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를 가져간 건, 괴짜 수학자들이 아니라네.”
“네? 그럼 그 가짜 폴리스는 누구예요?”
“우린 그들을 가리켜 ‘카오스’라고 부르지. 혼돈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움직임이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지.”
“그들의 정체가 뭐죠?”
“흠…, 여기엔 사연이 길어.”
미션 ❶ 틀린 전개도를 찾아 공간에서 탈출하라!
폴 일행은 어느덧 제3교무실 앞에 도착했다. 안쪽에서는 괴짜 수학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글쎄,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니까!”
“고집 부리지 말게. 반드시 다른 세계에서 온 그 애들이 있어야 한다고!”
폴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문을 열어젖혔다.
“당신들, 지금 제 얘기 하는 거죠?”
모일러, M.피타, 뮤클리드, 괴짜 수학자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폴 일행을 놀란 얼굴로 바라봤다. 잠시 후 모일러가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허허, 주인공이 도착했군.”
폴은 모일러의 말을 자르며 단호하게 물었다.
“억지 웃음 그만 짓고, 본론만 말해요!”
양쪽 사이에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누구도 쉽게 입을 떼지 못하자 갈루마가 말을 꺼냈다.
“실은 자네들에게 부탁이 있네.”
폴은 폴리스와 갈루마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 한결 누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무슨 부탁이요?”
“먼저 아까 하던 얘기를 이어서 하지. 이 세계의 수학자들은 수학의 힘을 잃었다네.”
예상치 못한 말에 폴과 폴b는 물론이고, 폴리스와 러일로, 드리클류까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네? 모두요? 그런데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이죠?”
“러일로와 드리클류는 은둔 생활을 하느라 몰랐을 걸세. 그저 수학 실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했겠지. 우리 세계에서 수학자들은 권력을 누려왔어. 그래서 수학의 힘을 잃었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봐, 이 문제를 오랫동안 은밀하게 조사했지.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밝혀내지 못했어. 아마 전 우주에 수학을 싫어하는 현상이 늘어나며, 이상한 수학 세계에 악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추측할 뿐이네. 분명한 건, 수학의 기본 체계가 무너지고 이 세계에 혼돈이 찾아올 거란 사실이었지. 그리고 몇 달 전, 갑자기 ‘카오스’ 녀석들이 나타났어. 그들은 정해진 모습도 없이 아무 모양으로 변신하곤 했지만, 처음부터 나쁜 녀석들은 아니었어. 카오스들이 저렇게 된 건 다 괴짜 수학자들 때문이야.”
괴짜 수학자들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싫은 표정을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주변이 캄캄해졌다.
“카…, 카오스가 나타났다!”
그러더니 갑자기 괴짜 수학자들의 목소리가 멀리서 말하는 것처럼 들려왔다.
“주의하게. 카오스는 공간의 귀재들이야. 문제를 맞히지 못하면 그들이 만든 공간에 갇혀 버리고 만다네.”
미션 ❷ ‘?’에 들어갈 열쇠를 맞혀라!
공간에 갇힌 건 폴과 폴b였다. 둘은 합심해 문제를 풀었지만 여전히 낯선 공간 안이었다.
“폴, 안녕?”
말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폴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폴은 긴장을 풀지 않고 말했다.
“넌 카오스지? 이젠 안 속아! 우리를 풀어 줘! 그리고 뺏어간 주사위도 돌려줘!”
폴의 항의에도 카오스는 느긋한 표정으로 한 손에 주사위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진정해. 너희들과 그저 얘기하려고 자리를 마련한 거야. 주사위를 가져간 건, 괴짜 수학자들의 손에 넘어갈까 봐 그런 거야. 괴짜 수학자들은 수학의 힘이 사라지는 걸 눈치챈 사람들을 처리하는 데 우리의 힘을 이용했어. 그들을 우리 공간에 가두라고 했지. 처음에는 시키는대로 했지만, 나중에 하지 않겠다고 하자 화를 냈어. 괴짜 수학자들은 너희도 이용하려고 하고 있어. 이 사실을 경고하고 싶었지.”
카오스의 설명은 언뜻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폴b는 폴리스로 변신해 자신들을 감쪽같이 속이고 주사위를 훔쳐갔던 카오스의 밉살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어쩐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주사위는 돌려줄게. 하지만 그 전에 너희들 이게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알고 이러는 거야?”
카오스의 질문에 폴과 폴b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무슨 힘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주사위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주사위를 굴리면 차원의 문이 열려. 그럼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지. 반드시 다른 세계의 사람 3명이 3개의 주사위를 함께 굴려야 해. 우린 각각 다른 세계에서 왔으니 주사위를 굴리면 돼.”
카오스는 주사위를 쥔 손을 내밀었다. 폴과 폴b는 석연치 않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말에 카오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폴은 익숙한 전기 감촉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설마 피타?’
주변을 둘러보니, 공간의 한쪽 벽면에 번개 모양의 선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폴b를 흘끔 보자, 그도 눈치챘다는 듯이 눈을 끔뻑였다. 폴은 카오스가 눈치채지 못하게 말을 걸었다.
“잠깐. 폴리스한테 인사라도 하고 가야겠어!”
그러자 카오스가 버럭 짜증을 내며 말했다.
“너희들은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그냥 굴려!”
그러더니 제 맘대로 손에 있던 주사위를 바닥에 굴려 버렸다. 그러자 바닥에 아기자기한 작은 문양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 들어갈 다음 열쇠를 맞혀라. 그리하면 차원의 문이 열릴 것이라.”
미션 ❸ 숫자 키를 이용해 차원의 문을 닫아라!
차원의 열쇠를 맞히자 처음엔 그저 허공에 작은 구가 생기더니 웅웅 거리며 작게 진동할 뿐이었다.
“뭐지? 설마 이게 차원의 문이야?”
카오스는 짜증스럽다는 듯이 구를 ‘퍽’ 내리쳤다. 그러자 구가 불규칙적으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진동은 점점 커졌고 구의 크기도 커지기 시작했다. 구의 진동에 닿은 물건은 산산조각 나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폴은 겁에 질려 카오스에게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뭔가 잘못된 거 아냐?”
“하하, 천만에! 내가 생각한 그대로야! 혼돈!”
그때 한쪽 벽면이 무너지며 건너편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갈루마는 진동하는 구에 시선을 고정한 채 탄식했다.
“하아…, 한 발 늦었구나.”
그들은 일단 음악실로 피했다. 폴은 갈루마와 괴짜 수학자들에게 침울하게 말했다.
“차원의 문을 열면 집에 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갈루마가 침통하게 답했다.
“때가 되면 모든 걸 설명하고 너희들에게 맡기려고 했다. 하지만 이젠 틀렸어. 카오스 때문에 불안정하게 열린 차원의 문은 세상을 혼돈으로 채울 거야.”
“차원을 닫을 순 없어요?”
폴의 질문에 갈루마가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
“다른 세계의 아이 2명이 주사위 3개를 굴리면 차원의 문을 닫을 수 있지. 그럼 이 세상은 당분간 안전할 거야. 하지만 너희들이 원래 세상으
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없어진단다. 반대로, 지금 차원의 문이 열려 있기 때문에 이제 너희들은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 하지만 문이 불안정해 100% 안전하진 않단다. 게다가 차원의 문이 열린 채로 남아 이 세계는 혼돈에 빠지게 될 거야.”
그때 폴리스가 소리쳤다.
“폴을 몰아붙이지 마세요! 폴, 너희들의 잘못이 아냐. 우린 혼돈이 찾아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어. 카오스가 이 순간을 좀 더 빠르고 강력하게 만든 것 뿐이지. 위험하지만 지금 기회를 놓치지 마.”
폴은 폴리스를 바라봤다. 이상한 수학 세계에 떨어진 자신을 묵묵히 지켜 주고 도와 준 친구 폴리스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폴은 폴b와 짧은 순간 눈빛을 교환하며 미소를 띠었다.
“우리, 같은 생각 하고 있는 거야? 그럼 서로 빚은 없는 거다!”
둘은 세 개의 주사위를 뺏어 바닥에 던졌다.
미션 ❹ 숫자 꽃을 피워라
‘어? 왜 내가 엎드려 있는 거지? 여긴 어디지?’
“이 일차방정식 문제를 풀려면 어떻게 하지?”
‘아~, 수학 선생님 목소리네? 이크, 또 졸았나 보다. 조심조심 일어나 볼까? 어? 몸이…, 몸이 안 움직이잖아!’
“폴! 폴!”
“음냐음냐~. 네…? 네네!”
선생님의 목소리에 몸이 갑자기 용수철 튕기듯 세워졌다. 마치 누군가 조종하는 것 같았다.
‘엇? 왜 몸이 제 맘대로? 어…, 어? 으악!’
‘콰당’ 하는 소리와 함께 폴이 의자에서 떨어지자 친구들이 ‘와하하~!’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예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순간 폴은 모든 것이 떠올랐다. 방금 전 자신은 폴b와 함께 차원의 문을 닫기 위해 문제를 풀었다. 수학을 너무 사랑하거나 괴짜 수학자들과 의리가 깊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폴리스와 피타가 걱정됐고, 그것이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떠올리자 교실은 사라지고 옆에 멍한 표정의 폴b가 서 있었다.
“친구들과 선생님…, 모든 것이 그대로였어….”
주변을 둘러보니 아까 가짜 폴리스가 구를 만들었던 그 방이었다. 구는 사라지고 조용하기만 했다. 그때 반짝반짝 작은 것들이 날아들었다. 자세히 보니 숫자 요정들이었다.
“응? 왜 이렇게 작아졌지? 원래 되게 컸는데? 이젠 심술궂은 노래는 안 부르네?”
그러자 아주 작은 목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
“이게 원래 저희 모습이에요. 덕분에 우리 세계는 안정을 찾고 있어요. 고마워요.”
“세계가 안정을 찾는다니 잘됐네. 그런데 우린 왜 이곳에 남아 있는 거지?”
“차원은 아직 닫히는 중이에요. 우리 세계의 재건도 중요하지만, 두 분께도 기회를 드리고 싶었어요. 숫자 요정들과 수학자들이 마지막 힘을 짜내 여러분을 원래 세계로 돌려 보낼 방법을 마련했답니다.”
그러더니 숫자 요정들의 몸이 태양처럼 밝아졌다. 둘은 팔로 눈을 가렸지만 빛이 너무 강해 한동안 앞이 보이질 않았다. 조심스럽게 눈을 떠 보니, 숫자 요정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아름다운 꽃이 한 송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숫자 요정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남아 그들에게 말했다.
“모두 힘을 합해 피운 숫자 꽃이에요. 부디 숫자 꽃을 완성해 원래 세계로 돌아가길 기도할게요.”
에필로그. 또 다른 시작
“와! 시험 끝났다!”
“폴, 폴! 이 문제, 정답 뭐야? 1? -1?”
“여기, 답 적어 놨어. 확인해 봐.”
폴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상한 수학 세계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요즘엔 그저 똑같기만 한 하루하루가 지루하기만 했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자연스레 수학에 재미와 자신감이 붙어 수학 성적도 좋아졌다는 사실이다.
“폴, 너 분위기가 좀 바뀌었단 말이야? 수학 성적도 갑자기 좋아지고! 비결이 뭐냐?”
“그런 게 어디 있냐? 그냥 열심히 하는 거지.”
“뭐야~! 치사하게. 비결 좀 알려 달라니까?”
폴은 자리를 피했다. 얘기가 길어질수록 친구들은 폴이 뭔가 숨기고 잘난 척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폴은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다가 무심코 거울을 보았다. 이때 거울에 뭔가 어른거리더니 사람 형체 같은 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서…, 설마? 폴리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폴, 오랜만이야. 이상한 수학 세계는 모두 안정을 찾았어. 하지만 앞으로 또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들로 인해, 우리 세계가 혼돈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었어. 수학자들은 우리 세계가 다시 위험에 빠지지 않을 방법을 찾기 위해 토의를 거듭했지. 그 결과 수학 가디언즈를 조직해 전 우주에 존재하는 수포자들을 돕고, 결과적으로 우리 세계가 다신 위험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기로 했어.”
“뭐? 그게 정말이야?”
폴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의 지루한 일상에 변화가 찾아올 기회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주사위를 사용해 차원을 안전하게 드나들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지. 차원 이동이 가능해지자마자 난 너를 가장 먼저 떠올렸어. 아마 카오스 같은 무리가 수학 가디언즈를 방해할지도 몰라. 아니면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적을 만날지도 모르지. 지난 번보다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도 몰라. 폴, 그래도 함께 할래?”
그때 또 다른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 왔다.
“피타피타!”
“피타! 너도 함께 하는 거야?”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한 번 모험을 맛본 폴에게 지루한 일상은 독이었다.
“언제 출발이야?”
“지금 당장! 임무를 마치면 다음 임무 때까지 원래 세계에서 지낼 수 있어.”
폴리스가 거울에서 손을 내밀었다. 폴이 폴리스의 손을 잡자 어디론가 빨려드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처음 이상한 수학 세계로 빠져들 때만큼 당혹스럽지 않았다. 이제 또 다른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폴은 가슴이 벅차 올랐다.
“수학 가디언즈!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