엥? 뭐가 그렇게 고민이람. 음정 하나하나를 도형으로 표현하면 될 텐데….
듣고 싶은 음악은 안 들리고 왜 쓸데없는 말만 들리는 거야? 음정을 도형으로 표현한다고? 지금 나랑 장난 하나?
소리가 그린 그림, 리사주 도형
음악과 수학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음악에서 기본이 되는 ‘도레미파솔라시도’ 7음계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피타고라스가 만든 음계에서 발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 이후 수학자들은 소리 자체를 기하학적으로 표현하는 데 공을 들였다. 대표적인 인물이 프랑스의 수학자 쥘 리사주다. 그는 소리를 도형으로 나타낼 수 있는 실험 장치를 고안했다.
리사주가 고안한 실험 장치는 두 소리굽쇠에서 발생하는 진동의 모양을 거울 반사를 이용해 검은 스크린에 나타내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렇게 두 소리굽쇠의 진동을 도형으로 표현한 것을 ‘리사주 도형’이라고 한다. 한 예로 진동수의 비가 1:1이고 서로의 주기가 같으면 $y=x$ 그래프처럼 직선이, 주기가 서로 90° 차이가 나면 $x$²+$y$²=1의 그래프처럼 원이 그려진다. 진동수의 비가 1:2이고 주기가 서로 같으면 아래로 볼록한 포물선이, 90° 차이가 나면 무한대 기호 모양(∞)이 그려진다.
리사주 실험 장치의 구조
❶ 두 개의 소리굽쇠를 서로 수직이 되게 놓는다. 즉 하나는 바닥과 수평하게, 다른 하나는 수직이 되도록 설치한다.
❷ 바닥과 수직인 소리굽쇠의 한쪽 끝과 램프가 수평을 이루도록 놓는다.
❸ 바닥과 수평인 소리굽쇠의 한쪽 끝과, 망원경처럼 생긴 장치가 수평을 이루도록 놓는다. 이 장치 앞에는 작은 거울이 달려 있고, 뒤에는 검은 스크린이 있다.
❹ 소리굽쇠에 빛을 반사시키면 소리굽쇠의 진동이 검은 스크린에 도형으로 그려진다.
음악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도형, 하모노그래프
뭐야? 결국 소리만 도형으로 나타낸다는 거잖아. 결국 내 음악은 표현할 수 없어! 이럴 줄 알았다고. 역시 기댈 곳이라곤 타고난 재능밖에 없어!
무슨 소리! 난 리사주 박사님의 연구를 이어받아 음정을 시각화할 수 있는 하모노그래프 장치를 만들었다고. 연주만 해 봐, 내가 도형으로 변신시켜 줄 테니~!
리사주의 연구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 사람은 스코틀랜드의 수학자 위그 블랙번이다. 그는 음계를 도형으로 표현하기 위해 ‘하모노그래프 장치’를 고안했다. 하모노그래프 장치는 소리의 진동수에 따라 단진자가 움직이는 자취를 도형으로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 각각의 단진자에는 펜과 종이가 연결되어 있어, 단진자가 움직이는 대로 도형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진자란 끈이나 줄에 추를 연결한 것으로, 추를 잡아당겼다 놓으면 운동량에 의해 반대편의 같은 높이까지 움직인다. 단진자의 길이는 진동수와 반비례한다.
단진자가 2개인 하모노그래프 장치의 구조
❶ 책상 구멍 밑으로 서로 수직이 되도록 움직이는 두 개의 단진자를 설치한다. 그 중 하나는 가능한 낮은 지점에 추를 단다. 다른 하나는 어떤 음을 표현하고 싶으냐에 따라 원하는 비율을 갖도록 길이를 조정해 단다.
❷ 책상 위에는 두 개의 단진자 축이 있는데, 한 단진자의 축에는 종이를 끼우고 나머지 단진자 축에는 펜을 단다. 단진자를 진동시키면 종이 위에 하모노그래프가 그려진다.
각 음계의 단진자 길이는 간단한 정리를 이용해 구할 수 있다. 단진자의 진동수는 길이의 제곱근에 반비례하기 때문에, 한 옥타브를 높이려면 길이를 4분의 1로 줄이면 된다.
또한 여러 음정이 동시에 어우러질 때는 진동수의 비를 곱하면 된다. 예를 들어 한 옥타브와 장3도를 합친 화음이라면, 2:1과 5:4을 곱하면 되므로 10:4=5:2의 진동수를 갖는다.
이제 하모노그래프 장치를 작동해 보자. 진동수의 비에 따라 단진자의 길이를 조절해 작동하면, 신기하게도 리사주 도형과 같은 도형이 생긴다. 즉 진동수가 1:1로 동음이면 진동의 주기에 따라 직선, 타원, 원이 그려진다.
더 나아가 하모노그래프 장치는 맥놀이 현상까지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피아노에서 흰 건반과 바로 옆의 검은 건반을 동시에 치면, 피아노 소리가 작았다가 커졌다를 반복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바로 ‘맥놀이 현상’이다. 두 진동이 포개져 진폭이 주기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맥놀이 현상은 진동수가 큰 고음으로 갈수록 커진다. 맥놀이 현상까지 표현되는 하모노그래프는 리사주 도형에 비해 아래처럼 입체적인 모양을 띤다.
단진자를 하나 더 달면 어떻게 될까? 블랙번은 두 개의 단진자는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서로 수직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고, 두 단진자 축을 연결한 곳에 펜을 달았다. 펜 아래에는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판을 설치하고 그 아래 또 다른 단진자를 설치했다. 그리고는 고정판 위에는 종이를 끼웠다. 그러면 펜은 원운동을 하고, 종이도 또 다른 원운동을 하면서 두 개의 원운동이 종이 위에 결합된다. 즉 3차원 도형이 2차원에 그려지게 된다.
블랙번은 이를 통해 음정이 옥타브 즉, 진동수의 비가 2:1일 때 가장 간단하면서도 아름다운 도형이 그려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두 원운동이 반대방향일 때는 삼각형 구조의 원 형태가 나타나고, 같은 방향으로 돌면 하트가 그려졌다. 진동수가 2:1를 조금 벗어나면 뱅글뱅글 돌아가는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음악, 대수학을 통해 도형으로 변신!
음정을 도형으로 표현하다니 신기한 걸! 하지만 매번 실험 장치를 이용해 도형을 그려 보는 건 너무 귀찮아. 천재는 게으르다는 말도 못 들어봤어?
그게 고민이라면 걱정할 필요 없다구! 실험 장치를 이용하지 않고도 도형을 표현할 수 있거든! 최근에 쇼팽의 ‘전주곡 E단조’를 분석했는데, 뫼비우스 띠가 나오더군.
수학자들은 음계를 기하학 공간에 표현하기 위해 대수학 이론을 이용했다. 그 결과 온음과 반음을 포함해 기본이 되는 12개의 음은 *군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12음계 군을 도형으로 표현하면 중간 중간 끊어진 원이 된다. 여기에 옥타브가 같은 음까지 추가하면 끊어진 부분이 메워져 연속된 원이 그려진다. 만약 양손으로 피아노를 치기 위해, 높은음자리표와 낮은음자리표에 주어진 두 화음까지 포함하면 가운데가 뻥 뚫린 도넛 모양의 *원환체가 된다.
그런데 피아노 건반에서 레와 솔을 동시에 누르는 것은 솔과 레를 동시에 누른 것과 같은 소리를 낸다. 즉 화음은 교환법칙이 성립한다. 따라서 원환체에서 대칭이 되는 점들은 서로 같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성질을 적용해 나타내면 원환체는 뫼비우스 띠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뫼비우스 띠에서 중간을 가로지르는 원은 3개의 온음을 포함한 음정을 나타낸다. 그런데 3온음은 불협화음이라,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악마의 음이라고 여겨 사용을 금지했다.
*군이란 어떤 집합에서 임의의 두 원소가 덧셈이나 곱셈과 같은 연산을 했을 때, 그 값이 다시 그 집합의 원소가 되는 것을 말한다.
*원환체란 원을 원 밖의 일직선을 축으로 회전시켰을 때 생기는 도형이다.
21세기에 들어 이론 음악가들은 화음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2006년 미국의 음악가 드미트리 티모츠코 프린스턴대 교수는 악보 위의 화음들이 기하학적으로 연속한 공간 위의 점들로 표시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한 대부분의 곡에서 화음의 변화는 그 공간의 중심 근처에서 일어난다는 것도 밝혀냈다.
티모츠코 교수가 연구한 공간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1차원에서는 음정 하나하나를 수직선에 나타낸다. 원 안에는 옥타브를 적어 넣는다. 이 때는 화음을 나타낼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2차원에서는 두 음정을 동시에 누른 화음까지 표현할 수 있다. 끊어진 원에 그려진 각 음정에 0부터 11을 대응시킨다(74쪽 그림 참고). 그리고 두 음정을 동시에 누를 수 있는 모든 경우를 평면에 나열한다. 예를 들어 도와 파#을 동시에 눌렀다면, 대응된 숫자는 (0 6)이다. 두 음정의 차이는 6이므로, 0부터 11중에서 6만큼 차이 나는 배열 (9 3), (10 4), (11 5), (6 0), (7 1), (8 2) 모두를 일직선에 나타낸다. 이렇게 모든 경우의 화음을 직선에 나타내면 아래 그림처럼 직선이 모여 평면을 이룬다.
이제 악보에 나온 음정을 평면에 자취를 남겨 그린다. 예를 들어 (7 1) 다음에 (7 0)이 연주된다면, (7 1)과 (7 0)을 잇는 선을 그린다. 이렇게 주어진 악보에 있는 음들을 연결하면 어떤 연주곡들은 신기하게도 수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도형을 만들어낸다. 대표적인 곡이 쇼팽의 ‘전주곡 E단조’다. 이곡의 일부분은 뫼비우스 띠구조로 나타난다.
인기곡은 모두 프랙탈?!
대박! 소리가 안 들려도 도형만 보면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지 알 수 있겠어. 몇몇 도형들만 잘 외워도 작곡하기 쉽겠는 걸. 근데 모차르트 선생님이 웬일이지? 쌤, 아직도 배워야 할 음악이 더 있나요?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음악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미국의 리차드 보스 박사와 존 클라크 박사는 주파수 분석법을 이용해 히트곡의 특징을 알아냈다. 주파수 분석법이란, 말 그대로 화음에 따라 결정된 주파수를 분석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일정한 시간 간격에 따라 음 높이를 숫자로 표시했다. 이렇게 얻은 연속된 숫자의 앞뒤 차이 값을 함수로 나타내 분석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클래식 음악은 음의 변화 폭이 크지 않았다. 대개 다음 음 근처의 높은 음이나 낮은 음으로 이동하는 식이었다. 반대로 록 음악은 그 변화가 심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특정한 음정의 폭이 한 곡에서 나오는 빈도는, 음의 변화가 심한 곡인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됐다. 클래식처럼 변화가 별로 없는 곳에서는 특정한 음정의 폭이 나오는 빈도가 높았다. 반면 록 음악처럼 변화가 심한 음악은 그 빈도가 낮았다. 즉, 음정의 폭과 음정의 변화 차이는 반비례 관계를 가졌다. 특히 인기가 있는 곡일수록 이 관계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연구팀은 이런 관계를 가진 음악을 ‘프랙탈 음악’이라고 불렀다. 주파수의 변화가 프랙탈처럼 규칙적이면서도, 불규칙적인 자연현상과 유사한 형태를 가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랙탈 음악은 전체 구조와 유사한 작은 구조가 전체 안에서 반복되는 특징을 가진다. 대표적으로 베토벤과 바하, 모차르트 음악 등이 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프랙탈 음악을 좋아할까?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사람들은 같은 음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을 싫어한다. 지루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변화가 계속 되는 음악도 싫어한다. 변화가 너무 심하면 소음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당히 규칙이 있으면서 의외성이 있는 곡을 좋아하는데, 바로 프랙탈 음악이 그런 성질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