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해양연구센터가 위치한 남태평양의 축 섬은 ‘다이버의 천국’이라고 불립니다. 바닷물이 맑고 산호가 아름다운 것은 물론, 바다 속 곳곳에 2차 세계대전 당시 침몰한 침몰선들이 가라앉아 있어 다이버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수학이 없었다면 이런 멋진 바다 속 세상을 만날 수 없었을 거예요.
무슨 말이냐고요? 지금부터 알려 드릴게요.
‘후지카와마루’ 프로젝트란?
다이버들은 보물을 찾거나 해양 생물을 채집하기 위해, 또는 물속에 빠진 무언가를 건져내기 위해 다양한 잠수 활동을 합니다. 해양생물학자이자 다이빙 전문가인 전 약 70년 전 축 섬 앞에 가라앉은 일본의 수송 선박선 ‘후지카와마루’를 조사할 거예요.
‘후지카와마루’는 1938년 만들어진 배로, 톤수 6,938톤, 길이 115m, 높이 19m, 폭 10m 이르는 거대한 배입니다. 원래 일본과 미국을 오가는 수송 선박이었지만, 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면서 태평양을 오가며 유류, 포탄, 비행기 등 군수 물자를 운반했지요. 그러던 중 1943년, 미국 해군으로부터 공격을 받아서 배가 파손되고 말아요. 그래서 당시 일본 해군 제2태평양사령부가 있던 축 섬까지 옮겨져 수리를 받던 중, 다시 폭격을 당해 침몰당하지요.
후지카와마루는 비교적 수심이 낮으면서도 볼거리가 풍성해, 다이버라면 한 번쯤 거쳐야 할 코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축 섬은 교통도 불편하고 시설도 낙후돼 쉽게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축에 한국의 태평양해양연구센터가 위치하고 있는 만큼, 저는 현지인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후지카와마루’ 가이드북을 만들어 외국 다이버들에게 배포하면, 축 다이빙이 더욱 활성화되면서 축 경제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후지카와마루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침몰된 후지카와마루는 축 섬 주변을 감싼 *환초 지대에 기울어진 형태로 잠겨 있어요. 배의 갑판 위에 세워진 기둥은 수면 위로 삐죽 올라와 있지만, 가장 깊이 침몰된 바닥은 약 40m 수심에 닿아 있습니다. 40m는 압력이 높아 잠수할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짧습니다. 배 안쪽까지 들어가려면 잠수하기 전에 내부 구조를 샅샅이 파악하고, 시간 계획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깊은 바다 속에 잠겨 있는 배는 매우 캄캄하기 때문에, 잘못해서 헤매기라도 하면 위험해질 수 있거든요.
*환초 산호초로 둘러싸인 섬이 해수면 아래로 침강하면서 만들어진 둥근 고리 모양의 산호초.
기하학으로 물속을 측량하다
그럼 이제 바다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우선, 침몰선 밖을 둘러봅시다. 배에 다양한 생물이 달라붙어 살아가고 있는 게 보이죠? 또한 당시 후지카와마루가 운반했던 일본군의 무기나 전투기도 있네요. 전 배에 부착된 커다란 생물들과 침몰선의 크기를 측정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물속에서는 중력의 영향을 덜 받고, 물의 흐름도 있어서 평형을 잡기가 힘들어요. 따라서 큰 물체의 크기를 직접 측정하기가 매우 어렵지요.
이럴 때는 기하학 원리를 이용해 물체의 면적이나 크기를 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침몰선의 크기를 측량한다고 해 봅시다. 몇 군데 지점을 정한 뒤, 그 지점의 수심과 위치를 정밀하게 측정합니다. 그리고 각 지점들 사이의 짧은 거리와 각도를 재는 거예요. 이후 육상으로 올라와 물속에서 잰 짧은 거리와 각도, 수심 정보를 바탕으로 침몰선의 3차원 모습을 그릴 수 있어요. 이런 측량 정보는 ‘후지카와마루’를 좀 더 안전하게 탐험할 수 있는 훌륭한 자료가 되지요.
다이버의 안전을 지키는 비례와 반비례의 원리!
이제 점점 더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물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수심이 약간만 깊어져도 압력이 크게 증가하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요. 일반적으로 수심이 10m 깊어질 때마다 압력은 1기압 증가합니다. 수면에서는 1기압의 대기압만 받지만, 수심 10m에서는 2기압, 20m에서는 3기압을 받지요.
이러한 압력의 변화는 기체의 부피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1662년 영국의 화학자 보일은 실험을 통해 압력과 부피가 서로 반비례한다는 ‘보일의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압력이 증가하면 부피는 그만큼 감소한다는 거지요.
보일의 법칙 P₁V₁ = P₂V₂ (V: 부피, P: 압력)
사람이 수심 20m 아래로 내려가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의 몸은 대부분 수분으로 이뤄져 있어서, 풍선처럼 1/3로 수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폐 속에 담긴 공기는 압력이 증가하면 그 부피가 감소합니다. 깊은 수심에서 호흡을 하려면 공기탱크로부터 더 많은 공기를 들이마셔야 합니다. 따라서 수심 10m에서는 수면에서보다 2배 많은 공기를, 수심 30m에서는 4배 더 많은 공기를 마셔야 하지요.
다이버들은 공기를 압축한 탱크를 메고 바다 속으로 내려갑니다. 탱크 안에는 20%의 산소와 80%의 질소로 구성된 공기가 들어 있지요. 그런데 혼합 기체 내에서 어떤 기체의 부분압은 각각의 기체가 차지하는 부피와 비례한다는 법칙이 있습니다. 바로 ‘달톤의 법칙’이에요. 따라서 산소는 0.2부분압, 질소는 0.8부분압을 이루게 되지요.
그런데 수심이 깊어지면 다이버들은 높은 부분압을 지닌 질소와 산소로 호흡하게 돼요. 예를 들어 수심 20m에서는 3기압이므로 산소의 부분압은 0.6, 질소의 부분압은 2.4로 증가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질소와 산소의 부분압이 높아지면 무서운 질병이 발생합니다. 질소의 부분압이 3.5 이상이면 신경에 영향을 주어 정신적 마비 증세가 나타나거든요. 또 산소의 부분압이 1.6 이상이면 신경을 파괴해 즉사할 수 있지요.
그럼 깊은 바다 속으로 더 이상 잠수할 수 없는 걸까요? 사실 깊은 수심까지 잠수하는 다이버들은 질소보다 분자량이 낮은 헬륨 기체를 혼합한 기체로 호흡을 해요. 덕분에 현재는 150m의 깊은 물속에서도 마비 증상 없이 호흡을 할 수 있답니다.
대칭의 원리를 따르는 해양 생물
드디어 후지카와마루 안쪽으로 들어왔습니다. 어두컴컴한 침몰선 안쪽으로 들어갈 때는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금세 방향 감각이 흐릿해지거든요. 나침반과 전등의 한 줄기 빛에 의지해 조심스럽게 이동해야 합니다.
침몰선 안팎에는 배에 붙어사는 저서생물과 산호는 물론, 다양한 어류들이 몰려 있습니다. 이는 침몰선 안이 어둡고 복잡해서 작은 생물이 숨어 살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에요. 이들을 먹기 위해 작은 어류가 몰려들고, 또 이 작은 어류들을 먹기 위해 큰 어류들이 몰려오지요.
해양 생물들의 모습을 관찰하다 보면, 수학적인 대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속에서는 중력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해양 생물들은 평형 상태를 유지하기 쉽도록 대칭 구조를 기본으로 합니다. 가장 안정된 원형 구조에서부터, 오각형, 육각형, 팔각형 등 다양한 대칭을 따르지요. 이 중에는 특히 짝수 구조로 대칭을 이룬 생물이 많아요. 과학자들은 짝수 구조가 원시적인 생물이 성장할 때, 둘로 나누어지는 작용에서 시작됐을 거라고 보고 있어요.
잠수병을 방지하는 수학 알고리듬, 다이브 컴퓨터
이제 수면 위로 올라가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서두르면 안 됩니다. 바로 잠수병 때문이에요. 우리 몸은 혈액을 통해 대사 물질과 산소나 질소 등을 필요한 조직에 전달합니다. 그런데 물속에 깊이 들어가면 압력이 증가하면서 기체가 혈액 속에 더 많이 녹아 들어가게 돼요. 이를 ‘헨리의 법칙’이라고 하지요.
따라서 다이버가 수심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혈액 속에 많은 질소가 축적돼요. 혈액 속에 질소가 너무 많이 녹아들면서 발생하는 병이 ‘잠수병’이에요. 깊은 수심에서 갑자기 얕은 곳으로 올라가면, 압력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질소가 급격히 몸 밖으로 나오려고 해요. 이 때 생긴 기포가 미세한 혈관들을 막아 혈액이 통하지 않게 되면, 몸이 썩게 될 수도 있어요. 무시무시하죠?
따라서 수심, 질소의 부분압, 잠수 시간, 남아 있는 공기량, 상승 속도 등을 알아야 안전하게 다이빙을 할 수 있어요. 물론 물속에서 이런 변수들을 연필로 일일이 계산할 수는 없겠지요. 대신 ‘다이브 컴퓨터’가 있으니 걱정 마세요. 다이브 컴퓨터에는 다이빙의 수심과 시간의 관계를 자동으로 계산해 주는 수학적 알고리듬이 들어 있어요. 수심에 따라 몸에 흡수되거나 배출되는 질소의 양을 실시간으로 계산해 주는 등 다이버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제공하며 안전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수중에서 활동하려면 수학적 사고가 다양하게 적용돼야 합니다.
지난 8월 시작한 후지카와마루 다이빙 작업은 완료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아직 후지카와마루 프로젝트는 진행 중입니다. 후지카와마루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잘 정리해서 가이드북으로 만드는 작업이 남아 있거든요. 이 책을 통해 다이버들에게 ‘후지카와마루’란 침몰선이 재조명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또한 일반 사람들에게도 축의 아름다움이 널리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여러분도 이번 기회를 통해 후지카와마루에 관심을 가져 보세요. 역사와 해양, 수학이 융합된 간접 다이빙 체험을 통해 여러분의 시야가 더욱 넓어지길 바랍니다.