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가 온 뒤 동네에 있는 강에서 쓰레기가 떠내려 오는 모습에 정말 놀랐어요.”
덕문여고 1학년 이윤재 양은 수질 개선 예산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투자 비용을 늘리면 수질 개선에 도움이 될지 궁금했다. 그래서 친구들과 팀을 꾸려 ‘폐수 환경 보호 지출액 대비 수질 개선 정도’라는 주제를 잡고 여름방학 프로젝트로 통계 탐구를 시작했다.
이윤재 양의 팀은 통계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누구든 이용할 수 있는 자료를 활용했다. 교육청이나 환경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정보도 썼다. 자료를 분석하다가 수치가 이상하리만큼 크게 변하면 부산광역시 보건환경연구원에 전화해서 자료를 확인하기도 했다. 그렇게 주제에 맞는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데만 4~5일이 걸렸다.
자료 분석 결과, 강의 수질과 관련된 일부 지표가 개선되지 않고 있었다. 이윤재 양의 팀은 수질 개선을 위해 꾸준히 관심을 갖고 환경 UCC공모전, 환경 포스터 만들기 같은 활동을 통해 직접 환경 보존에 참여할 계획이다. 이윤재 양은 이렇게 통계 탐구를 하는 동안 수학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고 한다.
“저한테 수학은 그냥 듣기만 해도 무겁고 어두운 단어였어요. 그런데 이런 활동을 하면서 수학이 친숙해졌어요. 그러다 보니 이제는 수학을 가장 많이 공부하게 됐어요. 그동안은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휙휙 넘겼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어려워도 계속하다 보면 답이 보이겠지’라고 생각하며 공부해요.”
덕문여고 2학년 안소연 양은 학교에서 하는 성격 검사와 직업 소개 같은 진로 교육이 진로 선택에 도움이 되는지 궁금했고, 이를 주제로 통계 탐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안 양은 통계청에서 2년 치 관련 자료를 다운받아 활용했다.
분석 결과, 진로 교육을 통해 진로를 결정한 사람이 늘었고, 대학 진학 외에도 취업이나 창업, 유학, 군입대에도 관심이 생긴 것으로 나타났다. 진로 결정에 도움이 된다는 결론이다. 안 양은 “고등학교에 들어오니 수학이 어려워져서 겁이 났는데, 이런 활동을 통해 수학이 친근해지고 좋아졌어요”라고 말했다.
스토리로 푸는 통계
7월 14일 저녁, 한밭고에서는 수학탐구발표대회가 열렸다.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뒤 팀을 이뤄 수학과 관련된 탐구 주제로 준비한 보고서를 발표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발표하지 않는다. 각 팀 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한다.
2학년 이도연 양 외 두 명으로 이뤄진 ‘옹쌈자킴’ 팀은 ‘여고생의 하루를 통해 배우는 확률과 통계’라는 주제로 스토리텔링 방식 발표를 준비했다. 아침 기상부터, 등굣길, 수업시간, 점심시간, 체육시간 같은 일상에서 확률과 통계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조사해 이야기로 푼 것이다. 생생하게 발표하기 위해 각 상황마다 짧은 영상을 담았다.
아침 기상 상황의 경우는 조건부 확률로 지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구했다. 고등학생 A는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 통학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간다. 기상 시간에 따라 통학버스를 탈 수 있는 지 결정되고, 이는 지각할 가능성을 좌우한다. A가 6시 50분 이전에 일어날 확률, 6시 50분~7시에 일어날 확률, 7시~7시 10분에 일어날 확률, 7시 10분~7시 20분에 일어날 확률로 나눠 지각할 확률을 구했다.
체육시간 같은 경우는 플라잉 디스크를 일정 범위 안에 들어가게 던지는 수행평가 상황을 가정해, 이도연 양이 플라잉 디스크를 던졌을 때의 평균과 표준편차를 구해 신뢰구간을 측정했다. 그러면 수행평가 점수를 예측할 수 있다. 이도연 양은 “이번 탐구활동 발표를 통해서 일상생활에 수학이 널리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세상에 없던 발표
“너흰 다 틀렸어!”
역할극 형식으로 발표한 2학년 이재윤 군 외 두 명의 학생으로 이뤄진 ‘짱(한)도리’ 팀의 대사다. 두 명은 틀린 이야기를 하고 한 명만 옳은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었다. ‘정규분포표가 틀린 이유 분석’을 주제로 한 짱(한)도리 팀의 발표는 색달랐다. 학생들의 표정과 동작, 연기가 유쾌했다. 중간마다 섞여있는 유머에 친구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 군은 “발표를 보는 친구들에게 수학을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싶었어요”라며, “무엇보다 대회를 즐기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확률과 통계 시간에는 정규분포 곡선이 대칭인 종 모양이라고 배우는데, 짱(한)도리 팀은 실제로 그렇게 나오는지 조사했다. 결과적으로 대칭인 종 모양이 아닌 한쪽으로 치우친 결과가 나왔다. 자료의 수가 충분하지 못했고, 계급의 크기가 세분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통계 조사의 표본을 잘못 선정하면 결과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교과서에 적혀있는 수학 개념을 넘어 더 깊이 있게 내용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송현주 한밭고 교사는 수학탐구발표대회를 연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학생들이 직접 탐구 주제를 선정하고 과정을 설계하면서 교과서 밖에서 수학을 자유롭게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이를 바탕으로 실생활에서 수학이 어떻게 쓰이고, 어디에 접목할 수 있는지 알게 돼 수학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돼요. 이런 성공경험을 바탕으로 수학에 더 자신감을 갖고, 그 안에서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