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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20세기 마지막 보편주의자 푸앵카레

박형주교수의수학자이야기


앙리 푸앵카레는 그칠 줄 모르는 지적호기심과 사고능력으로 동시대 수학의 모든 분야에 통달했다고 해서 ‘마지막 보편주의자’라고 불리곤 한다. ‘마지막’이라는 표현에는 이제는 이런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탄식의 의미가 포함돼 있다. 그는 왜 20세기 마지막 보편주의자가 된 걸까?
 
 
수학과 물리학의 모든 분야에 통달하다

푸앵카레를 유럽 수학계에서 주목받게 했던 첫 연구결과는 ‘동형사상★’에 관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푸앵카레는 27세의 나이에 파리 소르본느 대학의 교수가 되고, 또한 겸직으로 15년 동안 고등사범(Ecole Polytechnique)에서 해석학 강의를 하게 됐다.

동형사상★ 수학에서 어떤 두 대상이 동형 사상에 있다는 것은, 두 대상의 성질이 구조적으로 같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연이어 미분방정식을 풀지 않고서도 중요한 성질을 추론해내는 ‘질적 분석이론’을 창안해, 천체역학 및 수리물리학 등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대수적 위상수학을 창안했고, 정수론과 대수기하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미분방정식과 복소해석 등 수학의 방대한 분야에 기여했다.

특히 그는 아인슈타인보다 먼저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고, 주요 개념을 창안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논문 도처에서 로렌츠 변환 등 상대성이론의 주요개념이 등장하고, 이를 전자기학 등에 응용한 게 관찰되기 때문이다.

푸앵카레를 혼돈이론(카오스 이론)의 창시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는 당시 스웨덴 국왕이 큰 상금을 내걸고 해결을 촉구하던 <;3체의 운동문제>;에 ‘혼돈적 결정’이라는 물리학적 개념을 창안해 새로운 통찰을 제공했는데, 이게 혼돈이론으로 발전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당시 프랑스에서 존경받던 직업인 광산개발 기술자이기도 했던 그는, 나중에 국립광산개발국의 총책임자가 되기도 했다. 또한 국제적인 시간의 규격을 정하고 국가별 시차 등을 정하는 작업에도 크게 기여했다.

푸앵카레는 평생 500여 편의 논문과 30여 편의 저서를 남기면서 현대수학 전반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푸앵카레의 논문에는 엄밀한 증명이 등장하지 않으며, 정확한 정의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거의 모든 절에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있다." _장 디외도네(프랑스의 수학자)


20세기 최고의 난제, 푸앵카레 추측

푸앵카레는 ‘대수적 위상수학(algebraic topology)’이라는 수학분야를 창시해 연구하면서, 20세기 내내 수학자들을 괴롭힌 문제 하나를 남겼다. 바로 ‘푸앵카레 추측’이다.

이 문제는 20세기를 거치면서 수학의 난제 중의 난제로 꼽히게 되었고, 많은 수학자들의 숱한 도전을 받았다. 푸앵카레 추측은 새천년이 시작되던 2000년에 미국 클레이 재단이 각각 백만 달러의 상금을 걸고 발표한 7개의 <;세기의 수학문제>; 중의 하나이다.

푸앵카레 추측을 간단하게 설명하기 위해 3차원 공간에 있는 구를 생각해 보자. 아이가 들고 있는 농구공에 개미가 기어가고 있다. 개미에게는 자신이 있는 농구공의 표면이 보통의 2차원 평면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수학자들은 이를 ‘국지적으로 2차원 평면’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먹음직스런 도넛에 개미가 기어가고 있는 것을 상상해 보자. 역시 개미에게는 2차원 평면으로 보일 것이고 큰 차이가 없다. 그러니까 농구공과 도넛은 국지적으로는 다를 게 없고, 수학자들의 표현으로는 둘 다 ‘2차원 다양체★’이다. 종잇조각과 같은 이차원 다양체는 경계선이 있지만, 농구공이나 도넛은 경계가 없는 2차원 다양체다.

다양체★ 기하학적인 유추를 통하여 4차원 이상의 공간을 연구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다. 점, 직선, 평면, 원, 삼각형, 입체, 구와 같은 기하학적 도형을 1개의 공간으로 보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이 둘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아래의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농구공 표면에 동그란 루프를 그리면 조금씩 연속해서 결국 한 점으로 오그라든다. 그러나 도넛에서는 한 점으로 오그라들지 않는 루프를 적어도 두 가지 방법으로 그릴 수 있다. 끈을 도넛 구멍에 넣은 뒤에 묶어서 도넛을 매다는 장면을 연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임의의 루프를 점으로 오그라들게 할 수 있는 경계선 없는 2차원 다양체가 구 말고 또 있을까? 2차원 구를 눌러서 변형한 것을 모두 2차원 구라고 본다면, 이러한 ‘단순연결’의 성질을 가진 2차원 다양체는 구밖에 없다. 이는 그리 어렵지 않게 증명할 수 있다.
 

과학의 대중화에 대한 관심

푸앵카레의 질문은 ‘그 다음 차원에서는 어떤가?’이다. 즉 ‘4차원에 놓여 있는 3차원 구도 이런 유일성을 갖는가?’라는 질문인데, 불행하게도 4차원은 그림으로 그리기가 어려워 쉽게 연상하기 힘들다.

1961년에 미국의 수학자 스테판 스매일은 5차원 이상의 구가 이런 성질을 갖는다는 것을 증명해 1966년 필즈상을 받았다. 필즈상을 받을 정도니, 쉬운 증명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1982년 미국의 수학자 마이클 프리드만은 4차원 구의 경우를 증명해 1986년에 필즈상을 받았다.

푸앵카레의 추측과 관련한 세 번째 필즈상은 러시아의 그리고리 페렐만에게 돌아갔다. 원래 푸앵카레가 알고 싶어 했던 3차원 구의 문제를 해결했으니, 진정한 푸앵카레 추측의 해결자다.

그러고 보면 푸앵카레의 추측은 많은 수학자들을 괴롭힌 탓에 필즈상을 3명이나 배출한 문제가 된 듯하다.

하지만 ‘은둔의 수학자’라고 불리는 페렐만은 2006년에 그에게 수여되었던 필즈상을 거부해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2006년 마드리드 국제수학자대회 개막식에서 4명의 필즈상 수상자가 깜짝 발표되면서 페렐만의 수상 거부도 알려졌는데, 당시 참석자들이 충격을 받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는 그 뒤에 클레이 재단에서 수여하기로 한 백만 달러도 거부했다.

푸앵카레는 이렇게 수학계에 난제를 제시하고, 필즈상 수상자를 3명이나 배출하게 한 수학자이다. 하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갖고 있어 수학자로 명성을 얻은 뒤에는 수학과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다.

과학철학에 관심이 컸던 그는 〈과학과 가설(1903)>;, 〈과학의 가치(1905)>;, <;과학과 방법(1908)>;을 썼는데, 이 책들은 비전문가들에게 폭넓게 읽혔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가 파리 심리학회에서 한 과학철학 강연은 지금도 유명하다.

수학의 다방면에 있어서 뛰어난 업적을 남기고, 20세기 최고의 난제를 제시하며, 뛰어난 글재주로 과학과 수학의 대중화에까지 앞장 선 푸앵카레. 그는 진정한 20세기의 마지막 보편주의자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뭔가를 증명할 때는 논리를 가지고 한다. 그러나 뭔가를 발견할 때는 직관을 가지고 한다.

_앙리 푸앵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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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4월 수학동아 정보

  • 박형주 교수, 2014 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장
  • 사진

    위키미디어
  • 사진

    포토파크닷컴
  • 진행

    장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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