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고등학교 수학교사인 석고(류승범 역)는 시험문제를 어렵게 내기로 유명하다. 서로 다른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문제를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함수 문제를 마치 기하문제처럼 보이도록 함정을 만든다. 이를 비난하는 학생들에게는 조금만 보는 시각을 바꾸면 누구나 풀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이성과 감성을 넘나드는 새로운 문제가 주어졌다. 석고의 손에 두 사람의 운명이 달렸는데….
심증만 있는 수사, 유일한 변수는 너!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석고는, 안타깝게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한다. 이때 들리는 초인종 소리. 옆집에 새로 이사 온 화선(이요원 역)과 그 조카다. 순간 화선의 밝은 미소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 석고는 그녀의 존재만으로 하루하루 작은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다.
일상으로 돌아온 어느 날, 옆집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와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화선의 위기를 직감한 석고는 그녀에게 도움을 주기로 결심하고, 그녀가 우발적으로 전남편을 살해한 사실을 철저하게 숨길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경찰들은 수사망을 좁혀 화선은 물론, 옆집에 사는 석고까지 용의선상에 오른다. 이때 석고를 끝까지 의심하며 그를 쫓는 인물이 나타난다. 원작에서는 형사는 물론, 주인공의 대학동창으로 형사를 돕는 천재 물리학자가 각각 등장한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는 형사와 물리학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형사 민범(조진웅 역)만 존재한다. 민범 역시, 석고의 고교 동창으로 그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천재 수학자가 별 볼일 없는 수학교사로 일하는 점) 설정은 같다.
물리학자와 형사는 무엇보다 사건에 접근하는 방식이 달랐다. 원작에서 물리학자는 냉철한 이성으로 증명된 과학 이론과 실험을 통해 형사의 사건 해결을 돕는다. 반면 형사인 민범은 첫째도 감, 둘째도 감이다. 천재 수학자 석고의 연구를 공감하진 못하지만, 진심으로 존중해 준다. 수사를 염두해 둔 채 석고를 만나면 만날수록, 석고가 살인까지 저지를 위인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던 어느 날, 편한 마음으로 석고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지던 민범은 우연히 <;완전수(Perfect Number)>;라는 수학 교재 사이에서 첫번째 단서를 발견한다. 다시 수사에 박차를 가한 민범은 결국, 석고가 화선을 좋아해 이성적 판단이 흐려졌다는 결론을 내린다.
원작 VS 영화
지난 10월 18일에 개봉한 영화 <;용의자X>;는, 일본 작가인 히가시노 케이고의 <;용의자X의 헌신>;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원작은 수학자가 이야기를 끌고가는 추리 소설로, 출간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또한 같은 해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제134회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
2006년 국내에서 발간된 뒤로 지금까지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스테디셀러이다.
영화 <;용의자X>;는 원작과 큰 흐름은 같지만, 긴장감 넘치는 추리와 더불어 주인공들의 감정이 더욱 섬세하게 표현됐다.
“세상엔 수학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어!”
석고는 학교에서 인기 없는 수학 선생님이다. 그의 수업 시간은 늘 쉬는 시간과 다름이 없다. 석고는 단지 스스로 칠판에 수학 문제를 적으며, 그것의 풀이를 생각하고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즐길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신의 등 뒤에서 어떤 행동을 하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양반이고, K-POP 스타를 꿈꾸는 학생들은 대놓고 기타를 치기도 한다.
그날은 ‘수열’에 대해 가르치던 중이었다. 석고는 칠판 한 구석에 피타고라스의 삼각수를 적어 놓고, 수열의 일반항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뒤를 돌아 아이들을 바라본 석고는 수학 공부 대신 기타를 치는 학생을 보고, 피타고라스의 조화수열을 떠올린다.
석고는 고등학교 때 별명이 ‘뽕타고라스’였을 정도로 수학자 피타고라스와의 인연이 깊다. 그런 석고가 피타고라스의 조화수열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석고는 용기 내어 그 학생에게 피타고라스 음계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수열과 수학, 수학처럼 아름다운 음악이라니…. 학생들은 적잖이 당황한다!
피타고라스의 조화수열
조화수열이란, 나열된 수의 역수가 등차수열을 이루는 수열을 말한다. 예를 들어 1, 1/3, 1/5, 1/7, 1/9…과 같이 나열된 수의 역수인 1, 3, 5, 7, 9…는 일정한 간격으로 증가한다.
사실 음악에서 수학적인 성질을 처음 찾아낸 사람은 바로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피타고라스다. 피타고라스는 우연히 대장간에서 들려오던 망치 소리를 듣고, 소리의 진동 속에도 수학이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연구를 계속한 결과, 피타고라스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현의 길이와 관계가 깊다는 사실을 알아 냈다. 이에 피타고라스는 기준이 되는 현의 길이를 정하고, 기준현과 기준현의 $\frac{2}{3}$길이의 현을 차례로 튕겨 소리를 비교했다. 그 결과 두 소리는 완전5도의 화음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예를 들어 처음이 ‘도’소리 였다면, 현의 길이를 23만큼 줄였을 때는 ‘도’와 완전5도 화음을 이루는 ‘솔’소리가 났다.
결국 피타고라스는 현을 튕겼을 때 생기는 진동수에 의해 소리가 결정되며, 그 현의 길이가 짧아질수록 진동수는 많아지고 높은 음을 낸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하게 된다. 즉 현의 길이가 1, 2/3, 1/2배로 줄어들면, 음의 진동수는 역수가 되어 1, 3/2, 2배로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차가 1/2인 피타고라스의 조화수열이다.
영화 속에서 석고는 학생에게, ‘네가 사랑하는 완전5도 화음도 수학적으로 꽤 의미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수학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가설은 증명이 될 때 참인 거야”
대부분의 수학자는 자신이 평생 연구할 분야를 정해 한 주제를 파고든다. 영화 속 주인공들(석고/이시가미)도 마찬가지다. 비록 현실 속에서는 평범한 수학 교사로 일하고 있지만, 연구에 몰두할 때면 며칠 휴가를 낼 정도로 수학 연구를 향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들의 이 연구는 여자 주인공(화선/야스코)의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나만의 4색 정리를 만들겠어!
원작 <;용의자X의 헌신>; 속 이시가미는 수학 이론 중 ‘4색 문제’에 집중한다. 이시가미는 대학시절부터 4색 문제의 증명인 4색 정리를 더욱 간결하고 보기 쉽게 정리하기 위해 매달렸다. 사실 물리학자 유카와와 친해지게 된 계기도 4색 문제를 논하면서부터다.
이시가미가 틈틈이 연구한 4색 문제란, ‘지도에서 서로 맞닿은 지역을 다른 색으로 칠해 구분하기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색의 수가 4가지일 것이다’라는 가설을 증명하는 것이다. 수학자들은 이 가설을 수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매달렸다. 이시가미는 이미 증명된 4색 문제를 검증하면서, 기존 연구와 다르게 컴퓨터가 아닌 손으로 증명할 방법을 연구했다. 자신만의 4색 정리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시가미는 야스코의 사건 역시, 마치 4색 문제를 증명하는 것처럼 자신의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해 완벽한 알리바이를 완성해 갔다. 하지만 유카와는 이시가미의 이런 집요함과 집중력을 알고 있었기에, 이시가미의 ‘함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골드바흐의 추측처럼 아무도 못 푸는 문제를 만들 거야!
<;용의자X>;에서는 석고의 치밀한 계획으로 화선이 거짓말 탐지기를 무사히 통과하며, 자연스럽게 용의선상을 벗어난다. 이때 석고가 집중한 수학 문제는 ‘골드바흐의 추측’이다.
골드바흐의 추측이란,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개의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가설이다. 이때 하나의 소수를 두 번 사용하는 것까지 허용한다. 예를 들어 20까지의 짝수는, 4 = 2+2, 6 = 3+3, …, 18= 5+13 = 7+11, 20 = 3+17 = 7+13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모든 짝수에서 이것이 가능한지가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해결 문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석고는 고교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그리고 이번 살인사건도 골드바흐의 추측처럼 아무도 해결할 수 없는 미해결 문제로 만들고 싶었다. 얼핏 보면 증명이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파고들면 증명을 쓰기 어려운 수학 문제처럼, 사건의 알리바이를 설계해 화선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용의자X>;에서는 수학자와 형사 사이에서 쫓고 쫓기는 흥미진진한 논리 게임을 만날 수 있다. 과연 천재 수학자는 아무도 풀 수 없는 완벽한 문제를 만들어 냈을까? 천재 수학자가 만든 완벽한 알리바이 속 함정을 함께 찾아보자. 원작과 비교하며 영화를 감상한다면, 더욱 흥미진진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