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은 동그랗지 않고, 산은 원뿔 모양이 아니며, 해안선은 원형이 아니고, 나무껍질은 부드럽지 않고, 번개는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지적 호기심에 이끌린 수학계의 이단아
그의 지적 호기심은 정보이론, 경제학, 유체역학, 기하학 등 수많은 이질적인 분야로 그를 이끌었다. 만델브로가 관여한 다양한 분야마다 파격적인 아이디어로 기존 사고의 한계를 넘어서며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업적은 사회과학과 정보통신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 혼돈이론과 복잡계이론 등, 그 연결고리가 방대하다.
만델브로는 흔히 ‘프랙탈의 대부’로 불린다. 그는 ‘깨진 조각’이란 뜻의 라틴어 ‘fractus’에서 유래한 프랙탈(Fractal) 개념을 제안하며, 불규칙적이고 혼란스러운 현상의 배후에 있는 규칙에 관해 논했다.
하지만 만델브로는 초기에 작은 일탈 현상을 과장한다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전통적인 기하학과 상당히 다른 프랙탈 기하학이 수학 분야에서 주류가 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류 수학과 동떨어져서 그 자신의 통찰에 의지해 주요 업적을 이룬 만델브로는 ‘20세기 수학의 이단아’로 불리기도 했다.
결국 그의 업적은 혼란과 질서의 경계를 허물었고, 수학뿐만 아니라 경제학, 물리학, 정보과학, 생물학, 디지털아트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탈레브★나 글릭★ 같은 작가는 그를 가리쳐 ‘역사상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과학자’라고까지 칭하기도 했다.
탈레브는 뉴턴조차도 그의 다음이라고 말할 정도였는데, 실제로 만델브로가 만든 프랙탈이란 단어는 이제 일상어가 되어 수많은 곳에서 쓰인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유명한 헷지펀드의 매니저이자 작가로, ‘블랙 스완’의 저자로 유명하다. 블랙 스완은 ‘예측 불가능한 사건’을 뜻하는 경제 용어다.
제임스 글릭★ 미국의 작가로 베스트셀러 ‘카오스’의 저자이다.
불규칙의 규칙성
만델브로의 최대 업적인 프랙탈은 1967년에 쓴 <;영국의 해안선은 얼마나 길까?>;라는 논문에서 출발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프랙탈과 차원에 대한 흥미로운 수학 이론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영국의 해안선의 길이는 아무리 정교하게 계산한다 할지라도 누구도 정확한 답을 알 수 없다. 계산이 세밀해질수록, 즉 측정단위가 작아질수록 해안선의 길이는 더욱 커지기만 한다.
프랙탈은 여러 가지 자연현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눈꽃을 돋보기로 확대해서 보면 그 안에 다시 같은 모양의 작은 눈꽃이 보이는데, 이것을 또 확대해서 보면 그 안에 다시 작은 모양의 작은 눈꽃이 보인다. 하늘에서 찍은 해안선의 사진도 확대해 보면 원래의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인체의 혈관과 우리 뇌의 주름도 계속 확대해 나가면 같은 구조가 나타나는 프랙탈 구조를 갖는다.
그렇다면 왜 인체의 혈관이나 뇌의 주름은 이런 반복성을 띄는 것일까? 인체가 몇 개의 큰 혈관만 있는 구조라면 아주 작은 세포까지 영양분이 공급되기는 어렵다. 아주 작은 세포까지 영양분이 공급되려면, 먼저 큰 혈관으로 영양분이 전달되고 점점 더 작은 혈관으로 영양분이 작은 세포까지 가야 한다. 그래서 혈관의 총 길이를 합하면 몇 킬로미터가 넘고, 혈관은 길이가 최대한 길어지는 프랙탈 구조의 두드러진 특징을 갖는다.
프랙탈 구조는 작은 길이를 굉장히 큰 길이가 되도록 하는, 어떻게 보면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한정된 공간 속에 들어가 있는 우리의 뇌도 아주 많은 뇌세포를 자그마한 공간 속에 구겨 넣으려다 보니 프랙탈 구조를 갖게 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컴퓨터의 도움으로 얻은 새로운 통찰
이제 많은 이들에게 선은 1차원, 면은 2차원이라는 차원 개념은 익숙하다. 그럼 1.6차원 같은 것도 있을까?
2차원의 사각형에서 선의 길이를 두 배로 늘이면 네 개의 사각형이 생기고, 3차원에서는 8개의 정육면체가 생긴다. 이 현상에 착안해서 프랙탈을 확대할 때 반복되는 정도를 차원으로 보면 1.6차원과 같은 이상한 차원이 나온다. 즉 프랙탈 차원은 자기반복성의 정도를 나타낸다.
지리학자들은 해안선이 복잡한 서해안의 프랙탈 차원이 동해안보다 높다고 하고, 기상학자들은 뭉게구름이 1.35차원쯤이라 한다. 또 의학자들은 인간 뇌 주름이 2.72차원이라고 한다. 뇌의 큰 주름을 들여다보면 다시 작은 주름이 계속되는 프랙탈 구조인데, 뇌의 주름이 뭉게구름보다 자기반복성의 정도가 훨씬 더 높다는 얘기다.
한편 만델브로가 프랙탈 연구를 진행하던 시대는 아직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수학 연구에 활용되기 전이었다. 당시 IBM 연구소에 근무하던 그는 컴퓨터를 활용해 새로운 통찰을 얻는 연구 방법론을 선구적으로 도입했다. 1979년에 만델브로는 잠시 하버드 대학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복소함수론을 사용해 엄밀하게 구축된 유명한 프랙탈인 ‘만델브로 집합’을 발견했다.
당시 그가 붙들고 있던 연구 주제는 x와 c가 둘 다 복소수★인 x²+c라는 함수였다.이 함수에서 c를 조금 바꾸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시작할 때의 미미한 차이가 종국에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혼돈이론(Chaos Theory)의 구체적인 실례로 볼 수도 있다.
애쉬튼 커쳐 주연의 영화 <;나비효과>;를 기억하는가? 나비의 단순한 날갯짓이 날씨를 변화시킨다는 기상학 이론에서 유래된 제목으로, 작은 차이가 나중에 파국의 유무를 바꾼다는 혼돈이론의 영화판인 셈이다.
복소수★ 실수와 허수의 합으로 이뤄지는 수로, 두 개의 실수 a, b를 사용해 a+bi 꼴로 나타낸다.
구름은 동그랗지 않고, 산은 원뿔 모양이 아니며, 해안선은 원형이 아니고, 나무껍질은 부드럽지 않고, 번개는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_브누아 만델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