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러일로가 숨죽인 목소리로 일행을 조용히 시켰다. 다음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숫자 요정들이 방 바로 앞을 지나가며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 보였다.
“왜 여기 숫자 요정들이…!”
“휴, 다행히 아직 내가 풀려난 걸 알아채지 못한 것 같군. 어서 이곳을 빠져 나가야 돼!”
문제 ❶ 비밀의 방, 빠진 숫자를 찾아라!
“숫자 요정들이 이 동굴을 지키나요?”
“항상 그런 건 아냐. 가끔 동굴에 들러 내가 자리에 남아 있는지 살펴보고 먹을 걸 놓고 가곤 했지.”
폴은 궁금한 게 많았지만 러일로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자 눈치가 보였다. 그때 폴리스가 말했다.
“찢어진 편지의 나머지 부분을 갖고 계시죠?”
그는 한숨을 쉬더니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냈다.
“모든 게 이 편지 때문이야. 그래도 이제는 편지가 주인을 제대로 찾은 것 같군. 너희 둘은 다른 세계에서 왔지?”
“어떻게 아셨어요? 아저씨의 형님인 드리클류도 저희가 다른 세계에서 온 걸 한번에 알더라고요.”
“아무래도 이 편지는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만 풀 수 있는 것 같거든.”
그때 폴리스와 함께 러일로의 편지를 읽던 폴b가 말했다.
“흠….‘시작된 곳에서 3개를 던지면 끝이 나리라’ 이게 무슨 말이지? 첫 편지에는 ‘주사위를 던져라’고 적혀 있었는데…. 도무지 모르겠네.”
폴이 주머니에서 주사위 두 개를 꺼내며 말했다.
“혹시 3개란 주사위를 말하는 게 아닐까? 내가 가진 건 2개뿐인데…. 주사위를 1개 더 찾아야 하나?”
그런데 주사위를 본 러일로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는 다급히 한 장의 종이를 내밀며 말했다.
“이 주사위는 어디서 찾았나? 동굴에서 찾았나?”
“네? 그런 건 아닌데…. 이 종이는 뭐죠?”
“지도라네. 난 찢어진 편지에 괴짜 수학자들의 음모를 막을 수 있는 단서가 담겨 있을 거라고 생각했네. 그래서 편지에 대해 조사하던 중 이 지도를 발견했지. 조사 결과 지도와 편지는 같은 사람이 작성한 것 같아. 난 이 지도가 토포로지 산맥을 가리키는 걸 알아내고 이곳으로 온 걸세.”
“지도에 주사위가 그려져 있네요. 어? 이 방에 그려진 도형이랑 똑같은 그림도 있어요!”
“난 지도를 보고 주사위가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주사위를 찾아다니다가 이 방을 발견하곤 여기 뭔가 있을 거라고 여겼네. 하지만 뭔가 발견하기도 전에 쇠사슬에 묶이고 말았지.”
방 구석구석을 꼼꼼히 둘러보던 폴의 눈에 이상한 버튼이 눈에 띄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웬 버튼이지? 어디….”
폴이 버튼을 누르자 벽에 문제가 등장했다.
문제 ❷ 사다리 길이를 구해 절벽을 탈출하라!
폴b가 문제를 풀자, 막혀 있던 방에 문이 생겼다.
“자, 나가 볼까?”
폴b가 문제를 맞춘 기쁨에 활짝 웃으며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폴이 문을 벌컥 열고 뛰어 나갔다.
“내가 먼저 나가야지~! 히힛.”
그런데 문을 나서자마자 폴이 비명을 질렀다.
“악!”
나머지 일행은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폴을 따라 나가려고 서두르는데, 폴이 소리를 질렀다.
“미…, 밀지 마!”
폴의 말에 조심조심 뒤따라 나오던 일행은 깜짝 놀란다. 바로 앞에 낭떠러지가 있었던 것이다. 뒤에서 폴을 조금만 더 밀었더라면 낭떠러지로 떨어질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폴은 상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살펴보니, 문 밖엔 낭떠러지를 따라 좁은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난 이 낭떠러지 길로는 절대 못 가!”
폴은 다소 격앙된 말투로 다시 동굴로 들어가 다른 길을 찾아 보자고 주장했다. 그리고 문이 있던 뒤를 향해 돌아서는데….
“무…, 문이 없어졌어?!”
폴의 비명에 다들 들어왔던 문을 찾았다. 하지만 문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벽만 남아 있었다.
“문이 어디로 갔지?!”
“말도 안 돼!”
폴과 친구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러일로가 조용히 말했다.
“다들 우왕좌왕하지 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항상 정신 똑바로 차리고.”
“피타! 피타!”
“피타, 좀 조용히…. 어?”
피타가 웬 사다리 앞에서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어? 사다리네?”
“혹시 이 지도가 사다리로 낭떠러지를 탈출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건 아닐까?”
러일로가 손에 든 지도와 발견한 사다리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지도에는 방금까지 있던 방에 그려져 있던 도형과 절벽, 주사위, 그리고 숫자들이 적혀 있었다.
“사다리에 뭐라고 적혀 있어. ‘길이를 입력해 주세요. 길이는 단 한 번만 조절할 수 있다’?”
문제 ❸ 미완성된 퍼즐을 완성하라!
폴 일행과 러일로는 함께 사다리의 길이를 구해 절벽을 안전하게 내려왔다. 내려온 곳에는 웬 집이 한 채 있었다.
“여긴 어디지?”
그런데 폴리스의 표정이 이상했다.
“폴리스, 왜 그래?”
“여긴…, 스승님의 집이야. 어떻게 이곳이 동굴과 연결돼 있는 거지?”
“뭐? 너한테 스승님이 있었어?”
폴리스는 폴의 말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집 곳곳을 돌아다니며 스승님을 불렀다. 하지만 집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질 않았다.
“이상하네. 왜 아무도 없지? 스승님이 잠깐 외출하셨나?”
2층으로 올라간 폴리스가 누군가를 발견하곤 반가워서 한걸음에 뛰어갔다.
“어? 스…, 스승님!”
그런데 폴리스의 반가움과 달리 스승은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멀리서 폴리스를 쫓아가던 러일로는 폴리스의 스승을 알아보고는 놀란 얼굴로 말했다.
“아니, 저 사람은…. 갈루마 아닌가! 저 녀석이 갈루마의 제자였어?”
그런데 스승의 곁에 도착한 폴리스가 갑자기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스승님이 움직이질 않아. 어떻게 된 거지?”
폴과 친구들도 놀라 갈루마의 곁으로 다가갔다.
“숨은 쉬고 계신데?”
“내가 스승님 곁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셨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때 폴b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폴리스, 이런 비극적인 상황에서 미안한데….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네. 책상 위 저 깜빡거리는 빨간 경고등은 뭐야? 위험한 거 아냐?”
폴리스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경고등을 바라보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경고등으로 다가갔다.
“이게 뭐지? 전엔 이런 거 없었는데?”
그러고 보니 책상 위에는 경고등 외에도 맞추다만 퍼즐이 놓여 있었다. 이때 피타가 퍼즐 앞에서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뭐야, 피타? 이 퍼즐을 맞추라는 거야?”
“피타! 피타!”
“흠, 피타 말대로 한번 해 볼까?”
문제 ❹ 갈루마의 금고 속 비밀은?
퍼즐을 맞추자 깜빡거리던 빨간 경고등이 꺼졌다. 그런데 경고등 안쪽에 뭔가 보였다.
“잠깐만! 경고등 안쪽에…, 열쇠가 들어 있어!”
폴리스는 경고등을 분리해 뚜껑을 열고 열쇠를 꺼냈다. 그런데 방을 바라보던 폴b가 말했다.
“그런데 누가 다녀간 것 같지 않아?”
“정말 그러네? 혹시 누가 퍼즐을 풀다가 안 풀리니까 그냥 포기하고 돌아간 건가? 폴리스, 누구 집히는 사람 없어?”
“혹시 갈루마가 주사위를 갖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 주사위를 노리고 갈루마를 해친 걸지도….”
“아냐. 난 스승님께 주사위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어. 게다가 주사위가 중요하다는 건 편지를 본 우리밖에 모르잖아. 아, 내가 스승님의 명을 받아 폴 너를 만나러 가지 않았더라면….”
“그럼 설마 나한테 일부러 접근했다는 거야?”
폴이 화를 내자 폴b가 폴을 진정시켰다.
“폴, 진정해. 그럼 폴리스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너한테 접근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안 그래도 한번 물어보고 싶었어. 폴리스, 갈루마는 왜 폴을 만나 보라고 하신 거야?”
“스승님은 폴을 지켜보라고 하셨어. 그가 진짜 이 세계를 구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지.”
폴이 단단히 삐진 얼굴로 물었다.
“그래? 결국 날 시험하기 위해 온 거군. 좋아. 그래서 네 결론은 뭔데?”
“이렇게 된 거 모두 솔직하게 터 놓을게. 처음에 난 네가 수학에는 관심도 없는 바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위기 상황마다 네게 의외의 모습이 보였지. 조금씩 ‘어쩌면…?’ 이렇게 생각이 바뀌었어. 게다가 폴b가 나타나면서 분명 뭔가 있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네게도 스승님 이야기를 하고 이곳으로 같이 와 보려고 했어. 그런데 이렇게 돼 버리다니!”
폴은 항상 냉정하고 침착하게만 보이던 폴리스의 슬픔과 분노가 느껴져 당황스러웠다.
“그런 거라면…. 좀 일찍 말해 주지 그랬어.”
묵묵부답으로 열쇠만 내려다보던 폴리스가 갑자기 책상 아래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호…, 혹시?!”
“대체 왜 그래? 책상 밑에 뭐가 있어?”
“스승님의 금고가 있어. 혹시 이 열쇠로 금고를 열 수 있는지 싶어서…. 열렸다!”
“이건?”
갈루마의 금고 안에는 두 장의 종이가 들어 있었다.
“윽, 또 문제인가? 아무래도 왼쪽의 종이에 그려진 퍼즐을 오른쪽처럼 만드는거 같은데?”
다가오는 위협, 다시 학교로!
퍼즐을 완성하자 세 군데의 빈 공간에 글씨와 기호가 드러났다.
“이건 스승님의 필체야! 음…. ‘학교’? 이건 화살표 같은데? 원래 또박또박 글씨를 쓰시는 분인데…. 급하게 흘려 쓰신 모양이야.”
“혹시 ‘시작된 곳’이 학교를 가리키는 거 아냐? 그러고 보니 내가 예전 세상에서 이곳으로 처음 떨어진 곳도 학교였어.”
폴이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좋아! 이제 희망이 보여! 빨리 학교로 가자!”
폴의 말에 폴리스가 말했다.
“난 이곳에 남겠어. 스승님만 두고 떠날 수 없어.”
폴은 폴리스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폴, 이젠 왜 스승님이 널 주목했는지 알 것 같아. 아마 넌 내가 없어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야. 난 스승님이 깨어나시는 대로 학교로 쫓아갈게.”
폴이 항의하듯 입을 내밀고 있자 러일로가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폴, 스승이 저 지경인데 폴리스의 걱정이 얼마나 크겠나. 학교까지 가는 건 걱정 말게. 드리클류 형님 집이 바로 학교 근처거든.”
“네? 말도 안 돼요. 저희는 모일러 정원에서 엄청 헤매고, 모일러 저택 밑 지하 구조를 한참이나 떨어진 끝에 이곳에 도착했다고요.”
“아마 모일러 저택은 공간이 구부러지도록 설계됐을 거야. 그래서 정원의 규모가 매우 크고, 저택에서 지하로 몇 km나 떨어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모두 눈속임일 가능성이 크지.”
“네에? 정말요?”
그때였다.
“누구냐?”
폴리스가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며 창문을 향해 뛰어갔다. 창 너머에는 누군가 급하게 숲쪽으로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분명 스승님을 저렇게 만든 놈들일 거야!”
“퍼즐이 안 풀리니 누군가 풀기만을 몰래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나 봐.”
“휴~, 우리가 하던 얘길 다 들었을까요?”
“아마 창문이 있으니 다 듣진 못했을 거야. 그래도 퍼즐이 풀린 것을 알았으니 동료들과 함께 이곳으로 되돌아올 확률이 커.”
“그래도 난 이곳에 남겠어. 이곳에서 스승님도 지키고 너희들이 떠날 시간도 벌어 볼게. 그리고 반드시 늦지 않게 학교로 찾아가겠다고 약속할게.”
폴리스의 결연한 표정에 모두의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떠날 시간이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어. 우린 어서 출발하자구. 폴리스, 조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