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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 수학덕심 퍼뜨리기 전염병주식회사

 

전염병주식회사의 배경음악 ‘Ring Around the Rosie’를 들으며 시작합시다. 흑사병으로 죽은 아이를 묻으며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는 유럽 민요입니다. 장미를 뜻하는 ‘Rosie’가 흑사병의 증상인 발진을 의미한다는 거죠. 흑사병은 14세기 유럽에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염병입니다. 민속학자들은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고 했지만, 노래가 섬뜩하게 들리는 건 어쩔 수 없군요.

 

전염병주식회사는 전염병으로 인류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게임입니다. 목표는 끔찍하지만 그래픽은 잔인하지 않아요. 현실성이 뛰어나서 오히려 전염병 교육 도구로 쓰기도 하죠. 무엇보다 재밌습니다. 2012년 모바일 게임으로 나온 뒤 지금까지 전세계 2억 명이 플레이했고 PC게임과 콘솔게임, 보드게임으로도 나올 만큼 인기가 많습니다.

 

저는 PC게임을 시작했습니다. 게임을 실행하면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 혹은 온난화가 극심한 지구 같은 상황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저는 ‘천연두 시나리오’를 골랐습니다. 천연두는 한때 전 세계 사망 원인의 10%를 차지했던 치명적인 전염병입니다.

 

 

천연두 시나리오는 천연두와 같은 증상과 감염 특성을 가진 병원체로 시작하지만, 기자는 이름을 ‘MATH LOVE VIRUS’로 정했습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수학을 사랑하는 증상을 겪게 된다고 생각하고 게임을 하는 거예요!

 

 

어느 나라에서 시작할까?
먼저 원하는 국가에 첫 감염자인 ‘환자 제로’를 심어야 합니다. 의료 수준이 높지 않고 해외 교류가 많은 나라가 좋겠죠. 저는 사우디아라비아로 시작했습니다. 병이 퍼질 때 생기는 DNA 포인트를 모으면 병원체의 감염 경로와 증상, 생존 능력을 진화시킬 수 있습니다. 치료제를 개발하기 전에 인류가 전부 전염돼 사망에 이르면 제가 승리합니다.

 

중요한 건 전염병의 확산 속도입니다. 개발자 제임스 본은 ‘기본 재생산 계수’를 바탕으로 게임을 설계했습니다. 이는 감염자 한 명이 새로 감염시킬 수 있는 사람 수입니다. 값이 1보다 크면 전염병은 확산되고, 1보다 작으면 감염자수가 줄어듭니다. 1보다 작은 값이 오래 유지되면 전염이 멈추고 저는 패배하겠죠.

 

기본 재생산 계수는 아래 식처럼 3개 변수로 정해집니다. 이기려면 각 변숫값을 높여야겠네요. 먼저 시간당 전염 확률을 높여보죠. 처음에 MATH LOVE VIRUS는 천연두처럼 침으로만 전염되지만, 이제 공기 감염도 가능하도록 진화시킵니다. 그럼 환자는 자기도 모르게 비행기 속 공기에 바이러스를 남기고 떠날 거예요. 바이러스는 비행기를 타고 세계로 퍼지겠죠.

 

 

이외에 감염자가 구토를 하도록 진화시켜도 전염 확률이 높아집니다. 바이러스의 백신 저항력을 높이면 감염 기간이 늘어날 거고요. 게임에서 일어나는 이벤트를 활용해도 됩니다. 브라질에서 올림픽이 열리면 감염자가 접촉하는 사람 수가 늘겠죠. 때를 맞춰 항공과 선박 감염 능력을 강화하면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국경을 넘습니다.

 

 

예방 접종에 남아 있는 베르누이의 흔적
천연두 시나리오는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합니다. 전염병이 발각되면 순식간에 치료제가 개발되거든요. 실제로 천연두는 지구에서 사라진 단 2개의 전염병 중 하나입니다. 예방백신은 물론 유전정보인 게놈까지 해독했을 정도로 연구가 되어있죠.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수학자가 있습니다. 수 많은 수학자를 배출한 집안 베르누이가의 다니엘 베르누이예요. 물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베르누이 방정식’으로 유명한 물리학자기도 합니다. 베르누이가 살던 18세기 유럽에서는 매년 3000~1만 5000명이 천연두로 사망했습니다.

 

이때 중국과 인도가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해 쓰던 ‘인두법’이 유럽에 건너왔습니다. 감염자의 농포★를 건강한 사람에게 옮겨 감염시킨 뒤 면역력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문제는 부작용이 컸다는 거예요. 인두 접종을 받은 사람 100명 중 99명은 다시는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지만 1명은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 때문에 인두 접종을 도입할지, 말지 논쟁이 벌어졌죠.

 

농포★
고름이 차있는 작은 융기로, 피부에 생긴다.

 

베르누이는 장기적 이익이 당장의 위험보다 크기 때문에 인두 접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근거로 예방 접종이 기대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는 수학 모형을 개발했죠. 프랑스 파리 시민의 통계로 계산한 결과, 예방 접종을 하면 기대수명이 3년 이상 늘어났습니다.

 

기대수명★
사망률이 지금과 같이 유지된다고 가정할 때, 새로 태어난 아이가 몇 년을 생존할지 통계적으로 추정한 기대치.

 

이 모형은 전염병을 수학적으로 연구한 첫 번째 사례로 꼽힙니다. 이후로 기본 재생산 계수를 포함해 전염병을 설명하는 여러 모형이 개발됐어요. 그래도 곳곳에 베르누이의 흔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면역력이 없는 사람을 실제로 감염시키는 비율인 ‘감염력’과 감염자 중 사망하는 비율인 ‘치사율’은 베르누이가 변수로 정의해 지금까지 쓰고 있습니다.

 

 

전염병 예방하는 전염병주식회사
이처럼 전염병주식회사는 현실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게임을 하다 보면 언제 어떻게 전염병이 퍼지는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습니다. 인류를 멸망시키겠다는 결심만 굳건하다면 말이죠.

 

이런 특징 때문에 본은 2013년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에 초청받기도 했습니다. 질병통제예방센터는 다양한 방식으로 전염병을 알려야 합니다. 병이 사람을 통해 퍼지는 걸 막으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전염병을 이해하고 예방 방법을 실천하는 게 매우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전염병주식회사를 이용해 홍보 활동을 했던 겁니다. 인류를 멸망시키는 게 목적인 게임이 현실에선 전염병을 예방한다니, 재미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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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호 수학동아 정보

  • 이다솔 기자(dasol@donga.com)
  • 사진

    Ndemic Creation
  • 참고자료

    Daniel Bernoulli와 Sally Blower의 ‘An attempt at a new analysis of the mortality caused by smallpox and of the advantages of inoculation to prevent it’, Klaus Dietz와 J.A.P Heesterbeek의 ‘Daniel Bernoulli’s epidemiological model revis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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