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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수학자] 방랑의 수학자 폴 에르되시

박형주 교수의 수학자 이야기


 
수학이 소통을 통해 발전하는 학문임을 입증한 사람으로 폴 에르되시 만한 사람을 찾기 힘들다. 조합론과 그래프 이론, 확률론과 정수론 등의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긴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이들과 협력연구를 한 수학자였다. 정해진 거처 없이 평생 동안 세계를 여행하며 많은 사람들과 수학을 논하기 즐겼던 20세기의 자유인이자 기인으로도 불린다.
 

협력연구의 달인

폴 에르되시는 수학이 다락방에서 혼자 생각하는 학문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의 대화를 통한 사고의 전개라고 믿었다. 그래서 전 세계를 떠돌며 수학을 강의하고 논하는 것을 즐겼다.

에르되시는 여행을 하며 평생 동안 무려 511명의 사람들과 논문을 공저했다. 그 결과 공저자의 수에서 그를 능가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없다. 대부분의 논문을 단독 논문이 아닌 공동논문으로 저술한 그는 총 1525편의 논문을 쓴 다작의 수학자였다. 수학사에서 다작으로 에르되시와 비견되는 인물로는 레온하르트 오일러 정도인데, 오일러는 더 많은 분량의 논문을 대부분 단독으로 저술했다.

물론, 단지 많은 논문을 쓴다고 훌륭한 수학자일 수 없음을 에르되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연구의 우수함을 측정한다는 것은 수를 세는 것이 아니라 무게를 다는 것에 가깝다고 말하곤 했다. 무게, 즉 연구의 영향력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편 수학자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이론개발형’과 ‘문제풀이형’이다. 필즈상 수상자들을 포함해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위대한 수학자들은 이론개발형인 경우가 많다. 반면 문제풀이형 수학자로 대표되는 에르되시는 현대수학의 주류에서 등한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풀이를 통해 얻어지는 수학적 구조에 대한 통찰이 새로운 이론을 성립하는 데에 광범위한 영향을 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에르되시는 어려운 수학 문제에 부딪히면 이를 주위 사람들과 협력을 통해 푸는 것을 즐겨서, 문제에 종종 상금을 걸기도 했다. 간단한 문제는 25달러 정도를 걸었지만, 문제의 난이도에 따라 수천 달러를 거는 경우도 있었다.

그가 상금을 건 문제 중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도 허다하다. 그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에겐 그의 친구인 로널드 그레이엄이 상금을 지급할 것을 약속했으니, 에르되시가 죽은 지금도 그 상금은 유효하다.

이 중 상금 5000달러가 걸린 정수의 등차수열에 관한 에르되시 문제는 소수인 경우에는 해결되어, 이제는 ‘그린-타오 정리’로 불린다. 이 업적은 테렌스 타오가 2006년 필즈상을 수상하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에르되시 수

그래프 이론에서 다루는 주제 중에는 ‘협력그래프’라는 것이 있다. 어느 특정한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점으로 표현하고, 그 중 서로 협력하는 두 사람 사이에 선을 그어 얻어지는 그래프를 뜻한다. 사람의 수가 많아지면 이 협력그래프에 있는 몇 개의 점에 집중적으로 많은 선이 이어져 있는 현상이 발견되곤 한다.

그런데 이는 우리가 흔히 ‘마당발’이라고 부르는 사교적인 사람들이 어느 사회에나 있기 마련이라는 체험적 사실과 일치한다. 그래서 인터넷을 마비시키려면 인터넷 연결망을 그래프로 표현하고, 마당발에 해당하는 네트워크 설비 몇 개를 공격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 전체 그래프의 연결성이 무너지고, 통신에 심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되기 때문이다.

협력그래프에서 통상 관찰되는 이러한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예가 바로 ‘에르되시 협력그래프’이다. 이 그래프에서는 저자들을 점들로 표시한 후에 서로 논문을 공저한 적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 선을 그었다. 그리고 각 점들에 왼쪽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에르되시 수라는 숫자를 할당한다.

❶ 먼저 폴에르되시의 에르되시 수는 0이다.
❷ 에르되시와 공저한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에르되시 수 1이 할당된다.
❸ 에르되시 수 1인 사람과 공저한 사람은 에르되시 수 2가 할당된다. 단, 여러 수가 할당될 수 있는 경우는 가장 작은 수를 할당한다.
 

이렇게 하면 에르되시에 가장 많은 선이 집중된 협력그래프가 얻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르되시가 논문저술 과정에서 협력연구의 마당발 역할을 했음을 보여 준다.

이 그래프의 각 점들에 할당된 에르되시 수를 분석해 보면, 전 세계에서 연구가 활발한 수학자 중 90%가 8보다 적은 에르되시 수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웬만한 수학자들은 몇 단계를 거치면 연구저술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는 뜻으로, ‘세상이 참 좁다’는 옛 말을 실감나게 한다.

이는 무작위로 그린 협력그래프에서도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작은 세상 현상’으로 불리곤 한다. ‘세상이 참 좁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곤 하는 것이 수학적인 근거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방랑의 자유인

수학은 아이디어 교환을 통해 발전하는 속성이 있어서, 일반적으로 수학자가 다른 과학자보다 여행을 많이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에르되시는 차원이 다른 타고난 방랑자였다. 옷가지 몇 개와 수학 노트를 넣은 여행가방 하나가 소유의 전부였던 그는, 전세계 수학자 친구들을 방문해 수학 문제를 풀며 며칠을 보내고는 또 다른 도시로 떠나가곤 했다.

함께 수학을 논했던 수학자의 집 앞에 여행가방 하나를 들고 홀연히 나타나서는, “당신의 뇌는 열려 있나요?” 하고 묻는 게 그의 여행 방식이었다고 한다. 며칠을 묵으며 수학 문제를 해결하고는 다음은 어느 도시의 누구를 방문할까를 묻고, “아 그거 좋은 생각이요!” 하고는 총총히 새로운 방문지로 떠나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에르되시는 강연료나 저작료로 받은 수입은 주위 사람들에게 대부분 주고, 다시 새 방문지에서 친구들의 도움으로 지내곤 했다. 이는 10만 달러의 상금과 함께 수여되는 울프상★을 수상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보다 못한 그의 친구이자 28편의 논문을 함께 썼던 로널드 그레이엄은 그의 은행계좌를 관리하고 그의 우편물을 모아 주는 등의 일을 대신 해 주었다. 벨랩★에 있는 70명의 수학자와 전산과학자들의 책임자로 쓰는 시간만큼을 에르되시의 개인사 관리에 썼을 정도였다고 한다. 에르되시가 죽은 이후에는 생전에 그가 상금을 건 문제들을 관리하며, 제시된 해결책을 심사하고 상금을 주는 일까지 하고 있다. 무소유를 실천하며 살려면 이런 욕심 없고 선의로 가득한 친구가 옆에 있어야 하나 보다.

이뿐만 아니라 에르되시는 위트 있는 명언을 많이 남겼다.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 자주 커피를 마신 에르되시는 “수학자는 커피를 정리로 만드는 사람들이야.”라고 말했는데, 수학 문제에 몰두하기 위해 그가 엄청난 양의 커피를 마셨다는 것을 뜻한다. 또 “다른 지붕, 다른 증명(Another roof, another proof)”과 같은 말장난을 즐기기도 했다.

평생 전 세계를 떠돌며 수학자와 대화하며 수학 문제를 푸는 데에 몰두했던 폴 에르되시. 혼자서가 아닌 협력을 통해 수학 문제를 해결했던 그의 모습은 어쩌면 오늘날 복잡한 현대에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는 우리가 본 받아야 할 모습은 아닐까.

“왜 수는 아름다운 것인가? 이것은 왜 베토벤 9번 교향곡이 아름다운지를 묻는 것과 같다. 당신이 이유를 알 수 없다면, 남들도 말해 줄 수 없다. 나는 그저 수가 아름답다는 것을 안다. 그게 아름답지 않다면,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없다.” _폴 에르되시

울프상
★ 이스라엘의 울프 재단에서 해마다 주는 상으로, 수학에서는 필즈상 다음으로 유명하다.
벨랩★ 전화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벨이 만든 통신 연구소.

2013년 07월 수학동아 정보

  • 박형주 교수, 2014 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장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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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토파크닷컴
  • 진행

    장경아 기자
  • van. 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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