받고 있으니까요. 전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란 곡에서 소수를 이용해 시간의 종말과 영원을 표현했어요. 소수로 어떻게 음악을 만들었냐고요?
포로 수용소에서 탄생한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
젊은 시절 촉망 받는 음악가였던 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독일을 무찔러야겠다는 생각에 참전을 결심했어요. 하지만 독일군에게 붙잡혀 포로 수용소에 갇히고 말았지요. 절망에 빠진 전 고난 속에서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을 찾아냈어요. 바로 작곡이었어요.
수용소에는 저 말고도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동료들이 있었어요. 전 그들과 함께 연주하기 위해 독일군 장교가 건네 준 연필과 오선지에 곡을 쓰기 시작했지요. 이렇게 탄생한 곡이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1941)예요. 4중주라고 하면 바이올린 2대와 비올라, 첼로가 참여하는 현악 4중주가 가장 흔해요. 또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에 피아노를 추가한 피아노 4중주나, 목관을 추가한 플루트 4중주도 있지요. 그런데 제가 쓴 4중주는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클라리넷이에요. 왜 그랬냐구요?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수용소에서 만난 음악가가 바로 바이올리니스트, 첼리스트, 클라리넷티스트였거든요.
결국 우리는 포로 수용소에 수감된 5000여 명의 전쟁 포로들 앞에서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를 연주하게 됩니다. 파리의 성 트리니티 성당의 수석 오르가니스트였던 제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동료인 앙리 아오카가 클라리넷, 에띠느 파스퀴에가 바이올린, 장 르 블라르가 첼로를 맡아 연주했어요.
우린 굶주림과 공포에 시달리던 청중들의 무거운 침묵 속에서 연주를 시작했어요. 이 곡은 다소 음산한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뒤로 갈수록 절망 속에서 갖는 희망을 노래해요. 결국 많은 전쟁 포로들에게 감동의 눈물과 희망을 선사할 수 있었답니다.
소수 17과 29를 이용해 시간을 노래하다
<;세상의 종말을 위한 4중주>;는 약 50분에 이르는 연주곡이에요. 전체가 8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소수를 이용해 작곡한 부분은 1악장입니다. 1악장은 전체 음악의 서론 부분으로, 영원히 지속되는 시간의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고민 끝에 전 피아노 부분에 소수를 이용한 반복적인 리듬★과 화성★ 패턴을 사용해 보기로 했어요. 피아노 부분은 17개의 음표로 이루어진 리듬 패턴과 29개로 이루어진 화성 패턴이 반복돼요. 이렇게 소수 17과 29를 핵심 패턴으로 쓴 탓에, 리듬과 화성 패턴은 좀처럼 만나지 못해요. 17개의 음표로 이루어진 리듬 패턴과 이 리듬 위에 연주되는 29개의 화성 패턴이 서로 만나려면 17×29개=493개의 음을 지나야 하거든요. 하지만 1악장은 17개의 리듬과 29개의 화성이 만나기도 전에 곡이 끝나고 말아요. 화성과 리듬 패턴은 시작 부분을 제외하고 더 이상 만나지 못하거든요.
리듬★ 음의 장단이나 강약 따위가 반복될 때 규칙적인 음의 흐름.
화성★ 몇 개의 화음이 일정한 법칙에 따라 연결된 것.
저는 이렇게 끊임없이 변화하다가 결국은 만나지 못한 리듬과 화성 패턴을 통해 시간의 종말, 더 나아가 영원히 이어지는 시간을 표현하고자 했답니다. 만약 소수가 아닌 배수를 사용했다면 제 의도를 살릴 수 없었을 거예요.
후보 3 비틀즈, 앨범 표지에 수기 신호를 담다
우린 영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비틀즈야. 1960년대 음악으로 세상을 평정했지. 여긴 어쩐 일이냐고? 비틀즈에
그런데 여기 비화가 숨겨져 있어. 앨범 제목인 HELP를 수기 신호로 적으려고 했는데, 실제 판매된 앨범 표지를 해석하면 HELP가 아닌 NUJV야. 부끄럽지만, HELP의 수기 신호의 모양이 예쁘지 않아서, 즉흥적으로 예뻐 보이는 팔 모양을 선택해 수기 신호를 쓴 거야. 결국 HELP가 아닌 NUJV가 돼 버리고 만 거지.
후보 4 드라마 <;모스 경감>;의 주제곡에 탐정의 이름이?
안녕하십니까! 영국의 추리소설 <;모스 경감>;의 주인공 모스 경감입니다. 이 추리소설은 TV 시리즈로도 만들어져 대히트를 쳤지요. 그런데 <;모스 경감>; 드라마의 주제곡은 제 이름인 MORSE를 한 글자씩 모스 부호로 나타낸 리듬으로 시작된답니다. 게다가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작곡가가 반주 음악 속에 모스 부호로 살인자의 이름을 살며시 끼워 넣기도 했지요. 실제 모스 부호의 소리와 드라마 주제가 속에 모스 부호로 표현된 제 이름을 직접 들어 보면 제법 흥미롭답니다.
후보 5 베토벤, 운명교향곡에 암호를 담다?
드디어 내 차례군.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없을 거야. 특히 3번의 짧은 음 뒤에 긴 음이 따라오는 전주 부분은 음악사상 가장 유명한 도입으로 일컬어지지.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영국의 방송사 BBC가 모든 라디오 방송의 뉴스를 나의 이 유명한 도입부로 시작했어. 더욱 놀라운 건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영국은 나의 조국인 독일과 적국 관계였어. 그런데도 적국의 음악가인 내 음악을 뉴스에 틀다니, 이상한 일이지?
알고 보니 그 운명교향곡의 도입부를 튼 데는 이유가 있었어. 그 안에 암호화된 메시지를 담았던 거야. 베토벤 교향곡 제5번에 숨겨진 메시지는 모스 부호를 통해 읽을 수 있어. 모스 부호란 선과 점으로 구성되고 그 조합으로 영어 알파벳을 표현하는 전신부호야. 운명교향곡의 도입부가 “따다다 단-”이니 이를 모스 부호로 해석하면 “•••- ”이고, 이건 모스 부호에서 V를 뜻해. V는 Victory, 즉 승리를 의미하지. 그러니까 영국의 BBC는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기원하며 운명교향곡의 도입부를 상징적으로 사용한 거야.
어때? 내 음악 속에 암호가 담겨 있으니, 나도 수학을 사랑한 음악가 후보로 손색이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